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터닝-551화 (551/805)

551화

“가케인. 유더가 안에서 뭘 할지 그렇게 걱정돼?”

그림자 분신이 만들어낸 검은 그늘 아래 칸나와 함께 은신하고 있던 가케인은 갑작스레 들려온 말에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어, 응?”

“아까부터 계속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을 쳐다보다가 말다가 하고 있잖아. 안 읽어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어.”

친절히 속삭여 주는 칸나의 얼굴에서 한눈을 판 동료를 혼내려는 듯한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가케인은 한숨을 내쉬며 입꼬리를 올렸다.

“응……. 사실 그래. 뭔진 몰라도 여기까지 와서 해야 하는 거면 몹시 중요한 임무일 테니까… 아무래도 조금 걱정이 되었나 봐.”

“유더가 몸을 안 아끼는 편이라는 걸 우리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으니까 당연하지. 나도 엄청 걱정돼.”

그들이 맡은 임무는 태양궁의 보호. 임무 외의 다른 사안에 쓸데없는 관심을 두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은 충분히 알지만, 동료에 대한 걱정까지 완전히 지울 수는 없었다. 가케인은 그런 자신의 연약한 일면이 단숨에 들켰다는 게 부끄러운 한편, 곁에 있는 이가 입이 무겁고 배려심이 좋은 칸나라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래도 괜찮을 거야. 유더잖아.”

“응……. 맞아.”

두 사람은 동시에 유더 아일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의 이름은 마병단 내에서 어떤 의미로 절대적인 신뢰의 상징과도 같았다. 무슨 일이든 그가 나선 이상 실패할 리 없다는 믿음이 모두에게는 있었다.

그리고 그런 유더가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에게 도움을 청했다는 데 대한 자부심 또한.

“그러니까 우린 우리 할 일이나 잘하자. 다른 데 정신을 팔다 중요한 걸 놓치면 안 되잖아.”

“하하… 그래. 말 나온 김에 분신을 조금 떼어내서 주변이나 한 바퀴 돌아보게 해야겠다…….”

가케인이 머쓱한 얼굴로 손을 움직였다. 복도의 어둠에 가려 있던 그의 발밑에서 검은 그림자 일부가 다른 방향으로 조금 흔들거리며 떨어지더니 그들의 앞에 섰다. 가케인보다 훨씬 작은 분신을 보며 칸나가 탄성을 토했다.

“와, 이런 것도 가능해진 거야? 대단하네.”

“아니야. 너나 다른 사람들의 발전에 비하면 이런 건 그리 대단하다고 볼 수도 없…….”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대던 가케인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고요한 어둠 너머에서 무어라 설명할 수 없이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가케인? 왜 그래.”

“왠지…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지 않아?”

“응? 무슨 소리? 아무것도 안 들리는데.”

“뭔가 느낌이 조금 이상한데……. 혹시 바깥의 정보를 따로 읽어 볼 수는 없어, 칸나?”

“벽을 통해서 한번 해 볼게.”

칸나는 즉시 옆의 벽을 짚었다. 그러나 그녀가 막 눈을 감고 능력을 발휘하려 한 순간, 복도 너머에서 누군가의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가케인은 즉시 칸나를 뒤로 보내고 앞으로 나서며 그들을 뒤덮은 그림자 분신의 크기를 늘렸다. 그와 동시에 들려오던 발소리의 주인이 그들의 시야 내로 모습을 드러냈다. 피투성이가 된 젊은 시종이 몸을 휘청거리며 소리쳤다.

“큰일! 큰일이다! 바깥에 침입자가……! 기사들이 당했어! 시종장님을 뵙게 해 줘!”

“뭐?”

가케인과 칸나가 동시에 눈을 크게 떴다. 가케인은 즉시 그림자 분신을 거두고 그를 향해 다가갔다.

“무슨 일입니까.”

“모르겠……. 침입자가……! 기사들이 당했어…….”

남자는 경황이 없는 듯 계속해서 몸을 떨고 있었다. 눈이 멍하고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았다. 가케인은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저희는 임시 호위입니다. 그런데 침입자라니. 대체 어디서 나타났단 겁니까.”

“모르겠어. 시종장님을 뵙게 해 줘!”

반사적으로 움직일 뻔했던 가케인의 손끝이 순간 움찔했다. 그와 함께 그의 옷자락을 칸나가 거세게 잡아당겼다. 그녀의 다른 한 손은 벽을 짚고 있었다.

“칸나?”

“저 사람 이상해.”

“응?”

“방금 벽을 통해 정보를 읽었어. 이곳엔 우리 말고도 많은 기사들이 몸을 숨기고 있었어. 그런데 지금은… 그 사람들의 정보가 하나도 안 읽혀. 저 사람에게서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

“아…… 역시?”

“어?”

이번에는 반대로 칸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종장님이 절대 이곳 이상으로 사람을 들여보내지 말라고 하셨잖아. 그런 분의 아래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긴급한 상황에 굳이 이곳을 통과하지 않아도 보고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을 우리처럼 미리 전달받았겠지. 그런데 굳이 시종장을 뵙게 해 달라고 하는 데다…….”

가케인이 미간을 찌푸린 채 남자의 전신을 훑었다.

“…이상하게 자꾸 비슷한 말만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그러네?”

두 사람이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이 상황의 오싹한 기묘함에 대해 동조한 순간, 피투성이가 된 시종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소리를 질렀다.

“시종장님을 뵙게 해 줘!”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겠네. 제압할 테니까 물러나 있어 칸나.”

“으응.”

칸나가 단검을 뽑아 든 채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남과 동시에 가케인의 그림자 분신이 솟구쳤다. 피투성이 시종에게 새카만 주먹이 쇄도하며 그를 복도 너머로 날려 보냈다.

“끄아악!”

날아가 쓰러진 시종은 꿈틀거리기만 할 뿐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잠시 후, 그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다가가던 가케인에게 시종의 벌어진 입에서 불쑥 튀어나온 붉은 덩어리가 빛처럼 날아들었다.

‘……뭐야 저건?’

가케인은 기겁하면서도 반사적으로 그림자를 펼쳐 그것을 막았다. 생각에 앞서 먼저 몸이 움직인 건 그간의 지옥 훈련이 그에게 선사한 결과물이었다.

일순 무언가 부딪쳐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그림자로부터 느껴진 충격이 온몸을 울렸다. 뒤를 이어 쿵 하는 거대한 파문이 바닥 전체를 진동시켰다. 가케인은 뒤로 몇 바퀴 굴렀다가 겨우 낙법으로 수습하며 기침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가케인!”

“난 괜찮아. 너는?”

“나도 괜찮아! 그런데 방금 그건 뭐였던 거야?”

“나도 모르겠어. 쓰러트렸더니 갑자기 그게 빠져나와서… 저 사람은 정신을 잃은 건가?”

“그런 것 같아. 내가 가서 다시 한번 읽어 볼게!”

“조심해.”

가케인은 분신을 사용해 남자의 전신을 제압하여 끌고 왔다. 피가 잔뜩 묻은 옷에 손을 얹은 칸나가 곧바로 능력을 사용했다.

“지금은 뭔가 읽혀?”

“응. 이번엔 읽혀……. 잠시만…….”

칸나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잠시 후 그녀의 입술에서 충격에 빠진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남자는 진짜 시종이 맞아!”

“뭐?”

“우리보다 먼저 침입자가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바깥으로 달려가던 도중이었어. 그런데 이 사람에게 도움을 청한 사람이 방금과 같은 붉은 덩어리를 토해 내고는…….”

말을 잇던 칸나가 갑자기 고개를 쳐들었다. 그녀가 고개를 돌린 곳에서 또다시 새로운 발소리들이 들려오고 있었다.

“침입자…….”

“침입자다……!”

“시종장님을 뵈어야겠어…….”

발을 질질 끌며 나타난 이들은 무려 열 명이 넘었다. 그들이 쓰러트린 시종과 마찬가지로 비슷한 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이들의 눈동자는 하나같이 멍하고 초점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이번엔 진짜 기사들까지 있는 것 같네.”

칸나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침착하게 중얼거렸다. 비틀거리며 다가오는 이들 중에는 갑옷을 걸친 기사와, 검을 찬 이들이 여럿 섞여 있었다.

“칸나. 저 사람들,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거라고 봐도 될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아까 토해 낸 그거에 당하면 저렇게 되는 게 아닐까?”

“이런 상황에도 바깥 소리가 안 들리는 것도 그렇고, 우리 말고도 분명 다른 기사들이 더 있을 텐데 안 나타나는 것도 그렇고…… 마법…은 당연히 아니겠네.”

“각성자의 짓이야. 틀림없어.”

그것도 분명 둘 이상일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의 시선을 통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확신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황궁에 좋은 의도로 침입해 오려는 건 아닌 게 확실하니 전부 막아내고 찾아내자. 아마 멀리 있지는 않을 거야.”

“난 정보를 읽어서 각성자의 위치를 찾고, 유더 쪽에 신호를 보낼게. 이 상황에 제대로 도착할지는 모르겠지만…….”

“알겠어.”

“저 사람들은 진짜 시종과 기사들일 테니 조심해, 가케인!”

“걱정 마.”

순수한 검 실력만으로는 오랜 경험을 쌓은 황궁 기사가 섞인 다수를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가케인에게는 언제나 그를 든든히 지켜 주는 그림자가 있었다.

‘죽이지 않고 제압하기는 어렵겠지. 하지만… 이상하게도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

가케인은 눈을 감은 채 벽을 짚고 있는 칸나를 흘긋 응시한 뒤 허리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주변으로 그림자 분신이 재차 몸을 일으켰다. 그가 분신을 순식간에 여럿으로 나눈 뒤 헛소리를 해 대고 있는 이들의 얼굴을 살피며 전신의 근육을 막 긴장시키던 순간이었다.

“……이쪽에 계셨군요.”

옆쪽 복도에서 불쑥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은 이내 새로운 인물의 얼굴을 보고 일제히 소리쳤다.

“주커만 경?”

“언제부터 여기에…….”

“저는 진짜 제가 맞으니 그렇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공작님을 모시기 위해 따라와 먼저 이곳에 있었습니다.”

나단 주커만이 무심한 얼굴로 들고 있던 검을 살짝 털었다. 두 사람은 검 끝에서 떨어지는 피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두 분이 이곳을 지킬 것이라 들었기에 걱정이 되어 왔습니다만… 아무래도 그럴 필요는 없었을 듯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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