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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579화 (579/805)

579화

슈덴 상단 지부에서 나오는 길에, 유더는 안에서 꺼내지 못했던 질문을 키시아르에게 던졌다.

“진실의 거울이란 어떤 마도구입니까?”

“이름은 거창하지만 별것 없네. 거울로 비춘 대상에게서 숨겨진 무언가를 찾아낼 수 있는 마도구야.”

키시아르는 그것이 옛날 대마법사들이 무언가를 탐지할 때 사용했던 ‘탐색’ 마법의 하위 호환 도구라고 설명했다. 이제 와서는 마도구로 만들기조차 너무나 어려워진 탓에 옛날에 만들어졌으되 별로 사용되지 않은 물건을 찾아내야 했는데, 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는 듯했다. 슈덴 상단의 도움을 받은 이유가 있었다.

“모든 것에 통하는 건 아니라서 주로 마법이 걸린 물건의 특이점을 알아내야 할 때 사용하는 게 가장 좋다고들 하지.”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구한 것치고 키시아르는 진실의 거울을 받고도 그리 크게 기뻐하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그는 미소와 함께 간결히 답했다.

“구할 때는 제법 간절했었지만 이제는 쓸모가 없어졌거든.”

구할 때는 간절했었지만 지금의 키시아르에게는 필요가 없어진 물건.

그에 들어맞는 사항은 하나뿐이었다.

“혹 폐하를 위해 구하셨던 물건입니까?”

“정답. 역시 하나를 말해도 열까지 알아 주는군. 본래는 에제인 왕자가 보낼 유물에 사용하려고 구했던 물건이었지.”

유더는 얼마 전 키시아르가 받아 왔던 유물을 떠올렸다. 실제 모습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유더는 그것에 대해 에제인 왕자에게서 몇몇 사항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다.

‘넬라른인들이 대마법사 루마라고 추정한다는 눈먼 현자의 물건. 마법사의 물건이라면 그것도 역시 마도구에 가까울 확률이 크겠지.’

마도구를 쓰기 위해 또 다른 마도구를 구하는 건 제법 흔한 일이다. 오래전 만들어진 마도구들의 경우 사용 방법이나 효과가 유실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키시아르는 유더의 추측에서 거의 어긋나지 않는 설명을 해 주었다.

“넬라른의 왕자에게서 우리가 받아 낸 유물은 ‘꿈의 목소리’라 불리네. 기록에 의하면 그것을 사용하고 나서 전신의 상처를 입은 이가 모두 나아 이전의 몸을 되찾은 적이 있다더군.”

하지만 유물을 사용한 이도 자신이 어떻게 그것을 사용할 수 있었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오랫동안 넬라른의 많은 이들이 연구했지만 매한가지였다고 했다.

‘에제인 왕자가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걸 넘겨주어도 괜찮다고 여겼을 만한 이유를 알겠군. 당장 사용하지 못하는 유물이 현재의 위기 극복보다 중요하진 않을 테니까.’

그리고 키시아르와 케일루사 황제가 반대로 그 유물을 정확히 집어 요구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키시아르라면 분명 그 정도 기록만으로도 유물을 찾아내어 연구할 가치가 충분하다 여겼을 터다.

“해서 그 유물을 살펴보고자 이 진실의 거울을 구했네. 이제 와서는 크게 필요가 없어졌지만 한번 보기는 해야 할 테니 그때 쓰게 되겠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마차가 부드럽게 황궁으로 들어가는 구역을 넘었다. 창문 밖으로 비치는 여러 궁들의 지붕 꼭대기와 벽을 보며 유더는 오늘의 마지막 일정인 황가의 저녁 식사를 떠올렸다.

오늘 그는 나단 주커만과 함께 키시아르의 호위 명목으로 그곳에 참석하게 될 것이다. 1궁에서 열리는 공식적인 황가의 식사 모임에서 식탁에 앉을 수 있는 이는 오직 황제와 그의 가족들뿐이나, 그렇다고 아무도 대동할 수 없는 건 아니었다.

그 비밀스럽고도 가족적인 자리에 동행하도록 허락받는 건 황가의 측근으로서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로 취급되었다.

유더는 이전 생에서 카치안 황제의 식사 자리에 여러 번 불려 갔었기에 그 사실을 잘 알았으나 그때와 지금은 느껴지는 기분부터 달랐다.

일어났으나 일어나지 않을 미래를 알게 된 키시아르는 한 번 그와 황제의 모든 것을 가져갔던 이를 과연 어떤 눈으로 마주할 것인가.

“그러고 보니 황태자가 식사에 참석하겠다고 답하며 키올레 다 디아카와 동행할 예정이라고 했다더군.”

그때, 키시아르가 유더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 말을 걸었다.

“그렇습니까? 잘되었군요.”

“잘되었지. 얼굴을 보게 되면 황태자의 궁에서 오래 머물고 있다는 치료사들에 대해 꼭 물어보게.”

시키지 않아도 당연히 그럴 생각이었다. 만날 틈을 어디서 잡을까 고민했었는데 오늘 온다니 그럴 필요도 없었다. 지금쯤 남몰래 오싹함을 느끼고 있을 키올레를 어떻게 쥐어짜 대답을 들을지 생각하고 있는데, 키시아르가 다시 한번 입을 열어 물었다.

“그는 이전 게임에서 어떤 역이었지?”

“키올레 말씀이십니까. 그는…… 판에 올라온 적이 없는 패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판에 올라온 적이 없는 패라.”

게임에 참가조차 하지 못한 패. 그것은 곧 이른 죽음을 뜻한다.

유더의 말을 따라 읊은 사내는 그게 무슨 뜻인지 어렵지 않게 파악한 듯 보였다.

“동부 임무 때 그를 굳이 끝까지 구출해 주었던 건 그래서였나?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변수라서?”

미래를 알게 된 뒤 키올레의 이름을 들으니 새삼 유더의 옛 행적에 대한 생각이 그런 방향으로 닿은 모양이었다.

유더가 키올레를 ‘굳이’ 끝까지 살려 돌아온 건 맞지만 딱히 엄청난 변수가 되기를 바라고 행동했던 건 아니다. 유더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사실 딱히 큰 기대를 하진 않았습니다. 제가 그때 그를 살려 낸 건 나한이 하는 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도 큽니다. 어쩌다 보니 여태까지 키올레를 정보원으로 써먹게 되기는 했습니다만…….”

키올레는 여러모로 참 괴상한 변수였다. 이전 생이었다면 이미 죽어 사라졌을지 모를 놈이 멀쩡히 살아남아 카치안의 호위기사가 될 줄은 유더조차 몰랐으니까.

“나한이 했던 말? 당시 보고로 들었던 것 외에 또 있나?”

유더는 그때 있었던 일을 아주 자세히는 말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더 감출 것이 없었기에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나한이 키올레를 죽이기 위해 저를 제압하려 들었을 때, 자기 말이 무조건 맞다며 명령을 하려 드는 게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었습니다.”

“명령을?”

“키올레가 죽어도 쌀 만한 쓰레기일지는 몰라도, 그게 나한과 같은 자의 논리대로 움직여 주어야 할 만한 이유가 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게 명령할 수 있는 분은 한 분뿐입니다. 놈의 명을 따를 이유가 없지요.”

그리고 명을 내릴 수 있는 그 한 사람이 유더를 바라보았다.

“……팔까지 다치고 온 진짜 이유가 그거였나?”

“…….”

“정말이지…….”

유더는 그가 어이없어할 만도 하다 생각했다. 그러나 키시아르가 깊이 숨을 내쉬다가는 고개를 들어 불꽃처럼 끓는 눈을 보여 주었을 때, 그 생각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드물게도 아무런 물음도 권유도 없이 몸을 기울인 사내가 유더의 턱을 붙잡아 그대로 입을 맞추었다. 뜨거운 혀가 입 안을 가득 채우고 들어와 얽는 감각에 머릿속이 희어졌다.

유더는 눈을 몇 번 깜박이다 그대로 천천히 키시아르의 목을 끌어안았다.

마차가 침묵 속에서 한참 동안 덜컹이며 달렸다.

***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리 비공식적이고도 비밀스러운 식사 모임이라 할지라도 황궁에서 열리는 모든 일에는 그만한 준비와 절차가 필요하다.

유더는 펠레타 공작의 문장이 박힌 예복을 입은 키시아르의 뒤에 나단 주커만과 나란히 섰다. 호위로 동행하는 입장이라 파티 참석 때처럼 화려하진 않았지만 그들 또한 키시아르의 사람임을 알 수 있는 예복 차림이었다.

황제와 그의 가족들이 편히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마련된 장소로 들어서자 이제는 낯익은 사이가 된 시종장이 그들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전하. 두 분 폐하께서는 이미 도착하셨으니 바로 들어가십시오.”

“이런. 식사를 원한다고 말해 놓고 더 늦어 버린 사람이 되었군.”

키시아르가 웃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뒤를 따르던 유더는 시선이 마주친 시종장이 저를 향해 아주 부드럽게 웃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 뒤늦게 알아차렸다.

‘뭐지?’

“아일 남작님, 며칠 동안 회복에 전념 중이라 하시기에 걱정했었습니다. 건강하신 모습으로 다시 뵈니 기쁘군요.”

“……염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충분히 나눌 만한 인사이기는 한데 말하는 이가 너무나 진심을 담아 웃고 있으니 적응이 되지 않았다. 유더는 저를 보며 봄바람처럼 싱글대는 시종장에게 적응하지 못한 채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가 맞이해야 했던 낯선 봄바람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어서 오게, 남작. 아직 몸이 덜 회복되었다면 쉬어도 되었을 텐데 공작 때문에 괜히 끌려온 건 아닐지 모르겠군.”

“공작에게 듣자 하니 쉬는 동안 내가 준 향주머니를 잘 썼다고요. 오늘 돌아갈 때 가져갈 수 있도록 좀 더 준비해 두었으니 사용해 주었으면 좋겠군요.”

“……예, 감사합니다.”

건강한 사람의 수준만큼 안색이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눈빛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편안해진 황제와 그간의 모든 고통에서 해방되어 얼굴이 꽃처럼 핀 황후가 연신 그에게 말을 걸어 댔다.

키시아르는 유더를 염려하는 모든 말들이 듣기 좋은 꾀꼬리의 노래라도 되는 듯 웃었다. 평소라면 이런 상황에서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나단 주커만조차도 이 모든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듯 보였기에 식당 안의 분위기는 실로 훈훈했다.

끝내 ‘동행자는 식사가 끝난 뒤에야 함께 앉을 수 있다는 전통이 있다지만 아일 남작이라면 괜찮지 않겠느냐’고 말하기까지 한 황후 때문에 유더는 카치안 황태자가 차라리 빨리 와 주는 쪽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확하게도 그 순간 카치안 황태자가 도착했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태자 전하께서 드십니다.”

이전과 전혀 다른 시종장의 감정 없는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식당 안의 사람들은 언제 웃었느냐는 듯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

침묵 속에서 카치안 황태자가 키올레를 데리고 자신의 자리로 이동했다. 유더는 키올레가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어깨를 움찔 떨며 괴상한 표정을 짓는 모습을 얼핏 보았다. 아무래도 그는 유더가 오늘 여기 오는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

‘조용히 하고 얌전히 모르는 척이나 해.’

유더가 무표정으로 눈을 부라리자 키올레는 이내 찔끔하여 황태자의 뒤에 시립했다.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제 나이보다 더 어려 보이는 날카로운 인상의 미소년이 겉보기만은 더없이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다. 황후가 조용히 그에게 말을 걸었다.

“늦었군요, 황태자.”

“새로 들어온 시종 한 명이 예복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하여 최대한 빨리 서둘렀음에도 어쩔 수 없이 늦어지고 말았습니다. 지나치게 갑작스러운 부름인지라 실수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유를 설명할 뿐, 늦은 데 대한 사과는 없다. 더불어 갑자기 불러낸 이쪽에 대한 은근한 질타까지 잊지 않는다. 카치안다운 방식이었다.

유더는 황제의 창백한 뺨과 거뭇한 눈가를 몰래 훑는 소년의 시선을 보며 그가 여기에 온 이유를 짐작했다.

‘역시 요즘 들어 갑자기 공식 석상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황제의 상태를 가까이에서 보고 판단할 기회를 놓치고 싶진 않았겠지.’

황제는 아직 자신의 상태를 공식 석상에 알리지 않았다. 그는 제가 곧 죽을 사람인지 아닌지를 몰래 살피는 황태자의 속내를 알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물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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