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터닝-576화 (576/805)

576화

미지의 남국인 각성자들이 남부 거점을 찾아왔다는 소식이 담긴 새로운 서신이 수도에 있는 현자의 숙소에 도착한 날, 그곳은 때마침 텅 비어 있었다. 본래대로라면 황태자의 궁에 있던 각성자들 중 한 사람이 잠시 빠져나와 연락 서신을 가지러 왔겠으나 그들이 현재 수도에 왔을지 모를 나한을 찾아내는 일 때문에 몹시 바빴던 탓이었다.

젊은 각성자들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판단한 일에 소홀해진 사이, 그들이 머물던 숙소 앞에는 낯선 침입자들이 당당하게 섰다.

“……정말 이대로 들어갈 거야? 얼굴도 안 가리고?”

“당연하지! 해가 이렇게 밝은데 얼굴을 왜 가려? 수상하게 보여서 신고당할 일 있어?”

“핀, 가케인은 이런 침투가 처음이라잖아. 우리가 봐주자.”

“하지만…….”

가케인 볼룬발트, 힌 엘더, 핀 엘더.

세 사람은 평상복 차림에 얼굴을 깨끗하게 드러낸 채로 나그란의 별이 머무르던 집을 올려다보았다. 수도 5구역의 중산층 평민들이 주로 사는 평범한 저택은 겉보기엔 아주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길을 지나는 이들도 평온하고, 멀리서 들려오는 장사꾼의 목소리도 느긋하며 날씨도 너무나 좋았다. 누가 보아도 남의 집을 털러 들어갈 만한 때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멀쩡히 돌아다니는데…… 이런 상황에 정말 들어간다고? 괜찮은 걸까?’

가케인 볼룬발트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주변을 연신 둘러보았다. 유더의 허락을 받고 이 집을 살피러 온 것까진 괜찮았지만 설마 이런 날 이런 시각에 오게 될 줄은 상상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엘더 남매는 그의 우려를 쓸데없는 걱정으로 치부하며 그저 느긋한 작은 맹수들처럼 웃을 뿐이었다.

“걱정 마, 가케인. 절대 들킬 일 없어. 며칠 동안 아무도 안 오는 거 확인했잖아. 길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도 우리한테 전혀 관심 없어. 그냥 이 집에 잠깐 방문하러 온 손님 정도로나 생각하겠지.”

“맞아. 그리고 우린 안에서 오래 있지도 않을 거라고. 혹시라도 그자들이 돌아오면 가케인 네가 이 집 벽과 대문에 붙여 놓은 그림자를 통해 바로 알 수 있을 테니 능력을 써서 빠져나가면 그만이야.”

“우리 이동 능력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가장 잘 아는 게 너잖아. 그래도 아직 불안해?”

가케인은 동그란 눈을 반짝이는 남매를 내려다보다 한숨을 푹 쉬었다.

“……나도 너희가 못 할까 봐 불안한 게 아니야. 그냥, 세상엔 예기치 못한 일이 언제든 생길 수 있다는 걸 늘 잊지 않을 뿐이지.”

남매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실력은 믿지만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길까 걱정스러울 뿐이라는 말이 그들의 기분을 순식간에 높이 상승시켰다.

“아하…… 흐흥, 그렇단 말이지.”

“뭐, 걱정이 많은 게 가케인의 장점이긴 하니까.”

“……뭐가 내 장점이라고?”

“자. 가케인. 안으로 보내 줄 테니까 문 열어 줘!”

남매가 순식간에 신이 나 가케인의 양팔을 붙잡고서 이동 능력을 썼다.

“잠깐만! 누가 지나가기라도 하ㅁ……!”

가케인이 말을 다 끝내지도 못한 채 담 너머로 사라졌다. 남매가 낄낄거리는 동안 얼마 지나지 않아 대문이 안에서부터 열렸다. 얼굴이 조금 붉어진 가케인이 한숨을 내쉬며 그들에게 손짓을 했다.

“……들어와.”

한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다 안쪽 문이 열렸지만 누구도 그들에게 주목하지 않았다. 세 사람은 그렇게 나그란의 별이 머물던 숙소 안으로 당당히 입성했다.

“봐. 아무도 의심 안 하지?”

“하아……. 그래. 그렇긴 했는데…….”

“응? 그런데 가케인. 손에 든 그건 뭐야? 편지?”

핀이 가케인의 손에 들린 낯선 물건을 보고 물었다.

“담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발에 밟혀서 주운 거야. 누군가 안으로 던져 놓은 것 같아.”

서신에는 받는 이의 이름도, 보낸 이의 이름도 쓰여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집에 사는 이들이 받아야 할 편지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가케인. 열어 봐. 뭐라고 쓰여 있어?”

“음…… 잠깐 기다려 봐.”

편지를 연 가케인이 빠르게 내용을 읽었다. 잠시 후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남부 거점’이란 곳에서 온 편지야. 그곳의 최근 정황과 더불어 ‘현자’란 이를 만나고 싶어 한다는 낯선 손님들에 대해 적혀 있어. 그리고…….”

밑부분을 읽던 가케인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그는 말을 계속 잇지 않고 나머지를 더욱 열중하여 읽기 시작했다. 애가 탄 엘더 남매가 아우성을 쳤다.

“그리고 뭐!”

“궁금하니까 빨리 말해!”

“아 미안. 읽다 보니 이거 아무래도 그 거점이란 곳에 온 새로운 손님들이 우리가 아는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뭐? 누구?”

“서부에서 나한과 함께 도망친 것 같다던 남국인 상인들, 기억해? 아직 안 잡혔었잖아.”

“와. 설마?”

“내 생각에는 아무래도 그자들이 맞을 것 같아.”

“맙소사! 완전 보물 편지였네!”

“그거 빨리 품에 집어넣어! 받을 놈들이 없었으니 우리가 가지고 가도 아무도 모를 거야!”

엘더 남매의 두 눈이 힘차게 반짝였다. 가케인도 이번에는 남매의 제안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본격적으로 집 안에 들어서서 내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움직임 하나하나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가케인과 달리, 남매는 마치 한 쌍의 다람쥐들처럼 거침없이 돌아다니며 모든 방을 뒤졌다.

집에 머물던 이들은 개인 소지품을 거의 남겨 두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수확이 없지는 않았다. 사람이 살던 곳엔 어떤 식으로든 주인을 짐작할 만한 흔적이 남게 되는 법이었다.

“이것 좀 봐 핀! 사 와야 할 생필품 목록을 적어 둔 쪽지! 누가 뭘 사야 할지 이름이 다 적혀 있어.”

“난 쓰레기 더미 사이에서 태우다 만 서신도 찾았지롱. 칸나한테 가져다 주면 쏠쏠하겠지?”

“으으, 질 수 없다.”

“가케인은 뭐 찾은 거 없어?”

힌보다 쓸모 있는 물건을 찾아 기쁜 핀이 생글거리며 물었다.

“아, 나는…… 이거.”

가케인이 머쓱한 얼굴로 가죽을 꼬아 만든 줄을 들어 보여 주었다.

“응? 그건 그냥 끈 아니야?”

“그렇긴 한데…… 이런 건 주로 명망 있는 귀족 가문의 남자들이 소매나 셔츠에 묶고 다니거든.”

“귀족들이 가지고 다니는 끈이라고?”

“여길 보면 얇은 가죽에 가문의 문장을 빽빽하게 새겨 놨지. 신분을 증명하는 용도로도 쓰여서 그래. 근데 문제는…… 내가 여기 찍힌 문장을 저번 황궁 파티 때 본 것 같다는 거야.”

“진짜? 파티에 올 정도의 귀족이 그럼 여기에 왔었다는 거잖아?!”

“각성자들에게 이 집을 내어 준 디아카 공작의 측근일까?”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이런 끈을 주고 간 건 좀 묘하긴 해. 이걸 남에게 준단 건 어디서든 자신의 신분을 대신 이용해도 된다는 신뢰의 표시이기도 하거든. 돈도 아랫사람을 시켜서 몰래 주던 디아카 공작이 이런 걸 굳이 줄 이유는 없잖아.”

“앗, 그것도 그렇네.”

“내가 파티에서 봤다고 생각한 가문의 문장이 아닐지도 몰라. 그래도 확인해 볼 가치는 있을 것 같으니까 끝부분을 조금 잘라 가려고.”

“와… 가케인……!”

남매는 가케인의 뜻밖의 활약에 몹시 감동했다.

“역시 오면 잘될 줄 알았어! 자, 그럼 이제 뒤질 만한 건 다 뒤졌으니 숨겨진 공간은 없는지 좀 더 살펴볼까?”

“난 찬성!”

“잠깐만.”

“반대하지 마, 가케인. 이런 보물찾기는 침투할 때 필수라구!”

“그게 아니라! 방금 내가 바깥에 쳐 둔 그림자에 뭔가 걸렸어. 이제 나가야……!”

그와 동시에 바깥에서 문이 부서지는 듯한 소음이 났다. 정상적으로 문을 따고 들어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제3의 침입자?’

서로를 마주 본 세 사람은 재빨리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을 향하여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가케인의 그림자 분신이 형태를 바꾸어 셋의 모습을 어둠 속에 가림과 동시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여기로 연락 서신을 보낸다고 들었는데, 왜 아무도 없지? 또 허탕인가?”

“그럴 리 없어. 여기가 맞는데…….”

“나한. 어떻게 할까?”

‘……나한?’

마병단원 셋의 눈이 동시에 날카로워졌다.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지금 여기에 침입한 제3의 침입자는 나그란의 별 소속이자 서부에서 도망친 뒤로 행방이 묘연했던 나한인 듯했다.

힌이 주먹을 쥐었다 펴며 지금이라도 밖으로 뛰쳐나갈지 말지 고민하는 동안, 가케인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내저으며 그녀를 말렸다.

‘지금은 안 돼! 우린 셋이고 저놈들은 여럿이야!’

‘그게 뭐? 우리가 이길 수 있어!’

‘나한이란 자가 유더와 단장님을 상대로도 몇 번이나 멀쩡히 도망갔던 놈이란 걸 잊었어? 정말로 위험한 자라고!…….’

“일단, 방을 뒤져 봐. 소지품을 보면 확실해지겠지.”

그때, 아주 낮고 느릿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범한 대화일 뿐임에도 그 목소리 속에는 어쩐지 듣는 이들이 그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아, 그, 그렇지. 역시 나한이야. 뒤져 보자!”

바쁜 발소리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가케인은 그림자 분신을 더욱 넓게 펼쳐 그들의 모습을 가렸다. 몇 번인가 그들이 숨어 있는 곳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발소리가 들려와 긴장감이 느껴졌으나 다행히도 밑까지 내려오려 한 이는 없었다.

뒤지던 방 어딘가에서 그들이 원하던 바를 금방 찾아낸 덕이었다.

“찾았다! 이거, 분명 네조의 물건이야.”

“엘라의 머리카락 같은 것도 찾았어.”

“그래. 틀림없겠군. 현자는 여기에 있었어.”

나한이 속삭였다.

“그렇다면 완전히 여기를 뜬 건 아닐 테니 며칠 기다려 볼까.”

나한은 이곳이 현자가 머물던 곳이라는 증거를 찾아낸 이들에게 조용히 고맙다고 말했다. 그에게 감사를 받은 각성자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 이제 나가자!”

목적을 이룬 각성자들이 우르르 나가는 동안 가케인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때,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목소리가 위쪽에서 들려왔다.

“…저긴 뭐지.”

“아,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는 것 같았어.”

“지하라.”

“임시로 머무는 숙소에서 지하를 사용할 일은 없었을 테니 살펴보진 않았는데… 지금이라도 한번 볼까?”

엘더 남매가 주먹을 쥐고 우두둑거리며 변이할 낌새를 보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들의 머리위를 맴돌던 기척은 내려오지 않고 그대로 멈추었다.

“-나한! 경비대가 오는 것 같아!”

“…….”

“어서 빠져나가야 해!”

“나, 나한.”

나한의 동료가 어쩔 줄 모르고 이름을 불렀다.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나한은 이내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그들이 모두 집을 나가고 문이 닫힌 후, 마병단원들은 능력을 사용하여 재빨리 미리 보아 둔 뒷문으로 탈출했다.

“후아, 이게 무슨 일이야. 나한이 거길 쳐들어오다니.”

“서부에서부터 쫓겼을 놈이 왜 그렇게 당당해? 직접 들은 게 아니었으면 안 믿었을 거야.”

“당장 돌아가 보고하자.”

세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둘러 마병단으로 복귀하는 그들의 발걸음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빠르고 긴급했다.

***

“검은 비둘기 관에 방문하여 주셔서 대단히 영광입니다, 펠레타 공작 전하.”

유더는 나단 주커만과 함께 나란히 선 채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관리를 물끄러미 응시했다. 관리는 일주일쯤 못 잔 사람처럼 피로에 절어 있었다.

그 뒤로는 수많은 이들이 바쁘게 날아드는 전서조를 붙잡거나 묵직한 서류를 들고 뛰듯이 복도를 오가는 중이었는데, 여기저기서 알아듣기 어려운 고함이 난무했다.

이곳이 바로 제국의 모든 관리들의 총본산이자 2구역에서도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한 검은 비둘기 관이었다.

“재상님께서 직접 내려와 인사드리지 못하는 결례를 너그러이 용서해 달라 전하셨습니다.”

“아직 회의 중이라면 어쩔 수 없지. 그 정도 이해심은 당연히 있다네. 그러면…… 학자들을 먼저 만나게 되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관리가 몸을 돌림과 동시에 나단 주커만이 키시아르에게 살짝 묵례를 했다.

“다녀오십시오. 저는 책을 반납하러 가겠습니다.”

“그래. 끝나면 여기서 다시 만나지.”

나단 주커만은 황궁 비고에서만 빌릴 수 있었던 금서들을 반납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왔다. 키시아르와 유더는 검은 비둘기 관 위층으로 올라가야 하니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었다.

유더는 자신에게도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나단 주커만에게 마주 인사를 돌려주었다.

오늘 아침에 주군의 안색이 멀쩡하게 되돌아온 걸 확인한 충성스러운 부관은,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태도가 묘하게 정중해진 상태였다.

‘평소에도 정중하지 않았던 건 아닌데, 이건 뭔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무언가가 이상했다.

유더는 그것을 마땅히 표현할 단어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키시아르의 뒤를 따랐다. 계단을 몇 층 정도 오르는 동안 그의 머릿속은 이내 곧 만날 이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율법학자들과 재상이라.’

이전 생의 유더와는 하나같이 거리가 멀었던 이들이었다. 특히 재상직은 이름의 고귀함에 비해 귀족들의 세력이 커지면서 영향력을 가장 크게 잃은 직책 중 하나라 더더욱 그러했다.

지금의 시대에서 재상이란 제국 전체의 관리들을 통솔하고 실질적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것이 거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마디로 일은 더럽게 많은 데 비해 얻는 건 새 발톱만큼도 없는 자리였다.

율법학자들 또한 검은 비둘기 관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매일같이 법전을 해석하고 고치며 새로운 법을 도입하는 일을 했는데, 마찬가지로 하는 일에 비해 존재감이 몹시 없었다.

‘키시아르가 이전에 그들과 의논하여 마병단 내의 2성 관련 규범을 만들고 수정하기는 했었지.’

과연 키시아르는 그들을 만나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거침없이 앞서 걷던 장신의 사내가 유더의 시선을 눈치챈 듯 고개를 돌렸다. 그가 눈을 휘어 웃자 유더는 생각을 더 이어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이곳입니다.”

도착한 곳은 지나다니는 이들이 없는 조용한 곳이었다.

“수고했네.”

키시아르가 안내한 관리에게 가볍게 칭찬을 건넨 뒤 닫힌 문을 열고 들어갔다.

“펠레타 공작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삼삼오오 모여 산더미 같은 서류를 두고서 무어라 이야기를 나누던 학자들이 일제히 키시아르를 향해 몸을 돌렸다.

유더는 그들이 일제히 키시아르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 대부분은 나이가 많이 들었고, 몹시 고집스러운 인상이었으며 키시아르를 보면서도 그다지 반응이 없었다.

“오셨습니까, 전하.”

“오랜만이네 마르키오.”

키시아르는 학자들 중에서도 특히나 심드렁해 보이는 나이 든 노인을 향해 싱글싱글 웃음을 뿌렸다. 누구라도 넋을 잃을 만한 미소였으나 마르키오는 코끝만 씰룩했을 뿐 조금도 웃지 않았다.

“오늘 오신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는 잘못 온 서신인가 했는데 정말이었군요.”

“그리 말하면 섭섭하지. 난 늘 한다면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던 것 같은데.”

“이번엔 왜 오신 겁니까? 마병단에 또 규범을 추가하시려구요?”

“그것도 있고, 이번에는 아예 제국법 입법 절차 관련으로 물어볼 것이 있어 왔네.”

“법을 하나 더한다는 일이 그리 쉽지 않다는 건 당연히 아시고 하시는 말씀이시지요?”

“물론이지. 그러니 자네들을 찾아온 것 아니겠나?”

마르키오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번에도 아예 없던 항목을 만들어 낼 근거를 선례에서 찾아내라며 저희를 그리 괴롭히시더니, 이번엔 대체 무슨 법을 더 만들기를 원하셔서 이러시는 겁니까?”

“오, 내 보좌에게 오해를 살 만한 소리는 말게. 이번엔 정말 간단하니까. 그냥 마병단 내 규범에 이미 명시된 몇몇 사항들을 좀 더 정식으로 고쳐 제국법에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싶어서 말이야.”

마르키오는 잠시 침묵했다.

“죄송하지만 제가 나이가 많아 드디어 귀가 어두워진 모양이니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지. 마병단 규범 몇 가지를, 제국법에, 잘 주물러서 끼워 넣는다. ……이제 들리나?”

키시아르가 뻔뻔하고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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