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2화
“좋은 소식이군요. 마병단을 위한 자리에 다들 참으로 많은 관심을 보내 주는 듯하여 단장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기쁩니다.”
키시아르가 밝게 웃었다. 그 얼굴만 보면 카치안 황태자의 파티 참석 소식이 진심으로 기쁜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자리의 모든 이가 알고 있었다.
“폐하의 말씀대로 이 휴가가 끝나기 전에 저도 파티 참석 준비를 끝내 둘 생각이었으니, 오늘 들려주신 말씀은 잘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하지.”
“내일은 4벽의 칼 로르윅 거리를 간만에 찾게 되겠군요.”
참으로 깔끔한 마무리였다. 만족스러운 대답을 들은 황제는 부드럽게 저민 야채와 버섯, 쌀을 불려 끓인 요리를 몇 술 더 떴다. 이번에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여태 얌전히 이야기만 듣고 있었던 유더 쪽이었다.
“그래… 이번에 열릴 파티의 진짜 주인공은 아일 경과 같은 이들인데, 재미없는 이야기부터 해 버렸군.”
“아닙니다.”
“이번에 아일 경이 서부에서 활약한 이야기는 모두 인상 깊게 들었다. 흔치 않게도 여러 속성 능력을 한 번에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다 들었는데, 정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대단하군. 처음부터 그랬나?”
유더는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마병단에 들어올 때는 두 가지 속성만 쓸 수 있고, 검에만 실을 수 있다며 거짓말을 했었으니 아니라고 답해야 하는데 곁에 앉아 있는 키시아르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여기서 그가 무슨 말을 한다 해도 키시아르가 아무 첨언도 더하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그렇기에 오히려 더욱 신경이 쓰이는 법이었다.
“힘을 지금과 같이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건 마병단에 들어온 이후부터입니다.”
결국 그는 완전한 사실도, 거짓도 아닌 답을 했다.
“그렇군. 이번에 서부에서 임무를 진행하는 내내 어렵지는 않았나? 그때 크게 다쳤다고 들어 걱정했었는데.”
“염려해 주신 덕분에 지금은 깨끗이 회복되었습니다.”
황제는 유더가 거대한 페투아멧을 어떻게 홀로 상대했는지를 좀 더 자세히 듣고 싶어 했다. 유더는 최대한 자신만의 업적으로 느껴지지 않게끔 다른 마병단원들과 당시 도움을 주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포함하여 대답했다.
다만 여기서는 방금 작용하지 않았던 변수가 끼어들었다. 바로 키시아르였다.
“방금 그 부분은 첨언을 조금 하고 싶군. 그 거대한 몬스터를 잡기 위해 향하는 길을 다른 이들이 도운 것은 사실이나, 그 의견을 맨 처음 낸 이도 어차피 제 보좌였습니다.”
“그랬군.”
“……하지만 다른 분들이 허황되다 생각하지 않고 협조해 주신 덕에 할 수 있었으니 그것을 제외하고 생각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 이후에 그들이 작은 몬스터들을 실험용으로 빼돌리려 시도했다는 것도 제외하고 생각하기 어려운 점이고 말이야.”
“아. 그건 보고로 이미 접했던 부분이군.”
황제가 기억이 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키시아르가 화사하게 웃었다. 유더가 말없이 그를 쳐다보자, 시선을 눈치챈 키시아르가 싱글거리며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아무 문제도 없다 여기는 게 분명한 얼굴이었다.
‘도무지 그때에 관해서 뭔 이야기를 할 수가 없군.’
말을 하나 할 때마다 첨언으로 서부 마법사 연합의 실책이 줄줄이 끌려 나오고, 유더가 당시 어떤 상처를 어디에 어떻게 입었었는지까지 모조리 밝혀졌다. 심지어 유더가 몬스터를 처리하는 과정을 직접 보지 않았었는데도 ‘이건 그저 전해 들었을 뿐이지만’ 하며 덧붙인 묘사가 얼마나 상세하던지 거의 영웅 소설의 한 장면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키시아르가 그때 일어난 일에 유감이 상당하다는 사실은 충분히 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그건 안다고 하기 무엇한 수준이었던 듯했다.
아무래도 이대로 가다가는 케일루사 황제에게 유더 아일이 혼자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일을 다 해내고 혼자서만 모든 부상을 다 당했다고 박힐 듯했으므로 그는 서둘러 키시아르에게 한마디를 했다.
“단장님께서 저를 지나치게 좋게 보아주시는 건 감사합니다만, 폐하의 질문은 그때 어떻게 그 몬스터를 잡았는지에 대한 것이었으니 그에 대해서만 답변드리는 쪽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아 움직인 건 사실이니까요.”
“그래. 그 말이 틀리다고 한 적은 없어. 다만 시작과 끝을 낸 게 모두 내 보좌란 것만 확실하게 해 두고 싶었을 뿐이라네. 내 말에 거짓이 있었던가?”
“…….”
거짓의 유무가 문제가 아니라, 듣는 이에게 편향된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는 부분이 문제다. 유더는 저 혼자서만 잘난 듯 나설 생각은 결코 없었다. 이전 생의 어리고 물정 몰랐던 그라면 제가 한 만큼의 대접을 받아야만 한다 여겼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었다.
주목받는 자리는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모나게 튀어나온 돌은 깎일 때까지 얻어맞게 마련이며, 그러는 동안 진짜 중요한 것들은 정작 놓치는 일이 허다함을 평생을 바친 끝에 깨달았다.
유더는 부와 명예로 가득했던 이전 생보다 지금에 만족했다. 여기서 더 주목을 받아 그 만족을 깨트리는 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뻔뻔하게 웃는 얼굴에 대고 대체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망설이는 동안, 갑자기 곁에서 작게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돌린 곳에서는 케일루사 황제가 입가를 주먹으로 살짝 가린 채 웃고 있었다.
키시아르가 무슨 말을 해도 내내 피로하고 침착해 보이는 표정을 잃지 않던 그였기에, 유더는 조금 놀랐다.
“…아일 경을 만나기 전 보고만 보며 느꼈던 인상이 있었는데, 실제는 많이 다르군.”
“죄송합니다. 폐하가 계신 자리에서 목소리를 지나치게 높였습니다.”
“보좌가 미안할 것이 뭐가 있지? 끼어든 건 저이니 사과가 필요하다 하신다면 제가 하겠습니다. 물론 폐하께서는 필요 없다고 하시겠지만 말입니다.”
“그래, 필요 없다.”
황제의 빠른 대답에 키시아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유더를 향해 눈길을 보냈다. 웃음을 가라앉힌 황제가 동생을 향하여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아일 경은 보기 드물게 겸손한 이군. 대단한 일을 하고서도 전혀 앞에 나서기를 원치 않으니 말이야. 그러면서도 단장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를 꺼리지 않으니 대범하다는 평가 또한 함께 받아야 마땅할 것이라 생각한다.”
“황송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말씀을 듣기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방금 말씀드렸듯이, 이번 일은 저 혼자 해낸 일이 아니기에…….”
“그러나 경이 없었다면 그 몬스터가 이리 쉽게 잡히지는 않았겠지.”
황제가 유더의 말을 자르며 담담히 확언했다.
“짐은 몬스터를 빨리 잡을 수 있었던 연유가 적의 약함이나 하찮음 탓이라 생각지 않는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경의 판단과 능력이 그만큼 대단했기 때문이야. 스스로 해낸 일을 지나치게 깎아내리지 말도록.”
누가 키시아르의 혈육이 아니랄까 봐, 하는 말이 무섭도록 비슷했다.
“경의 말대로 그 일이 모든 이들이 힘을 합쳐 이룬 결과라는 말 또한 옳으나, 해낸 일에 대한 치하는 제대로 받는 쪽이 좋다. 짐은 이번에 내릴 상이 너무 적다고 생각할까 조금 걱정하였는데, 아무래도 그럴 필요는 없을 듯하군.”
“예?”
유더의 반문을 들은 케일루사 황제의 얼굴에 또다시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폐하. 식사를 마치셨다면 이제 후식을 올려도 될는지요?”
유더가 무어라 더 묻기 전, 시종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말을 올렸다. 방금 키시아르가 열심히 덧붙여 말해 댄 ‘유더 아일 경의 거대 몬스터 처리 일대기’를 아닌 척하면서도 아주 흥미롭게 귀 기울여 듣던 이였다. 케일루사 황제는 이전보다 확연히 기운이 솟은 목소리로 유더와 키시아르를 돌아보며 물었다.
“나는 이제 식사를 더 들지 않을 생각인데, 어떤가. 후식을 들이라 해도 되겠나? 음식은 입에… 잘 맞았나 보군. 다행히도.”
입에 잘 맞느냐고 물으려 했던 듯한 황제가, 막 자신 몫의 접시를 깔끔하게 비운 유더를 보고는 말을 바꾸었다.
“……예.”
“나도 방금 그 생선 요리가 괜찮았다고 생각하는 중이었지. 위에 뿌린 버터 소스의 끝맛이 부드럽고 살짝 달콤해서 말이야. 혹 더 먹고 싶다면 말하게.”
키시아르가 옆에서 끼어들어 물었다. 유더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그래? 그러면 내 몫으로 하나만 더 시켜야겠군. 폐하께는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들고 나서 후식을 들겠습니다.”
키시아르가 손을 들어 시종에게 요리를 추가로 더 가져다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요리는 곧 나왔으나, 그것을 먹은 건 키시아르가 아니었다.
그는 요리가 나오는 동안 시간이 지나 배가 찼다는 말을 하며 그 생선을 자신의 보좌에게 자연스레 넘겼다. 버터 소스와 레몬을 올려 고소한 향을 뿌리는 흰살 생선찜은 순식간에 유더의 몫이 되었다.
“…….”
황제가 또다시 바람 빠지는 소리를 흘렸다. 그러나 키시아르의 웃는 얼굴에는 변함이 없었다.
“키시아르.”
“예. 폐하.”
“정말로 네 새로운 보좌가 몹시 마음에 드는 모양이구나.”
“그럴 만한 사람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