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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447화 (447/805)

447화

과거로 돌아와 처음으로 키시아르와 입을 맞추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안 된다는 저항감과 망설임을 일시에 삼켜 버리던 뜨거운 열망. 스스로 문을 열고 맞이한 선택의 결과가 고작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얇은 피부 한 겹의 접촉일 뿐임을 알았음에도 유더 아일에게 그것은 세계가 뒤흔들리는 충격이었다.

육신 내부에 존재하는 무언가를 단 하나의 보호막도 없이 상대에게 내어주는 날카로운 감각이 어떠했는지, 제 것을 내준 만큼 상대의 것을 되돌려 받아 정신없이 마시던 순간의 충족감과 전율은 또 어땠었는지. 지금도 모든 것이 방금 일어났었던 것처럼 선명했다.

보이지 않는 뒤엉킴 속에 예상했던 혼란은 없었다. 인지할 수 있는 세계 속에서 오로지 그와 자신의 존재만이 확연한, 그 거대하고도 영원할 듯했던 순간을 아마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을 터였다.

이후 같은 행위를 반복할 때마다 익숙해지기는커녕 더욱 강해져만 가던 그 새빨간 열망은 지금 이 순간 거의 최고조에 달한 상태였다.

몸을 안아 올린 키시아르가 어디론가 향하는 움직임을 느끼면서도 그저 한 치의 틈도 없도록 끌어안은 채 키스에만 집중했다. 그러지 않고서는 도무지 제 안에서 폭풍우처럼 날뛰는 충동을 해소할 수 없었던 탓이었다. 능숙하지도, 부드럽지도 않은 그 감정의 격류를 키시아르는 완연히 받아들여 주었지만, 그것이 곧 여유를 뜻하지는 않았다.

입술과 혀가 얽힐 때마다 유더의 몸이 격렬하게 반응하는 만큼, 키시아르의 숨결과 눈빛 또한 정확히 같은 정도로 뒤흔들렸다. 서로의 모습을 놓치지 않기 위해 똑바로 뜬 두 쌍의 눈동자는 침대에 쓰러져 눕는 순간까지도 변함없이 동일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유더는 제 몸을 타고 흐르는 보이지 않는 기운을 느꼈다. 여태까지는 가끔 일시적으로 거리가 가까워졌을 때 코끝을 통하여 인지할 수 있었던 키시아르의 체향이 이전까지와는 다른 모습이 되어 제 존재감을 드러내는 중이었다.

향수와는 전혀 다른, 2성 각성자 특유의 향이 의지를 가진 기운처럼 짙어져 유더의 얼굴을, 키시아르를 감싼 팔과 다리를, 그리고 옷을 두르지 않은 그보다 더 깊은 곳까지 거침없이 파고들었다. 그건 마치 보이지 않는 물살 속에 머리끝까지 잠긴 채 전신을 내맡기는 것과 같았다.

키시아르의 향만 그러한 형태가 된 건 아니었다. 유더는 제게서 빠져나간 무언가가 키시아르의 것과 다를 바 없이 그에게 파고들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전 생과 이번 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느끼는 낯선 감각이지만 정체는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그것이 바로 유더가 2성 발현을 한 이후로 내내 지니고 있던 향이었다. 타인의 향과 달리 스스로가 지닌 향은 어지간해서는 인지하기 힘들기에 그 존재를 제대로 인식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평소에는 후각으로만 알 수 있기에 2성 각성자가 아닌 이들은 그게 그저 독특한 체향의 일종일 뿐이라 착각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느끼는 향은 그것과는 조금 달랐다. 특정 상황에서 한없이 짙어져 제대로 존재를 드러낸 향은 후각 이외의 감각을 통해서도 분명히 인지할 수 있었다.

“…느껴지나?”

입술을 잠시 뗀 키시아르가 유더의 목줄기를 코끝으로 깊이 훑어내리며 물었다.

“나를 사로잡아 세상의 끝까지 끌어들이는 것만 같은 기분이야.”

실로 정확한 표현이었다. 유더의 몸으로 파고든 키시아르의 향 또한 같은 기분을 선사하고 있었으니까.

어찌 보면 몬스터의 피가 든 독주를 마셨을 때와도 비슷한 감각이지만 기억에 남아 있는 그때의 기분보다 훨씬 뜨겁고 격렬한 무언가가 존재했다. 그저 닿아 있는 것만으로도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이상했다.

“저도, 그렇습니다.”

작게 흘러나온 대답을 들은 키시아르가 희게 웃었다. 유더는 또다시 그의 목에 입술을 묻은 사내를 끌어안듯이 감싸 안으며 머리칼 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제 것과 달리 부드럽고 매끈한 금빛 머리카락이 손가락에 감겨 오는 감각만으로도 배 안쪽 어딘가에서 열이 지글대며 끓었다.

‘더.’

더 닿고 싶다.

더 엉켜들어, 더 나누고 싶었다.

허기에 찬 손길이 하얀 귀 끝을, 평소에는 옷깃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목덜미를, 그리고 너른 어깨를 더듬는 동안 키시아르는 유더의 목줄기 아래 뼈와 젖은 입술, 귀 아래의 연약한 부분에 입을 맞췄다. 강한 접촉이 아니었음에도 허리가 저절로 튀며 숨이 가쁘게 올랐다.

“으……읏.”

저도 모르게 조금이라도 더 닿고 싶은 것처럼 몸을 들어 꽉 끌어안은 순간, 유더는 문득 제 다리 부근에서 느껴지는 무겁고도 확연한 타인의 열기를 피부로 느꼈다.

‘아…….’

일순 정신이 조금 들며 이전에 타이누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망가져 교체된 소파 위에서 이와 비슷하게 뒤엉킨 적이 한 번 있었다. 유더는 그때의 경험으로 키시아르가 그의 육체를 어디까지 억누르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유더가 부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본래의 힘을 되찾으면 다시는 그런 식으로 자신을 억누르지 않겠다 나누었던 짧은 약속이, 지금 그의 앞에 비로소 이루어져 있었다.

기억 속에서보다 더한 열기를 띠고 존재감을 드러낸 다리 사이의 그림자를 보며 유더는 두려움이나 꺼림이 아닌, 기다렸던 존재를 맞이한 듯 기꺼운 기분을 느꼈다.

키시아르 라 오르는 유더와 나눈 그 어떤 작은 대화나 약속도 잊지 않았다. 그 사실을 가장 확실하게 확인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순식간에 차오른 깊은 고양감이 목 안쪽을 울렸다.

“……약속, 지켜 주셨군요.”

가쁜 숨을 헐떡이며 내뱉은 잔뜩 잠긴 목소리에 고개를 든 키시아르가 눈썹 끝을 살짝 찌푸린 채 웃었다.

“그러기로 했으니까.”

“…….”

“사실은 수도에 돌아갈 때까지는 더 눌러 둘 생각이었는데…… 닿은 순간부터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더군.”

아무것도. 낮은 목소리가 끊어질 듯 반복하여 속삭이면서 재차 입을 맞추었다. 가장 격렬한 폭풍우의 한복판이 사실 가장 고요한 공간이듯, 키시아르의 눈 또한 그러했다.

유더는 저를 홀린 듯 바라보는 사내의 어깨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찢기기 직전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 두 개의 육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은 채 깊이 뒤엉켰다. 유더의 셔츠 자락이 어딘가에 걸려 단추가 튕겨 나가고, 키시아르가 목에 매고 있던 부드러운 천이 벗겨지던 와중 찢어졌지만 그런 것 따위에는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끊임없이 입을 맞추는 동안 이전에 맞부딪쳤던 때보다도 더욱 빠르게 드러난 맨살이 겹쳤다. 유더는 키시아르가 한 손안에 망설임 없이 함께 붙잡은 아래쪽 열기를 느끼며 고개를 젖혔다.

“흣…….”

똑바로 마주 본 채 그와 아래를 맞댄 것도 벌써 두 번째였다. 매일 검을 잡아 생긴 굳은살이 배어 있는 손바닥 안에 감싸인 두 개의 성기가 문질러질 때마다 머리 심지가 타버릴 듯한 쾌감이 정신을 깜박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유더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키시아르의 얼굴이었다.

너무나 깊이 유더에게 사로잡힌 채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그 얼굴.

같은 쾌감을 느끼며, 같은 감각에 반응하고 있는 사내의 열기가 밝은 불빛 아래 무엇보다도 선명히 보였다.

“아…… 흐으, 읏. 아.”

그와 닿아 있는 모든 곳이 허기진 열망과 사나운 기쁨으로 떨었다. 더 닿고 싶은 욕심 속에 눈 안을 타고 올라오는 애틋하고 고통스러운 열기가 합쳐졌다.

유더는 키시아르의 손 위에 제 손을 겹쳤다. 손등과 손가락을 겹쳐 얽으며 드러난 성기 위를 문지르자 키시아르가 눈살을 찌푸리며 이를 악물었다. 웃음을 잃은 얼굴마저도 황홀하리만큼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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