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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545화 (545/805)

545화

유더 1번. 그것은 유더의 몸을 비정상적으로 뒤덮었던 거대한 몬스터의 독성 흔적을 해제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해제 마법의 이름이었다. 서부 연합의 마법사들과 키시아르가 모두 힘을 합쳐 힘겹게 만들어낸 그 마법 덕분에 유더 아일은 잃었던 시력을 되찾고 검은 얼룩으로 뒤덮였었던 피부도 본래대로 회복할 수 있었다.

이후 미칼린은 새로운 마법이 완성되면 학계에 꼭 제출해야 하는 공식명을 유더의 이름을 따 ‘유더 1번’으로 지정하였는데, 이번에 수도에 온 김에 드디어 그것을 발표한 참이었다.

“사실 당연한 반응이지요. 비록 대삼림에 내장된 엄청난 마력 정도가 아니라면 보통은 시전조차 하지 못할 대단위 마법이기는 하지만, 일단 몬스터의 영향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법 역사의 한 획을 그을 일이었으니까 말입니다. 교류를 위해 제국에 와 있던 타국의 마법사들도 얼마나 깊은 관심을 보였는지 모릅니다.”

이 정도 급의 마법을 만들어내고 실제로 성공시킨 건 적어도 200년 만일 것이라는 말을 제법 뿌듯한 얼굴로 하던 미칼린의 시선이 문득 흐려졌다.

“다만 마법사로서 뿌듯한 마음과 별개로… 정말 이래도 되는지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는 건 사실입니다.”

“왜지?”

“공작 전하께서 그 마법의 완성을 주도하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익명으로 숨기고 관심을 온전히 저희 연합으로만 돌리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더군요. 당시의 정황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이대로라면 누군가는 짐작할지도 모릅니다.”

미칼린의 허허로운 한숨 속에서 유더의 시선이 잠시 키시아르의 얼굴로 향했다가는 다시 되돌아왔다.

‘그 마법의 제작 관련 발표에서 공식적으로 키시아르의 이름을 숨기기로 했던 건가… 몰랐는데 생각해 보니 그랬었겠군.’

하긴, 키시아르가 신검의 정당한 주인임을 만천하에 드러내겠다는 포부를 밝힌 적은 있으나 마법은 또 그것과 별개다. 그가 그것을 숨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열 개도 넘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알아도 유더의 마음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어쨌든 그 마법의 제작과 완성에 키시아르의 힘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알고 있는 탓이었다.

“그것도 이미 예상한 바가 아닌가. 내 이름이 나오지 않도록 알아서 잘 처리하게. 자네에게 그 정도 능력은 당연히 있으리라 믿고 맡긴 일이니까.”

“물론 그렇습니다만… 후우.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키시아르의 뜻에 따르겠다는 뜻을 밝힌 미칼린이 문득 유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 그리고 마법의 이름이 이름이다 보니… 아일 남작과 마병단에 대한 마법사들의 관심 또한 대단히 높아졌습니다. 각성자이면서도 마법에 기대어 치료를 받았다는 점에 각별한 놀라움을 표한 이들이 많았지요. 진주탑은 물론, 궁중마법사청에서도 대단한 흥미를 보였기에 어쩌면 조만간 마병단으로 아일 남작을 만나고자 연락이 갈지도 모르겠습니다.”

“흠. 진주탑과 궁중마법사청이라.”

키시아르는 제법 흥미로운 듯 중얼거렸으나 유더는 일말의 관심조차 느끼지 않았다. 마법사들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든 말든, 그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리고 알려 드릴 또 하나의 소식은… 대삼림의 팽창이 드디어 확실하게 멈춘 것 같다는 소식입니다.”

미칼린의 말에 따르면 마력의 샘으로 추정했던 유적을 통하여 흘러나오기 시작한 대량의 순수한 마력은 이제 절반 가까이 외부로 빠져나왔다. 그에 따라 오랫동안 팽창하기만 할 뿐이었던 숲은 드디어 확장을 멈추었고 가장자리 부분에서는 현재 벌목이 한창 진행 중이라고 했다.

“이제 그곳에서는 비정상적인 식물들의 생장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동물들이 숲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으며, 새들도 둥지를 틀었습니다. 매년 일어났던 숲 내부에서의 몬스터 발생 또한 극도로 줄어들어 지금은 거의 평화로워졌지요. 그리고…….”

희미한 미소를 띤 채 말을 잇던 미칼린의 눈빛이 문득 다시 무거워졌다.

“숲에서부터 퍼져 나간 농도 짙은 마력의 흐름이 이제 서부 전체로 번져 가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유더는 아마도 미칼린이 오늘 와서 키시아르에게 하려던 말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이것이었으리라 확신했다.

“거기서 끝은 당연히 아닐 테고.”

“예. 이대로라면 그 마력은 제국을 넘어 세계 전체를 충만하게 해 줄 수도 있으리라는 게 저희 연합의 판단입니다. 그 정도로 순수한 마력이었으니 말입니다. 마력 희박 현상의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이 현상 자체는 분명 전 세계를 놀라게 만들 겁니다.”

“그렇다면 그에 대해서도 재차 발표를 하기는 해야겠군.”

키시아르가 평온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예. 타이누의 새로운 기둥이 된 코엘트 남작께서 대단히 잘 협조해 준 덕에 퍼져나가는 마력의 흐름과 농도의 변화를 순조롭게 추적 중이니 조만간 유더 2번의 연구 진행과 함께 해당 현상의 보고서를 재차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인력이 부족하다면 연락하도록.”

미칼린이 날카로운 맹금류 같은 얼굴 위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보고할 상황을 모두 문제없이 끝마쳤으며 계속해서 후원을 약속받았다는 사실에 만족한 기색이었다.

그리고 유더는 대화가 마무리된 틈을 타 입을 열어 물었다.

“그런데 유더 2번은 뭡니까. 저는 들은 적이 없는 이야기 같습니다만.”

“음? 몰랐나? 현재 우리 연합이 진행 중인 연구 중 하나가 유더 1번을 토대로 독이 있는 몬스터에게 피해를 입은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좀 더 간편한 마법의 개발이거든.”

미칼린이 몰랐냐는 듯 흔쾌히 대답했다.

“몬스터와 마력에 대한 연구도 물론 중요하지만, 유더 1번을 단 한 번 쓰고 사장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지. 다행히 새 마법을 개발하는 것보다는 간략하게 열화시키는 쪽이 훨씬 낫기에 빠르게 진행 중이네.”

다른 마법사들도 유더 2번의 개발 소식에 양손을 들고 환영했다는 묻지 않은 말까지 해 주는 미칼린은 처음 보았던 때보다 몇십 년쯤은 더 젊어진 듯 보였다. 그 표정만 봐도 그가 요즘 인생을 얼마나 즐겁게 보내고 있는지 느껴져, 유더는 이렇다 할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하기야 사사건건 방해하며 일을 떠넘기던 빌름 남작이 벌을 받는 모습도 보았겠다, 연구도 잘 진행되고 있겠다, 속이 상할 일이 있을 리가 없다.

유더는 이후 몇 가지 의견 교환을 끝으로 키시아르와의 대화를 모두 마친 미칼린을 데리고 1층의 의료부까지 안내해 주었다. 기도 중이던 루산 사제는 뜻밖의 손님을 보고 깜짝 놀랐으나 이내 그의 머리에 난 혹을 손쉽게 신성력으로 치료해 주었다.

“혹이 아주 심하게 나셨네요. 다 낫기는 했지만 며칠간은 이쪽 방향으로 눕지 않으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 망할 늙은이……. 하아, 아무튼 정말 고맙소.”

으드득 이를 간 미칼린이 겨우 사회적 품위를 지키며 고개를 숙였다.

“미칼린 님. 돌아가실 때는 안내해 드리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안내보다는 마차를 부를 수 있다면 그쪽으로 부탁하고 싶군. 여기서 머무는 숙소까지 다시 갈 생각을 하니 영 엄두가 나질 않아서……. 아무튼 내내 이 늙은 몸을 데리고서 안내를 해 주느라 고생이 많았소. 작위까지 받은 이에게 실례가 많았군.”

“작위에 앞서 저는 마병단 단장 보좌입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니 개의치 마십시오.”

“……정말 여전한 사람이군.”

미칼린이 길게 숨을 내쉬며 주름진 눈가를 휘었다.

“아까 유더 1번과 2번 얘기를 해서 말인데… 사실 말이지. 내가 그 마법에 자네의 이름을 붙이고 싶어 했던 이유는 마법사들 중에서 나처럼 막연히 각성자를 적대시하여 후회할 일을 만드는 이가 적기를 바랐던 까닭도 섞여 있었다네.”

“…그러셨습니까?”

예상치 못한 말에 유더는 눈을 느리게 깜박이며 반문했다.

“그래. 자네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겠으나 나는 나름대로 도움이 되리라 여겨 그리했네. 물론 거절한다면 어쩔 수 없다 생각했지만… 기왕 허락해 주었으니 잘 쓰기로 했지. 나중에라도 도움이 된다면 기쁘겠군.”

미칼린은 그리 말한 뒤 마병단을 떠났다. 유더는 키시아르가 있는 단장실로 돌아와 미칼린의 말을 전달하고 그게 무슨 뜻인지 짐작가는 바가 있느냐고 물었다.

“마법 이름에 제 이름이 붙는 게 각성자에 대한 적대감을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단장님께서는 짐작이 되십니까.”

“그건 마법사들이 각성자를 왜 싫어하는지를 따져 보아야 이해할 수 있는 말이라네.”

마법사들 중에서 각성자를 싫어하는 이들의 깊은 속내에는 질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착실히 열화되어 이제는 간단한 불꽃 하나 불러내는 이조차 보기 드물어진 상황에서 강력한 자연의 힘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각성자의 소식은 충격과 증오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마법과 비슷한 힘을 사용하는 너와 같은 각성자가, 각성자의 힘이나 사제의 힘이 아닌 마법에 의지하여 부상에서 벗어났다는 게 그들에게는 대단히 의미 있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진 거겠지. 이름은 당사자의 동의 없이 사용할 수 없는 만큼 그러한 생각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고.”

고작 그런 것 따위로 정말 마법사들이 변할 수 있단 말인가? 설명을 들어도 여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유더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아무튼 마법사들이 유더 1번으로 인해 각성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리낌을 없애고 조금 더 협조적으로 나올 수 있다면야 이름 정도야 못 내줄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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