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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565화 (565/805)

565화

“아무튼 다시 한번 말해 줄 테니까 들어. 그동안 가일과 두일이 하루에 한 번씩 호산라를 꼬박꼬박 만나러 갔었어. 처음에는 오래 있지 않았지만 점점 만나는 시간이 길어지더라고.”

유더의 안색을 살피던 칸나가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면서 식사량도 늘었고, 의료부에 계신 분들의 적극적인 치료 덕분에 몸 상태도 굉장히 좋아졌어. 어젯밤엔 심지어 내가 몸이 안 좋아서 의료부에 있었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괜찮냐고 묻기까지 하더라고.”

임무 이후 능력을 지나치게 사용한 반동으로 피를 많이 흘렸던 칸나는 의료부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다행히 회복이 빨라 어제부터는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나야 뭐 이제 다 나았다고 했지. 이야기하는 김에 현자와 그 주변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도 읽어 봤고.”

“회복하자마자 또 바로 능력을 썼다고?”

서늘한 질문에 칸나가 턱을 당당하게 쳐들고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무리는 안 했어! 내가 유더인 줄 알아?”

“…….”

이논이 ‘너 같은 놈 때문에 무리하다 실려 오는 환자가 덩달아 늘어난다’ 운운하며 뺨을 잡아당기던 기억이 떠오르는 건 어째서일까. 유더는 할 말이 없어 그저 한숨만 짧게 쉬었다.

“아무튼 이제는 호산라의 마음도 많이 느슨해져서 그런지 정보가 잘 읽히더라고. 제법 많은 걸 알아낸 것 같아.”

그건 아마 호산라의 느슨함보다 칸나의 능력이 이번에 껑충 발전한 덕이 더 클 것 같았다. 칸나 본인도 그걸 알고 있을 테지만 굳이 입에 담지 않는 점이 제법 겸손했다.

“일단 호산라 개인은 현자에 대해 아주 좋게 생각해. 그를 몹시 선량하고 믿을 만한 은인이라 고맙게 여기더라고.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와 관련해 불안함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 아마도, 나한이 관련된 이유로.”

호산라는 나한의 최측근인데도 현자를 진심으로 그만큼 좋게 생각했다니. 불화가 보이는 것만큼 오래된 건 아니었던 것일까.

“나는 사실 이 점이 이번에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호산라는 나한을 위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인데, 나한이 현자를 대상으로 심상치 않은 기색을 보이는 걸 알면서도 그 부분에 대한 흔들림은 거의 읽히지 않았거든. 가일과 두일처럼 현자를 따르지만 나한을 싫어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마음의 벽이 있었는데, 현자에게만은 그게 없어. 무슨 느낌인지 알겠어, 유더?”

유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 것 같아.”

“그래. 그래서 가일과 두일 쪽도 다시 한번 현자에 대한 정보를 중심으로 읽어 봤는데, 거기서도 뭔가 묘한 걸 알아냈어.”

칸나의 눈이 자신감 있게 반짝였다.

“가일과 두일이 자신들이 살아 있다는 걸 알면서도 구하러 오지 않은 현자 측에 대해 그간 의심을 제법 품었었나 봐. 그런데도 현자 본인은 정말 좋은 사람이고,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다고 여기더라. 본인들은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아무렇지 않은가 본데,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지. 이상하잖아. 적어도 내가 본 사람들 중엔 이런 경우가 없었어. 그래서 생각한 결론이…….”

“현자의 능력이 이 현상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겠군.”

“그래, 바로 그거야.”

단숨에 정답을 도출해 낸 유더를 향해 칸나가 속 시원한 미소를 보냈다.

“이렇게 이상한 일이 하필 그 사람들에게만 겹쳐진다면 우연이라 생각할 수 없지. 서부에서 만난 나그란의 별 각성자들도 다시 읽어 볼 수 있다면 확신하기가 더 좋겠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 현자는 분명 정신계 각성자일 거야. 그것도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자연스럽게 비트는!”

“훌륭해.”

유더는 기꺼이 그녀를 위해 아낌없는 칭찬을 보냈다.

“내 쪽에서 이번에 현자에 대해 새로 파악한 정보와도 일치하는 부분이 있어.”

“엇? 정말? 유더는 이걸 이미 알고 있었던 거야?”

“그렇다기보다는…….”

유더는 이논이 알려 준 정보라는 말은 하지 않고 칼 엔파일이란 이름의 관리에 대한 정보를 알려 주었다. 그가 현자의 과거 정체로 추측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칸나는 몹시 큰 흥미를 내보였다.

“그 사람이 정말 현자라면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서 주변 사람들에게서 자신에 대한 인식을 일부러 흐리게 만들었다는 뜻이네. 현자가 최근에 수도에 나타났다고 했으니 어쩌면 그 사람들이 칼 엔파일에 대한 정보를 기억하지 못하게 된 게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닐지도 몰라.”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정보를 읽는 힘 덕에 그 누구보다 순간적인 통찰력이 좋은 칸나의 말이었으니까. 황궁 임무가 끝난 이후 나그란의 별과 현자에 대한 정보를 바로 알려 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인해 볼 만한 사안이겠군.”

“내가 해 볼까?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은데.”

“무리하지 마.”

“그 정도는 진짜 괜찮다니까. 호산라와 가일, 두일에게서 느껴지는 어색한 정신계 능력의 빈틈이 칼 엔파일과 관련된 사람들에게도 있는지만 보면 되는 거잖아. 그리고 말이야…….”

잠시 말끝을 늘인 칸나가 힌과 핀을 떠올리게 만드는 표정으로 입술 끝을 비죽 올렸다.

“내가 마병단에 들어오기 전에 있었던 곳이 갈론 백작가란 거 기억하지? 그런데 갈론 백작은 궁내부 2급관이었거든. 정확히는 황가의 서고와 자료를 관리하는 일을 했어.”

명목상으로는 아버지겠지만, 칸나도 유더도 그자를 칸나의 아버지라 생각지 않았다.

“요즘…… 그러니까 파티 이후로 갈론 백작가에서 나한테 굉장히 시끄럽게 연락을 해 대는 중인데, 칼 엔파일이 푸른얼룩 관에서 장서 관리를 맡은 관리였다니 정보를 알아내기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

푸른얼룩 관의 하급 관리들이 관리하던 장서라면 중요도는 좀 떨어지겠지만 큰 분류로는 어쨌든 제국에 귀속된 자료에 속할 것이다. 그건 즉 칼 엔파일이 황가의 서고와 자료를 관리한다는 갈론 백작의 아래에 속했었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의외의 연결점이다. 그러나 유더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 일 때문에 굳이 그자들과 연락할 필요는 없어, 칸나.”

“일부러 연락하려는 건 아냐. 파티 이후로 거기서 나랑 연을 만들려고 얼마나 귀찮게 굴던지, 안 그래도 한번 보고 제대로 말을 할 생각이었거든. 하는 김에 이 일 관련으로 잘 써먹으면 갈론 백작도 나한테 하나쯤은 도움이 되는 것 아니겠어?”

칸나는 아무래도 그 생각이 몹시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아직도 종종 갈론 백작가 시절의 악몽을 떠올린다는 말을 고백하던 그녀의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한데, 지금의 칸나는 그때보다 한층 더 강인하게 느껴졌다.

유더는 결국 그 계획을 수락했다.

“그래도 절대로 혼자 움직이지 마. 나, 아니면 가케인이나 힌, 핀과 함께 가야 해.”

“조금도 걱정할 필요 없어, 유더. 내가 가져올 소식만 기다려 달라고!”

자신만만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한 칸나가 잠시 후 눈썹을 누그러뜨렸다.

“그런데, 아까까지는 대체 왜 그렇게 정신을 놓고 있었던 거야?”

일 이야기로 겨우 밀어냈던 것을 떠올리게 만드는 말에 또다시 어제의 키시아르가 떠올라 머릿속이 검게 가라앉았다. 유더의 눈빛이 빠르게 침잠하는 것을 본 칸나가 무슨 짐작을 했는지 갑자기 눈치를 보았다.

“그……. 스…아…르…앙… 고민… 이런 건 아니지?”

“……뭐라고?”

아주 기묘하게 늘린 말투 때문에 뭐라고 말하는지 바로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우와악. 못 알아들었으면 됐어! 아, 아까 오늘부터 업무 복귀한다는 보고를 하려고 단장님을 먼저 뵈러 갔었는데, 어쩐지 단장님도 너처럼 좀 피곤……해 보이신다고 해야 하나, 그렇더라고! 오늘따라 다들 많이 피곤한가 보지! 하핫. 하!”

“…….”

“…….”

어제부터 피로해 보였던 키시아르의 얼굴이 유더의 눈꺼풀 안쪽에서 어른거렸다. 혹시 또 그 꿈을 꾸었을까? 그래서 그토록 피곤해 보였던 것일까?

얼어붙는 듯한 가슴을 느끼며 그저 숨을 내쉬는 동안, 칸나는 눈을 내리깐 유더의 모습을 조금 걱정스럽게 지켜보았다.

“유더. 진짜로 심각한 고민이면 말은 안 해도 돼. 그래도 알지? 전에 말했던 것처럼 나는 언제나 네 편이라는 거.”

유더는 조심스럽게 위로를 전하려 하는 친구의 얼굴을 보았다. 서부에서도 키시아르와 관련된 일로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있었을 때, 칸나 덕분에 위로를 얻은 적이 있었다.

칸나의 능력은 날이 갈수록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그녀의 ‘정보 읽기’는 이제 단순히 대상의 과거 행적을 읽는 정도에서 벗어나 읽어 낸 정보를 토대로 곧 벌어질 가장 가능성 높은 상황을 빠르게 도출해 내는 수준에까지 도달한 상태였다.

그 능력이 아니었다면 황궁에 침입한 쥐들을 그리 빨리 잡아내지 못했을 테고, 적의 기습에 맥없이 문을 뚫렸을 터다.

그녀의 능력을 처음 알게 되었던 순간 유더가 생각하였던 바처럼, 가까운 시일 내에 칸나는 과거와 현재를 꿰뚫는 수준을 넘어 더 멀리 떨어진 미래마저 그 능력을 통해 예지처럼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런 날이 오면, 그녀의 앞에서 유더 아일이 감추고 있는 미래의 정보들 또한 밝혀지게 되겠지.

‘실제로…… 이번에도 내게서 뭔가 읽어 냈다고 했었고.’

하지만 칸나는 그것에 대해 자세히 말해 주지 않았다. 이전에는 넘어갔지만 언젠간 반드시 알아야 한다 여겼던 그것을, 유더는 지금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칸나.”

“응.”

“하나만 물어봐도 될까.”

“뭐든 물어봐!”

“이전에 내게서 뭘 읽었었는지 알고 싶어.”

“…….”

칸나는 방금 ‘뭐든 물어보라’고 말했던 자신의 입을 때리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음, 유더, 그건 있잖아……. 그게 굳이 지금 꼭…….”

“배려는 고맙지만 나는 괜찮으니 그냥 말해 줘.”

“으…….”

“네가 뭘 알고 있는지 알고 싶어. 아니, 알아야만 해.”

머리를 감싸 쥐고 고뇌하던 칸나가 그 말에 무언가 느낀 듯 고개를 들었다. 유더에게는 그녀의 새파란 눈동자가 어쩐지 아무것도 감출 수 없는 거울처럼 느껴졌다.

“……유더. 내가 너에 대해 절대로 알아서는 안 될 뭔가를 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구나. 그것과 관련된 게 지금 네가 그렇게 고민하는 이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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