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0화
누군가가 저를 향하여 내보이는 성적 욕구를 감지하는 건 여태까지 키시아르에게 있어 그 횟수를 따로 세기 힘들 만큼 흔한 일이었다. 많은 귀족들은 곧 사라질 황가의 멍청하고 방탕한 후손을 우습게 여기거나 꺼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 먹지 않으면 곧 썩어 사라질 아까운 과일을 보듯 대하고는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세상에 그런 질척질척한 욕망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며, 그런 것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음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는 것과 직접 느끼는 건 전혀 다른 법이다.
때문에 지금 자신을 향하고 있는 선연하고 순수한 욕망의 불길 앞에서 그가 전율한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흐으…….”
이를 세워 가볍게 베어 문 가슴의 감각을 이기지 못하고 거친 숨을 흘린 유더가 내리깔았던 눈을 떴다. 눈가에 열이 올라 마치 눈물을 흘린 사람처럼 불그스름한데도 처연함 대신 활활 타는 불을 눈앞에 둔 듯 느껴지는 게 너무나도 그다워 웃음이 나왔다.
사나운 눈빛이 마치 화난 사람 같아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무나 격렬한 감정 때문에 오히려 부드러움을 내보일 여유를 잃었기 때문이다. 키시아르는 그 안에서 저를 향한 아무런 찌꺼기 없는 욕망만을 느꼈다.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의 전부를 원한다는 건, 그리고 상대 또한 똑같은 마음을 내보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신기하고 사랑스러운 일인가?
키시아르의 품 안에 스스로 뛰어 들어온 청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용감했다. 그는 그간의 모든 침묵과 장벽을 걷어낸 듯이 키시아르를 솔직하게 만졌고, 제 몸 안에서 치솟는 감각을 억누르지 않았다.
그것이 기뻤던 바람에 본래 생각했던 바보다 훨씬 더 오래 전희에 탐닉하고 말았지만 유더는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때때로 당혹한 듯 미간을 찌푸리거나 멈칫하며 손을 휘젓는 반응이 잠시 돌아오기는 했어도, 그다음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키시아르를 끌어안고 똑같이 돌려주고는 했다.
그 과정이 마치 유더 아일과 키시아르 라 오르가 겪어 온 관계 그 자체처럼 느껴졌다.
키시아르의 모든 것을 가져간 이 사내는 때때로 어떤 부분에 서투르게 반응했다. 다른 서툰 이들과 그가 조금 달랐던 건, 다른 이들이 정말 몰라서 서투르게 반응한다면 유더는 오히려 그 반대로 ‘알고는 있으나’ 서투른 쪽에 더 가까워 보였다는 점이었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무엇일지, 몸과 몸의 결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처음부터 아는 듯 보였는데도 얼굴을 마주하고 벌이는 진득한 전희 앞에서는 당혹과 망설임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이 정확히 그런 감상과 일치했다.
가슴 끝에 처음 입을 맞추고 빨아들였을 때, 그리고 그 아래로 내려가 늘씬한 배와 배꼽을 핥았을 때는 특히나 반응이 지나치게 강렬했던 나머지 싫은 줄 알고 잠시 물리려 했을 정도였다.
몸을 조금 물리자마자 무어라 말할 틈도 없이 그가 팔다리로 강하게 휘감아 오지 않았더라면 아마 정말 잠시 중단하는 사태가 일어났을지도 몰랐다.
이전부터 짐작은 했지만, 유더 아일은 감각이 몹시 예민했다. 눈을 못 쓸 때도 다른 감각을 활용해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었던 사람이니 촉감까지 예민한 건 당연할지도 모르겠지만, 성적인 의도 없이 매만진 곳까지도 숨을 토하며 입술을 부딪쳐 오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머릿속에서 아무런 생각도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창백하고 무감정해 보이는 얼굴 속에 이토록 섬세하고 강렬한 감각의 폭포가 잠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현재까지는 자신뿐이라는 사실이, 안타까우면서도 사랑스러웠다.
키시아르가 유더의 가슴이 젖어 심을 세울 때까지 핥는 동안, 유더 또한 처음에는 망설이면서, 그리고 점차 대담하게 그의 가슴에 이를 세웠다. 곧고 뼈가 도드라진 손목을 핥으면 그도 키시아르의 팔뚝을 손으로 쓸어내었고, 배에 입을 맞추면 그도 키시아르의 배에 입술을 묻었다.
등을 제외하고는 그야말로 신체의 모든 부위를 서로 거의 비슷하게 애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키시아르가 먼저 무언가를 보여 주면 그것을 감내하는 선에서 끝내지 않고 마침내 제 쪽에서도 똑같이, 혹은 그보다 더 대담하게 돌려주는 모습을 보며 키시아르는 열에 취해 살짝 몽롱해진 기분 속에서 웃었다.
지금 몸을 섞고 있는 이가 유더 아일이란 걸 이보다 더 확실하게 느낄 순간이 또 있을까. 믿을 수 없을 만큼 제가 살아 있다는 실감이 느껴졌다. 유더가 내뱉는 숨결 하나, 참아 내며 흘리는 소리 하나도 새롭고 아름다웠다. 그가 내보이는 음란함은 마치 태초에 자연스레 존재했을 자연을 연상케 했다.
그 앞에서 키시아르는 그저 그것을 경배하는 작은 인간이 되었을 뿐이었다.
서로 몸을 얽은 채 쉼 없이 움직이는 두 마리의 자유로운 짐승처럼, 오랫동안 서로를 향한 열망을 채운 뒤 키시아르는 잠시 머리를 일으켰다.
“하아…….”
흐트러져 방해가 되는 앞머리칼을 쓸어올리며 내려다보자 상기된 얼굴로 연신 거세게 호흡하면서도 그를 놓치지 않고 꿰뚫어 보고 있는 상대가 보였다.
벌써 한 번씩 사정하여 피부와 시트 일부가 젖었음에도 욕망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 눈을 통해 새삼 선명하게 깨달았다.
안온한 안식을 주는 어둠처럼 새카맣고, 오직 키시아르 라 오르 이외에는 무엇도 비추지 않는 그 눈.
키시아르가 입술 끝을 올려 가만히 웃자, 유더가 눈가를 움찔 떨며 젖은 입술을 벌렸다. 키시아르가 유더에게 홀려 있듯, 그 또한 키시아르의 미소 앞에 지극히 연약했다.
키시아르는 침대 곁에 둔 향유로 손을 적셨다. 손의 열기로 빠르게 따뜻해진 손으로 제 것을 문지르자, 이미 아플 만큼 서 있던 것이 더욱 딱딱하게 머리를 들었다.
너무 커진 것 같은데 한 번 더 뺀 다음 시도하는 게 나을까. 그런 고민이 짧게 스쳐 지나간 순간, 마치 그것을 읽은 듯 유더가 그의 손을 잡아당겼다. 닿은 곳은 마찬가지로 훌륭하게 서 있는 그의 다리 사이였다.
“…….”
손과 다리 사이가 맞닿은 순간, 마른 몸이 흠칫 떨었다. 침묵 속에서 앓는 듯한 호흡이 가쁘게 반복했으나 유더는 키시아르의 손을 쥔 손을 놓지 않았다.
침묵 속에서, 유더 아일이 입을 열어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 명을 내렸다.
‘계속.’
멈추지 말고.
더.
그 말이 끝나기 전에 손가락 끝이 빨려 들어가듯 다리 사이로 사라졌다. 키시아르는 제 몸의 일부가 상대의 몸 안과 겹치는 감각을 느끼며 눈을 내리깔았다. 속눈썹이 떨리며 주인이 느끼는 어마어마한 열기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으읏…….”
“아픈가?”
“아뇨……. 아프지 않습니다. 그냥…….”
뒷말은 더 이어지지 않고 생략되었지만 어쩐지 뜻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키시아르는 배에 힘을 주며 숨을 내쉰 뒤 기름에 젖은 손으로 내부를 부드럽게 훑어 더듬었다. 그는 자신이 평범한 이들보다 훨씬 크고 긴 손을 지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고작 손가락 하나라 해도 상대가 느끼는 감각은 상상 그 이상일 터였다. 특히나 유더 아일처럼 감각이 예민한 이라면 더.
손가락 끝이 내부의 어딘가를 빙글 도는 동안 유더가 눈을 감으며 숨을 토했다.
“하아…….”
키시아르는 그가 손가락 하나의 이물감에 적응할 때까지 천천히 내부를 길들였다. 세운 무릎이 경직되어 있다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할 때쯤, 두 번째 손가락을 넣었다.
“흣…….”
하나에 익숙해졌다 해도 둘은 또 다른 문제다. 그러나 유더는 눈썹만 한 번 안타깝게 찌푸렸을 뿐, 입술을 깨문 채로 잘 견뎌 냈다. 맞붙은 손가락 두 개가 약간의 틈을 벌리며 이전보다 조금 더 빠르고 농밀하게 안을 더듬고 찔렀다 빠져나오기를 반복했다.
미끌미끌하게 젖은 다리 사이에서 질척이는 소리가 조금씩 들렸다. 그 소리를 들은 듯 유더가 눈을 뜨고 제 다리 사이를 내려다보았다. 작게 헐떡이며 벌어진 입술 안의 혀가 무언가를 원하는 듯 보여서, 키시아르는 몸을 내려 다시 한번 그와 입을 맞추었다.
“으음……. 읏…… 흐, 으.”
입을 맞추기 시작하면서부터 유더의 몸은 이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졌다. 힘이 풀리는 속도가 빨라지니 손가락 또한 전보다 대담하게 내부를 넓힐 수 있었다.
키시아르는 의도적으로 유더의 입술 안을 파고든 혀의 움직임과 손가락의 움직임을 비슷하게 조절했다. 처음에는 위와 아래의 감각이 각각 다르게 느껴지더라도, 이렇게 하면 점차 두 감각에 동일성이 생기기 시작하며 부담이 한결 줄어든다.
고통과 쾌락은 결국 인지하기 나름이었다. 키시아르는 그가 세상 그 무엇보다 원하는 이에게 조금이라도 아픔을 주고 싶지는 않았다.
혀가 파고들 때마다 손가락 또한 아래로 파고들고, 빨아들이며 빠져나올 때는 손가락 또한 부드럽게 빠져나왔다. 그러기를 반복하는 동안 유더의 눈 속에 깃들었던 긴장감은 차차 거의 사라졌다. 놀이라도 하듯 서로 빼앗고 빼앗기기를 반복하는 혀의 움직임이 예민한 곳을 스칠 때마다 아래가 동시에 움찔거리며 키시아르를 기쁘게 했다.
이어서 손가락이 셋 들어갔을 때도 내부는 잠시 멈칫하며 침입자를 꾹 조여 확인했을 뿐, 크게 밀어내거나 굳어지지는 않았다.
그의 2성이 오메가라고는 해도, 기본적으로는 남성의 몸을 지니고 있기에 내부 삽입은 엄청나게 힘들 것이다. 혹시 모르니 기분이 나쁘면 바로 말해 주어야 한다고 나지막이 속삭이자, 유더가 드물게도 미소를 흘렸다. 기분이 좋은 듯도, 괴로운 듯도 한 특유의 표정 사이로 한숨이 흘렀다.
“……저는,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