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1화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확인해 주듯이, 일순 서늘한 향이 훅 하고 피어오르며 유더가 막 갈무리하려 했던 향 사이로 섞여들었다. 형체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거침없이 얽혀드는 그것은 당연히도 키시아르가 내보낸 그의 향이었다.
유더는 마치 보이지 않는 손가락이 제 가장 깊은 곳을 간질간질 어루만지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순간적으로 흘러나올 뻔한 목소리를 눌러 삼켰다.
아무리 입술 안쪽을 깨물고 치솟는 감정을 억누르려 해도 소용없었다. 목말랐던 내부 어딘가가 드디어 떨어진 시원한 물 한 방울에 환희하듯 입을 벌리고 날뛰었다. 억지로 사그라질 예정이었던 향이 순식간에 명령을 무시하고 익숙한 향을 향해 달려들었다.
눈으로 보기에는 둘 중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겠지만,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는 전혀 달랐다. 만약 향을 느낄 수 있는 다른 2성 각성자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마병단장실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큼 거침없이 퍼진 채 서로 뒤섞이고 있는 두 개의 향을 인지하자마자 스스로의 감각을 의심했으리라.
엉켜 싸우는 두 짐승마냥 사납게 헝클어지면서도, 순식간에 하나의 향처럼 농염하게 합쳐진 향이 각자의 주인을 향하여 더 깊은 무언가를 충동질했다.
유더는 저와 같은 눈을 한 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내를 홀린 듯이 훑었다.
“…내가 그쪽으로 갈까, 아니면 여기로 오겠나?”
뱃속 어딘가를 짓누르는 기분이 들 만큼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다정히도 선택지를 제시했다. 지글대며 끓는 초조함 속에서도 유더는 일순 닫힌 단장실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문을 함부로 열고 들어올 이는 현재 없다. 키시아르의 서류 작업도 방금 전 모두 끝났다. 유더가 하고 있던 서신 분류도 마무리된 지 오래이니 이제 황궁으로 갈 때까지는 더 할 일이 없었다.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뭔가를 더 생각해 보려 했던 듯도 한데, 답을 기다리듯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올라가는 키시아르의 붉은 입술을 본 순간 모든 것이 멈추었다.
가슴 속의 불길이 별안간 훅 치솟았다.
“…….”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키시아르의 목을 끌어안은 채 입을 맞추는 중이었다.
유더가 자신을 꽉 안을 수 있도록 등을 둥글게 굽힌 사내가 혀를 깊이 얽으며 허리를 끌어안았다. 단단한 벽과 같은 품속에 갇힌 유더의 몸은 그것을 구속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기꺼이 받아들였다.
맞닿은 몸에서 열기가 치솟은 순간, 얽힌 채 미끄러진 혀를 타고 목 안쪽과 뱃속 아래까지 저릿한 감각이 쭉 내달렸다. 단단히 몸을 떠받치던 근육이 전부 녹아내리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아찔한 감각이었다.
상대의 얼굴을 보기 위해 힘을 주어 치켜뜨고 있던 유더의 검은 속눈썹이 거센 파도에 흔들리는 작은 배처럼 크게 떨렸다. 그가 반사적으로 목을 끌어안은 손에 힘을 주며 희미하게 목을 울리자, 키시아르는 그 소리가 바깥으로 조금도 흘러나가지 않도록 남김없이 모두 훑어 삼켰다.
서로를 향하여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닿고자 하는 열망을 이기지 못한 다리가 얽히며 휘청휘청 흔들렸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뒤로 물러나면서도 유더는 조금도 뒷일을 걱정하지 않았다. 그의 허리를 안은 팔이 능숙하게 방향을 틀며 쓰러지거나 다치지 않도록 이끌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기대대로, 빙글빙글 휘청이며 이동한 두 몸은 그 와중에도 입술을 떼지 않은 채 조금도 다치지 않고 마침내 소파 위로 함께 쏟아지는 데 성공했다. 마치 물에 빠질 때처럼 푹신한 감각과 함께 끝의 끝까지 얽혀 있던 입술이 그제야 겨우 떨어졌다.
“…하아, 하…….”
“하하……. 음악은 없었지만 어쩐지 춤 연습을 했던 그때 같았어. 그렇지?”
유더는 키시아르의 몸 위에 엎드려 누운 채 숨을 몰아쉬었다. 움푹 꺼진 소파에 몸을 뉘인 키시아르도 가쁜 호흡 사이로 웃음을 뒤섞었다. 아무렇게나 쓰러져 누운 채 사내 하나를 배 위에 올리고 있는 꼴이 어이없을 만도 하련만, 유더는 소파 위로 헝클어져 늘어진 금빛 머리칼과 거꾸로 뒤집히고 구겨진 옷자락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몸 위로 쏟아지고 있는 햇살 몇 줄기조차도 저 사내를 조금 더 아름답고 완벽하게 살아 있도록 만들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만 같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유더는 반사적으로 그의 얼굴을 향하여 손을 내밀려다, 반쯤 흘러내린 겉옷 자락에 팔이 묶여 멈칫했다. 이제 보니 그의 꼴도 키시아르 못지않게 엉망이었다.
그가 반사적으로 미간을 찌푸려 눈썹을 모으자 키시아르가 손을 뻗어 몸에 휘감긴 겉옷을 잡아당겨 벗겨 주었다. 검은 옷자락이 맥없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유더는 드디어 원하던 대로 그의 얼굴을 만졌다. 거친 손끝으로 조심스레 뺨을 매만지자 거기에 기대듯 고개를 살짝 돌린 사내가 유더를 올려다보며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오는 듯한 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빛 또한 유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눈앞의 상대를 원하여 어쩔 줄 모르는, 홀린 듯한 열기로 달아오른 애달픈 눈동자가 유더의 이름을 불렀다.
“유더…….”
“…….”
손바닥에 닿은 숨결은 이내 또다시 입맞춤이 되었다. 짜릿하게 튀는 감각을 선사한 한 번의 쪼는 듯한 입맞춤이 두 번째에는 낙인처럼 뜨거워졌고, 세 번째에는 피부를 핥는 물처럼 변하여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을 치솟게 했다.
그가 부른 이름이 마치 무언가의 활시위를 당기는 명이라도 되었던 듯이, 유더는 그의 품으로 무너져 내렸다. 사내가 기다렸다는 듯 그 몸을 받아 안고서 뺨과 목줄기에 입술을 묻었다.
짙어진 향이 몸 위를 뒤덮고, 그에 반응하듯 땀이 솟았다. 유더는 정신없이 사내를 탐닉하며, 동시에 그가 자신을 탐닉하는 감각에 신음했다. 온몸이 그를 향하여 열리는 것만 같았다. 내부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들을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마치 거대한 폭포의 끝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엉덩이 아래로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조차 그를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유더는 벌어진 옷자락 사이로 드러난 가슴을 키시아르에게 내어준 채 기꺼이 다리를 벌려 그것을 제 쪽으로 가까이 끌어들였다.
“흣… 으…….”
아직 옷자락이라는 장벽이 다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강하게 맞닿은 순간 머릿속이 번쩍하는 감각이 눈앞을 흐리게 만들었다. 유더는 그 감각을 알고 있었다. 휴가 내내 그의 몸에 당연한 듯 뿌리내리고 있었던, 또 하나의 손과 발처럼 익숙해진 쾌감이었다.
그는 거칠게 손을 움직여 두 사람의 앞섶을 헤쳤다. 이미 바짝 일어서서 옷의 천을 적신 유더의 것만큼이나 키시아르의 것도 이미 사정을 앞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단단해진 상태였다. 그러나 유더의 손이 그리 작지 않음에도 버겁게 잡히는 듯한 착각이 드는 그것은 손에 닿은 순간 크게 움찔거리더니, 믿을 수 없게도 한층 더 거대하게 자라났다.
그 두 개를 모아 맞닿게 한 순간, 유더의 가쁘게 오르내리는 가슴에 입술을 묻고 이를 세우고 있던 키시아르가 설핏 사나운 숨결을 흘리며 몸에 바짝 힘을 주었다. 허리를 끌어안은 채 바짝 밀착하고 있던 손이 움직여 옷자락 안으로 들어왔다. 같은 부위를 함께 만지지 않아도 분명히 동일한 의도가 느껴지는 손길이 이어졌다.
그가 땀으로 젖은 허리와 등줄기를 쥐고 어루만질 때마다 유더는 튀어 오르는 감각에 신음하며 반사적으로 허리를 움찔거렸다. 맞닿은 하체가 그때마다 서로 맞물려 비벼지며 쾌감을 선사했고, 그러기를 반복하자 어느새 그것은 익숙한 리듬이 되어 있었다.
‘아…….’
유더는 제 옷을 벗어야겠다는 생각조차 잊은 채 제 몸을 어루만지는 손의 움직임에 맞추어 계속해서 몸을 흔들었다. 앞섶에서 흘러내린 액이 속옷을 적시고, 두 개의 성기가 연신 미끈미끈하고도 음란한 소리를 냈다.
젖어 드는 건 앞뿐만이 아니어서, 이다음의 감각을 알고 있는 몸 안쪽에서도 땀이 배어 나오는 듯한 감각과 함께 무언가를 갈구하여 허기지게 오므라들었다 풀리기를 반복했다.
유더는 머리가 다 탈 듯한 감각에 신음하며 키시아르의 어깨에 이마를 묻었다. 이를 악물며 허리를 비비는 순간 유더의 등줄기를 매만지던 손이 등뼈와 날개뼈 사이의 어딘가를 지그시 눌렀다.
“……!”
그곳은 이전에 몸을 섞었을 때부터 유독 유더가 강하게 반응했던 부위 중 한 곳이었다. 손가락 끝으로 눌리자마자 숨이 멎을 만큼 강렬한 감각이 터지며 몸이 속절없이 휘었다.
유더는 헉 하는 숨을 토하며 키시아르의 목줄기를 깨물었다. 눈앞이 타는 것만 같은 착각이 일며 몸 안쪽에서 뜨거운 것이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