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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552화 (552/805)

552화

“두 분이 이곳을 지킬 것이라 들었기에 걱정이 되어 왔습니다만… 아무래도 그럴 필요는 없었을 듯하군요.”

나단 주커만은 주변을 한번 돌아본 것만으로 이미 상황 판단을 끝낸 듯했다. 가케인과 칸나는 놀란 가슴을 겨우 가라앉히며 남국인 기사에게 그들이 추측해 낸 정보들을 공유했다.

현 상황이 정체 모를 각성자들에 의해 일어나고 있는 듯하다는 말을 들은 나단 주커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저와 함께 있었던 다른 기사들도 같은 수단에 당했으니까요.”

“정말요?”

“전부 다 당한 건 아닙니다만, 시간이 없으니 자세한 것은 일단 전부 정리하고 나서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나단 주커만이 앞으로 나서며 검을 치켜들었다. 다수의 적을 상대로 나서면서도 그는 조금도 흥분하거나 긴장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가케인은 그의 뒤를 따르며 빠르게 소리쳤다.

“주커만 경, 저 상태의 사람들을 제압하면 튀어나오는 붉은 덩어리에 대해서도 아십니까? 그것에 당하면 안 됩니다. 조심하세요!”

“예. 압니다.”

나단 주커만의 침착한 답이 들려옴과 동시에 초점을 잃은 이들이 일제히 뒤엉켜 달려들었다. 시종들은 그리 뛰어난 무력을 발휘하지 못해 그림자만으로도 손쉽게 제압이 가능했으나, 검을 든 이들은 그것만으로 상대하기 어려웠다.

가케인은 등 뒤에서 계속해서 정보를 읽고 있는 칸나를 보호하기 위해 그림자 일부를 보내 놓고서, 몇 갈래로 나눈 작은 그림자들을 몸에 두른 채 검을 휘둘렀다.

그의 몸을 휘감은 분신들은 자유자재로 쭉 늘어났다가 방향을 꺾으며 사방의 적들을 공격해 댔고, 때로는 벽처럼 펼쳐지며 주인을 보호했다. 가케인은 그림자를 통하여 수없이 날아드는 공격을 피하고 상황을 유리하게 바꾸며 쉴 새 없이 공격을 이어 나갔다. 쓰러진 이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붉은 덩어리를 처리할 때마다 일어나는 폭발 때문에 몸을 가누기 힘들긴 했지만 눈에 띄는 부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가케인은 자신의 그림자 분신과 검의 협공 아래 제압당하여 쓰러지는 기사를 보며 서부에서 몬스터를 해치우던 때와는 또 다른 전율을 느꼈다.

‘내가 황궁에 들어와 그 유명한 황궁 기사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고 싸우고 있다니…….’

입단 당시만 해도 그림자 분신은 그저 가케인과 똑같이 생긴 형태로만 나타나 주인과 동시에 같은 움직임을 보일 뿐이었다.

그러나 전투 보조와 방어를 동시에 할 수 있도록 수많은 훈련과 개량을 거친 지금은 딱히 사람과 같은 형태를 띠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심지어 싸우다 말고 딴생각을 할 여유가 있을 정도로 자신이 강해졌다는 사실에 기이한 감동을 느끼며, 가케인은 제게 달려든 세 번째 기사를 향해 그림자 분신과 검을 동시에 움직였다.

두 개의 검이 맞부딪치는 순간 발밑을 타고 쭉 늘어난 그림자는 상대의 등 뒤에서 휙 일어서며 보기 좋게 머리통을 내리쳤다. 뭔가가 깨지는 듯한 퍽 소리와 함께 크게 휘청거린 기사가 잠시 후 멍한 얼굴로 검을 떨어트리고는 그 자리에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앗…… 너무 세게 때렸나.’

가케인은 쓰러진 이에 대한 미안함을 삼키며 그의 입 밖으로 튀어나온 붉은 덩어리를 막기 위해 그림자를 펼쳤다.

-쿵……!

또다시 무언가 부딪혀 터지는 충격이 느껴지고는 겨우 모든 소음이 가라앉았다.

‘이제 다음은…….’

땀을 닦아 내며 뒤를 돌아본 가케인은, 예상과 달리 더 이상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광경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열 명도 넘는 이들을 전부 정리해 둔 나단 주커만이 그를 보며 검을 천천히 검집에 집어넣고 있었다. 뛰고 날고 뒹구느라 곳곳이 더러워진 채 숨을 헐떡이는 가케인과 달리, 그는 숨결 하나 변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였다.

‘아니 대체 언제…….’

가케인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그는 나단 주커만이 어느 정도의 실력을 지녔는지 정확히 몰랐다. 그가 직접적으로 적과 싸우는 모습을 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실력이 평범한 수준이 아니라는 것만은 기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과거 덕분에 아주 잘 알았다.

‘나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더 많이 상대했으면서도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어. 오러의 파편 같은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는데…… 그러면 대체 실제 실력이 어느 정도인 거지? 이런 기사가 단장님의 아래에서 이름 하나 알리지 않고 평범한 부관처럼 살고 있었다고?’

그때 가케인의 생각을 가로막듯 나단 주커만이 입을 열었다.

“다친 곳은 없으신 것 같군요.”

“아, 네.”

“이제 무기를 분리하고 전부 묶어서 가두어 두지요. 정신을 잃었다고는 하나 방심할 수 없으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흘긋 돌아본 곳에서는 칸나가 진땀을 흘리며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뭔지는 몰라도 무언가를 읽어내기 위해 애를 쓰는 듯했다.

가케인은 그녀를 빈틈없이 보호하고 있는 그림자 분신 하나를 거두지 않고 내버려 둔 채로 나단 주커만을 도와 쓰러진 이들을 묶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남국인 기사는 심지어 사람의 손발을 묶는 일조차 무시무시하게 빠르고 정확하게 잘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이렇게까지 잘하는 거야? 기사가 남을 묶고 다닐 일이 얼마나 있다고……. 알면 알수록 식은땀 나는 분이네.’

“제가 있던 곳에서도 지금과 똑같이 피투성이가 된 채 도움을 청하는 이들 때문에 전투가 시작되었습니다. 조종당하는 이를 제압하더라도 튀어나온 붉은 덩어리를 제대로 막아 내지 못하고 삼키게 되면 바로 새로운 피해자가 되더군요.”

정신을 잃은 이가 두르고 있던 허리띠를 풀어 순식간에 휙휙 손발을 꺾고 묶어 대면서 나단 주커만이 무표정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케인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그랬군요.”

나단 주커만의 말에 의하면, 뛰어난 기사들도 난생처음 보는 해괴한 능력과 믿을 수 있는 동료가 갑작스레 돌변하는 상황에서는 손을 제대로 쓰기 힘들었다고 했다.

심지어 그들을 이끌어야 할 위치의 기사마저 당해 버린 탓에 내부의 혼란이 제법 컸지만 나단 주커만은 이것이 각성자의 소행임을 짐작하고 앞으로 나서 조종당한 이들을 제압한 뒤 빈방에 가두어 놓았다.

그 뒤 남아 있는 이들을 모아 지금 그들이 있는 2궁만이라도 완벽하게 봉쇄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서 홀로 여기까지 왔다는 말에 가케인은 절로 감탄의 목소리를 흘렸다.

“대단하시네요…….”

“이런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것 정도는 이미 공작님과 폐하께서도 예측하고 계셨습니다. 다만 일시적인 전력 손실이 너무 커진 것이 문제입니다만…… 현 상황이 적에게 딱히 유리하리라 보지도 않습니다.”

“아. 조종할 사람들이 이제 다 사라진 셈이니 그렇겠군요.”

붉은 덩어리를 삼킨 사람만을 조종할 수 있다면, 그것에 당할 만한 사람이 없는 지금은 적도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려워진 상태라 볼 수 있다.

‘아마 처음은 무력이 약한 시종들부터 조종하고, 그 사람들을 이용해 기사들의 허를 찔러 안쪽까지 파고들어 오려는 계획이었겠지…….’

어이없을 만큼 대담했고, 이런 계획이 실제로 효과를 엄청나게 보였다는 점에 소름이 돋았다. 가케인은 자신이 각성자이면서도 각성자의 능력을 제대로 접해 보지 않은 이들이 얼마나 그것에 취약한지 이제야 제대로 안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적은 적어도 둘 이상일 것이라 판단됩니다. 하나는 방금 저희가 본 것과 같이 사람을 조종하는 능력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런 상황임에도 바깥과 내부에서 서로의 기척과 소리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도록 만드는 능력자겠지요.”

“예. 칸나와 저도 비슷하게 추측하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각성자이니만큼 더 정신을 차려 미리 방비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각성자들끼리도 서로의 능력을 바로 알아볼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명을 받은 대로 이곳 이상으로는 침범하지 못하도록 방비해냈으니 되었습니다.”

“멀리서 능력을 쓸 수 있다 해도 당사자들이 그리 멀리 있지는 않을 것 같아요. 상황을 눈치채고 도망가기 전에 잡아야 할 텐데…….”

“그렇다면 두 분은 여기를 지키십시오. 수색은 제가 바로 하겠습니다.”

담담히 대답한 나단 주커만이 마지막 남은 이의 팔다리를 꽁꽁 묶기 시작했다.

“혼자 가시는 건 위험합니다. 적어도 칸나가 뭔가를 읽어 낸 뒤에 움직이시는 게…….”

“누가 이런 일을 저질렀을지 이미 알고 있는 상황에서 시간을 끄는 건 좋지 않습니다. 하나라도 증거를 잡아 두는 쪽이 중요합니다.”

마지막 사람까지 모두 묶은 뒤 나단 주커만이 막 매듭을 마무리 지었을 때였다. 눈을 번쩍 뜬 칸나가 크게 소리를 쳤다.

“이게 다가 아니에요! 밖! 아니, 위로 어서!”

“칸나?”

진땀 가득한 얼굴로 이를 갈며, 칸나가 그림자 속에서 벗어나 뛰쳐나왔다.

“조종당했던 모든 사람들의 움직임을 읽었어! 일을 저지른 자들은 이미 여기에 없어. 조종의 첫 시작은 사람이 아니라 동물이야! 새였다고!”

“새…… 새라고?”

“그래. 그러니까, 이 혼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자들이 이걸 틈타서 진짜로 하려고 했던 건 폐하가 계신 곳을 파악해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아내려 했던 거야……!”

그 순간, 나단 주커만이 재차 검을 뽑아 들었다.

“올라가야겠군요. 따라오십시오.”

“방금 그건 무슨…… 소리인가.”

“글쎄요. 조금 시끄러운 고양이라도 들어온 모양이군요.”

키시아르가 손을 움직이며 황제의 힘겨운 질문에 대답했다. 유더는 날카로워진 붉은 눈동자를 바라보며 그가 지금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임을 확신했다.

‘침입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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