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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463화 (463/805)

463화

완전히 겹쳐진 체온 속에서 깊은 안정감과 반쯤 살아 움직이는 쾌감의 여파가 적당히 기분 좋게 느껴졌다.

엎드려 관계하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지만, 이렇게 접촉한 채로 만지는 정도는 괜찮겠지. 손을 올려 등을 느리게 쓸어내리자 따뜻하게 달아오른 피부가 움찔 떨면서도 키시아르의 손길을 가만히 받아들였다.

잠시 후 유더는 제 쪽에서도 손을 들어 키시아르의 뺨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그래 왔던 것과 비슷한 태도였다. 첫 접촉은 무게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어색하기만 했지만, 차츰 대담해지기 시작하다가는 마침내 완전히 안정된 궤도에 올라 온전한 어떤 형태로 완성되는 움직임.

뺨에서 잇자국이 조금 난 귀 위로, 그리고 뒤이어 머리칼이 달라붙은 이마로. 그리고 다시 한번 뺨. 그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고 느끼면서, 키시아르는 불현듯 새삼스레 무언가를 깨달았다.

이전에 유더에게 비슷한 손길을 몇 번 받았을 때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었지만, 그 손길은 그가 유더의 등을 쓰다듬는 움직임과 아주 비슷하게 닮아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의미하는 건…….’

앞으로 살아가면서 유더 아일이 다른 무언가를 저 손으로 쓰다듬게 될 때마다 지금 이 순간과 키시아르의 모든 것이 보이지 않는 흔적이 되어 그 손길 속에 영원히 남게 된다는 뜻이다.

그 자리에 키시아르 자신이 있든, 없든 간에 결코 변하지 않을 그림자로서.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만큼 작고 보잘것없는 일이나 키시아르 라 오르에게 그 확신은 몹시 특별하게 다가왔다.

“왜 또 웃으십니까?”

소리를 내지 않고 웃었는데도 그 기색이 맞닿은 피부를 통해 전해졌는지 유더가 고개를 조금 틀어 물었다.

“좋아서. 아, 손은 멈추지 말아. 더 만져 줬으면 좋겠거든. 나도 계속 만질 테니 원하는 대로 만져도 좋네.”

“…그리 좋으십니까?”

“좋고말고. 뭔가를 자유롭게 만질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아나?”

밝게 대답했으나 그 이면은 조금 어둡다. 키시아르는 환영식 내내 두꺼운 장갑을 끼고 있던 그의 형님을, 그리고 그보다 두 배는 더 두꺼운 장갑을 끼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제 손을 잠시 떠올렸다.

제대로 제어되지 않는 힘은 예고 하나 없이 주변을 상처입히고, 마침내는 자기 자신조차 찢어발긴다. 주변의 가까운 이들도, 어린 시절부터 함께 뒹굴고 뛰었던 애마와 애견도, 무엇 하나 거기에서 피할 수 없었다.

힘이 무섭도록 빠르게 자라나 언제 위험해질지 모를 그와 같은 이를 위해 황궁의 여러 궁전에는 비밀스러운 격벽이 설치되어 있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충격과 피해 규모를 최소화시킬 수 있도록 온갖 보호 마법을 걸어 만들어진 가벽은 밖에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진짜 벽처럼만 보일 뿐이었다.

그런 벽이 그가 지냈던 궁 침실에는 총 3겹이나 존재했다.

늘 스스로를 의심하고 확신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모두를 돕는 길이다.

그것만이 언젠가는 고통 속에 스스로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 죽게 될 끔찍한 미래를 조금이라도 더 늦출 최선의 방법이다……. 이제는 쓸모없어진 지 오래이나 아직도 머릿속 구석에 늘 깊이 새겨져 사라지지 않는 경고들이 잠시 반짝이다가는, 유더의 눈을 본 순간 자취를 감추고 사라졌다.

키시아르는 능숙하게 상념을 감추고 미소를 지었다.

“음… 그래서, 몸은 괜찮나?”

“괜찮습니다.”

“아픈 곳도 없고?”

그 말에 유더가 아주 미묘한 얼굴로 슬쩍 아래를 향해 시선을 내렸다.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면 역시 넣을 때 벅차기는 했던 모양인데, 그래도 내포된 의미는 예상보다 훨씬 긍정에 가까워 보였다.

“그보다, 단장님은 괜찮으신 겁니까?…….”

“지금 만져 보면서 확인해 본 대로 나는 괜찮아.”

그 말에 키시아르의 뺨 부근을 만지던 손이 잠시 멈추었다. 그가 왜 굳이 다른 부위가 아니라 체온 확인이 용이한 부분들부터 매만지기 시작했는지 모를 만큼 눈치가 나쁜 건 아니었다.

“…열 외에, 아래쪽도 말입니다.”

“아래? 그곳은 그냥 원래 그렇다고 생각하게.”

유더의 상태를 확인하고 대화를 나누고 싶어 잠시 누웠지만, 키시아르의 것은 사정 이후에도 조금도 죽지 않은 상태였다. 강제로 누르지 않는 이상 이 상황에서 그것이 스스로 머리를 낮출 일은 없다고 보아도 좋았다.

뭐 어떤가.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키시아르는 고통이든, 괴로움이든 살아서 느낄 수 있는 것이라면 가능한 한 모두 기껍게 누리고 싶은 사내였다.

맞닿은 채 누워 있느라 그 열기를 내내 몸으로 느꼈을 유더는 키시아르의 태도가 조금 어이없는 듯했지만,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번 키시아르의 가슴에 뺨을 댄 이가 얼마간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

“심장 소리가 들립니다.”

“이런. 내가 지금 얼마나 설레는 중인지 다 듣고 있었겠군.”

“…예. 이렇게 크게 뛰는 줄, 몰랐습니다.”

희미한 중얼거림 속에 담긴 색채는 여태까지와 조금 달랐다. 꿈처럼 어렴풋하고 기이하게도 쓸쓸한 목소리였다.

키시아르는 유더의 머리칼 사이로 손가락을 넣어 쓸어내리며 속삭였다.

“그래. 하지만 아까는 더했어. 세상에 그런 걸 느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 너도 그랬을까?”

자신도 모르게 유더와 동시에 흘렀던 눈물도. 의미 없이 여겨졌던 육신 곳곳에 새로운 숨이 불어넣어지는 듯했던 놀라운 감각도, 마치 모든 게 이 순간을 위하여 존재했던 듯 느껴졌던 기이함도.

세상에 아무것도 없이 모든 게 사라지고 오직 두 사람만이 남은 듯했던 그 감각도.

결합되었던 순간 느꼈던 모든 건 분명 키시아르 홀로 느낀 것이 아니었다.

유더는 대답하지 않았으나,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이 아니었기에 괜찮았다.

어떤 건 때로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법이다.

그건 아마도 여태껏 그와 유더의 사이에 존재했던 가느다란 실과 같은 ‘연결’의 일환이었을 것이다.

그 외에는 설명 가능한 답이 없었다.

그 정체를 조금 더 깊이 생각하기 전에 유더가 몸을 일으켰다. 먼저 목을 감고 깊이 입을 맞춘 사내가 열기가 오른 눈으로 키시아르의 다리 사이에 앉았다. 어느새 유더의 것도 다시 반쯤 기운을 되찾은 상태였다.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제 얼굴보다 큰 키시아르의 것을 한 손으로 빠듯하게 그러쥔 유더가 그것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역시 저는 단장님께서 그렇게까지 염려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무엇을?”

“제가 아는 한 2성 발현자들 사이의 관계는 발정기가 겹치는 일만 피한다면 그리 위험하지 않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건 확실합니다. 그리고 저는…….”

키시아르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섬광과도 같은 그 눈이 이야기했다.

“단장님의 모든 것을 원해 여기에 왔습니다.”

아. 그 대담한 선언이라니.

키시아르의 얼굴에서 순간 웃음이 사라졌다.

약간의 휴식 시간을 더 가지려 했던 계획은 그 순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키시아르는 묘하게도 목 안쪽이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그를 끌어안았다. 다시 한번 겹친 두 몸뚱이가 이전과는 반대쪽 방향으로 뒹굴었다.

키시아르는 손가락을 세워 제 육신을 욕심껏 어루만지는 손길을 느끼며 눈을 내리깔고 신음했다. 초조하게 이를 악문 유더가 그의 것을 붙잡아 제게로 안내했다.

“흣- 아…….”

삽입은 이전보다 조금 더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삶의 흔적과 오랜 훈련으로 자연스레 올라붙은 탄력 있는 근육이 꿈틀거리며 상대를 향해 달라붙었다. 직전의 결합에서 느꼈던 환희 대신 조금이라도 더 닿고 싶다는 간절한 열망이 그 자리를 더 많이 차지했다.

흘러나온 신음이 쾌감을 여과 없이 드러낼 때마다, 그 솔직함에 반응하듯이 다른 한쪽의 쾌감도 더욱 높아지기를 끝없이 반복했다.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키시아르는 흰 파도처럼 겹쳐져 움직이는 몸이 마치 함께 춤을 추는 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후면 정말로 너와 춤을 출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런 말을 하고 싶었지만, 거칠게 깨물며 달라붙는 입술의 열기가 생각을 재차 모두 쓸어가 버렸다. 키시아르가 조금이라도 다른 생각을 하려 할 때마다 유더는 귀신처럼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그의 얼굴에 손을 대어 끌어당겼다. 똑바로 응시하는 눈동자 앞에서는 아무것도 감출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높은 파도가 치솟아 몸속을 모두 할퀴고 뒤덮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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