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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510화 (510/805)

510화

“-이런 기쁜 날이라고는 해도, 기쁨에 젖어 지나치게 과음을 하는 건 좋지 않지. 아무래도 보좌는 조금 쉬고 돌아오는 게 좋을 듯하니 휴게실에 가 있게.”

보지 않는 척하면서도 두 사람의 모습을 몰래 주시하던 이들이 크게 흘러나온 펠레타 공작의 목소리에 귀를 쫑긋거렸다.

“이논과 루산을 곧 뒤따라 보낼 테니 정 춤을 더 추고 싶다면 거기서 추도록. 이건 명령이야.”

장난기를 머금은 듯 나긋하지만 눈빛까지는 그렇지 않은 시선을 마주하며, 유더는 작게 숨을 내쉬었다.

정 춤을 추고 싶으면 거기서 추라는 말은 아마 일단 정말로 몸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부터 하고 그다음에 키올레 쪽을 처리하라는 뜻일 터였다. 하고자 하는 일을 막지 않겠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걱정은 걱정대로 표현하는 참으로 키시아르 라 오르다운 일 처리였다.

“알겠습니다.”

유더는 얌전히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출입구 쪽을 향하여 나아가던 중, 마치 우연히 그런 것처럼 계단 아래 서 있던 키올레에게 물었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뭐, 뭐?”

별안간 들려온 말에 기겁한 키올레가 발밑에서 기어 다니는 벌레라도 발견한 듯 놀라며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그 바람에 호위기사의 자격으로 허리에 찬 예장용 검이 덜그럭대며 무릎뼈에 부딪쳤고, 키올레는 신음조차 내지 못한 채 몸을 떨며 이를 악물었다.

“지금 비어 있는 휴게실이 어느 쪽인지 아십니까.”

키올레가 서 있는 위치 바로 뒤쪽이 휴게실로 통하는 복도였다. 그곳을 향하여 고개를 휙 돌린 키올레는 이게 바로 유더가 제게 보내는 신호임을 깨달은 듯 숨을 유난히 크게 헐떡였다. 다른 이들이 보았다면 감히 평민이 제게 질문을 하여 경악과 분노에 휩싸인 줄 알았겠지만, 유더에게는 겁에 질려 흔들리는 눈빛이 아주 잘 보였다.

‘주변에 수상하게 보이고 싶어서 아주 난리가 났군.’

“전, 부 비어 있다!”

기이하게 갈라진 목소리가 마치 이를 부드득 갈며 내뱉은 듯 들렸다.

“그러면 아무 곳이나 들어가도 되겠군요. 알겠습니다.”

망설임 없이 첫 번째 휴게실로 향하는 동안, 뒤쪽에서 등을 찌를 듯한 시선두 개가 느껴졌다. 하나는 당연히 키올레였고, 다른 하나는…….

‘카치안 라 오르.’

유더는 열 명 정도는 편히 앉아 쉴 만한 고급스러운 휴게실로 들어서 소파에 앉았다. 저를 찌르던 시선은 사라졌으나, 머릿속에는 오늘 파티 내내 잊을 만하면 계속 저를 살피던 카치안의 모습이 맴돌았다.

본래 카치안은 스스로를 드러내기를 좋아했기에 공식 석상에서는 말이 제법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디아카 공작과 함께 마병단을 무시하고 깔아뭉개기 위해 나온 자리임을 감안해도 신기할 정도로 말수가 적었다.

전처럼 혀에 기름칠을 잔뜩 한 젊은 귀족들과 함께 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뭔가 다른 일을 하는 것도 아니면서 홀로 앉아 있던 젊은 황태자.

퀼로체트를 둘러싼 일련의 소란이 벌어지고 뒤르망 남작이 쓰러진 뒤부터 더욱 노골적으로 유더 쪽을 보던 그 눈빛이 미묘하게 신경이 쓰였다.

‘수확철 축제 때의 원한 때문이라기엔 그리 분노에 차 보이지는 않는 표정이었고… 많은 단원들 중에 나에게 제일 큰 흥미를 보이는 이유라면 역시 능력 때문인가?’

사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그리 궁금하지 않았다. 하지만 카치안의 주변에 나그란의 별과 현자가 있다는 사실을 안 이상,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신경이 쓰였다.

‘뭐, 그 부분은 곧 키올레가 오면 물어볼 수 있겠지.’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키올레가 아닌 이논이었다.

“루산 사제님은?”

“화장실 가서 늦는다.”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목을 감싼 타이를 상당히 거칠게 풀어헤친 이논이 찡그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하간 하루도 조용히 지나가는 날이 없어. 오늘은 좀 괜찮나 싶더니 별안간 독주가 등장하지를 않나…….”

“…….”

“몬스터에게 다쳤다 회복한 이후로 생긴 내성 얘기는 또 뭐야? 난 그런 말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키시아르 때와 똑같은 말을 하는 이논을 보며 유더는 침착하게 다시 한번 설명해 주었다.

“반은 거짓말이었어. 몬스터 때문이 아니라 본래 몬스터 이외의 독이나 약에는 안 당한다고 말하는 것보다는 그게 낫잖아.”

“…….”

“하지만 그 술 안에 몬스터로 된 부산물이 들어 있어서, 조금 취한 것 같기는 해. 단장님께서 체온이 높아졌다고 했으니까.”

그 말에 이논이 이마를 짚으며 하 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취해? 그걸로 끝이야?”

“그거 말고는 아무 이상도 없어. 보다시피.”

“넌 대체 그걸 왜 그냥 마시고 난리야? 안 마시고 처리할 수 있는 방법도 있지 않았어?”

물론 그런 방법도 있기는 했을 것이다. 제가 그걸 마셔서 적들에게 혼란과 공포를 주고 얻어낼 수 있는 결과보다 훨씬 복잡하고 느렸을 테지만 말이다.

유더의 얼굴에서 답을 읽어낸 듯 이논이 눈으로 욕을 하며 혀를 찼다.

“그래. 이쪽이 훨씬 효과적이고 빨랐다 이거지. 어차피 마셔도 멀쩡할 거 다 알고 있으니 무서울 것도 없고. 그거 보고 깜짝 놀라는 건 어차피 네놈이 아니니까 맘도 편하고. 엉?”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는데.”

돌아온 건 고개가 뒤로 젖혀질 만큼 이마를 거세게 짚는 손이었다.

“윽.”

“그래. 확실히 열이 조금 있기는 하네.”

냉정하게 체온을 잰 이논이 유더의 눈과 손을 몇 번 더 살피고는 정말로 그 외의 이상을 찾아내지 못한 듯 미간을 찡그렸다.

“돌아갈 때까지는 이 이상 다른 거 먹거나 마시지 마.”

“물은?”

“꼭 마셔야겠다면 네가 만들어서 마시든가! 너 물 만들 줄 알잖아!”

이논이 빈 컵을 유더의 손에 거칠게 쥐여 주었다.

“신성력이 필요한 상태는 아닌 것 같지만 혹시 모르니까 루산이 오면 한 번 받고, 눈이나 감고 쉬어.”

“……알겠어. 그런데 부탁하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그 술에 뭐 탔는지 알아내라고? 그건 당연히 약사가 해야 할 일이고.”

“아니, 그것도 있긴 한데 그것만은…….”

그때 또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에 들어온 이는 화려한 예식용 사제복 자락을 꼭 쥐고 고개를 내민 루산이었다.

“유더 님. 제가 늦었네요. 몸은… 괜찮으시죠?”

“네. 괜찮습니다.”

“완전 괜찮은 것 같으니까 왔으면 신성력 한 번 대충 부어 주고 가.”

이논의 성의 없는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뜬 루산이 서둘러 가까이 다가왔다.

“아… 정말 그거면 되나요? 제가 여기로 올 때 단원분들께서 다들 몰래 유더 님 상태를 솔직하게 좀 알려 달라고 부탁하셨는데, 문제가 없다니 잘됐네요.”

다들 좋아하겠다며 눈에 띄게 안심한 루산이 유더의 머리에 신성력을 부어 주며 자신이 아까 얼마나 놀랐었는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저도 놀랐지만, 이논 님이 갑자기 유더 님 쪽으로 뛰쳐나가려고 하시길래 얼마나 심장이 떨어질 뻔했는지 몰라요……. 사실 그것 때문에 좀 진정하려고 화장실에 다녀온 것도 있었거든요.”

“내가 언제 그랬어? 헛소리 말고 신성력 다 부었으면 나와, 꼬마야.”

이논이 목소리를 키우며 루산의 말을 틀어막았다. 그러나 유더는 이미 뒷말을 짐작할 만큼 들어 버린 뒤였다.

“……그랬어?”

“아니라니까.”

“미안, 이논.”

이논이 입 안으로 무어라 욕에 가까운 말들을 험악하게 중얼거렸다. 작게 웃음을 터트린 루산이 서서히 유더에게 부어 주는 신성력의 양을 줄이며 ‘아. 그러고 보니…….’ 하고 말을 꺼냈다.

“제가 여기로 들어오려는데, 황태자 전하의 곁에 서 있던 호위 기사분께서 옆 휴게실 앞에 서 계시더라구요. 절 무섭게 쳐다보시길래 뭔가 했는데……. 황태자 전하께서 유더 님의 상태를 알아보려고 몰래 보내신 걸까요?”

“그래요? 잘 됐군요.”

“예? 뭐가요?”

“이논. 내가 부탁하고 싶은 게 바로 저것과 관련되어 있는데.”

“또 뭐!”

이논이 소리를 쳤다. 하지만 유더는 그와 루산이 제 부탁을 들어주리라 의심치 않았다.

“나가는 길에 이곳 문을 허술하게 조금 열어 주고, 너와 사제님은 홀로 나가는 척하다가 다시 돌아와 옆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려 줄 수 있을까.”

“…….”

“혼자서는 문 열 용기도 없는 놈을 불러들이려면 그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부탁할게.”

“……이, 이봐!”

그로부터 잠시 뒤, 누구라도 쉽게 열 만큼 허술하게 틈이 벌어진 문을 아주 조심스럽게 연 키올레 다 디아카가 극도로 불안한 눈빛으로 목소리를 죽여 소리쳤다.

“여기 있지? 어?”

“들어올 거면 빨리 들어와. 얼굴만 내밀고 몸은 바깥에 두면 더 이상하니까.”

유더의 목소리에 심호흡을 한 키올레가 빠르게 문을 닫고 휴게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안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내가 황태자 전하의 곁에서 몰래 빠져나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하필 이런 날 이런 때 나를 불러내다니…….”

“그거야 내 알 바 아니지.”

키올레가 유더의 건방짐에 욕을 하지 못하는 게 억울해 참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이를 갈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유더는 제가 앉아 있는 소파 맞은편을 고갯짓으로 가리켜 보였다.

“앉아.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게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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