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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448화 (448/805)

448화

모든 것이 아주 익숙하다 여겼음에도 하나하나 새롭지 않은 것이 없는 행위였다.

수도 없이 키시아르와 몸을 섞었어도 이렇게 스스로 원하여 손을 내밀어 본 적은 없었다. 누군가 들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염려하지 않고 마음껏 소리를 흘린 것도 처음이었다.

아무것도 부끄럽지 않았고, 무엇 하나 놓치고 싶지 않았다.

깊은 충족감과 집중 상태에 빠져든 유더의 얼굴은 오히려 감정이 사라진 듯 보일 만큼 무표정해졌다. 벌린 입술 사이로 뜨겁게 흘러나오는 숨과 그늘진 눈가를 평소보다 짙게 물들인 핏기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그가 품은 열기의 정도를 알지 못했을 터였다.

그러나 그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상태인 키시아르는 제 앞에 있는 이가 느끼는 격렬한 감정을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었다. 늘 스스로를 제어하던 무언가를 한 겹 벗어던진 듯 거침없이 움직이며 이를 악문 유더의 눈빛은 마치 얼음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처럼 보였다.

늘 비밀스럽고 고요한 이가 내비친 그 거침없고 순수한 열망이 사람을 얼마나 숨 막히도록 끌어당기는지, 또 얼마나 안타깝고 경탄스러우며 황홀한지 아마 자기 자신은 모를 터였다.

본능과 이성이 아슬아슬하게 깜박이고 쉴 새 없이 교차했다. 그 순간만큼은 두 사람 모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읏, 하아, 하…….”

그리고 마침내 머릿속이 희게 변하는 절정이 찾아왔다.

유더는 해일과 같은 쾌감에 몸을 떨며 키시아르와 다시 한번 입술을 겹쳤다. 제대로 맞물리지 못하고 엇나가며 부딪치고 미끄러지는 작은 감각마저도 미칠 것 같은 기분을 선사했다.

몇 초나 그런 엄청난 감각을 견뎌 냈을까. 겨우 이성이 조금 돌아오고 다시 생각을 할 만한 여유가 생겨났다.

“……하아.”

제일 먼저 느낀 건 두 손을 적시며 흘러내린 뜨거운 액체였다. 대부분은 키시아르의 손바닥 안에 고였지만 일부는 두 사람의 몸과 옷자락까지 튀었다.

몸 위를 완전히 뒤덮은 키시아르 때문에 유더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좁고 단단하며 안온한 동굴에 갇힌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는 단추를 대부분 잃고 잔뜩 구겨져 벌어진 제 옷자락 사이로 드러난 배와 그 위로 흘러내리는 흰 액체를 내려다보다가, 눈을 들어 키시아르의 몸을 훑었다.

여유 없이 벗겨내고 쥐어뜯은 탓에 차림새가 엉망이 된 건 사실 그쪽이 유더보다 훨씬 더 심했다. 차라리 전부 깨끗하게 벗는 쪽이 지금보다는 덜 난잡하게 보였으리라 생각될 정도였다.

숨을 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 바쁘게 움직이는 가슴 위, 어깨와 쇄골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붉은 자욱이 시선을 끌었다. 유더가 그를 다급히 어루만졌을 때 스치며 난 손자국이었다. 땀과 열기에 젖어 든 흰 피부를 물들인 그 자국은 아주 적은 면적이었음에도 놀랄 만큼 음란한 무언가처럼 보였다.

그건 잔뜩 흐트러진 금빛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둥글게 등을 굽힌 채 유더의 이마에 제 이마를 대고 있던 사내가 유더의 젖은 아랫입술을 아프지 않게 살며시 깨물며 빨아들이다가는 놓아주었다. 몇 번이고 입에, 턱에, 목에, 그리고 젖은 손을 우아하게 끌어당겨 그 끝에도 스스럼없이 키스하는 입술이 마치 뜨거운 낙인처럼 느껴졌다.

이전 생에서 찍혀 본 죄인의 낙인은 유더의 무엇 하나 뒤흔들지 못했으나, 키시아르가 그의 몸에 경건하고도 뜨거운 열기를 담아 선사한 낙인은 달랐다. 그것은 말 한마디 없이도 그저 닿는 것만으로 유더의 내부를 속절없이 뒤흔들었다. 닿는 곳마다 피부가 떨렸고, 곤두선 감각이 온통 그곳에만 쏠렸다. 아직 지속 중이던 쾌감의 여운에 사납게 취해 숨을 내쉬며, 유더는 그를 바라보았다. 키시아르 또한 그를 마주 바라보았다.

수많은 입맞춤을 퍼붓느라 터질 듯 붉어진 입술에서 도무지 눈을 뗄 수 없었다.

“…….”

자신처럼 키시아르 또한 한 번의 진화만으로는 내부에서 들끓는 불길을 다 끄지 못했다. 맞닿은 시선이, 머리를 몽롱하게 만들 만큼 짙어진 향이, 그리고 한 번 토정했음에도 여전히 단단한 아래의 열기가 그러한 사실을 유더에게 스스럼없이 알려 주었다.

키시아르가 어디까지 원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다음 순서가 무엇인지는 대충 알고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있을까? 자문해 본 결과 답은 아주 손쉽게 흘러나왔다.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발정기도 아니고, 그가 이 이상을 원하는지 아닌지도 아직 모르면서 스스로도 놀랄 만큼 확연한 마음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 행위와 관련한 두려움은 더 이상 없었다. 바라는 건 그저 키시아르 라 오르에게 더 깊이, 그리고 더 많이 닿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뿐이었다.

눈앞의 사내가 제게 준 모든 것에 저도 답하고 싶었다.

키시아르의 몰랐던 얼굴을 더 보고 싶었다…….

“단장…….”

그러한 결론을 전달하기 위해, 그가 막 키시아르의 가슴 위로 손을 올렸던 순간이었다.

부름을 모두 끝내기도 전, 갑자기 짙게 뒤엉켜 있던 향이 기이한 반응을 보였다. 유더의 향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짙어진다 싶더니, 갑자기 손이 닿은 부분에서부터 별안간 빛이 터져 나왔다.

‘무슨……?’

눈을 감았다 떠 보니 그 빛은 키시아르가 아니라 유더의 손에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손등을 뒤덮고 팔뚝까지 불룩거리며 뻗친 핏줄 속의 자줏빛 얼룩이 피부 너머로 비칠 만큼 환한 붉은빛을 뿌렸다. 유더는 정신없이 오르락내리락 핏줄의 궤적을 그리는 제 손에 닿은 키시아르의 가슴 너머로 얼핏 여러 개의 색을 띤 기운들을 보았다.

이전에 한 번 본 적이 있는 모습이었다.

깜짝 놀라 손을 떼자 손을 휘감았던 빛이 조금 사그라졌다. 키시아르의 가슴 너머로 비치던 기운들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눈을 조금 크게 뜬 채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키시아르가 작게 속삭였다.

“……방금 그건?”

유더는 아직까지 붉은 빛에 은은하게 감싸인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놀란 탓에 열기가 가라앉자 겨우 그들이 오늘 밤 본래 했어야 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 생각이 났다.

본래 하려던 일조차 상관없다 여길 만큼 잊은 채 누군가에게 몰두하다니. 아무리 어제부터 상황이 상황이었다지만 태어나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유더는 소리 없이 일어나 앉으며 키시아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 속에도 이미 이게 무슨 일인지 어느 정도는 추측한 기색이 보였다.

“…아무래도 제가, 단장님의 내부에 흐르는 힘을 다시 열어 보는 데 성공했던 모양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라도 성공하기는 했으니 다행이라 여겨야 하는가? 머리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마음은 다소 복잡해졌다. 그것 또한 낯선 기분이었다.

키시아르 또한 마찬가지인지 몸을 일으키며 작게 웃었다.

“…잘된 일이군. 아프거나 이상한 곳은 없고?”

유더는 고개를 끄덕였다. 길게 숨을 내쉰 키시아르가 입을 열었다.

“이 이상 욕심을 내는 건 아무래도 어렵겠군. 옷과 몸이 더러워졌으니 씻고 나서 다시 한번 아까 그걸 제대로 시도해 보지. 괜찮겠나?”

“……예.”

바닥을 딛고 선 사내가 무슨 생각인지 문득 유더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래도 조금 아쉬우니, 같이 씻을까. 여기서 지내는 동안 함께 욕실을 써 본 적은 없었으니까.”

장난스레 눈썹을 올리고 웃는 얼굴에서 아직 꺼지지 않은 열기가 어른거렸다. 비록 불의의 사건이 일어났다지만 그는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느낀 순간 유더 또한 비로소 놀라움을 완전히 가라앉힐 수 있었다.

“예.”

키시아르가 밝게 웃었다. 유더는 그의 손에 이끌려 처음으로 함께 욕실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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