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9화
태어나 처음으로, 유더는 아무런 번민 없이 그저 순수하게 쾌감 속에 매몰되었다. 이성을 붙잡아야 한다는 불안감 따위는 어느 순간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대로 움직였고, 느끼는 대로 솔직하게 발했다.
머릿속에 아무런 계획도, 생각도 없는 그 상태가 오히려 갈수록 더욱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제 몸이 어떤지, 어디까지 갈 수 있으며 한계가 어디인지…… 모든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깨끗하고 명확하게 인지되었다.
온갖 복잡한 지식과 번잡했던 기억들이 가라앉은 머릿속은 마치 흙탕물이 가라앉아 투명해진 물과도 비슷했다. 그 맑고 고요한 물결 사이를 들여다보면 저와 하나가 되어 가는 상대의 존재가 벅찰 만큼 확실하게 잘 보였다.
그래. 본능은 자신을 제어하지 못하게 만드는 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보석을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어둠 속에서도 홀로 불꽃처럼 일렁이는 붉은 눈동자를 보며 느끼는 이 감정은 분명 변치 않는 영원을 오랫동안 갈구해 온 인간의 감정임을 안다.
그리고 이와 똑같은 감정이 그 아름다운 눈 속에도 깃들어 있었다.
어떤 것들은 언어가 되어 나오지 않았을 때 도리어 확연해진다.
대화 한마디 나눌 틈 없이 고요하게 뒤엉킨 지금 이 순간, 유더는 키시아르 라 오르와 하나가 될 수 있는 몸이 제게 있다는 사실에 환희했다.
시간은 유한하며 영원히 지속될 수 없을지라도,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거대한 일체감만은 제 안에 영원히 새겨져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아……!”
또다시 벽을 넘어 꿀럭이며 들어온 귀두 끝이 어딘지 모를 쾌락점을 거침없이 찔렀다. 제 몸에 존재한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가공할 감각들이 일제히 전율하고 발광하며 내부를 거세게 쥐어 터질 듯이 조였다.
유더는 또다시 찾아온 절정의 쾌감이 제 몸을 훑고 지나가는 감각을 느끼며 흐릿하게 뜬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 몇 번이나 사정한 성기는 더 이상 액체를 거의 뱉어 내지 못했으나 느껴지는 절정감만은 똑같았다. 엉덩이와 배 속 깊은 곳에서부터 번진 쾌감의 파도가 오랫동안 몸을 뒤덮고서 물결처럼 쓸어 댔다.
제 모든 것을 그대로 휩쓸어 갈 듯 거센 그 물결에 유더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 어떤 드높은 파도가 저를 삼키기 위해 닥쳐오더라도 괜찮았다. 이 뜨거운 손길과 거침없이 뒤엉켜 전신을 겹겹이 감싸는 향이 있는 한, 어디서든 숨을 쉴 수 있을 테니까.
어둠 속에서 시작되었던 정사는 해가 뜬 뒤에도, 그리고 또다시 그 해가 서쪽을 향하여 뉘엿뉘엿 기운 뒤에도 계속되었다.
긴 정사야 이전에도 해 보았었다지만, 그때와 이번은 품은 분위기와 열기의 빛깔이 달랐다. 그때는 유더가 조금만 지치거나 쾌감에 정도 이상으로 취해 있으면 자연스럽게 행위가 잠시 소강상태로 진입했다. 키시아르는 유더를 몸 위에 올린 채 끌어안고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거나, 혹은 쓰다듬고 부드럽게 입을 맞추는 시간을 즐겼었다.
그러나 이번은 유더가 지나친 쾌감에 사지를 늘어뜨린 채 헐떡이고 있어도 행위가 멈추지 않았다. 유더가 멈추기를 바라지 않고, 키시아르 또한 같은 의지를 숨기지 않으니 소강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으응, 흐읏, 하…….”
꺼지지 않는 잔불처럼 지속되는 쾌감 속에서 벽에 기대어 앉은 키시아르가 제 위에 마주 보고 앉아 아이처럼 끌어안긴 유더의 몸을 끊임없이 흔들었다. 허벅지를 쥔 손가락 끝에서 배어난 땀으로 인해 은밀한 살결 안쪽까지 미끈미끈했다. 긴 손가락 끝이 엉덩이를 한껏 쥐고 벌린 채 위로 들어 올렸다 힘을 빼기를 반복할 때마다, 유더는 스스로의 몸무게로 인하여 그 어느 때보다도 깊이 박히는 성기의 느낌에 간헐적으로 몸을 떨며 신음을 흘렸다.
완전히 삽입된 성기가 명치까지 꿰뚫고 들어올 듯 내벽을 밀어 올릴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데, 짓눌리고 긁히는 데 익숙해진 점막은 그 압박감에 변함없이 환희했다. 완전히 녹아 뭉그러진 배 속은 힘이 빠졌을지언정 여전히 탐욕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키시아르 또한 그에 뒤지지 않을 만한 열을 머금은 눈동자로 유더의 몸이 보이는 반응을 모조리 지켜보는 중이었다. 유더가 보이는 작은 떨림 하나, 흐릿한 신음조차도 그는 조금도 놓치지 않고 모두 남김없이 삼켜 소화했다. 언제나 매끄러웠던 혀에서 흘러나오던 말들은 전부 사라졌으나, 그는 대신 자신의 혀를 모두 유더를 맛보는 데 사용하는 중이었다.
맛을 본다는 건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그저 말 그대로였다.
몸이 겹쳐지는 내내 키시아르의 손과 혀는 유더의 몸 어딘가에 머물러 있었다. 손가락과 발가락, 손목 안쪽과 종아리, 벌린 허벅지 안쪽에서 윤곽을 드러내어 선 힘줄과 성기, 심지어는 물기에 젖어 뭉쳐진 속눈썹과 머리카락까지도 구분 없이 모조리 사내의 입술 속으로 들어갔다.
나중에는 그가 머리카락 사이에 코를 묻고 이를 가볍게 세우는 감각만으로도 가벼운 절정에 올랐다. 가장 많이 빨린 가슴은 붉게 부풀어 어딘가에 닿기만 해도 욱신욱신한 쾌감을 선사했다. 물론 유더 또한 제가 원하는 만큼 그를 종용하고 이를 세우며 사납게 허리를 흔들었으나 키시아르와는 그 궤가 달랐다.
그는 유더의 몸 모든 곳의 맛을 알아내어 온전히 삼키는 것만이 제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인 것처럼 움직였다. 주인의 뜻을 따라 한껏 풀어진 향조차도 유더의 향과 몸을 감싸고 땀구멍 하나까지도 낱낱이 핥아 속에 파고들 듯 굴었다.
그야말로 끈질기고 고집스러우며 어떤 벽도 내세울 수 없는, 키시아르 라 오르 그 자체와도 같은 정사였다.
“아, 흣, 흐, 으읏, 아아…….”
또다시 밀려오는 절정의 감각이 배 속 안쪽에서 찡 울렸다. 성기 뿌리 끝이 찌릿거리며 제멋대로 꿈틀거렸다. 유더는 늘어진 팔에 힘이 조금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키시아르의 어깨에 기댄 머리를 휘저었다. 완전히 녹아 풀린 구멍이 움찔거릴 때마다 안에서 뜨거운 액체가 질컥이며 흘러나왔다.
“응…….”
키시아르가 숨을 빠르게 내쉬며 유더의 귓속에 혀를 넣었다. 질척이는 소리와 함께 한쪽 귀가 막히며 두 개의 구멍이 동시에 범해지는 쾌감이 뇌를 직격했다.
꽉 조여든 유더의 엉덩이를 받친 손이 높이 올라가자 엉덩이 사이에 묻혀 있던 성기가 굵은 줄기를 드러냈다. 그렇게 큰 것이 들어가 있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굵은 것이 점막 사이로 주르륵 빠져나가는 감각에 유더는 고개를 젖히고 신음했다.
“흣……!”
허벅지에 반사적으로 힘이 들어가고 채워진 배 속이 비어 숨을 삼킨 한순간.
잠시 후, 엉덩이를 쥔 손에서 힘이 부드럽게 빠지며 몸이 그대로 아래를 향해 곤두박질쳤다.
“흐으으!”
성기가 또다시 내부로 미끄러지며 제가 있었던 곳을 향해 콱 박혀 들어왔다. 쾌락점들이 일제히 긁히며 내부의 벽이 불쑥 뚫리는 감각에 유더는 그대로 또다시 절정에 올랐다.
“아으윽…….”
발가락이 오므라들며 눈앞이 번쩍번쩍 튀었다. 잔뜩 잠겨 탁해진 목소리로 흘러나온 신음에 누구라도 놀랄 만큼 새빨간 열기가 어렸다. 키시아르의 배에 비벼지며 꿈틀대던 유더의 성기 끝에서 물이 쭉 튀어 올랐다.
유더는 전율에 찬 안쪽이 제 안에 박힌 것을 탐욕스레 핥고 깨무는 감각을 느끼며 엉덩이를 잘게 찧었다. 그때마다 그의 몸을 감싼 키시아르의 향이 잘했다는 듯 피부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절정이 끝없이 이어졌다.
“하-…….”
향과 육신의 의지가 합쳐졌을 때 느껴지는 쾌감은 이전의 그 어느 때와도 달랐다. 그것은 유더의 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모래 알갱이 하나 만한 크기로 분해되어 키시아르에게 삼켜지는 듯한 장렬한 쾌락이었다. 키시아르 또한 같은 쾌감을 느끼는 듯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고 유더의 내부에서 빠져나가지 않았다.
쾌감이 어느 정도 사그라진 뒤, 유더는 제가 내뿜은 것을 손으로 훔쳐 아무렇지 않게 핥는 사내를 넘어뜨리고 힘이 빠진 몸을 움직여 올라탔다. 시들지 않은 성기 사이에 엉덩이를 뭉개면서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한참 동안 숨을 몰아쉬는 동안 귀를 타고 쿵쿵대는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와 비교할 수 없이 빠른 그 소리를 듣는 동안 빠졌던 힘이 다시 돌아오고 지쳤던 사지에 또다시 꺼지지 않은 불씨가 번졌다.
몸은 아직 쉬고 싶지 않았다. 충분히 더 할 수 있었다. 본능이 판단을 마쳤다.
“후우, 후으, 하아…….”
유더의 등줄기를 문지르던 키시아르의 향이 그 욕망을 알아챈 듯이 엉덩이 골 사이를 노골적으로 훑었다. 유더는 그에 응답하듯 제 향을 풀어 키시아르를 사납게 끌어당겼다. 망설임 없이 끌려온 긴 손가락이 벌어진 구멍 사이로 들어와 내부를 빙글 돌리며 훑자, 녹은 틈새 사이로 정액과 범벅이 된 투명한 점액이 울컥 쏟아져 키시아르의 몸과 바닥까지 적셨다.
안에 찬 것이 다 빠져나오려면 아직 더 있어야 함을 알았으나 그 감각이 아쉽고도 기꺼워 유더는 하반신을 위아래로 미끈미끈하게 비볐다. 허리에 전보다 힘이 들어가지 않아 원하는 만큼 거세게 움직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성기와 그 아래의 예민한 살결, 그리고 풀어진 구멍이 키시아르와 맞부딪치고 쓸리는 감각만은 느껴졌다.
스스로를 위로하듯 하체를 움찔거리다 성에 차지 않아 내부를 훑고 있는 손가락을 꽉 조이자, 희미한 웃음소리와 함께 손가락이 빠져나왔다.
젖은 손이 유더의 다리를 조금 더 넓게 벌린 뒤 벌어진 구멍 끝에 귀두를 맞추었다. 동그랗게 벌어져 내부를 드러낸 구멍이 곧 다가올 쾌감을 맛보고 싶어 안달이 난 듯이 그것을 한번 꽉 조였다 푼 순간, 허전했던 배 속에 성기가 뿌리 가까이까지 푹 박혀 들어왔다.
“흑……!”
뒤통수까지 찌릿한 충격.
아주 잠깐 비어 있었을 뿐인데 배가 차오르는 압박감이 전보다 더 강하게 내부를 때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하반신이 빠르게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허기진 배를 채우는 쾌락이 또다시 몸을 적시기 시작했다.
쾌감이 끝없이 이어진다. 짧게 선잠이 들었을 때도 유더는 침대 대신 제 몸을 안아 든 사내가 안에 넣은 것을 계속 움직여 주는 은밀한 쾌감 속에서 뜨거운 만족의 숨을 토해 냈다. 눈을 뜨면 식사 대신 타액을 삼켰고, 키시아르가 발목뼈를 이로 긁는 감각에 웃으며 잠들기 이전에 하던 일을 계속 했다. 유더가 웃으면 키시아르는 그 짧은 웃음이 겨울에 비친 해라도 되는 것처럼 황홀하게 입을 맞추었다.
그가 유더의 피부를 핥으면 아무리 지친 상태라도 신기할 정도로 몸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성기가 반도 서지 않은 상태라도 쾌감을 느끼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다 망가진 짚 침대뿐인 작은 집이 온통 향과 액체로 푹 젖도록 하고 또 했다.
머리카락 끝까지 키시아르의 향에 물들 만큼의 시간이 지난 뒤, 비로소 제대로 된 생각이란 걸 할 수 있게 된 건 그로부터 5일이 지났을 때였다.
‘……배가 조금 고픈 것 같은데.’
유더는 키시아르의 가슴 위에서 멍하니 눈을 깜박이며 아주 오랜만에 허기를 느꼈다.
‘아침인가……?’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