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터닝-532화 (532/805)

“하, 흐으으……!”532화

“하, 흐으으……!”

절정은 길고도 강렬했다. 분명 키시아르와 마지막으로 몸을 섞고 나서 그리 긴 시간이 흐르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는데, 몸이 느끼는 감각은 마치 아주 오랜만에 맞이한 해방처럼 생경하기 그지없었다.

전신을 저미는 듯한 쾌감의 여파로 떨리는 몸을 키시아르에게 기댄 채, 유더는 잠시 멈추었던 호흡을 재개했다. 분명 내보낼 것을 내보냈음에도 머리는 아직 뜨겁고 멍했다.

끝이 예상보다 너무 빠르게, 그리고 갑자기 찾아왔기 때문일까. 사정을 한 직후에 마땅히 찾아와야 할 명료한 감각들 대신 다 꺼지지 않은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부를 달구고 있었다. 유더는 숨이 완전히 죽지 않은 제 것을 내려다보다 아직 손에 잡혀 있는 키시아르의 딱딱한 열기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입 안이 바짝 마르는 기분과 함께 땀과 체액에 젖은 몸이 한층 농밀해진 향을 피워 올렸다. 키시아르도 아마 그런 유더의 반응을 똑똑히 느끼고 있을 터였다. 유더의 향에 반응하듯 다가온 짙은 향이 부드럽게 아우러지며 괜찮다는 듯이 몸 이곳저곳을 자극했다.

유더의 관자놀이와 머리칼에 입을 맞춘 사내가 열로 상기된 눈을 휘며 속삭였다.

“진정했나? 그만할까?”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유더의 몸에서 아직 불이 꺼지지 않았다는 걸 가장 잘 알고 있을 이가, 향으로 느껴지는 뜻과 전혀 다른 말을 했다. 남은 시간으로는 만족할 만큼 하기에 충분치 않다 하더라도 그게 당장 그만해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연소되지 못한 채 남아 있을 불씨를 품은 채 참는 것보다는 한 모금이라도 물을 마시는 쪽이 훨씬 낫다. 적어도 키시아르에 한해서는 그랬다. 유더가 찌푸린 얼굴로 대꾸하며 정액으로 젖은 장갑과 윗옷을 완전히 벗어 던지자, 키시아르가 작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유더는 키시아르에게 남아 있을 열기까지 완전히 해소하기 전까지는 절대 일어날 뜻이 없음을 밝히기 위해 그 입술에 거세게 키스했다.

“그래……. 알아.”

오가는 말이 없이도 유더의 뜻을 모두 알고 있다는 듯, 키시아르가 얽히는 혀 사이로 희미하게 대답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원하는지 알고 있을 텐데, 바보 같은 질문을 했지.”

긴 손가락들이 유더의 허리 아래로 미끄러지듯 내려와 옷 속으로 파고들어 엉덩이를 꽉 쥐었다. 그 작은 접촉만으로도 반쯤 서 있던 몸에 완전히 다시 힘이 실리는 기분이 들었다.

제가 언제부터 이렇게 욕망의 화신이 되었을까.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혼자서만 먼저 내보내고 불이 꺼져 버리는 것보다야 역시 이쪽이 나았다.

유더는 젖은 채 단단히 심이 선 가슴에 눌리는 반듯한 콧날을 바라보며 희미한 신음을 흘렸다. 처음에는 거의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던 가슴이 이제는 키시아르의 숨결이 닿는 것만으로도 전혀 다른 신체 기관으로 변모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가 정신없이 허리를 흔드는 동안 키시아르 쪽에서 계속해서 자극했던 유두는 당초의 연한 색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스스로의 눈으로 보기에도 평소와 다른 무언가처럼 보이는 그것을, 키시아르는 반복하여 혀로 뭉그러뜨리고 핥기를 반복했다. 그 농염한 움직임에 집중하여 저도 모르게 숨을 토해 낸 순간, 엉덩이 사이로 손가락 하나가 불쑥 파고 들어왔다. 유더는 짧은 신음을 삼키며 입술을 깨물었다가는 이내 찌푸렸던 눈썹을 이완했다.

“……하아.”

이전과 달리 향유를 쓰지 않았음에도 침입해 들어오는 존재가 조금도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절정을 거치는 동안 젖은 건 앞섶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손가락을 환영하듯 벌어진 아래쪽이 내부를 훑을 때마다 끈적이는 소리를 냈다. 야릇하기 짝이 없는 소리였지만 유더는 수치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안으로 들어오는 손가락이 늘어날 때마다 그 소리가 더욱 커져도 그에게 더 중요한 건 제게 집중하여 완전히 웃음을 잃은 키시아르의 존재뿐이었다.

안을 드나드는 손가락이 세 개가 넘어서기 시작할 때부터는 버거울 만큼 벌어진 내부에서 빠듯한 감각을 전했다. 성기가 아니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상당한 압박감이었다. 그러나 키시아르의 것을 쥐고 있는 유더는 진짜가 얼마나 더 큰지 알고 있었기에 그것이 끝이 아님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아프지 않나?”

“괜찮, 습니다.”

아프기는커녕, 유난히도 긴 손가락들이 서로 뒤섞여 움직일 때마다 어딘지도 모를 곳이 찔리는 감각이 너무나 선연해 소리를 참기 힘들었다.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예민한 어딘가가 배 속에 있었다. 그것은 평소에는 전혀 존재감을 느낄 수 없이 잠들어 있었지만, 키시아르의 앞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개를 쳐들고서 찔리고 매만져질 때마다 한없이 부풀어 올랐다.

어떻게든 신음을 삼키며 대답하자 키시아르가 긴 숨을 토해 냈다. 그게 그가 스스로를 제어하기 위한 반응임을 깨달은 유더는 그가 한 번 더 숨을 토해 내기 전, 다리를 더욱 벌려 허리에 감았다.

“유더?”

“다른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그대로 힘을 주어 꽉 끌어당기자 속절없이 가까워진 육신들이 이전보다 더한 자극에 몸서리쳤다.

“아…….”

누가 누구라 할 것 없이 흘러나온 탄성이 다급히 맞부딪친 입술 사이로 빨려 들어가 사라졌다.

퀼로체트를 마셨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더 몽롱하고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진짜로 취한 기분은 이쪽에 더 가까울지도 몰랐다.

유더는 제 안에서 미끄러지며 빠져나가는 손가락을 느꼈다. 익숙해져 있던 내부가 일순 허전한 듯이 움찔거리는 감각이 익숙하고도 낯설었다. 유더의 내부에서 배어 나온 액체로 젖어 든 손으로 스스로의 것을 적셔 훑은 사내가, 그 허전함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 마침내 끝을 입구에 가져다 대었다.

유더는 이를 악문 채 하복부에서 힘을 최대한 빼냈다.

“읏, 아-…….”

어떻게 이런 것이 내부로 들어올 수 있는지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는 크기의 성기가 유더의 다리 사이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이미 풀릴 만큼 풀렸음에도 조금만 힘을 잘못 주면 무언가가 찢길 듯 아슬아슬한 감각이 들었다.

몸 안이 키시아르로 꽉 차오르고 있었다. 유더는 미칠 듯 곤두선 감각을 이겨내기 위하여 키시아르의 어깨를 거세게 쥐었다. 거친 호흡 속에서 땀이 이마와 등줄기를 타고 미끄럽게 배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흐으, 으읏……. 아.”

“하아…….”

오므라든 내부를 부드럽게 벌리며 침입해 온 성기가 마침내 반 정도 다다라서야 멈추었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배 속이 조금의 틈도 없이 완전히 찬 기분이었다.

유더의 숨이 어느 정도 잦아들 때까지 잠시 기다리던 키시아르는 내부가 완전히 안정을 되찾아 조금씩 조였다 풀기를 반복할 때쯤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흔들림일 뿐임에도 입 밖으로 저절로 짧은 숨이 턱턱 토해지고, 열이 오를 대로 오른 몸이 쾌감의 비명을 질렀다.

유더는 잠긴 목소리로 신음하며 본능에 따라 몸을 함께 움직였다. 허리를 감은 다리가 피부에 비벼질 때마다 키시아르의 단단하고 늘씬한 몸 아래 근육이 힘을 얻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제게 홀린 듯 내보이는 솔직한 반응 앞에서 유더는 머리끝이 탈 것 같은 사납고 황홀한 기분을 느꼈다.

이곳이 집무실이라는 사실도, 노크 없이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곳이라지만 소리가 새어 나갈 수는 있다는 사실도 상관없었다. 눈앞의 아름다운 존재를 제 것으로 만들고 싶어 참을 수 없어 날뛰는 향이 미친 듯이 움직임을 종용하고 몸을 꽉 조여들게 만들며 저도 모르게 웃음 짓게 만들었다.

이전에도 이런 감각이었던가. 벌써 몇 번을 했음에도 매번 새로운 쾌감이 치민다는 건 이상하지 않은가. 문득 그런 생각이 치밀었지만, 그런 생각도 이내 파도 속에 묻혔다.

유더는 내부의 깊은 곳을,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곳을 열 기세로 그에게 매달렸다. 어우러진 육체가 점점 더 빠르게 흔들리고 쳐올려질 때마다 아득한 머릿속에서 이름 모를 감정들만이 맴돌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기분이 좋다든가, 나쁘다든가 하는 그런 단순한 표현으로는 결코 알 수 없을 아릿한 감각 속에서, 유더는 저와 얽힌 사내와 자신 사이에 문득 가느다란 실과 같은 무언가가 흔들리는 듯한 환각을 보았다. 그것은 키시아르의 붉은 눈동자 속에 있었다.

한 가닥. 아니, 두 가닥.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조금 더…….

문득 내부의 구멍들이 일제히 열려 뻐끔대는 소리를 들은 듯도 했다.

눈앞이 희게 변했다…….

정신을 차린 뒤 본 건 단장실 내부로 들어오던 해가 거의 저물고 있는 광경이었다.

“……제가 잠들었었습니까?”

“아주 잠깐.”

알몸으로 그를 틈 없이 끌어안은 사내가 낮게 대답했다. 유더는 그의 살갗에 난 잇자국을 그제야 발견하고 눈을 몇 번 깜박였다. 선명하게 치아 모양을 드러낸 것으로 보아 제법 아팠을 텐데도, 키시아르는 그저 평온해 보였다.

“…곧 출발해야겠군요.”

“그래야지.”

하지만 둘 다 일어나지 않았다. 당장 뭔가를 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러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드는 건 처음이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어쩐지 조금 더 예민한 것 같던데. 혹시 짐작 가는 이유가 있나?”

향도 이전보다 더 짙었고. 등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린 사내가 지그시 시선을 맞추었다. 무게 없이 가벼운 눈길 같아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유더는 알았다.

“아뇨.”

“그렇다면 역시 2성 발현 이후 시간이 제법 지난 탓인가.”

이건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유더는 느리게 눈을 깜박이며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발정기는 아직 아닙니다만.”

2성 발현 이후 흐른 시간을 굳이 새삼스레 자각해야 할 이유라면 하나뿐이었다.

“그래. 아직은 아니겠지. 하지만 영원히 오지 않을 일도 아니고.”

키시아르가 부드럽게 대답하며 그를 안았다. 관자놀이에 새털 같은 입맞춤이 닿았다 떨어졌다.

“발현 시기 이후 처음이라면 주기도, 전조증상도 알 수 없을 테니 무엇이든 미리 살펴 나쁠 건 없을 거야. 너는 그렇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무딘 면이 있으니까.”

발현 이후 처음이라. 키시아르는 사실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겠지만, 유더는 실제로 이전 생부터 발현 당시 찾아들었던 기억나지 않는 일주일을 빼고는 단 한 번의 발정기도 제대로 겪어 보지 않은 반쪽짜리 오메가였기에 그 말이 다소 낯설고도 무겁게 들렸다.

‘맞는 말이기는 한데…….’

이번 생에도 발현과 동시에 발정이 찾아왔었다지만, 진통제를 먹고 자는 동안 지나가 버려 스스로는 아무것도 체감하지 못했다. 2성 각성자가 겪는 발정기 주기가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해도 그 정도 시간이 흘렀다면 키시아르의 말마따나 슬슬 뭔가가 올 때가 되기는 했다. 그러나 한 번도 그것을 겪은 적이 없는 이에게 자신의 발정기란 마치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듯 어색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유더는 제가 발현 이후의 발정기 시기나 증상에 대해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음을 그제야 비로소 깨달았다.

‘확실히… 요즘 상태가 묘하기는 했으니 유념해 두어서 나쁠 건 없겠군.’

방금 그와 몸을 섞는 동안 느낀 감각이나 절정이 너무 빨랐던 건 사실이다. 끝을 맞이했음에도 계속해서 꺼지지 않는 열기의 원인에 단순히 키시아르를 향한 열망만 있는 건 아니었을지도 몰랐다.

“생각지 못했습니다만, 유념은 해 두겠습니다.”

“그래.”

그거면 충분하다는 듯 키시아르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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