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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631화 (631/805)

631화

“정제한 두둘렘 버섯……. 당신들이 뭘 어디까지 알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 내 동생 마이키가 마지막으로 채취하고 있었던 게 바로 그거긴 해요.”

마린은 지친 모습으로 낡은 의자에 주저앉았다. 눌러 쓴 모자를 벗자 결이 거친 흑발이 어깨 위로 흘러내렸다. 그녀는 헝클어진 머리를 그대로 내버려 둔 채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도 마이키를 죽일 만한 사람이라면 그 녀석이 죽기 전에 만났다던 처음 보는 상인이 가장 가능성이 높을 거라 생각하긴 했죠. 마이키가 죽은 이후 내가 그자를 찾아내려고 산 아래 마을을 싹 다 뒤졌지만 못 찾았으니까.”

“영주는 마이키가 짐승에게 당해 죽었다고 했다지.”

“그것까지 들었어요? 하. 맞아요. 아주 좆같은 소릴 했지.”

마린의 눈 속에 분노가 일렁였다.

“누가 봐도 칼에 찔려 죽은 건데, 몬스터에게 죽었다고 둘러대면 토벌하는 척이라도 해야 하니까 짐승 핑계를 댄 거예요. 귀찮으니까 대충 그렇게 퉁쳐 버린 거죠. 누구도 안 믿을 개소릴 조사 결과랍시고 해 댄 덕에 마이키는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게 됐다고요!”

지쳤던 얼굴 가득 피어오른 증오의 불꽃을 보며 유더는 자신이 기억하던 가시덤불의 마린이 그녀가 맞다는 사실을 재차 확신했다.

“그래서, 당신은 그 상인이란 자에 대해 무얼 알고 있지?”

키시아르가 부드럽고 냉정하게 물었다. 잠시 침묵하던 마린이 핏발 선 눈으로 중얼거렸다.

“잘 몰라.”

“모른다고?”

“정말 화나는 일이지만…… 나는 마이키가 죽기 며칠 전부터 외부에 나가 있었거든. 마이키가 모르는 사람과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도 녀석이 죽은 다음에야 알게 됐다고요.”

동생이 죽었다는 소식에 황급히 마을로 돌아온 마린은 범인을 찾기 위해 온 힘을 다했다. 그러나 가장 가능성 높은 범인은 이미 홀연히 사라진 뒤였으며, 영주는 짐승의 소행으로 추정된다는 결과만 내놓았을 뿐 조금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그에게 조그만 촌락의 일반 평민 한 사람의 죽음 따위야 별 상관도 없긴 했겠으나 그래도 지나칠 정도의 홀대였다.

마을 주민들은 마이키가 당한 사고를 안타까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가 좋지 않은 것을 팔려고 했기에 그런 짓을 당한 것이라 쑥덕댔다. 어릴 때부터 한 마을에서 자라 그럴 리 없음을 알면서도 말이다. 마이키가 저주를 받았다는 근거 없는 이야기도 떠돌면서, 사람들은 행여나 그처럼 죽을까 싶어 시체가 발견된 장소 주변에 발길까지 끊었다.

범인을 찾기 위한 수확을 얻지도, 마음을 둘 곳도 없어진 마린은 급속도로 지쳐 밖으로 나돌았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건 정말 무력한 일이었다.

바로 오늘, 다시 마을로 돌아오기 전까지도 그녀는 산 아래서 남의 일을 도우며 동생의 억울함을 풀어 줄 길을 찾아 헤매려 노력했다. 그리고 또다시 실패하고 부서져 되돌아왔다.

“마이키는 그럴 녀석이 아니에요. 돈 때문이든 무엇 때문이든 욕심을 내어 뭘 팔려고 위험을 자처할 녀석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러면 질문을 바꾸지.”

마린의 핏발 선 눈을 바라보며 갈색 머리칼의 사내가 흔들림 없이 질문을 바꾸었다.

“동생이 죽기 전, 두둘렘 버섯을 채취했을 때 뭐라도 좋으니 묘하다 생각했던 게 없었나? 당신이 직접 그 상인을 보진 못했다지만, 동생 쪽은 거래를 위해 몇 번 먼저 접촉을 했었겠지. 그때쯤의 기억이라면 뭐든 좋아.”

“…….”

찌푸린 채 침묵하던 마린이 입술을 짓씹으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마이키는 원래 자기가 누구를 만나 거래를 하는지 자주 이야기하는 녀석이 아니라서…… 그 부분은 기억이 안 나는군요. 다만…… 팔아도 돈도 안 될 버섯을 왜 캐서 말리고 있는지 궁금해하긴 했었던 것 같네요.”

두둘렘 버섯은 돈이 없는 평민들이나 가끔 사용하는 약한 독버섯이다. 찾기 까다로운 편은 아니지만 팔아도 딱히 돈이 되지 않았다. 어지간한 약재는 다 취급하는 약방에서조차 구매를 거부할 만큼 별 볼 일 없는 물건이었다.

그런 것을 갑자기 여럿 채취하여 말리고 있기에, 지나가면서 누굴 주려고 그러느냐고 물어보았었다. 팔려고 하는 물건이라 생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랬더니. 뭐라고 답했지?”

“그냥 머쓱하게 웃기만 했어요. 아무 답도 안 하고.”

마이키는 꽃과 풀을 좋아했다. 쓸모없어 보이는 풀들을 관찰하는 게 어린 시절부터의 취미였다. 때문에 마린은 이번에도 그런 취미 생활의 일환인 줄로만 알았다.

“……아. 그러고 보니, 그때 뭐라고 한 마디 더 했었던 것도 같네요.”

찢어질 듯한 심경 속에서 문득 잊고 있던 희미한 기억이 불쑥 떠올랐다.

“마이키가 그때…… 조만간 친구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와서 만날 것 같다고 했었어요. 저도 같이 보면 좋겠다고 하기에 무슨 헛소리를 하나 싶어 대답도 안 하고 넘어갔죠. 이후로는 곧 집을 떠나느라고…….”

그래. 그런 말을 했었는데, 너무나 일상적인 대화라 잊어버리고 있었다. 마린의 표정이 일그러지자 갈색 머리칼의 사내가 재차 물었다.

“동생은 친구가 많은 편이었나?”

“많지는 않지만…… 이 마을에서 자란 아이들과는 다 친구라 할 만하죠. 지금은 산 아래로 내려갔거나 타이누 같은 큰 도시까지 가서 일하는 애들이 많아요. 마을에 남아 어른들처럼 약초를 캐고 관광 온 사람들 상대나 하는 녀석들은 얼마 없어요.”

“그렇다면 당연히 그런 친구들 중 한 사람과 만날 예정이라고 생각했겠어.”

“그랬죠.”

“서로 만날 약속을 잡았었다면 동생이 죽은 뒤 그쪽에서 연락이 왔을 텐데, 그런 건?”

“없었어요.”

“동생에게 누나가 모르는 친구가 있었을 가능성은?”

“그것도 없어요.”

“확신하나?”

마린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신해요.”

갈색 머리칼의 사내는 마린의 말속에 어떤 거짓도 없다는 사실을 마치 쳐다보기만 하면 알 수 있는 것처럼 물끄러미 응시했다.

‘저 남자도 각성자라고 했었지.’

혹시 참과 거짓을 판단하는 능력이라도 가진 걸까. 흐릿하게 비치는 눈동자가 그 순간만은 아주 무겁고도 날카롭게 느껴졌으나 마린은 묘한 위압감 앞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았다. 뭔가에 겁을 먹기에 그녀는 이미 너무나 지친 상태였다.

잠시 후 갈색 머리칼의 사내가 다른 이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말없이 눈짓만으로 의견을 교환한 이들이 이번에는 전혀 다른 질문을 갑자기 던졌다.

“사실 당신에게 물어보려 한 건 이것 외에 하나가 더 있습니다.”

“뭔데요.”

“혹시…… 몇 년 전, 이 마을에 여름을 나기 위해 찾아왔던 귀족들을 기억합니까. 당신이 그들을 안내했다고 들었습니다.”

“여름…… 기억해요. 그게 왜요.”

여름에 호수를 보러 오는 이들은 흔치 않다. 뜨거운 햇볕이 닿은 산꼭대기 호수의 수위가 훅 줄면서 주변이 끔찍하게 습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더운데 서늘함과는 거리가 먼 환경을 굳이 즐기러 왔다는 건 매 맞는 걸 좋아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당시의 마린은 생각했다. 참으로 특이한 경험이었고, 이후의 일들도 그랬기에 당연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 왔던 귀족들을 떠올리던 마린의 머릿속에 문득 그때 있었던 가장 크고 비밀스러운 일이 하나 떠올랐다.

‘두둘렘 버섯을 거래한 놈을 찾는단 자들이 이번에는 갑자기 그때 온 귀족들에 대해 묻는단 건…… 연관이 있단 건가? 그렇다면…… 아니 잠깐. 설마.’

마린의 표정이 크게 변했다. 그리고 숨기지 못하고 드러난 그 얼굴을 유더 또한 조금도 놓치지 않고 낱낱이 보고 있는 중이었다.

‘단순히 안내만 해 준 사람이 지을 만한 표정은 절대 아니군. 뭔가 있었던 거야.’

“당신들, 이거… 그냥 묻는 게 아니지? 대체 뭐야. 왜 이런 질문을…….”

마린이 탁자에 손을 짚은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나 마법으로 모습을 잠시 바꾼 키시아르와 나단 주커만, 그리고 유더는 셋 모두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서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래. 물론 그냥 물은 건 아니지. 우리는 몇 년 전 이 마을에 찾아왔다던 귀족들과, 이번에 일어난 당신의 동생의 죽음 사이에 한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 중이거든. 정확히는 그 사람이 당신의 동생을 죽였다고 여기고 있지.”

갈색 머리칼의 남자, 키시아르가 변용한 얼굴을 움직여 입술 끝을 들어 올렸다.

“때문에 당신의 대답이 여기서 아주 중요해. 세상을 떠난 이가 대체 왜 돈도 안 되는 버섯을 채집하고 손질하며 상인과 만나려 했는지에 대한 추측도 그 답에 따라 갈리게 될 테니까.”

“…….”

“진실을 원한다고 하지 않았나? 우리 또한 마찬가지야. 동생을 하루아침에 잃은 당신이 느낄 감정을 감히 이해한다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짓을 저지른 자에게 올바른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다는 약속은 할 수 있어. 그걸 위해 여기까지 왔으니까.”

“…….”

“지금으로선 당신이 우리에게 답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야.”

한참 동안 그들을 바라보던 마린이 그제야 자리에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얼굴을 양손 사이에 파묻은 그녀의 입술 사이로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한 호흡이 거칠게 흘러나왔다.

키시아르는 그녀가 입을 열 때까지 인내심 있게 한참 동안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마린에게서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정확히, 5년 전의 여름이었죠. 그 귀족들이 방문한 때가. 그때 있었던 일과 마이키가 말했던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그리고 두둘렘 버섯. 셋 모두를 연관시킬 만한 사람을 나도 한 명 알아요.”

“그게 누구지?”

“카치안. 마이키의 친구였죠.”

일순 유더는 등줄기를 훑고 지나가는 벼락같은 감각을 느꼈다.

오는 동안 들은 정보들을 합치고 꿰어 맞추면서 카치안이 이 마을과 분명 연관이 있으리라 추측하기는 했었지만, 그래도 진실은 언제나 더 놀라운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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