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터닝-485화 (485/805)

485화

“유더. 진짜로 할 셈이야?”

“다른 곳도 아니고 황궁인데……! 평소처럼 농담하신 건 아닐까?”

“아니, 아무리 단장님의 명이라지만 서부에서와는 상황도 다르고…….”

유더는 키시아르가 사라지자마자 벌떼처럼 몰려든 단원들 사이에 갇혔다. 목소리를 죽인다고 죽였지만 한마디씩 하는 말들도 쌓이면 수백 개가 되기에 그리 조용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본래대로라면 파티 소식에 기뻐해야 했을 단원들의 표정은 조금도 밝지 않았다. 유더는 몹시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채 열정적으로 떠들어 대는 단원들의 면면을 보며 몹시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비록 방금 들은 사실을 아직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는 않아도 걱정하는 표정들만은 진심이었다.

“유더! 싫다고 말하기 어려워서 못 한 거라면 우리가 같이 가 줄 테니까…….”

“아니. 억지로 대답한 건 아니야.”

끝내 유더가 억지로 대답한 것이 아닌가 하는 분위기로 흘러가기 전에, 그는 입을 열어 단원들의 섣부른 추측을 막았다.

“너희는 단장님이 날 놀리기 위해 억지로 그러실 분이라고 생각해?”

“…….”

“제의를 받아서 수락했을 뿐이니 괜찮아. 기준을 바꾼다고 했으니 공식적으로는 문제없어. 그냥 춤일 뿐이니까.”

“아니, 문제가 될 게 없다니… 그걸 해서 들을 개소리들이 문제지…!”

“그, 물론 단장님이 알파 각성자고 네가 오메가로 발현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정말… 그래도 되겠어? 서부에서처럼 막… 그런 놈들이 나올지도 모르잖아!”

“와 나 씨, 그때 얘기는 하지도 마!”

유더는 예상보다 훨씬 강한 반발에 약간 당혹했다. 이쯤 말하면 키시아르를 생각해서라도 다들 물러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답은 그가 미처 깊이 생각지 않았던 부분에 존재했다.

타이누에서 애인 연극이 벌어지는 동안 그와 관련된 각종 악의적인 소문과 욕을 먹는 데 질려 버린 건 타이누의 치안을 관리하느라 밤낮없이 돌아다녔던 마병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본래 욕과 소문이란 당사자들이 있는 자리보다 없는 자리에서 더욱 많이 돌아다니는 법이다.

아무리 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안다 해도 같은 마병단원이, 그것도 그들 모두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그런 취급을 받는 모습을 보는 건 상당히 불쾌한 일이었다. 그런데 또다시 비슷한 상황이 도래하고 나자 반사적으로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건 당연한 노릇이었다.

외부의 적을 감지했을 때야말로 집단은 더욱 똘똘 뭉치게 마련이다. 힘들었던 서부 임무를 끝마치고 온 마병단원들의 안에서 마병단은 이미 하나이자 전부가 된 지 오래였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깊은 전우애로 뭉친 이들은 유더가 받을지 모를 모욕을 자기 자신의 일만큼이나 예민하게 느꼈다. 1성과 2성의 아리송한 문제도, 키시아르가 굳이 유더를 택한 이유도 그에 비하면 부차적인 문제가 되었다.

이 또한 가짜 애인 연극이 가져다준 기이한 변화였다.

흥분한 단원들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기 시작했을 때, 유더는 한곳에 모여 있는 낯익은 이들과 문득 시선을 마주쳤다. 아직까지 난감한 표정을 다 숨기지 못한 에버와 대놓고 흥미로워하는 엘더 남매, 걱정스러워하는 지미, 지미보다 더욱 얼굴이 어두운 가케인, 그리고 그 곁에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칸나.

유더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칸나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별안간 눈을 질끈 감고는 주먹을 꽉 쥐고서 앞으로 나섰다.

“잠깐! 잠깐만. 다들 일단 진정해.”

평소에 모두와 고루 사이좋게 지내는 정과 부단장 칸나 완드가 이렇게 먼저 나서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놀란 이들이 입을 다물자 칸나는 너무나 긴장하여 오히려 냉정하게까지 느껴지는 특유의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일단 정리를 좀 해 볼게. 단장님은 이번 파티에서 춤을 출 상대의 기준을 바꾸겠다고 하셨어. 이건 이미 결정하신 사항이라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어. 유더도 이미 받아들였고 말이야.”

“…….”

“그리고 유더는, 그래도 정말 괜찮…은 거지?”

그 말을 하며 유더의 안색을 살피는 눈빛이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느껴진 건 착각일까. 유더는 일단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괜찮아.”

“아니, 그래도……!”

“내 말 아직 안 끝났어.”

칸나가 손을 들어 사이에 끼어들려 한 단원의 말을 차단했다.

“나도, 여태 그…런 부분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생각해 보면 그거야말로… 진짜로 각성자를 위한 파티다운 결정 아닐까? 그러니까 내 말은, 2성 발현자를 생각한다면 말이야.”

“…….”

“단장님이 장난기가 많으시긴 하지만 우리에게 해가 될 일을 하신 적은 한 번도 없었어. 이번에도 그럴 거라 생각해. 그러니까 유더도 받아들였을 거고……. 아니,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뭐냐면.”

“…유더를 돕고 싶다면 이미 결정된 일을 무르라고 할 게 아니라, 우리도 단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참가하는 쪽이 낫겠다는 거지?”

귀와 뺨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한 칸나를 대신해 나선 이는 에버였다.

“맞아! 그 뜻이야. 한 쌍만 그렇게 참여한다면 당연히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여럿이 되면… 훨씬 낫잖아.”

마병단원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런가?”

“처음엔 좀 그랬는데 듣고 보니 말이 되긴 하는 것 같은데. 기준을 바꾼다고 했지 단장님만 그렇게 참가하시겠다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래. 유더도 하는데 못할 거 없지. 우린 같은 마병단이잖아!”

같은 마병단. 그 무적의 단어가 모든 단원들의 가슴에 순식간에 불을 지폈다.

“그래! 기왕 결정된 거, 화끈하게 같이 욕을 먹자! 몬스터도 잡았는데 그까짓 게 뭐가 무서워!”

“내가 욕먹는 게 두려웠으면 고향 떠나면 절연하겠다는 말을 듣고도 여기까지 입단 시험 치러 오진 않았을 거라고!”

“2성 발현한 녀석들 손 들어 봐!”

“야, 이거 또 역사에 남는 거 아냐? 하하핫.”

순식간에 오기로 불타오른 집단을 보며 유더는 조용히 침묵했다.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길 바라기는 했었지만, 설마 이런 방식으로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유더 혼자 욕을 먹지 않게 해 주겠다는 치기 어린 목소리들이 나쁘게 들리지 않는 건, 아마도 그 또한 이미 이 마병단에 속해 있기 때문이리라.

참으로 낯선 기분이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칸나를 향해 입 모양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직까지도 얼굴이 살짝 달아오른 상태였던 칸나가 그것을 마주하고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 개인적인 대화라도 좀 나눌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그녀는 또다시 삐걱대는 움직임으로 유더의 근처에서 멀어졌다.

‘…진짜 나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나? 왜 저러는지 물어보기는 해야겠는데.’

유더는 고개를 돌려 분위기가 달아오른 단원들을 향하여 목소리를 내었다.

“다들 잠깐만, 파티 준비와 관련된 의견 교환이 끝났으면 들어가기 전에 한마디만 하고 싶은데.”

“어, 뭐? 무슨 말?”

“우리의 의리에 감동했군?”

귀신 같은 단장 보좌의 입에서 고맙다는 인사가 흘러나오리라 생각한 단원들이 지레 쑥스러워하며 히죽히죽 웃었다. 하지만 유더의 입에서 나온 말은 그들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휴가 동안 생각해 보았는데, 오늘부터는 훈련 종류와 강도를 조금 바꿀까 싶다. 단장님의 허가는 이미 받았어. 새로운 계획표는 여기 있으니 지금 붙일게.”

단복 안에서 잘 접은 종이를 꺼낸 유더가 망설임 없이 그것을 펼쳐 기존의 계획표가 붙어 있었던 벽 위에 새로 붙였다. 새로운 훈련계획표는 그렇지 않아도 빈 공간이 거의 없다시피 했던 이전의 다섯 배쯤은 빽빽했으며, 이전에는 해 본 적 없었던 새로운 훈련도 몇 개나 추가된 상태였다.

그것을 읽은 단원들의 얼굴에서 일제히 핏기가 빠져나갔다.

“아니… 유더! 오늘이 휴가 끝난 첫날이라는 거 잊었어?”

“이게 뭐야. 춤 연습…시간을 따로 빼 준 건 고마운데 마법 및 마도구 대응 훈련? 마정석 폭탄 해체법? 이런 건 대체 왜 훈련하는 건데!”

“이번에 사라인 대삼림에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그 훈련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지 않아도 느꼈겠지.”

담담한 대답에 몇몇 이들이 소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할 적의 무기를 한정 지어 훈련하면 안 돼. 이 훈련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먼저 이겨 봐. 이길 수 있다면 인정하고 빼 줄 테니까.”

“그게 가능할 리가 없잖아!”

억울한 원성들이 훈련장을 가득 메웠다. 유더는 희미하게 입술 끝을 올리며 그들을 스쳐 지나갔다.

***

“단원들은 모두 납득한 것 같나?”

“예. 칸나의 도움이 컸습니다.”

“잘되었군.”

단장실로 들어선 유더는 오랜만에 보는 단장복 차림의 키시아르와 마주했다. 그의 곁에는 휴가를 끝내고 돌아온 나단 주커만도 함께 있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우리의 일정을 시작해 보아야겠지. 각오는 되었나?”

“…….”

“나단. 바이올린을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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