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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556화 (556/805)

556화

누군가 말해 주지 않아도 황제의 전신이 변화하고 있으며, 또 변화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자마자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는 또 하나의 다른 부분 또한.

그는 두 번 살필 것도 없이 입을 열어 외쳤다.

“단장님. 폐하의 그릇으로 힘을!”

키시아르의 능력은 무언가를 끌어당기고 밀어내는 것이었기에 각성 직후 본능적으로 스스로의 그릇을 보호하는 일이 가능했다. 하지만 황제의 상황은 그때와 달랐다. 신비한 힘의 흐름으로 전신이 변화하며 각성자가 되어 가고 있는 상황과 별개로 그의 그릇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위태롭게 흔들리는 중이었다.

이건 좋은 상황이라고만 볼 수 없었다. 각성 도중 저 그릇의 흔들림을 함께 버텨 내지 못한다면 황제가 각성하자마자 도리어 그릇이 부서질 수도 있다는 추측이 들었다. 그런 불길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한시라도 빨리 키시아르의 능력으로 황제의 몸에 응집되기 시작한 붉은 기운 일부를 끌어당겨 황제의 그릇을 보호하는 작업을 같이 해야 해.’

본래의 예정과는 조금 달라질지 몰라도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은 똑같았다. 이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확신이 머리를 덮쳤다.

유더의 외침과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한 듯 키시아르가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길을 따라 유더와 그를 이은 연결이 팽팽해졌다. 황제의 몸속을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한 힘이 유더의 시야를 빌려 정확하게 거침없이 그릇 쪽으로 향하자 유더의 눈에서 재차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유더는 눈 안쪽이 칼로 마구 헤집어지는 듯한 감각을 느끼면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힘껏 부릅떴다.

그러나…….

“……폐하의 몸에 있는 붉은 힘들이 응집되려는 기세가 너무 강하군.”

키시아르가 이전보다 더 많은 능력을 불어 넣으며 빠르게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였다. 유더의 시야에 비친 키시아르의 손이 온통 이지러져 보일 만큼 많은 힘을 쓰고 있음에도 황제의 내부 속 붉은 기운들은 이전처럼 잘 끌려오지 않았다.

키시아르가 아무리 대단하다 해도 그 또한 한계가 존재하는 인간이다. 그의 그릇이 버틸 수 있는 시간 이상의 힘을 쓰게 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황제가 완전히 각성할 때까지 물러서야 하는가? 그때까지 이 변화 속에서 거의 흩어질 듯 위태로운 그릇이 버틸 수 있을까?

‘아니.’

유더는 냉정히 판단했다. 한시가 급한 위험천만한 순간이었으나 키시아르의 말로 인해 침착함을 되찾은 머리는 더 이상 실패를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순식간에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그리고 기억을 모조리 뒤진 머리가 드디어 어느 한구석에서 쓸 만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유더는 그 희망의 가닥을 붙잡으며 곧장 입을 열었다.

“단장님. 폐하의 내부 힘은 이제 억지로 끌어오지 마십시오.”

“그러면?”

“제가 지닌 순수한 힘을 넣어 보겠습니다. 이전에 단장님과 함께 성공한 적이 있지 않았습니까.”

“…….”

계속해서 힘을 발휘하고 있던 키시아르의 미간에 주름이 미약하게 잡혔다.

물론 그때 키시아르의 조건과 지금 황제의 조건이 전혀 다르다는 건 알고 있다. 아무리 유더가 흡수한 기운이 순수하다 할지라도 각성자가 아닌 데다 그릇에 금이 간 탓에 내부의 기운이 약간만 뒤흔들려도 죽을 수 있는 사람에게 위험하지 않다고는 확신할 수 없었다.

때문에 이전에는 이 방법을 황제의 각성 촉진 수단으로 고려하지 않았었지만, 그때와 달리 지금은 황제가 각성자로 변화 중인 순간이며 키시아르와 유더의 사이에 감각과 감정 둘 모두를 번득이며 전달하는 ‘연결’이 활성화되어 있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해 볼 만했다.

키시아르 또한 유더가 생각한 바가 무엇인지 충분히 추측한 듯했으나 쉽게 입을 열어 수락하지는 않았다.

‘내가 힘을 너무 많이 써서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의 눈 속에 흘러가는 짧은 감정들을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히 알 수 있는 건 두 사람의 사이에서 흔들리는 연결 덕분이리라.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내 안전만 챙기며 움직일 수는 없어.’

제 안전을 위해 포기한다면 잠깐의 안정이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유더보다 더 많은 힘을 쓰고 더 큰 위험에 처해 있는 건 그가 아니라 키시아르였다.

키시아르는 자신의 형제를 위해 겨우 나아진 스스로의 몸을 걸고 이 위험 속에 뛰어들었다. 황제를 제외하면 가장 위태롭게 흔들릴 상황임에도 정작 이곳에서 내내 가장 굳건한 기둥처럼 서 있었던 이는 그였다. 황후도, 시종장도, 그리고 마침내는 유더조차도 결국 그의 그러한 모습에 의지하여 상황을 버텨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혈육을 살리고 싶은 마음이 클 텐데도, 눈앞의 사내는 그것을 드러내지 않고 도리어 방법을 제시한 유더를 걱정한다.

이 사내를. 이런 이를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면 대체 누굴 위해 움직여야 하는가?

여기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 보지 않는다면 그 대가로 얻은 잠깐의 안전보다 훨씬 큰 후회가 평생을 짓누를 것이다. 유더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하게 그를 위하여 무언가를 해내고 싶다고 소원했다.

그러기 위해서라면 제게 남은 모든 힘이 빨려 나가든, 눈이 터지든 상관없었다.

그러한 의지를 담아 마주친 시선 속, 몇 초의 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괜찮겠나?”

그리고 마침내 키시아르가 조용히 물었다. 수많은 뜻이 느껴지는 짧은 한마디의 질문이었다. 유더는 키시아르의 붉은 눈 속에서 그가 제 감정을 읽어 냈음을 느끼며 고개를 느리게, 그러나 힘을 주어 끄덕였다.

“네.”

“알겠네. 같이 하지.”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동시에 힘을 발휘했다. 유더는 이전에 키시아르의 몸속에 자신이 지닌 순수한 힘을 넣었던 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힘을 뽑아내었다. 손등을 타고 꿈틀대며 오른 검붉은 핏줄이 순식간에 목 줄기와 턱까지 뻗쳤다. 피부 안쪽 어딘가가 마구 화끈거리며 피 대신 불이 흐르는 듯한 감각이 일었다.

그의 손끝을 타고 물처럼 새어 나온 붉은 기운이 아주 조금 맺힌 순간, 키시아르의 힘이 그것을 정확하게 낚아채어 끌어당겼다. 두 개의 기운은 부드럽게 뒤엉킨 뒤 황제의 내부를 향하여 쑥 파고들었다.

황제의 몸이 덜컹 움직였다. 하지만, 잠시 후 드러난 내부의 결과는…….

‘성공이다.’

유더는 키시아르의 손끝을 따라 움직인 자신의 순수한 기운이 황제의 내부를 거슬러 올라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황제가 지닌 다른 기운과 뒤섞이지 않고 미끄러지듯 손쉽게 위태로운 그릇 위를 덮었다. 붙였다고 하기조차 무엇할 만큼 적은 양이었지만 성공은 성공이었다!

강렬한 환희와 안도가 머리를 어지럽게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유더는 계속해서 힘을 짜내어 키시아르에게로 보냈다. 쭉쭉 빨려 나간 힘들이 케일루사 황제의 그릇 위로 끌어당겨지며 보호막처럼 얇은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아직…… 모자란 것 같은데.’

키시아르가 끌어당기는 붉은 기운 속 황제의 그릇은 아까보다 안정을 되찾기는 했으나 여전히 심장박동에 맞추어 터질 듯 약동하는 중이었다. 좀 더 많은 기운이 필요할 듯했지만 점점 한계가 다가왔다.

극도로 집중한 유더의 창백해진 얼굴 아래로 코피가 줄줄 흘러 떨어졌다. 기운을 짜내는 손끝이 떨리며 눈앞이 명멸했다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잠시 휘청였던 몸을 키시아르가 붙잡아 당긴 뒤에야 겨우 쓰러질 뻔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유더.”

“……아, 죄송합니다.”

“더는 안 되겠군.”

“아뇨. 지금 중단하면 안 됩니다. 그릇이, 아직이지 않습니까.”

“이 이상은 네가 위험해.”

“아뇨, 저는…….”

유더의 피가 고인 눈이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는 황제의 그릇 위 붉은 기운들로 향했다. 조금만 더 쏟아부으면 키시아르의 것처럼 그릇의 보호가 완전해질 것 같은데, 그만둘 수는 없었다.

유더는 제가 붉은 돌의 순수한 힘을 더 많이, 더 잘 다룰 수 있었더라면 좋았으리라 아쉬워하며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더!’

황제를 살리고, 키시아르를 구해 낼 그 힘을 조금만 더 내게.

- 후우우욱…….

그 순간이었다.

유더는 어디선가 익숙하고도 새로운 기운이 자신의 몸을 두드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눈을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황제의 집무실 책상 위, 바구니 안에서 붉은빛이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그 안에 담긴 붉은 돌의 힘 매개체들을 보며 유더는 자신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기회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단장님! 저것들을 이쪽으로 당겨 주십시오!”

키시아르가 즉시 손을 뻗었다. 보이지 않는 힘에 끌려 엎어진 바구니 사이로, 매개체들이 허공을 날았다. 유더는 그것 중 하나를 번개처럼 낚아채어 꽉 쥐었다.

그러자마자 그 언젠가의 대삼림에서처럼 매개체 내에 든 붉은 힘이 번득이며 뜨거운 무언가가 손바닥을 타고 쭉 흡수되었다. 유더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매개체는, 힘을 증폭하고, 저는 흡수할 수도 있습니다. 단장님께서도, 어서…….”

바닥났던 힘이 보충되기 시작하며 몸이 완전히 불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아프지 않다고 생각했다. 유더는 매개체를 쥔 키시아르의 힘 또한 이전보다 훨씬 강하게 발현되는 것을 보며 비로소 안도했다.

그들의 힘을 한계까지 빨아들인 붉은 기운이 비로소 황제의 그릇 위에 완전한 보호막이 되어 가고 있었다.

키시아르의 힘 아래 그 보호막이 완전히 완성되고 요동치던 그릇이 단단한 형태가 되어 자리 잡았을 때, 황제의 몸도 드디어 각성자로서의 변화를 마쳤다.

케일루사 황제의 입술이 달싹이며 눈꺼풀이 올라가기 시작하는 모습을 유더는 손가락 하나 들 수 없는 상태에서 멍하니 지켜보았다.

여태까지도 이전 생과 많은 것들을 바꾸어 왔었지만 지금 이 순간은 그에게도 몹시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건 아마도 유더와 똑같이 엉망이 된 몰골로도 눈을 뜨고 있는 황제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눈앞의 키시아르 때문일 것이었다.

“파리아…….”

“아… 아아……!”

황후가 언어가 되지 못한 외침과 함께 비로소 눈물을 마음껏 터트리며 황제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시종장 또한 기적의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무릎을 꿇었다. 눈을 뜬 황제가 몽롱한 눈으로 황후를 바라보다가는, 이내 그녀의 등을 안기 위해 떨리는 손가락을 움직거렸다.

잠시 후 그의 시선이 양옆에 앉은 키시아르와 유더를 향하여 천천히 움직였다. 껍질이 일어난 입술이 희미하게 달싹였다. 목소리는 없었으나 유더는 그가 말하고자 한 단어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고맙다.

마치 그 순간을 축하라도 하듯, 문밖 어딘가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는 더 이상 아무런 소음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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