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터닝-601화 (601/805)

601화

‘역시 뭔가…… 신경이 쓰이는데.’

유더 아일은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보통 자신의 육감을 믿는 편이다.

그는 무심한 성정이었으나 특정 부분에서의 감은 짐승처럼 좋았다. 주로 일신상의 위험이 닥쳤을 때나 적의 강함 판단, 혹은 주변 실력자들이나 키워야 할 각성자들의 성장 가능성을 알아보는 눈 같은 부분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 육감을 통해 언제나 빠른 행동력을 선보이는 그도 키시아르 라 오르에 한해서만큼은 그렇게 쉽게 자신의 느낌만 믿고 움직이기가 조금 어려웠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에 느낀 육감의 이상함이란 그저 자다 말고 몇 번 일어났을 때 묘한 추위를 느꼈다는 것과 키시아르의 주변에서 전술 게임을 이전에 비해 상당히 많이 봤다는 게 전부다. 그 외에는 정말 아무 문제도 없어서 뭔가를 의심할 여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잠에서 갑자기 깰 때 느낀 추위는 유더의 몸 상태가 현재 발정기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라 발생한 일시적인 이변일 수 있다. 전술 게임 또한 저번에 인상 깊은 대국을 두었으니 그 때문에 신경을 쓰고 있다 해서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유더의 신경 어딘가는 설명할 수 없는 감각으로 잊을 만하면 갉작거렸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이유가 없는데 무언가가 걸린다. 그런데 그게 뭔지 알 수 없다.

‘이성적으로 판단했을 때는 아무 문제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만약 그게 아닐지도 모르는 가능성이 있었는데 내가 알아채지 못한 거라면?’

차라리 제가 너무 과민하게 군 거라면 오히려 괜찮다. 아무 문제도 없을 거란 가능성이 99%이고,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1%라도 유더는 그 1%가 신경 쓰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대상이 키시아르이기 때문이었다.

그와 관련된 한, 유더는 단 한 순간의 이상함도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다. 그건 이전 생에서 끝까지 입 한번 제대로 열지 않고 사라진 키시아르를 기억하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지.’

키시아르를 예전보다 훨씬 더 잘 알게 되었기에 오히려 조금의 이상만으로도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는 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아직까지는 확실하게 정확히 뭐가 이상한지 잘 모르겠어. 그러니 지금 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인가.’

이 기이한 감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줄곧 키시아르를 지켜보며 주변을 살핀다. 그리고 이 주변에는 다른 사람 또한 포함되었다.

“응? 공작님…… 아니, 단장님께서 이전과 달라지신 점요? 전혀 모르겠는데요.”

일을 논의하기 위해 유더를 개인적으로 만나러 왔던 마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원래 좀 특별하신 분이라고 들어서… 저도 딱히 예전에 뵈었을 때와 변한 게 있으신지는 잘……. 아! 혹시 앞머리칼이라도 자르셨습니까?”

그녀의 곁에 있던 로벨 또한 눈치를 슬쩍 보며 말을 보탰다. 돌려 말하고는 있으나 원래 이상한 사람이라 이제 와서 뭐가 이상하냐고 물어도 모르겠다는 뜻에 더 가까워 보였다.

“아뇨. 그냥 말해 본 거니 됐습니다. 그보다,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죠.”

“아, 네.”

로벨이 재빨리 손에 들고 있던 서신 하나를 유더에게 건넸다. 그것은 남부에 있는 나그란의 별 거점에 머무는 로벨의 동료가 바로 어제 보내 온 편지였다.

“남부 거점에 있던 이들 중 이번 단원 및 지부 직원 모집에 지원하고 싶다는 뜻을 확실하게 밝힌 사람이 총 23명입니다. 대부분은 서부 거점에서 지냈던 사람들로, 이 편지를 보냈을 때쯤에는 이미 몇 명씩 나누어 거점에서 나올 예정이라고 했어요. 가장 가까운 남부 도시로 이동하여 지원하게 되겠죠.”

“들켰을 때 위험해지지는 않겠습니까?”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그쪽 돌아가는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거점에서 그냥 나가는 사람도 있다더군요. 이들도 일단 그런 척하려는 모양이에요.”

좋지 않다면 어느 정도일까. 로벨이 건네준 서신을 빠르게 훑자 곧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세라가 현자님께 보낸 서신에 오랫동안 답이 없어서 분위기가 안 좋아. 오랜 회의 끝에 다시 한번 보냈지만, 그 사이에 또 몇 명이 이곳을 나간다 만다 하며 싸울지 모르겠네. 난 네 말대로 일단 그 틈에 불안해하는 녀석들 옆구리를 찔러서 같이 나갈 생각이 있냐고 묻고 있긴 해. 아무튼 그 와중에 나한을 따르던 녀석들 상당수가 남국인 상인들과 친해졌는데…….’

아마 현자에게 보내고 답을 받지 못했다는 그 서신이 이번에 빈집털이를 거하게 해 온 엘더 남매와 가케인이 슬쩍해 온 그 편지라는 데 유더는 돈도 걸 수 있었다.

‘우리가 중간에 서신을 가로챈 바람에 남국인 상인들에 대한 정보가 아직 현자 측에는 제대로 흘러가지 못한 거군.’

그들 사이에 생긴 혼란의 틈을 타고 로벨이 제 역할을 잘해 주었다. 유더는 로벨에게 기꺼이 칭찬을 건넸다.

“좋군요. 평범하게 살기를 원하는 분들의 지원은 얼마든지 환영할 테니 계속해 주십시오.”

“예. 물론이지요.”

로벨의 말로는 전 동료의 조심성이 워낙 강해 아직 남부 거점과 다른 거점들의 정확한 위치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다고 했다.

“현재의 남부 거점은 제가 있을 때와는 위치가 달라졌어요. 사막에 위치한 데다 출입구를 능력으로 감춰 두어 길이 자주 바뀐다고 하더군요. 이 편지도 몇 다리를 걸쳐 겨우 전달하고 있다 보니 그 이상은…….”

“의심을 살 질문은 쉽사리 안 하는 쪽이 좋죠. 그들의 위치보다는 얼마나 많은 이들이 거기서 나올 생각이 있는지를 아는 쪽이 더 중요하니 무리하실 필요 없습니다.”

“예.”

유더는 웃고 있는 로벨의 얼굴을 가볍게 훑었다. 이토록 성실하고 마병단에 호의적인 그조차도 아직 ‘현자의 능력’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못했다.

그건 그가 마병단을 믿는 것과 별개로, 현자의 세뇌에서 풀려나지 못한 다른 각성자들과 자주 얼굴을 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놈의 세뇌 능력.’

단순하기에 그만큼 강력하고 끈덕지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해제할 방법을 알아낼 테니 초조해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지금은 키시아르 쪽이 더 신경이 쓰이기도 하고.’

마티와 로벨 같은 이들의 눈에는 일단 키시아르가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니, 다음 대상은 누구보다도 그를 잘 알고 있을 사람으로 해야 할 듯했다.

거기까지 생각하다 문득 눈을 든 유더는 할 말이 전부 끝났음에도 어쩐지 나가지 않고 있던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뭔가 더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뇨, 그게……. 실은 다시 뵈면 드리고 싶었던 부탁이 하나 있었거든요. 지금 시간이 괜찮으실 것 같아서…….”

부탁이라. 어지간한 부탁은 서부 지부의 다른 단원들에게도 충분히 할 수 있을 텐데 멀리 있던 자신을 다시 만나고 나서야 해야 할 부탁이라는 게 대체 뭘까.

유더는 말해도 좋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로벨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 마병단의 단장보좌는 마병단 내의 모든 훈련 계획을 짜고 관리 감독한다고 들었습니다. 맞으시지요?”

‘아, 그쪽인가.’

“예. 뭐…… 그런 셈입니다.”

“저희는 엄연히 말하자면 단원이라곤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지부에서 일하는 사람도 결국 마병단 소속이지 않습니까? 저희가 지닌 능력을 앞으로 좀 더 유용하게 사용하고 싶을 때 따로 훈련을 받을 수 있는 방도가 있을까 해서요.”

“체계적인 훈련을 원하는 거라면 이번에 2기 단원으로 들어오는 방안 쪽이 낫지 않겠습니까.”

“아뇨. 단원이 되고 싶은 건 아니에요. 전 아직 제 힘이 그렇게 자랑스럽지만은 않거든요.”

마티가 딱 부러지는 태도로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단장 보좌의 훈련을 받고 나서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능력을 발전시켰거나, 제어가 쉬워졌다는 단원분들의 이야기를 지금껏 많이 들었어요. 힘을 마냥 안 쓰는 것만이 절 위한 답은 아닐 거라던 그분들의 말도 이해가 가더군요. 저도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도전해 보고 싶어요.”

각성자들에게 배신당하고 죽을 뻔한 경험 때문에 각성의 힘을 얻고 나서도 오히려 그 힘을 없애고 싶다고 말했던 그녀치고는 엄청나게 파격적인 말이었다.

그간 서부 지부에서의 생활이 그녀에게도 나쁘지는 않았다는 걸 이런 식으로 확인하게 되니, 역시 키시아르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해도 결국 끝은 키시아르인가.’

유더는 작게 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각성자의 능력을 쓰지 않는다고 다는 아닙니다. 제어할 수 없는 능력은 때로 원치 않아도 발동되어 당황스럽게 만들고는 하지요.”

“맞아요. 제 능력은 특히 그런 면이 강해서, 그걸 고치고 싶었어요.”

마티의 능력은 접촉한 대상의 기력을 일시적으로 빼앗는 것이었다. 그녀와 가장 많이 접촉할 이가 로벨이라는 점을 떠올리고 나니 왜 이런 의욕을 보이게 되었을지 짐작이 갔다.

“알겠습니다. 단원들 정도는 아니지만 도움이 될 훈련 몇 개를 알려드리죠. 그리고…….”

말을 이어 나가던 유더의 머릿속에 문득 이런 상황에서 도움이 될 물건이 떠올랐다.

“괜찮으시다면 훈련으로 원하는 정도의 성과를 얻으실 때까지 도움이 될 만한 물건 하나를 함께 드리고 싶군요.”

“그런 게 있나요? 뭐죠?”

“각성자 능력 제어구입니다.”

“제어구……요?”

“이름이 좀 무서운데요. 어떤 건가요?”

불안한 얼굴을 한 두 사람에게 유더는 제어구가 무엇인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아직은 시제품이라 능력을 완전히 못 쓰는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원치 않을 때 발동되는 능력으로 인한 사고를 줄일 수 있으리라는 말에 마티는 몹시 기분 좋게 승낙했다.

“세상에 그런 물건이 다 있다니, 정말 좋네요! 감사합니다. 덕분에 이제 저와 접촉한 사람들이 갑자기 기절하거나 넘어지는 걸 더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아서 기뻐요.”

“가능하면 시일에 따라 얼마나 효과를 보이는지 비교하여 나중에 알려 주시면 좋겠습니다.”

“당연하죠!”

유더는 그들에게 자신이 가져온 제어구 하나를 넘겨주었다. 사라지는 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을 챙겨 오신 이유가 여기 있는 죄수들 때문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군요.”

그건 유더가 다음으로 찾으러 가려 했던 사람, 나단 주커만의 목소리였다.

‘찾으러 갈 수고를 줄였군.’

유더는 고개를 돌렸다. 남국인 기사는 어디서 본 적이 있는 상자를 양손에 들고 있었다.

“그건…….”

“공작님의 심부름입니다. 늘 그렇듯이 다과 시간에 드시겠지요.”

역시 그가 가져온 것은 이전에 서부에 왔을 때도 먹은 적이 있었던 과자였다. 소드마스터가 하기에는 참으로 하찮은 업무인데도 기사의 얼굴은 그저 태연했다. 당연히 할 일을 하고 있다는 당당한 모습 덕에 무어라 할 마음도 생기지 않았다.

유더는 과자 상자를 더 언급하는 대신 그가 했던 질문에 답해 주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은 몇 개 안 되는 물건이니 가장 절실한 이에게 먼저 주는 쪽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절실함이라. 그렇군요.”

일반적으로는 당연히 죄수에게 사용하는 쪽이 우선도가 높다고 판단할 것이다. 그러나 유더의 기준으로는 마티도 우선도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보다, 잠깐 대화 좀 할 수 있겠습니까. 마침 주커만 경을 찾던 중이었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단장님과 관련하여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나단 주커만의 반듯한 이마 아래, 두 눈동자가 유더의 진의를 파악하려는 듯 깜박였다. 잠시 후, 그는 두말없이 유더를 따라 방향을 틀었다. 혹시라도 바쁘다고 거절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빠른 결정이었다.

“공작님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바로 그게 제가 주커만 경에게 묻고 싶은 질문입니다.”

“예?”

이걸 도대체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남에게 이런 말을 해 본 적도 거의 없다 보니 영 어렵게 느껴졌다.

하지만 나단 주커만은 키시아르를 가장 오랫동안 보아 왔을 충성스러운 부관이다. 그조차도 키시아르의 이변을 모른다면 정말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쪽이 좋았다.

유더는 잠시 침묵 속에서 생각을 고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단장님께서는…… 아무 문제도 없으시지요. 오늘도 하실 업무를 잘 하고 계실 테고 말입니다.”

“…….”

“그렇지만 저는 얼마 전부터 뭔가가, 자꾸 묘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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