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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439화 (439/805)

439화

너도 무서운 게 있느냐라.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었다.

이전 생에는 딱히 무언가가 정말 무섭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제 힘이 통하지 않는 몬스터도 해결 방법을 알게 된 뒤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고, 다른 이들이 무서워하는 사람이나 육신의 고통 등은 그에게 협박거리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멸망의 징조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다니던 시기에는 앞이 보이지 않는 듯한 막막함을 자주 느꼈었지만 그걸 무섭다고 할 수 있을까?

끝나지 않을 듯 계속되던 고문도, 그로 인한 고통과 죽음도 유더에게 분노와 포기를 불러일으켰을지언정 진정한 두려움은 주지 못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키시아르의 잠꼬대와 기이한 연결과 관련해 좀 더 파고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당장이라도 또다시 유드레인이라는 부름이 나오기라도 할 듯 관찰하다가도 시선을 피하는 일이 오늘 내내 부지기수로 일어났다.

생각해 보면 그건 이전에 키시아르가 있는 침실의 문을 두드리려 오래 고민하다 돌아섰던 때 느꼈던 기분과도 닮아 있었다.

‘뭐, 지금도 문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에 있는 건 똑같긴 하군.’

유더의 시선이 황제의 관리들과 함께 키시아르가 회의를 하고 있을 집무실 문 쪽으로 살짝 향했다가는 다시 되돌아왔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문을 열기 위해 필요한 각오의 무게가 전혀 달랐다. 유더 아일이 인지하는 비밀의 무게가 그사이 그만큼 무거워졌기 때문이었다.

문을 열어야 하는가?

연다면 어느 정도나 열어야 하는가?

문을 여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가?

문을 연 뒤에 마주칠 상대의 반응 또한 최선이라 여길 수 있을까?

아무리 물어도 확답을 낼 수 없는 질문들 뒤에는 약간의 이 상황에서 물러나고 싶다는 비이성적인 충동이 뒤따라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은 채 그저 중간쯤에 멈추어 서 있는 스스로가 무력하고 낯선 존재처럼 여겨졌다.

그러니까, 아마도 그게 무섭다고 할 만할 터였다.

“있어. 무서운 것.”

유더는 생각을 정리하며 느리게 대답했다. 칸나가 미약한 웃음을 띤 채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그렇지. 유더도 사람이니까……. 그냥, 여태까지 내가 본 유더가 너무 강한 사람이라서 바보 같은 질문을 했나 봐.”

“…….”

“뭐가 무서운 거냐고 묻진 않을게. 하지만 우린 동료고 친구니까 혼자서 해결할 수 없을 정도로 무섭고 걱정되는 일이 있다면 돕고 싶다고 말해도 이상한 건 아니지? 유더가 이미 내게 그렇게 해 줬었으니까.”

정보를 읽는 능력자답게도, 칸나는 유더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캐묻지 않았다. 다만 진심을 담아 돕고 싶다고 속삭였을 뿐이었다.

그 간절하고도 조심스러운 걱정을 담은 시선이, 유더의 가슴을 기이하게 간지럽혔다.

“말만으로도 고마워.”

“말만이 아니야! 진짜로 뭐든 도울 거고, 네가 뭐라고 말해도 믿을 거야. 그럴 만한 도움을 받았으니까!”

칸나가 고개를 내저으며 강하게 의견을 피력했다.

“물론 단장님도, 다른 동료들도 큰 도움을 줬지만 너한테 고마운 건 그것보다 조금 더 특별해. 왜인지 알아?”

유더는 고개를 저었다. 칸나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코끝을 찡그리며 웃었다. 잠시 후 유더 외에는 아무도 듣지 못할 만큼 작은 고백이 흘러나왔다.

“난 말야, 아직도 가끔 몸 상태가 안 좋으면 마병단에 들어오기 전의 꿈을 꿔. 그만큼 갈론 백작이 끔찍하고 무서웠거든.”

자신을 자식으로 인지하지 않고 하녀처럼 부려먹은 끝에 팔아치우듯 보내려 했던 작자의 이름을 내뱉을 때 미간이 잠시 꿈틀댔지만, 그녀는 굳센 표정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갈론 백작 앞에서 네가 날 막아 줬을 때, 네겐 그 일이 별것 아닌 도움이었겠지만 나는 덕분에 세상을 새로 볼 수 있었어. 단순히 나한텐 너무 무서웠던 게 누군가에겐 우스울 수도 있단 걸 알았기 때문만은 아냐.”

“…….”

“그때 나는 내가 뭘 무서워하는지 알려지는 게 두려웠어. 모두가 내 비밀을 알게 되면 날 어떻게 볼지 너무 무서워서 잠도 못 잤었다는 거 모르지? 네가 갈론 백작을 막았던 당시에는 그냥 전부 다 끝났다고 생각했었어.”

하지만 아니었다. 누구도 칸나가 두려워한 과거를 비웃거나 손가락질하지 않았다. 갈론 백작은 보기 좋게 혼쭐이 났고, 이후 마병단의 그 누구도 칸나에게 그때와 관련한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유더.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냐면…….”

작은 부름에 뒤이어 칸나가 그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였다.

“무섭다는 건, 그냥 그런 거라고 생각해.”

유더가 칸나에게 주었던 도움은 아주 작았다.

능력 있는 이가 마병단에 들어올 수 있도록 약간의 조언을 주었고, 그런 인재에게 헛짓거리를 하려 드는 갈론 백작에게 귀찮음을 무릅쓰고 한 방 먹여 주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칸나는 모든 일이 해결되고 제법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때의 일을 잊지 않았다. 유더에게는 별것 아니었던 그 일이, 그녀에게는 그만한 무게를 지닐 만큼 중요하고 무서운 일이었다는 사실을 유더는 지금에야 새로이 실감했다.

무섭다는 건, 두려움이란 건 본래 그런 거라는 한마디의 무게가 낯설게도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

본래 그런 것. 이유를 찾으려 노력하며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나는 그때 느꼈던 두려움의 무게를 평생 못 잊을 거야. 그리고 그걸 잊지 않는 동안엔 이 마음도 언제까지나 변치 않을 거고.”

칸나에게 붙잡힌 손등이 델 듯 뜨겁게 느껴졌다.

“꼭 내게 도움을 청하거나 말해 달라고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혼자서만 안고 있지는 마. 누구든 네가 도와 달라고 하면 뭐든 도와줄 테니까. 가케인도, 에버 언니도, 지미랑 힌도, 핀도… 아! 그리고 단장님도!”

유더는 묵묵히 그 손을 내려다보다 눈을 감았다. 문득 이논이 어젯밤 투덜거리던 목소리가 그녀의 조언 위로 겹쳐지며 한숨 같은 웃음이 흐리게 흘러나왔다.

“……든든하네. 고마워.”

맹세도, 서약도 아닌 그저 믿겠다는 말 하나일 뿐인데 어째서 이토록 마음이 든든해지는지 모를 일이었다.

칸나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몇 번인가 더 손등을 토닥여 주다가는, 문득 뭔가를 눈치챈 듯 고개를 돌렸다.

“어? 주커만 경하고 로벨 씨가 오셨네.”

그 말대로 그들이 서 있는 창가 바로 옆 계단 아래서, 천에 싼 상자를 든 나단 주커만이 두 남녀를 데리고 올라오는 중이었다. 약간 긴장한 표정을 지은 로벨과 마티가 유더와 칸나를 발견하고는 소리 없이 각자 반가움을 표시했다.

“주커만 경! 경매 날 이후로 처음 뵙네요.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에요. 로벨 씨도요. 그리고 곁에 계신 분은 혹시……?”

“마티라고 합니다.”

“직접 뵙는 건 처음이네요. 반가워요.”

칸나가 밝은 얼굴로 먼저 인사를 하자 로벨과 마티, 그리고 나단 주커만이 마주 인사를 했다. 유더 또한 그들과 인사를 나누며 간만에 보는 나단 주커만의 얼굴을 살폈다.

그를 만난 건 유더도 파티 이후로 처음이었다. 나한을 놓친 뒤에도 추적을 포기하지 않고 쫓는 중이라 들었는데, 성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얼굴만 봐서는 짐작이 안 되었다.

‘몸은 멀쩡해 보이는데.’

억지로 방탕한 기사단인 척할 필요가 없어진 기사의 차림새는 그 어느 때보다도 똑바르고 단정했다. 다른 이들은 답답해 보인다고 할 만한 차림이나 그는 오히려 그쪽이 훨씬 더 편안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그런데 세 분이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오신 거죠?”

“아… 같은 일로 온 건 아닙니다. 공작님… 아니, 단장님께서 저희를 만나고 싶다 전하셨다기에 오던 도중 이 기사님을 만나 같은 길로 오게 되었을 뿐입니다.”

“주커만 경도 단장님을 뵈러 가십니까.”

유더의 질문에 나단 주커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군요. 하지만 지금은 아직 방문하신 분들과의 대화가 끝나지 않아 조금 기다리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이미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나단 주커만은 놀라지 않고 계단을 마저 올라와 그들의 근처에 자리를 잡고 섰다. 로벨과 마티도 그의 뒤편에 조심스럽게 줄을 섰다. 그가 든 상자에 시선을 보낸 칸나가 호기심을 숨기지 않고서 슬쩍 물었다.

“그런데 주커만 경, 그 상자는 뭔지 물어도 되나요?”

“공작님께서 돌아올 때 가지고 오라고 말씀하신 쿠키입니다.”

“쿠키……요?”

“오늘 밤 필요하다 하시더군요.”

칸나는 그 말이 일종의 은어인지, 아닌지 잠시 고민하는 듯했으나, 거기엔 조금의 비유도 없는 그저 진짜 있는 그대로의 사실일 터였다. 유더는 침묵을 지키다 저도 한 가지 질문을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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