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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461화 (461/805)

461화

스스로는 모르는 듯하나 유더는 때때로 그런 표정을 짓는다.

보통 사람이라면 기분이 고양되어 한껏 감정을 뜨겁게 드러낼 만한 순간일 때, 그는 평소의 고요함에서 벗어나 드문 부드러움과 미약한 고통을 함께 내보이고는 했다.

처음에는 분명 그러지 않았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점차 모습을 드러내더니 지금에 이르러서는 심증이 아닌 눈으로도 보일 만큼 확연해진 그 감정.

그건 아마도 하루 이틀 사이에 갑자기 생겨난 존재가 아니었다. 아마 그럴 거라고 키시아르는 생각했다. 그것은 갓 생겨 감추지 못하고 서툴게 피를 흘리는 날카로운 상처가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자연스럽게 마모되면서 무디어진 흉터에 더 가까웠다.

그의 보좌는 평소에도 스무 살이라는 나이로는 느껴지지 않을 만큼 노련하고 어른스러웠으나, 그 표정을 지을 때는 그런 느낌이 한층 더했다.

문제는 키시아르의 앞에서만 그 특유의 표정을 드러내는 건 아니라는 점이었다.

친밀하기 그지없는 동료들의 앞에서도, 사망자 한 명 없이 무사히 끝마친 임무의 끝자락에서도 그 표정은 짐작할 수 없는 순간 아주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가 눈 깜짝할 사이 신기루처럼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기쁘면 기쁠수록 괴로운 것처럼.

달콤하면 달콤할수록 오히려 쓰게 느껴지는 시럽처럼.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가 드러내는 상반된 감정의 원인을 짐작할 수 없었으나, 키시아르는 그것을 눈치챘다는 사실을 입에 올리거나 묻지 않았다.

대신 상대는 알지 못할 위로를, 그리고 애틋한 고통을 담아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을 뿐이었다.

“음, 하……아.”

키시아르의 입술을 망설임 없이 받아들인 유더가 눈을 감고 목을 끌어안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얼굴 속에 방금 느껴졌던 씁쓸함은 사라지고 없었다.

키시아르는 마지막 남은 향유를 다시 한번 손바닥에 받은 뒤 자신의 것을 듬뿍 적셨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양이었으나, 어쩌면 이 정도로도 부족할 수도 있었다.

열기가 가시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는 유더의 시선 속에 공포나 긴장감은 아직 없었지만, 이후에는 또 모르는 일이다. 조금이라도 쉽게 다음으로 넘어가려면……. 키시아르는 머리를 아슬아슬하게 잠식할 듯한 열기를 밀어내기 위해 깊이 숨을 내쉬었다. 땀방울이 턱을 타고 뚝 떨어지는 감각이 둔하게 느껴졌다.

“……자세를, 한번 바꾸어 볼까.”

“어떻게 말입니까.”

키시아르는 유더가 돌아눕는 쪽이 부담이 훨씬 덜할 것이라 설명했다. 그러나 유더는 뜻밖에도 단숨에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엎드리는 건 싫습니다.”

덜 아프기 위한 고민 따위는 그에게 조금도 중요하지 않은 듯 보였다. 키시아르가 무어라 더 말하려 했을 때, 유더가 몸을 끌어안고 다리를 감았다.

“이대로가, 좋습니다. 그냥, 빨리…….”

입술을 꽉 깨문 채 말을 삼킨 이의 열기 오른 눈가를 본 순간 정신이 아찔할 만큼 강렬한 향이 느껴졌다.

키시아르의 모든 것을 붙잡아 끌어당기는, 유더 아일다운 향이었다.

그 부름 앞에서 더 이상은 아무것도 고민할 수 없었다.

“아…….”

침몰은 빠르고도 느리게 이루어졌다.

삽입하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서 제대로 된 소리가 되어 나온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엄청난 폭풍우 한가운데 선 듯이 귓가가 윙윙거렸다. 눈앞이 열로 이지러지는 동안 머리는 어떻게든 스스로를 붙잡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 뜨겁고도 강렬한 파도 속에서 키시아르를 건져낸 건 이번에도 유더의 손이었다.

키시아르의 목을 끌어안았다가 긁어내리며 미끄러져 마침내 손가락 사이로 파고든 그 단단한 손가락의 감촉을 느낀 순간, 키시아르는 제가 어떤 순간의 한가운데 있는지를 아주 명확하고도 선명하게 깨달았다.

그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와 유더의 사이에 있었던 무언가가 정신없이 뒤흔들리며 거꾸러져 먼지를 날리며 사라져 갔다.

그렇게 차례차례 시간도, 공간도, 모두 의미를 잃고 검게 변한 자리에 오직 두 사람만이 남았다.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기분으로 제 손가락에 파고든 유더의 손가락을 꽉 쥐자 그가 감았던 눈을 떴다. 여태까지는 생리적인 열로 인해 조금 젖어 있었을 뿐인 검은 속눈썹 사이로, 문득 처음 보는 빛이 잘게 반짝였다.

그게 무엇인지 깨닫기도 전에, 유더가 꽉 엉켜 있던 손을 풀어 키시아르의 뺨을 향해 천천히 올렸다. 그가 훔쳐낸 건 흐르는 줄도 몰랐던 물방울이었다.

키시아르는 그의 손끝을 적신 투명한 물기를 멍하니 바라보다 자신도 손을 뻗어 유더의 얼굴을 매만졌다. 눈가를 타고 소리 없이 흘러내린 빛이 그의 손도 같은 색으로 적셨다.

이유조차 모른 채 가슴 안쪽 어딘가에서 거대한 풍랑 같은 고통과 숨이 막힐 듯 애틋한 기쁨이 동시에 치솟았다. 키시아르는 그 감정을 정확히 눈앞의 상대 또한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아무런 말 없이도 확신할 수 있었다.

육신보다 더 깊은 그 어딘가에서부터.

“…맙소사.”

어떻게 이런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렇게나 거대하고. 이렇게나 고통스럽고, 이렇게나 완벽한.

너와 같은 이가 나와 함께 존재할 수 있었을까?

키시아르는 등을 구부려 유더의 위에 몸을 완전히 겹쳤다. 조금의 틈도 없이 맞닿은 이마와 코끝, 입술, 손가락까지 모든 걸 전신으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했다.

실제로는 짧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르겠으나 느끼기로는 마치 영원과도 같았던 기적의 순간이 그렇게 완전히 겹쳐진 채 입을 맞추는 동안 서서히 반쯤 현실로 되돌아왔다. 키시아르의 내부에서 끝을 모르고 끓어오르던 열 또한 온전한 자리를 찾은 듯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결합은 아직 다 끝나지 않았지만, 상대의 몸 전체를 무자비하게 꿰뚫을 셈이 아니라면 그쯤에서 멈추고 천천히 움직이는 쪽이 두 사람 모두에게 현명할 터였다.

본능에 따라 내린 결론이 빠르게 마무리되고, 키시아르는 쪼는 듯한 입맞춤과 함께 유더의 손을 짚은 채로 천천히 허리를 뒤로 물렸다.

“흐으…….”

끝도 없이 질질 끌려 나가는 감각에 유더가 이를 악물며 몸을 떨었다. 그가 키시아르의 몸에 휘감은 다리에 힘을 줌과 동시에 키시아르는 다시 한번 안을 향하여 다시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그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중임을 느낄 수 있는 내부가 뜨겁고 부드러운 늪처럼 침몰한 이를 감싸 안았다.

“……하아.”

유더가 숨 막히는 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뒤이어 다시 한번 더 빠져나가고, 빠르게 파고들기를 몇 번 반복하는 동안 점막과 점막이 스치는 젖은 소리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그건 키시아르 혼자서 움직이는 것만으로 날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키시아르는 제 모든 반응을 조금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두 눈을 똑바로 뜬 채 올려다보는 유더의 얼굴을 보며 작게 웃음을 흘렸다.

이전에도 그랬었지만 그는 이런 순간마다 유난히도 키시아르의 얼굴을 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굴었다. 어쩌면 돌아서 일을 치르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던 이유 또한 그 연장선에 걸쳐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확신에 가까운 의심이 들 정도로 말이다.

유더 아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를 마주했을 때 종종 공포를 느낀다고들 말해 온다. 어떤 말이나 힘으로도 대적할 수 없는 거대하고 무자비한 심연을 마주했을 때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그 이외에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그의 눈을 잘 들여다보면, 그 안에 있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도 곧고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상처 하나 없이 매끈하지는 않아도, 그렇기에 더욱 매력적으로 사람을 홀리는 심연이었다…….

아프면 말해 달라고 당부했으나 그럴 필요는 없었다. 끝까지 다 받아들이지 못했음에도 유더에게서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생생히 살아 숨 쉬며 키시아르의 피부에 이를 세우고, 마음껏 몸을 움직이며 제가 지금 이 순간에 충분히 몰두하고 있다는 사실을 표현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키시아르는 유더 아일이 이토록 몰두하고 있는 상대가 바로 자신이라는 사실에 믿을 수 없는 기쁨을 느끼며 그의 몸에 함께 입을 맞추고 빨아들이기를 반복했다.

제게 입술이 있다는 사실에 이토록 감사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입술뿐만 아니라 손이, 발이, 그리고 영 번거롭게만 여겼던 성기가 존재했다는 사실까지도, 온전히 그 모든 것에 감사했다.

목숨이 끊기지 않고 이날 이때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기적 같은 고마움으로 여겨졌다.

그는 맞대고 있던 몸을 일으켜 유더의 한쪽 발목을 붙잡아 올렸다. 움직이는 각도가 바뀌자 유더가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젖혔다. 무엇을 할 셈이냐는 듯 바라보는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발목 안쪽에 입을 맞추자 어두운 눈동자 사이에서 불꽃이 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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