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9화
“무슨 헛소리냐!”
“책임자는 무슨. 여긴 너처럼 새파랗게 젊은 평민 놈이 나설 곳이 아니다. 미쳤으면 곱게 썩 물러나라!”
지부 앞을 가득 메우고 항의 중인 사람들 앞에 홀로 나선 유더에 대한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뜨거웠다. 유더의 말을 믿는 이는 하나도 없었고, 어디서 정신이 나간 놈이 나타나 헛소리를 한다는 평이 대세였다.
유더는 수많은 야유와 항의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가 시선을 살짝 돌리자 눈이 마주친 쿠르가가 입을 열어 크게 외쳤다.
“여기 이 사람은 정말로 마병단의 책임자가 맞다! 그동안 계속해서 책임자를 불러오라 외친 건 당신들이 아닌가. 그렇다면 뭐가 문제지?”
“뭐?”
그간 오며 가며 얼굴이 조금 눈에 익은 데다 마병단복까지 제대로 안에 걸친 쿠르가가 그리 말하니 벌떼 같던 야유가 조금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 잠시간의 침묵은 이내 방금보다 두 배는 더 큰 고함으로 되돌아왔다.
“저자가 진짜 마병단이라면 더 우스운 일이군! 그간의 무시 끝에 내놓는다는 대응이 고작 저런 간덩이 부은 어린 청년을 책임자랍시고 칼받이로 내놓는 것인가?”
“황제 폐하의 직속이라는 이름이 부끄럽구나!”
“그래. 저자가 정말로 마병단이 맞다면 증거를 내놓아라! 옷부터 어디서 굴러왔는지 모를 차림새인데 무얼 믿으라는 거냐!”
“마병단장이 언제부터 저런 더러운 검정 머리가 되었지? 펠레타 공작의 머리가 검어졌다는 소식은 들은 적이 없는데 말이야!”
“…….”
유더는 더욱 크게 난리를 피우는 목청 큰 자들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했다. 역시나 쿠르가가 지목했던 그 세 명이 중점이 되어 선동하는 중이었다.
그들은 수많은 욕설에 놀랐을 이 검은 머리 청년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리며 물러날 거라 생각하는 듯했으나, 유더는 정확히 그 반대의 행동을 취했다.
“……웃어?”
유더는 침묵 속에서 입술 끝을 올려 미소를 지었다.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은데 핏기가 적은 얇은 입술 끝만이 길게 찢어진 그 오싹한 모습에 몇몇 이들이 미약하게 의문과 불안감을 느낀 그 순간.
“말을 해도 못 믿겠다면 어쩔 수 없지. 내가 마병단원이며 대화를 나눌 만한 자격이 있는 책임자란 걸 증명해 주는 수밖에.”
그 말과 함께 앞으로 훌쩍 나선 유더가 그대로 한 발을 들어 땅을 가볍게 내리찍었다.
- 쿵……!
더없이 가벼운 한 걸음.
그러나 그 여파는 주변 일대 전체를 울렸다.
유더의 발끝에서부터 시작된 진동이 널리 퍼져 나가며 건물들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몸서리를 쳤고, 담벼락을 따라 자라난 나무에서 나뭇가지가 우수수 부서져 떨어져 내렸다.
흔들리는 발밑을 버티지 못한 이들 모두가 비명을 지르며 나뒹군 건 당연한 결과였다.
“으아악!”
“맙소사. 사람 살려!”
“신이시여!”
다양한 비명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간 뒤, 흙투성이가 된 이들이 공포로 범벅이 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멀쩡히 발을 디디고 꼿꼿하게 서 있던 유더가 고개를 조용히 옆으로 기울이며 물었다.
“마침 발밑에 지네가 기어가고 있기에 안전을 위하여 잡아 드렸는데…… 이 정도 힘이면 당신들과 대화할 급이 되나? 아니면, 이걸로는 아직 부족한가?”
그 말대로 유더의 발끝 아래에는 납작해진 지네 사체 한 마리가 깔려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핑계일 뿐이었다. 고요하게 돌아 버린 게 분명한 저 광인이 진짜로 납작하게 만들고 싶었던 건, 지네가 아니라 이 자리에 있는 시위자들이라는 걸 눈이 있는 자들은 모두 느꼈다.
불길한 어둠을 닮은 새카만 눈동자가 제 발에 깔려 죽은 벌레를 볼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눈으로 모두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소름이 끼치는 눈빛에 몇몇 이들이 경기를 일으켰다.
‘이런 미친놈이 대체 어디서……!’
“너… 아니, 다, 당신은 대체 누굽니까. 누구길래 이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다 말고 유더와 시선이 마주친 고급 관리복 차림의 사내가 숨을 몰아쉬며 뒤로 물러나려는 듯 엉덩이를 움직였다. 그는 그 한심한 모습을 내려다보며 차갑게 입을 열어 스스로를 소개했다.
“마병단장 보좌, 유더 아일이다.”
사실 이 대화는 유더가 처음 나섰을 때 이미 오갔어야 했을 말들이었다.
그냥 말로 할 때는 상대의 이름을 묻기는커녕 제대로 된 질문 하나 하지 않다가, 한번 뜨거운 맛을 보고 나서야 묻는 예의가 참으로 대단했으나 유더는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이런 놈들이 다 그렇지.’
이자들은 유더가 보여 준 힘에도 겁을 먹었겠지만 그것만으로 갑자기 없던 예의를 탑재한 게 아니다. 그들이 몸을 낮추게 된 진짜 이유는 이런 미친 짓을 저지르고도 유더가 당당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저런 놈들의 머릿속에서 마음대로 일을 치고도 안하무인으로 굴 수 있는 자는 ‘진짜 높은 사람’이라는 공식이라도 박혀 있는지, 꼭 이런 식으로 한 방을 먹여 주고 같은 사람처럼 대접하지 않을 때만 비로소 말을 듣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이렇게 다 같이 엎드려 있으니 보기는 좋군.’
이들은 모르고 있겠으나 방금 전까지 신나게 모욕했던 펠레타 공작, 마병단장 키시아르도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다. 유더는 키시아르의 앞에 납작 엎드려 무릎을 꿇은 자들의 모습에 내심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을 본 시위자들은 오금이 저려 더 이상 입을 뗄 용기조차 없어지고 말았다.
“자, 그러면…… 그쪽의 빨간 관리복. 그 옆의 초록색 마법사 로브. 그리고 이쪽의 회색 옷. 이제 제대로 대화를 좀 나누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그대로 모든 상황이 종료되었다.
유더는 기가 눌리고 얼이 빠진 세 명을 지목해 당당히 지부 안으로 입장했다. 상황이 종료되자마자 바로 말투를 공적인 존대로 바꾼 유더를 보며 시위자들은 더욱 공포에 질린 듯했으나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유더는 쿠르가가 제법 눈치를 발휘하여 안내해 준 공간으로 세 사람을 데려가 나란히 앉혔다. 유더가 자신들을 대응하는 맞은편에 앉으리라 짐작하여 잔뜩 긴장하고 있던 이들은, 유더보다 먼저 흐릿한 인상의 갈색 머리 남자가 앉는 모습을 보며 의문에 찼다.
‘저자는 누구냐?’
그는 유더 아일이 난리를 피우는 동안 그저 얌전히 팔짱을 낀 채 뒤에서 보고만 있었다. 조금도 중요해 보이지 않는 인물이라 갑자기 이렇게 자연스레 나서니 그저 당황스러웠다.
‘저자도 마병단원인가? 아니면 다른 외부 인사?’
그들이 외모를 변용한 키시아르의 정체를 궁금해하며 흘끔대거나 말거나, 유더는 키시아르가 편히 자리를 잡은 모습을 확인한 뒤에야 그의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그가 앉자마자 분위기는 또다시 한겨울 북부의 호수처럼 꽁꽁 얼어붙었다.
“시작 전, 제 이름은 이미 말했으니 세 분의 이름도 말씀해 주시죠.”
본래대로라면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예의상 이런저런 말들이 오가게 마련이나 유더는 그런 예의를 차려 줄 생각이 요만큼도 없었다. 곧바로 이름부터 말하라는 차가운 태도에 세 사람의 시위자가 분노를 감추지 못했으나, 아직 아까 본 지진이 기억에 선명한 덕인지 이내 얌전히 입을 열었다.
관리복을 입은 자는 샬로인의 7급 관리였고, 마법사 쪽은 ‘사파이어 마법사 연합’이라는 남부 최대 마법사 연합 소속이었다. 남은 한 사람은 대대로 샬로인에서 장사를 해 온 무역 상단 소속이었는데, 그 상단이 샬로인 전체 상인 연합에서 무언가 한자리를 맡고 있다는 듯했다.
그들은 최대한 자신의 위치를 대단한 듯 부각하여 조금이라도 상대가 주눅이 들기를 바랐으나, 유더가 듣는 즉시 그들의 이름을 머릿속에서 삭제한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유더가 머리에 담아 둔 건 그저 그들의 허황한 자기소개 속에 숨어 있는 실낱같은 정보들 뿐이었다.
‘역시 세 놈 다 황제에게 반대하는 귀족파들과 친분이 있군. 이 일을 성공시켰을 때 미래에 이익이 돌아올지 모른단 기대가 이들을 움직인 거겠지.’
시위를 위해 몰려온 수많은 이들 모두가 그런 이유로 움직인 건 아니었을 터다. 자신들이 진심으로 샬로인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나섰을 뿐이라 생각하는 이들이 더 많을 것이라는 데 유더는 내기도 걸 수 있었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굳이 나서지 않았을 그런 이들을 선동한 건 자신들에게 돌아올 정치적 이득을 기대하며 몸소 나선 이런 ‘목소리’ 역할을 맡은 자들이다.
즉, 말하자면 이런 자들만 꺼지게 만들면 나머지 문제는 해소된다는 뜻이었다.
‘자. 그러면 이제 하나씩 주먹을 먹여 볼까.’
“그래서. 세 분의 요구 사항은 정확히 뭡니까.”
무표정한 얼굴로 유더가 내뱉은 질문에 세 사람이 제각기 미간을 찌푸렸다.
서로 시선을 마주한 세 사람 중, 마법사 로브를 걸친 이가 먼저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여태 보고도 모르나? 우리는 마병단이라는 위험한 단체가 남부 최대의 도시인 이 샬로인에 들어오는 걸 용납할 수 없소. 굳이 이 샬로인에 지부를 세워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이오? 조금만 더 내려가면 마클라 같은 적당한 지역도 있지 않소.”
“맞는 말씀입니다. 샬로인의 많은 관리들 또한 같은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비록 재상께서 협력을 권고하셨다고는 하나, 그것은 지역의 특성을 생각지 못한 처사이지요. 게다가 지부를 만들고자 하는 이 건물의 매매 상황 또한 여러모로 깔끔치 못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3급 관리이신 지올 테르므 님께서는 이에 대한 해명과 조정을 원하십니다.”
관리가 마법사의 말에 동의하자 마지막으로 상인이 말했다.
“지원 시험인지 뭔지를 보러 온 각성자들 때문에 샬로인 전체가 불안에 떨고 있소. 무역 상단들 또한 큰 영업 손실을 입었지요. 그에 대해 마병단이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몹시 긴 말들이었다. 하지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개소리를 길게도 늘이는군.’
유더는 표정 없는 얼굴로 고개를 돌려 쿠르가를 보았다.
“쿠르가.”
“어? 응?”
“이 요구 사항들을 아무래도 적어서 정리해야 할 것 같으니 종이를 좀 가져다줬으면 하는데.”
“종이? 알겠어.”
쿠르가가 알 듯 말 듯 한 얼굴로 가져다준 종이가 긴 책상 위에 놓였다.
“펜은 여기 있으니 이걸로 쓰면 돼.”
“그건 됐어. 여기 내 펜도 있으니까.”
유더가 품속에서 펜을 끄집어냈다. 그 순간, 관리의 눈매가 움찔 떨렸다.
‘……저건?’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6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