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4화
그녀는 제게 맡겨진 이 임무를 절대로 실패할 생각이 없었다.
‘어떤 놈이든 절대로 이 이상은 못 넘어가.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
이곳에 침입한 각성자들의 정보가 명확하게 읽히지 않는 건 그들이 철저하게 스스로의 모습을 감추고 조종이라는 간접적인 방식을 이용하여 침투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들은 최초에 누구라도 방심할 만한 작은 동물을 이용하여 사람의 조종에 성공했고, 그 피해자가 또다시 새로운 피해자를 만들어 내는 전염병 같은 방식으로 태양궁을 지키던 이들 사이에 혼란을 일으켜 손쉽게 목적을 이루려 했다.
그들이 칸나의 존재를 알고서 이런 방식을 택하지는 않았겠지만, 그자들에 대해 알아내려면 여태까지 칸나가 읽어 왔던 대상들과 전혀 다른 방식의 읽기가 필요한 것만은 분명했다.
처음부터 없었던 육체적 능력의 한계로 밀린다면 모르겠으나 충분히 할 수 있는 능력 범위 내의 일인데도 도움이 되지 못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나도 정말 마병단이 다 되었네.’
하지만 칸나 완드만이 할 수 있다고 판단되어 맡겨진 일을 반드시 해내고 싶은 게 뭐가 이상하단 말인가?
칸나는 자신의 가슴 안쪽에 소중하게 붙여 놓은 마병단 부단장의 표식을 떠올렸다. 마병단원이 마병단스러운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랑스러운 일이지.
그 강력한 의지가 그녀의 몸 안에서 휘몰아치며 주인의 의지에 따라 더욱 넓게 펼쳐졌다.
더 읽어내야 한다. 더 빨리, 더 자세히, 더 쓸모 있는 정보를.
과거를, 지금을, 그리고 그것을 통해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조차도!
“저기! 저쪽 벽 아래……!”
뛰어가던 칸나가 어느 한쪽을 가리키자마자 나단 주커만이 검을 든 채 이전과는 전혀 다른 힘으로 땅을 박차고 뛰었다. 그는 마치 무게가 없는 존재처럼 움직이며 복잡한 벽과 바닥의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도망치려 했던 조그만 무언가를 정확하게 꿰뚫었다.
검날 아래서 드러난 것은 생쥐 한 마리였다.
“저쪽도!”
“주커만 경, 조심하세요!”
칸나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곧바로 그림자를 보낸 가케인이 그 주변에서 또 한 마리의 쥐를 찾아내어 죽였다. 두 마리 모두 생명이 다하기 직전 입에서 붉은 기운을 토해 냈으나 그것에 당할 만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두 마리. 이게 전부는 아니겠군요.”
“쥐는 개체가 많고 크기가 작으니 수색용으로 보냈을 확률이 높아요. 아마 아직 폐하가 계신 곳을 찾지 못했다는 뜻이겠죠.”
“흩어져 있을 쥐들의 위치를 모두 읽어 내실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은 의미가 없는 때죠. 당연히 그렇게 할 거예요.”
숨이 차 헐떡대면서도 칸나의 단호한 목소리에서는 그 어떤 틈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단 주커만은 예전에 붉은 돌 회수 이후 함께 이곳까지 왔던 때만 해도 어린아이들처럼 불안해하며 그의 뒤를 따라다녔던 두 마병단원을 새삼 낯선 눈빛으로 보았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해 주십시오. 정확하게 위치를 읽어 낼 수 있다면 흩어지는 것보다 모여서 빠르게 해치우며 따라가는 쪽이 더 낫겠지요.”
“네. 일단 가닥을 잡았으니 계속 읽어 내며 갈게요.”
“칸나! 다시 가기 전에 코피가 많이 나니까 일단 이것 좀 받아.”
가케인이 잠깐의 틈을 타 칸나에게 손수건을 건네주고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네가 침입한 쥐들의 방향을 찾아내더라도 너무 작고 빨라서 도망칠 수도 있으니까, 나는 지금부턴 죽이는 것보단 그림자를 넓게 펼쳐서 그물처럼 틈새를 막는 쪽에 더 집중할게.”
“죽이는 일과 두 분의 보호는 제가 하겠습니다.”
순식간에 역할이 잘 분담되었다. 칸나는 힘들면 업은 채 뛸 테니 말하라는 가케인의 제안을 거절하고 손수건으로 코를 틀어막으며 코맹맹이 소리로 외쳤다.
“따라오세요!”
***
세 사람이 궁 내로 숨어든 것들의 뒤를 쫓아 달리고 있던 그 시각.
황태자가 머무는 광휘궁에서도 가장 구석진 곳에 위치한 손님용 방에 몇 명의 ‘치료사’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오늘 황태자의 치료가 길어진다는 이유로 숙소에 돌아가지 않고 머무는 중이었는데, 당연하지만 그것은 핑계였다.
치료사라는 이름으로 입궁하였으나 그들은 각성자였다. 그리고 오늘 밤에는 그들을 이곳까지 불러들인 어느 높은 귀족의 부탁을 받아들여 색다른 일을 해야만 하는 입장이기도 했다.
둥글게 둘러앉아 서로 손을 잡은 각성자들은 눈을 감은 채 움찔거리고, 때로는 몸을 크게 움직이며 계속해서 능력을 사용했다. 그중 눈을 감고 찌푸린 얼굴로 숨을 헐떡이던 한 각성자가 몸을 떨며 눈을 번쩍 떴다.
“빌어먹을. 갈피를 영 못 잡겠네. 처음엔 생각보다 더 빨리 전염된다 싶더니 지금은 또 순식간에 거의 다 사라지고……. 지금 상대 중인 놈들은 마병단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어.”
“남은 건 몇 마리야?”
“그래도 열 마리는 넘어.”
“그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 어차피 중요한 건 디에먼이 할 거라고 하셨잖아. 넌 대충 흔들고 위치만 찾아낸 뒤에 빠져.”
“젠장, 하지만 상대가 너무 빠르단 말이야…… 아, 또 한 마리가 갔네 갔어!”
찡그린 얼굴을 한 각성자가 투덜거리며 기침을 했다.
조용히 앉아 있던 소심한 얼굴의 디에먼은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고개를 돌렸다. 그도 동료들과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었지만, 다른 이들은 그를 향해 눈을 마주쳐 주지 않았다. 그가 머뭇거리는 사이 각성자들은 또 다른 화제로 넘어가 버렸다.
“쥬브. 그쪽에 심어 둔 차단의 힘은 아직 멀쩡해? 어때?”
“그건 아직 그대로야. 내 힘을 불어 넣은 물건이 깨지지만 않으면 멀쩡히 유지돼.”
“근데 어떻게 이렇게 잘 찾아내지? 진짜 마병단인가……?”
“설마. 우리가 이 일에 참여할 거란 걸 그쪽에서 미리 알고 있었을 리도 없잖아. 그런데 어떻게?”
각성자들 사이에서 불안한 눈빛이 오갔다. 슬금슬금 걱정스러운 기색이 번져 가자 또 다른 각성자가 목소리를 높여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어차피 우린 부탁받은 일만 하는 거고, 누구도 우리가 여기 있는 줄 몰라. 현자께서 우리 모두를 위해 필요하다고 하신 일인데 그럼 안 할 거야?”
“아니, 그건…… 아니지만.”
“이러다 목적도 못 이루고 들여보낸 놈들이 다 죽게 생겼으니까 그러지.”
“현자님께선 그것까지도 다 생각해 두셨을 거야. 그러니까 하라고 하신 대로만 해. 이런 기회가 어디 쉬운 줄 알아?”
“너야 별것 안 하니 마음이 편하겠지만…….”
투덜거리던 각성자 중 한 명이 닫혀 있는 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그분께선 대체 언제 돌아오시는 거람? 황태자 전하와의 대화가 너무 오래 길어지시는 것 같아.”
“그분께서 현자님이 머물고 갈 거라니까 굉장히 기뻐하셨잖아. 이야기를 오래 나누는 것도 당연하겠지.”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그들이 기다리던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예상보다 늦어졌군요. 미안합니다.”
“현자님!”
“아닙니다, 현자님!”
현자가 돌아오자 각성자들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환한 미소를 지은 이들이 일제히 현자의 귀환을 반겼다.
앞다투어 자신들이 하던 일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은 현자가 따뜻한 목소리로 그들을 격려했다.
“괜찮습니다.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에는 아무 문제도 없어요. 설령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여러분의 탓이 아닙니다. 여태까지 그러했듯, 이번에도 분명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을 테니 서로를 믿고, 스스로를 믿으십시오.”
세상의 모든 따뜻한 온기와 신뢰를 뭉쳐 만든 듯한 목소리를 들은 순간 각성자들의 눈빛이 일제히 부드럽게 풀렸다. 그들은 일순 자신들이 왜 방금 전까지 불안해했었는지 모두 잊었다.
다시 자신들이 하던 일에 집중하기 시작한 각성자들의 기세는 방금과 완전히 달라졌다.
“차단의 힘이 담긴 물건이 하나 깨졌습니다. 하지만 아직 나머지는 남아 있으니 괜찮을 겁니다.”
“힘을 더 보태겠습니다.”
“쥐가 두 마리 더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아, 이제 알 것 같습니다. 그들이 지키려 하는 비밀스러운 문의 위치가 어디인지!”
조종 중인 쥐들의 움직임을 느끼던 각성자가 감은 눈 너머로 눈동자를 정신없이 빠르게 굴리며 힘겹게 외쳤다. 분위기가 다급해졌으나 현자는 흥분하지 않고 온화하게 대답했다.
“잘하셨습니다. 이제 그곳으로 새의 피를 먹인 쥐를 보내십시오. 그리고 디에먼.”
“……예.”
“이제 당신의 차례입니다. 준비는 되었습니까?”
디에먼은 가늘게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그는 현자의 믿음을 받고 있는 상대가 자신이라는 사실에 대단한 두려움과 쾌감을 느끼는 중이었다.
‘다른 녀석들이 아무리 내 능력이 좀도둑처럼 보잘것없다고 해도, 결국 선택받은 건 나야.’
“네. 위치만 확실하다면 언제든 제가 불러낸 ‘작은 새’를 그곳으로 보내 그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꿰뚫어 보도록 할 수 있습니다.”
“좋습니다.”
현자가 디에먼을 향하여 웃었다.
“지금이야! 쥐를 터트린다!”
쥐를 조종하던 이의 고함과 함께, 방 안에 있던 모든 이들이 작은 힘의 폭발을 느꼈다.
그리고 디에먼 또한 자신이 복사해 두었던 ‘몬스터를 다루는 능력’을 온 힘을 다해 발휘하며 눈을 감았다.
***
케일루사 라 오르는 희미한 어둠 속에서 불현듯 의식을 각성했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끔찍한 고통이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몹시 낯설게도 깨달았다.
‘내가 드디어 죽은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