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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440화 (440/805)

440화

“목적하시던 일은 성과가 좀 있으셨습니까.”

조금 에둘러 말하기는 했으나 나한을 뒤쫓던 일은 잘되었느냐는 뜻이었다.

“예.”

나단 주커만이 표정의 변화 없이 대답했다.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키시아르에게 보고를 하러 올 정도의 뭔가는 발견한 듯했다. 그들의 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챈 칸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입을 열려 했으나, 때마침 집무실 문이 열리고 관리들이 빠져나왔기에 대화는 그쯤에서 끝이 났다.

“음? 나단. 오랜만이군요.”

밖에 서 있던 나단 주커만을 알아본 관리들이 인사를 건넸다. 나단 주커만이 무뚝뚝한 얼굴로 대꾸하는 사이, 칸나가 목소리를 죽여 속삭였다.

“저분들, 어쩐지 주커만 경보다 널 더 쳐다보는 것 같은데?”

“…….”

아무래도 아까 안에서 들었던 키시아르의 말이 상당히 인상 깊었었는지, 멜리나라는 관리를 포함한 몇몇 이들이 유더를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중이었다. 유더는 괜찮다는 뜻으로 칸나의 팔을 가볍게 두드린 뒤 로벨과 마티, 그리고 나단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느 분께서 먼저 들어가시겠습니까.”

“제 용건은 급하지 않으니 이분들을 먼저 들여보내 주십시오.”

“아, 아뇨. 저희 둘 다 부름을 받은 건 맞지만 함께 오라는 말을 들은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마티부터…….”

나단 주커만과 로벨이 차례로 순서를 양보했기에 자연스럽게 첫 순서는 마티가 되었다. 유더는 입을 꾹 다문 마티를 바라보다, 문득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

‘……뭐지?’

나단과 로벨 사이에 있었을 때는 조용하기만 해서 몰랐는데, 제대로 보니 어쩐지 마티의 모습이 이전과 조금 달라 보였다.

단순히 표정이나 풍기는 분위기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뭔가, 손 쪽의 색이 평소와 달라 보이는 것 같은데…….’

착각일까. 유더는 그녀를 관찰하며 집무실로 안내했다.

관리들과의 대화를 끝내고서 홀로 앉아 서류를 들여다보던 키시아르가 두 사람을 보고는 빙긋 웃었다. 긴장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던 마티조차 순간적으로 풀어질 만큼 화사한 미소였다.

“공작님을 뵙습니다.”

“그래, 마티. 며칠 전 파티에서는 자네와 다른 이들 덕에 마병단이 큰 도움을 받았었지. 마병단을 대표하여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 불렀네.”

눈을 당혹스레 깜박이던 마티가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아뇨. 아닙니다. 그런 말씀을 들을 만큼 대단한 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정원으로 나가 침입자들을 상대한 게 대단하지 않다면 무엇이 대단하겠나?”

마티와 기억을 잃었다가 다시 되찾은 소수의 비각성자들은 파티 당일, 임시 하인으로 본저에 들어와 잠입한 나그란의 별이 없는지 지켜보고 소식을 알려주었다. 나한에게 죽은 이들 외의 피해가 극도로 적었던 건 그들이 직접 나서서 침입자들의 얼굴을 알아보고 마병단에게 정보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마티는 위험하다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몸소 그들을 마주하고서 말싸움까지 벌였다는데, 뜻밖에도 그녀를 본 나한의 동료들 일부는 전과 같은 기세를 잃고 극심한 흔들림을 보이며 무너졌다고 들었다.

아무리 나한의 뜻에 동조하여 여기까지 왔다지만, 마티나 다른 이들에게 실은 아무 죄가 없었다는 사실을 그들이라고 아주 몰랐을 리 없다. 다시 볼 일이 없으리라 여겼을 이들이 멀쩡한 얼굴로 나타났으니 기겁하기도 했을 터였다.

그 흔들림이 더 많은 사상자를 내지 않고서 그들을 제압하는 데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

그때를 떠올린 듯 잠잠해진 마티를 보며 키시아르가 물었다.

“그런데 말이네, 그때 함께 나섰던 다른 단원들 몇이 자네에게서 무언가 묘한 걸 느꼈다는 말들을 하던데… 그에 대해서는 혹 해 줄 말이 없나?”

순간 유더는 마티의 주먹 쥔 양손 위로 또다시 아까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모습을 보았다. 드러난 손등 위로 핏줄처럼 푸르고 창백한 색이 어리더니,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미약한 기운이 훅 일어났다가는 도로 가라앉았다.

극도로 집중한 덕에 볼 수 있었던 찰나의 변화였으나, 답은 확실했다.

‘설마…….’

“마티. 각성했습니까?”

유더의 질문에 마티가 흠칫 놀라 양손을 뒤로 숨겼다. 입술을 꾹 다물고서 불안하게 키시아르와 유더를 번갈아 훑던 그녀가 이내 고개를 숙이고는 사실을 인정했다.

“네… 맞아요. 두 분 앞에서는 역시 숨길 수 없었네요.”

“역시 그랬군. 로벨 젬슨은 알고 있나?”

“로벨은… 아직 모릅니다.”

키시아르의 질문에 작게 대답한 마티가 로벨이 있을 문 너머를 흘긋 바라보다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마티는 파티 당일, 자신들을 내친 나그란의 별 각성자들을 다시 마주했을 때 처음으로 몸의 이상을 느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그 이상의 정체를 몰랐으나, 다음날이 되자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답을 곧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손으로 만진 대상의 기력을 일시적으로 빼앗을 수 있는 능력을 각성했다.

그녀와 마주했던 나그란의 별 측 각성자들이 갑작스레 뒤흔들리며 제대로 싸우지 못했던 데에는 바로 그 힘도 일부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제가 각성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도 마티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양손을 숨기듯 등 뒤로 돌려 맞잡은 모습에서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느껴졌다.

“각성자가 된 게 많이 무섭나?”

“무섭다기보다는…… 아뇨. 네. 솔직히 무섭습니다.”

부정하려는 듯했던 마티가 결국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이며 인정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한번 각성자가 되면… 다신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거겠죠?”

“안타깝지만, 현재로서는 그렇네.”

간결히 대답한 뒤, 키시아르는 어두운 안색이 된 마티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이번 일에 도움을 준 자네와 다른 이들은 그 공을 인정하여 이번 일이 끝나는 대로 제국 어디에서든 정당히 머물 수 있도록 보호 및 도움을 줄 예정이었네. 하지만 자네가 괜찮다면 거기에 한 가지 선택지를 더 추가하고 싶군.”

“그게 무엇인가요?”

“곧 생길 마병단 서부 지부에서 머물며 일을 해 볼 생각이 없나?”

“마병단이요?”

마병단 지부는 앞으로 맡은 지역 내에서 새로이 각성하는 각성자들의 적응에 도움을 주고, 그들과 관련된 모든 것을 우선 처리하게 될 곳이다. 키시아르의 설명을 들은 마티의 눈빛이 조금씩 진지하게 변했다.

“마병단 내는 각성자들이 머물기에 그래도 가장 편안한 곳이리라 생각하네. 당장 확답을 주지 않아도 괜찮으니 머물고 싶을 때까지 머물다 결정을 내려도 되겠지.”

“과분한 제안이라 생각합니다만… 일단 좀 더 고려해 보고 싶습니다.”

“좋네.”

그녀가 나가기 전, 키시아르는 흘리듯 한마디 말을 건넸다.

“각성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슬프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그게 스스로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만은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군. 누군가는 자네가 각성자든 아니든 여전히 아끼고 사랑할 테고, 나 또한 각성 여부와 상관없이 이 제안을 할 생각이었으니까.”

“……네. 감사합니다.”

생각에 잠긴 얼굴로 침묵을 지키던 마티가 이내 인사를 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뒤를 이어 들어온 로벨은 마티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인지 더욱 긴장한 기색이었다. 키시아르는 그에게도 마찬가지로 이번 일을 도와준 데 대한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저는 마티를 다시 만난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당장 그녀와 이전처럼 돌아갈 수는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그녀가 있는 곳에 저도 함께 있고 싶습니다. 아! 물론 마병단에서 제게 바라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도울 겁니다.”

“이전에 함께 했던 동료들을 찾고 싶다고도 말했던 것 같은데, 그 부분은 해결했나?”

“예.”

로벨은 나그란의 별 마을에서 친하게 지냈던 온건파 동료들의 행방을 찾기 위해, 허락을 받고 별저에 있는 나한의 동료들을 잠시 찾아갔었다.

“아무래도 거사를 일으키기 전, 제 동료들과 마을 사람들을 모두 모아 다른 거점으로 보냈던 것 같습니다. 어디로 보냈는지까지는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만… 다들 각성자이니 거짓은 아니리라 믿고 싶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군.”

담담히 대답한 키시아르가 로벨의 얼굴을 살피며 미소를 지었다.

“로벨 젬슨. 나그란의 별에는 자네와 같은 이도 있지만, 나한과 같은 이도 있지. 나는 나그란의 별에 대한 정보를 원하네만 아무래도 바깥에서는 접근이 쉽지 않아. 자네들이 우리를 몹시 경계하는 듯하여 더 그렇더군.”

“아……. 네.”

로벨이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희에 대한 정보를 원하시는 거라면 최대한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저도 합류한 이후 잠시 남부에 머물다 서부로 돌아와 내내 평범하게 지냈던 사람에 불과한지라 아는 바가 별로 없습니다.”

“그건 나중에 말해 주어도 괜찮네. 다만 하나만 먼저 말해 주었으면 좋겠군.”

“말씀하십시오.”

“자네는 나그란의 별이 어떤 곳이라 생각하는가?”

로벨은 몹시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무어라 답해야 좋을지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답을 내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가 처음 방문했을 때 느낀 그곳은, 그저 평범했습니다. 현자님을 중심으로 서로를 보호해 주기 위해 나선 이들이 모인, 그냥 그런 마을이었죠.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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