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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651화 (651/805)

651화

‘대체 어떻게 저런 물건들을 한 사람이 다 걸칠 수가 있지? 그걸 왜 난 이제야 알아차린 거야?’

그 이유는 당연히도 키시아르와 나단 주커만이 걸친 변용 마도구 때문이었다. 그들이 사용 중인 변용 마도구는 수백 년 전 만들어진 물건으로, 현재 만들어지는 비슷한 마도구와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외모를 단순히 변용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보는 이의 인지까지 다소 흐리게 만들 수 있는 수준의 마도구 앞에서는 어지간한 실력의 마법사도 사용자를 알아채지 못했다.

비록 한번 변용 상태를 인식하고 나면 인지를 흐리게 만드는 효과는 다소 떨어진다지만 그건 이 자리에 있는 이들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유더가 평소에 비해 아주 꼼꼼하고 천천히 모든 발언을 적은 뒤 펜을 놓았을 때, 세 시위자는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움찔 반응을 보였다.

“세 분께서 마병단에게 요구한 부분은 모두 적었습니다. 확인해 주시고 이상이 있다면 말씀하시죠.”

세 사람의 눈이 종이 위에 적힌 적나라한 발언들을 어지럽게 훑었다.

잠시 후, 관리가 헛기침을 내뱉으며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그… 잘 봤습니다. 그런데 적은 부분을 보니 아무래도 의사소통이 매끄럽지 못했던 부분이 있었던 모양인데…….”

“의사소통이 매끄럽지 못했다라……. 정확히 어떤 부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돌려 전하는 말의 뜻 따윈 전혀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유더가 무심히 질문을 던졌다.

‘진짜 몰라서 묻는 거냐? 아니면 기어이 이쪽이 굽히고 들어가는 꼴을 봐야겠다는 거냐……!’

7급 관리의 얼굴이 한참 동안 여러 가지 색으로 변했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다가는 결국 뻘겋게 달아올랐다.

“……크흠, 흠. 여기, 이 부분 말입니다.”

“아. 마병단이 남부 지부로 사용하고자 매입한 이 건물의 매매 정황이 깔끔치 못했다……는 이 부분 말이군요.”

감정이랄 것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은 서늘한 목소리 때문일까. 유더 아일은 굳이 큰 소리로 말하지 않아도 제가 하는 말을 주변에 아주 잘 들리게 만드는 듯한 능력이 있었다.

방금 전 제가 분명 내뱉었던 말에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음에도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제 속내가 그대로 까뒤집히는 기분이 들어 관리는 손으로 눈가를 조금 가렸다.

“그렇습니다.”

“분명 해명을 원한다고 하셨는데, 사실은 그런 뜻이 아니셨다는 겁니까.”

“그, 생각해 보니 매매와 관련된 서류 제출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저희가 해명을 원한다고 했던 건 3급 관리이신 지올 테르므 님께서 이 건물의 원 소유주분과 거래 확인을 위한 대화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신 일 이후 우려가 크셨기 때문인데, 사실 제가 보기에는 그에 대한 사실 확인을 지금 당장 하지는 않아도 되는 상황이랄까요.”

아주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자신의 뒷배였던 3급 관리 쪽에게 이 모든 일의 원인을 넘겨 버린 7급 관리가 눈치를 보며 빠르게 입을 움직였다.

“-그러니까 제 뜻은, 아까 제가 했던 해명과 조정 요청이라는 말은 본 의도와 달리 다소 거칠게 들릴 수 있다는 겁니다. 정확하게는 업무 확인 요청 정도로 정정하고, 나머지는 마병단원 모집이 끝나고 바쁜 일이 마무리되신 뒤 이야기하고 싶다…… 뭐 그런 뜻이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유더가 종이에 쓰인 글과 관리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까는 몹시 급하게 해명을 원하지 않으셨습니까? 쿠르가의 말로는 매일같이 이곳에 와서 해명 요청을 하셨다기에 아주 급한 일인 줄 알았는데요.”

“…….”

“네가 분명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 쿠르가?”

“음- 맞아. 그랬지.”

그만 확인해! 관리가 속으로 외치거나 말거나 유더는 냉정한 얼굴로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사실 바라시는 해명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남부의 관리청에서 필요하다고 한다면 마병단 측에서는 건물 매매 정황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수도에서 가져올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원 소유주를 만나시는 건 굳이 지금이 아니라 나중이라도 역시 안될 것 같군요.”

“그, 건 왭니까.”

“이 건물을 본래 소유하고 계시던 분은 현재 수도에서 바쁘게 일을 하고 계신 재상님이십니다. 그분께 여기까지 와서 거래에 대한 확인을 해 달라고 요청하기는 아무래도 어려운 일 아니겠습니까.”

그 말에 7급 관리의 생각이 일시적으로 멈추었다.

그는 한참 뒤에야 겨우 제 귀를 의심하며 더듬더듬 물었다.

“재, 상……님이시라고요? 말도 안 됩니다. 저희가 확인한 바로는……!”

“서류상 소유주의 이름이 다른 건 이곳이 본디 재상님의 외가 쪽 공동 재산이었다가 상속 과정에서 일이 조금 얽혔기 때문이라더군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분의 소유가 맞습니다. 수도에서 해당 사항을 모두 확인한 뒤 재상님을 대리하는 레이플랑 가 측과 마병단장님 사이에 법적으로 확실히 매매 거래를 끝내고 확인서를 제출했을 겁니다.”

‘그, 그럴 수가.’

마병단이 지부로 사용하고자 매매한 이 건물은 샬로인의 구 시가지에 존재해 위치 자체는 아주 좋았으나 오랫동안 거의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다.

이 건물을 사서 조금 고치면 아주 괜찮은 물건이 될 터라 생각하여 오랫동안 탐냈던 3급 관리는 별안간 마병단이 이곳을 사들여 지부로 만들겠다고 하자 불같이 화를 냈다. 외지의 위험한 단체가 겁도 없이 샬로인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에 대한 거부감보다 사실은 그 점이 더 3급 관리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는 걸 7급 관리는 알고 있었다.

‘마병단이 대체 본 소유주를 어떻게 알고서 꼬여 내 매매 거래를 해냈나 했더니……!’

유서 깊은 건물들의 경우 오랫동안 이어지는 상속 사이에서 이런 식으로 일이 꼬이는 경우도 간혹 존재했다. 좀 더 확실히 건물의 내력을 파악했어야 했는데, 워낙 오랫동안 방치된 물건이라 그쪽까지는 확인할 생각을 하지 못한 게 패착이었다.

관리들이 법적으로 문제없이 마무리된 거래를 다시 한번 확인하겠답시고 사람을 불러들이는 건 사람을 괴롭히고자 하는 수단으로 자주 쓰는 방법이다. 상대가 자신들보다 약하다는 걸 알고 있기에 벌일 수 있는 짓이었다.

하지만 그 짓을 하겠답시고 감히 재상을 남부로 부를 수 있겠는가?

재상이라면 이 이야기를 듣는 즉시 이 거래를 남부 관리들 측에서 어떤 식으로 망쳐 놓으려 했는지 금세 깨달을 터였다.

‘그렇다고 마병단 측에서 일부러 이곳이 재상의 건물이란 걸 숨긴 게 아니느냐고 뭐라고 하는 건… 그거야말로 미친 짓이지……. 이거 완전히 잘못 걸렸구나.’

7급 관리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는 우물거리며 간신히 ‘그런 줄 몰랐다. 그런 거래라면 확인이 필요 없을 듯하니 돌아가 보고하겠다’는 말만을 내뱉고서 넋을 반쯤 놓았다.

그 모습을 본 유더의 눈이 슬며시 가늘어졌다.

‘이 건물을 지부 용도로 매매한 건 정말 잘한 일이었어.’

마병단 남부 지부가 생길 곳으로 샬로인을 추천한 건 유더였지만, 거기에서 이 건물을 귀신같이 찾아내어 사들인 건 키시아르 쪽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이런 일이 생길 거란 걸 아주 잘도 꿰뚫어 보고서 상대보다 한 수 앞을 더 나아갔던 것이다.

슬쩍 마주친 시선 속에 웃음이 흘렀다. 얼굴을 변용한 키시아르가 대놓고 즐거운 얼굴로 싱글싱글 미소를 지어도 관리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음은 마법사 쪽이었다.

관리가 침몰하는 모습을 이미 보았기에 그는 다소 위축된 얼굴로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그, 우리 연합 쪽도… 조금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서 정정하고 싶소만…….”

“어떤 부분 말씀입니까.”

“아까 내 입으로 마병단이 다소 위험할 수 있는 단체라 말하기는 했지만, 그건 각성자에 대해 잘 모르는 연합의 의견일 뿐이라 나의 의견이라 보기는 조금 힘들다고나 할까…….”

관리와 아주 비슷한 방식으로 책임을 회피한 마법사가 어설픈 웃음을 지었다.

“나 개인은 마병단장 보좌까지 와서 성의를 보인 이상 충분히 도울 의향이 있소. 얼마 전 당신이 서부에서 서부 마법사 연합과 함께 보였던 대단한 활약을 모르는 바도 아니고…….”

“지부를 마클라 같은 지역 쪽으로 옮기는 편이 더 좋겠다고 추천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면 마병단 지부가 샬로인에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신다는 뜻입니까.”

자신이 했던 두루뭉술한 발언을 정확하게 확정하기를 바라는 듯한 말투에 마법사가 입술을 실룩거렸다.

‘젠장. 그렇게까지 확실하게 말하고 싶지는 않은데… 하지만 마정석 광산과 유더 1번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얻을 수 있다면야 잠깐 비위를 맞춰 주는 정도는 괜찮겠지. 내가 그랬다는 걸 연합의 다른 사람들만 모르면 되는 거니까.’

“아니, 아니. 거기도 좋은 지역이지요. 하지만 마병단이 이미 샬로인에 지부 건물까지 확보하였으니 뭐…… 어쩌겠습니까. 하던 일은 계속하는 게 좋지 않겠소. 난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여기에 그 말씀을 새로 고쳐서 쓰도록 하겠습니다.”

“…….”

“참고로 이 종이의 최종 작성이 끝난 뒤에는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여기에 오신 세 분 모두의 서명을 받을 예정입니다.”

서명에는 직접 쓴 이름과 확인했다는 문구가 필수로 들어간다. 추후 연합 측에서 어떻게 된 일이느냐고 캐물어도 그저 실수로 한 말이라 정정하기 어려워진다는 뜻이었다. 이런 일처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리라 여겼던 평민 출신이 여기까지 꼼꼼하게 굴 줄은 몰랐던 마법사의 얼굴빛이 7급 관리와 비슷한 색으로 변했다.

유더는 그가 무어라 말하기 전에 마지막 세 번째, 상인을 향하여 고개를 돌렸다. 상인은 시작도 전부터 이미 이마에 땀이 몹시 흥건했다.

“거기 계신 분께서도 정정할 부분이 있다면 미리 말씀해 주시죠. 없으십니까.”

“아니…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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