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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641화 (641/805)

641화

지금 여기에는 몬스터뿐만이 아니라, 다른 짐승의 사체도 많이 섞여 있었다.

그냥 몬스터의 사체만 이런 식으로 배치해 두었다 해도 오싹할 판에, 다른 짐승의 사체까지 뒤섞어 함께 두다니. 도대체 초대 타인 공작은 무슨 생각과 의도로 이런 일을 했단 말인가?

‘혹시 마법을 발동하는 진이나…… 뭐 그런 게 여기 있는 건 아닐까.’

마법사들은 마력을 담은 마석이나 온갖 물건들을 이용하여 마법의 힘을 일으킬 수 있는 진을 만들 수 있다. 서부 마법사 연합의 마법사들 또한 각자의 힘은 약해도 대규모 진을 여럿 만들어 거점을 보호하고 연구를 수행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런 거라면 이 눈에 아무것도 비치지 않을 리가 없지…….’

유더는 의심 어린 눈으로 널려 있는 시체들을 훑다 고개를 저었다.

그는 또다시 주변을 거닐며 짐승의 사체 흔적들을 중점적으로 살피기 시작했다. 어떤 짐승들이었는지를 알아보면 좀 더 의도를 파악하기 쉬울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오랫동안 산에서 살며 산짐승들을 많이 본 경험이 있는 그라도 푹 썩어 버린 뼛조각 몇 개만으로 모든 걸 추측하기란 다소 어려움이 존재했다.

‘몬스터 사체 쪽에 비해 너무 흔적이 적어.’

그래도 자세히 살펴보니 이곳에 사체를 가져다 둔 이가 나름대로 보존을 위하여 여러 수단을 썼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천년이나 된 짐승 사체가 이만큼 남아 있는 건 그런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터다.

차라리 몬스터나 사람의 뼈라면 더 알아보기 쉬웠을 텐데. 유더는 눈에 힘을 주느라 조금씩 욱신대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긴 뿔을 지닌 짐승 사체의 흔적을 노려보았다.

썩다 만 뿔 조각만으로 그것이 생전에 사슴이었을지, 순록이었을지 추측하느라 머릿속 지식을 한껏 쥐어짜던 도중, 문득 나란히 놓여 있는 몬스터 사체 쪽에 눈길이 갔다.

‘……그러고 보니 몬스터 사체 쪽에도 뿔이 있군.’

유더는 짐승 사체 쪽에 비해 매우 잘 보존되어 있는 몬스터 사체의 뿔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러다 다시 눈길을 돌려 곁의 짐승 사체를 보았다.

‘어쩐지…… 뿔 형태가 상당히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뿔은 죽고 나서도 아주 오랫동안 보존되는 부위 중 하나다. 덕분에 두 사체의 뿔 크기와 형태가 놀랍도록 닮았다는 사실을 약간의 시간을 들여 곧 확신할 수 있었다.

유더는 여태 자신이 보아 온 수많은 몬스터들을 떠올려 보았다. 몬스터란 대체로 아무런 규칙성 없는 형태를 지닌 게 특징이다. 놈들의 종류는 많고도 많아 도감을 만들고 또 만들어도 끝이 없을 정도지만, 생각해 보면 그 기괴한 외형 특징에도 한 가지 공통점이 있기는 했다.

‘간혹 다른 동물이나 곤충, 혹은 식물을 닮은 형태를 보일 때가 있다는 것.’

이를테면 얼마 전 유더가 몸을 바쳐 잡아낸 거대한 페투아멧. 아니, 긴꼬리 검보라 펜펜만 해도 그렇다.

놈은 그야말로 아무런 규칙이란 게 보이지 않는 생김새를 지녔으나 유독 몸에 비해 입이 컸다. 그리고 그 안에 말아 넣었다가 먹이를 낚아채는 긴 혀와 가시가 달린 꼬리의 말린 형태를 보면 남부에서 주로 서식하는 카멜레온을 연상케 하는 면이 있었다.

물론 개나 고양이처럼 매끄러운 털가죽은 카멜레온과는 전혀 달랐고, 어떤 부분에서는 거대한 애벌레를 닮았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해당 부분만은 그랬다는 뜻이다.

날개가 달린 몬스터들은 또 어떤가. 보통 몬스터에게 달리는 날개는 새나 박쥐 같은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보통 생각하는 ‘날개’ 같지 않은 날개를 달고서 날아다니는 놈은 유더가 여태까지 마주한 바로는 없었다.

‘여태까진 그냥 비슷하다고만 여겼을 뿐 그 점을 별로 깊이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유더는 한참 동안 두 개의 뿔을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혹시 초대 타인 공작이 이곳에 짐승의 사체와 몬스터의 사체를 번갈아 놓은 이유가 자신이 느낀 이 기이한 공통점과 연관이 있는 걸까?

아직 확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어쩐지…… 어떤 육감이 느껴졌다. 지금 생각하는 방향이 정답에서 멀지 않은 것 같다는 미약한 감각이 머릿속에서 날카롭게 고개를 쳐들었다.

“자, 이제 볼 만큼 본 것 같으니 다들 이쪽으로 오게.”

얼마 지나지 않아 키시아르가 그들을 불렀다. 그는 가장 중앙에 있는 사체 쪽에 서 있었다.

“각자 무엇을 발견했는지 말해 볼까? 누가 먼저 하겠나.”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유더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그의 눈빛을 본 키시아르가 무언가를 느낀 듯 흥미롭다는 미소를 지었다.

“좋아. 말해 보게.”

“초대 타인 공작의 흔적은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의도는 어느 정도 알 것도 같습니다. 우선 이곳에는 현재 몬스터의 사체만큼이나 평범한 짐승의 사체도 많이 섞여 있다는 걸 두 분 모두 이미 파악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유더의 생각대로 그 말을 들은 키시아르와 나단 주커만은 둘 다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래. 그건 나도 알겠더군.”

“제가 살펴본 결과, 이곳에 나란히 놓인 짐승 사체와 몬스터 사체 사이에는 하나 이상의 신체적 공통 요소가 존재합니다. 뿔이 닮은 사체끼리 놓여 있거나, 혹은 긴 송곳니 네 개의 위치나 길이가 닮았거나 하는 식입니다. 썩어서 전부 확인은 어려웠지만 다른 것들도 대부분 비슷하리라 생각됩니다.”

키시아르와 나단 주커만의 시선이 주변의 사체들을 향하여 돌아갔다. 나단 주커만의 눈이 슬쩍 가늘어졌다.

“나란히 있는 사체들 중 덩치가 비슷한 개체가 많은 것 같다고는 생각했습니다만, 뿔과 송곳니라……. 혹 저도 확인해 볼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따라오시죠.”

유더는 자신이 이곳에서 발견한 사례 중 그나마 가장 눈으로 공통점을 확인하기 쉬운 몇 예시들을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몇몇 사체들을 모두 훑고 나서 다시 유더가 맨 처음 보았던 뿔 조각 앞에 선 나단 주커만이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정말로 몹시 닮았군요. 이런 부분까지는 미처 신경을 써서 확인하지 못했는데…… 부정하기 어려운 공통점이라 생각됩니다.”

“몬스터의 형태가 대중없이 생긴 데다 때로는 다른 동식물을 닮은 듯 보이는 신체 부위를 이상한 곳에 달고 있는 놈들도 많다는 건 놈들을 어느 정도 잡아 본 이라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직접적으로 닮은 부위를 지닌 동물과 몬스터 사체를 나란히 두고 본 건 저도 처음인데…… 생각보다도 더 닮은 것 같더군요.”

펠레타 기사단에서 자체적으로 몬스터 도감을 만들 만큼 많은 사냥을 해 보았을 나단 주커만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더의 말에 그가 완전히 동의했으며 상당히 놀라움을 느꼈음이 그 작은 움직임에서 확연히 느껴졌다.

“저는 아마 여기 있는 사체들을 초대 타인 공작이 일부러 닮은 신체 부위를 지닌 것으로 특별히 선정했을 가능성이 무척 높다고 생각합니다. 몬스터를 연구하며 얻은 뭔가를 이것을 통해 남기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남기고 싶었다기보단…… 여기에 언젠가 찾아올 누군가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는 쪽이 더 맞을 수도 있겠지. 그냥 연구 결과를 남기는 데 만족하는 것과 누군가에게 의도를 전하고 싶은 건 비슷해 보여도 제법 다르거든.”

조용히 이 모든 걸 지켜보던 키시아르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는 유더의 발견이 몹시 마음에 드는 듯한 눈빛으로 입술을 벌려 웃었다.

“서로 닮은 부분을 지닌 짐승과 몬스터를 굳이 이런 식으로 나란히 놓아두었다는 건 유더 네 말대로 분명 그 공통점을 강하게 보여 주려는 의도가 있었을 거야. 재미있군. 정말 흥미로운 발견을 했어.”

이런 곳에서 짓기에는 그리 어울리지 않을 만큼 밝은 미소였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어두운 것보다는 밝은 쪽이 더 좋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막 그 미소에 시선을 빼앗겼던 순간, 키시아르가 또다시 물 흐르듯 그의 칭찬을 시작했다.

“몬스터와 짐승, 양쪽 모두를 평소 잘 알고 있었던 이라서 이리 빨리 발견할 수 있었던 거겠지. 나처럼 누군가 잡아 온 걸 먹기만 했던 자는 아마 알아차릴 때까지 시간이 한참은 더 걸렸을 텐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공작님을 위한 사냥을 맡았던 제가 무엇이 되겠습니까?”

나단 주커만이 나직하게 항의했다. 물론 말투만 진지할 뿐, 진심 어린 항의는 아니었다. 유더는 그가 키시아르를 상대로 그런 식으로 농담을 할 수도 있는 사람이었음을 오늘 처음 깨달았다.

“제가 있는 쪽에 마침 이렇게 눈에 띄는 사체가 있어 발견이 빨랐을 뿐입니다. 어차피 두 분 다 곧 알아채셨을 테니 무안한 말씀은 그만하시죠.”

“이런. 진심 어린 칭찬을 전하는 것도 힘들군.”

그렇게 말한 뒤 키시아르는 나단 주커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 그래서 나단. 네가 발견한 건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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