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문에 유더 또한 혼란을 가라앉히고, 일단 조금 더 시간을 두고서 키시아르와 그의 꿈과 관련된 현상을 살피기로 마음먹었다.437화
다음날, 해가 밝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르 제국 전체가 여러 번 뒤집어졌다.
우선 그동안 타인 공작이 비밀리에 진행해 온 불법적인 무역과 그것을 돕기 위해 이루어진 타이누의 비밀 경매 체포 소식이 황제의 승인하에 공개적으로 발표되었다.
사건 자체도 충격적이었으나, 그 사실을 밝혀낸 이가 다름 아닌 몬스터 토벌을 위하여 서부로 향했던 마병단과 펠레타 공작이라는 사실에 모두가 크게 놀랐다.
펠레타 공작은 몬스터 토벌 이후 타이누에서 뒷수습이 끝날 때까지 잠시 머무는 중이라 알려져 있었다. 그러던 중 각성자들을 불법적으로 납치하고, 법망을 피해 위험한 물건들을 사려 한 자들의 꼬리를 잡고 나니 빌름 남작과 타인 공작에게 연이 닿아 있었노라는 설명에 수많은 이들이 두려워하며 탄식을 토했다.
마병단은 불법 경매에 참석했던 귀족들을 하나도 봐주지 않고 모두 잡아들여 이름을 낱낱이 밝혔다. 그 속에 재판을 피해 도망쳤던 아페토 가의 사람들이 몇 명 끼어 있었다는 사실 정도는 더 이상 놀랄 거리도 아니었다.
일이 그렇게 되자 펠레타 공작이 신검의 새 주인이라는 소식은 이제 이전처럼 단순한 우스개소리가 아니게 되었다. 마병단 또한 서부로 떠나기 전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모든 놀라운 업적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펠레타 공작과 마병단에 대해 아는 바가 아직도 거의 없었다.
누군가는 모든 게 과장일 뿐, 펠레타 공작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만큼 대단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그가 매일같이 옆구리에 남자를 끼고 다니는 대단한 남색가라는 소문을 들고 와 역겨워했다.
멀고 먼 서부에서 일어난 사건의 진상을 두고서 많은 이들이 제각기 음모론을 흘려 댔지만,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번 일에 대해 정작 타인 공작가가 아무런 부인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공작의 사촌인 황궁기사단장 테오라도 반 타인은 물론, 은퇴하여 멀리서 여생을 보내고 있으나 아직까지도 귀족들 사이에서 영향력이 큰 타인 가의 노인들조차 반발을 보이지 않았다. 타인 공작을 지지하는 귀족들은 말도 안 되는 모략이라며 반발하였으나, 정작 공작가의 힘 있는 자들이 공작을 비호하지 않았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무척 컸다.
소문을 좋아하는 이들은 이번 일이 그간 물밑에서 암암리에 돌던 타인 공작과 가문 내의 오래된 불화설이 사실이라는 뜻이라 신나게 떠들어 댔다. 가문의 일원들이 현 공작을 쳐내기 위하여 황제와 잠시 손을 잡은 게 분명하다는 추측이 많은 지지를 받았다.
그 소문이 사실임을 드러내 놓고 알려 주기라도 하듯, 타인 가는 현 공작이 재판을 받게 되었다는 소식이 발표되기가 무섭게 가문 회의를 거쳐 여태 비어 있던 공작의 후계자까지 재빨리 공표해 버렸다. 여태 베일에 감싸여 있던 2공녀 프리실라 반 타인이 현 타인 공작을 대신하여 가문의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자격을 받았으며, 그녀의 오빠이자 본디 유력한 차기 공작으로 점쳐졌던 1공자 프루엘레 반 타인은 형제 모두가 프리실라의 작위 계승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현 공작의 유일한 아내이자 자식 모두를 낳은 클란디에 공작부인 또한 먼 남부 별장에서 보낸 서신을 통해 자신은 그저 가문 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에 따르겠다 밝히며 자식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소식에 대한 제국 각층의 의견은 다소 엇갈렸다.
디아카 공작과 그를 따르는 이들은 천 년을 이어 온 공작가의 수장을 가문 일부의 목소리와 황제의 뜻만으로 명확한 증거 없이 재판정에 세우는 건 역사적으로 유례 없는 일이라 주장하면서 타인 공작을 비호했다.
물론 그가 타인 공작과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그런 비호를 한 것은 아니었다. 디아카 공작을 따르는 이들은 아페토 가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발생한 또 다른 공작가의 재판 소식 자체를, 그리고 그로 인해 치솟을지 모를 황제파의 득세를 경계했다.
불명확한 이유로 칩거 중인 카치안 황태자는 의견을 밝히지 않았으나 사람들은 디아카 공작의 말이 곧 그의 생각과 마찬가지라 자연스레 생각했다.
가문을 추스르는 데 여력이 없는 아페토 공작가의 1공자 에이셰스, 그리고 요양 때문에 본 영지에 내려가 있는 헤른 공작 측은 디아카 공작처럼 공개적으로 반발하지는 않았으나 사태를 주시하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귀족들 대부분은 또다시 유서 깊은 공작가 한 곳이 시끄러워진 모습에 불안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타인 가 내부의 세력이 바뀐 일일 뿐이니 크게 변하는 건 없으리라는 전망 또한 내놓았다.
실제로 아페토 가의 비극 이후 많은 이들이 사라지고 아페토 공작마저 쓰러졌다지만, 몇 달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실제로는 그리 변화가 없었다 여기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아페토 공작 대리가 된 에이셰스 1공자가 예상보다 황제 측을 잘 따르지 않았던 것이 그러한 안도감에 큰 영향을 미쳤다.
황제에게 귀족들과 전면전을 벌일 만큼의 힘이 없다는 건 모두 아는 사실이었다. 마병단과 펠레타 공작에게 힘을 실어 주며 완전히 허수아비가 되는 일만은 방지하려 발버둥치는 모양이나,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 이가 과연 어디까지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많은 귀족들의 생각이 경계와 얕잡아 보는 시선 사이를 오가는 동안, 아페토 공작가의 비극 이후 한동안 잠잠했던 제국 법정에는 또다시 새로운 대규모 재판 일정이 가득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길 또한 이 사건에 쏠렸다.
정치와 상관없이 살아가는 대부분의 평범한 이들은 타인 공작이 저지른 일에 분개하고 황제와 펠레타 공작의 빠른 조치에 감사했다. 오르 제국 주변의 몇몇 나라들은 불법 무역에 연루된 정황이 드러날까 재빨리 몸을 사렸으며, 그 외의 타국들도 제각기 이익과 호기심에 따라 이번 일의 향방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여기서 관심을 받은 것이 단순히 정치적 요소뿐만은 아니었다.
어느 나라의 재상은 이번 일을 처리하는 중심에 마병단이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자신의 나라에도 마병단 같은 단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히 폈다. 각성자에 대한 연구에 뒤늦게 관심을 보이는 나라들도 생겨났다.
제국의 귀족들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지만, 어떻게 대해야 할지 누구도 갈피를 잡지 못했던 각성자를 유일하게 끌어모은 마병단이 내딛는 움직임 하나하나가 점차 이전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병단의 핵심 중 하나로 평가받는 이이자 오늘 밤 펠레타 공작을 상대로 중요한 일을 시도할 무거운 짐을 진 유더 아일은, 현재 키시아르의 뒤에 선 채로 다른 이들의 말을 듣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면 이렇게 인원 정리는 끝난 건가.”
“네. 여기 있는 이들이 모두 서부 지부원이 될 겁니다.”
키시아르는 일어나자마자 엄청난 속도로 서부 지부를 만드는 일에 착수한 상태였다. 아무리 임시 지부라고는 하지만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 필요한 곳에 모두 연락을 마치고, 그것을 단원들에게 설명하고, 지부에 남을 인원을 정하는 일까지 마무리할 줄은 몰랐다.
코엘트 남작이 빌름 남작의 자리를 완전히 대신하게 된다면 승인 한 번만으로도 마병단 지부 활동이 바로 가능해질 만큼 간결하고 완벽한 일처리였다.
앞으로 마병단 서부 지부원이 될 단원들이 긴장한 얼굴로 키시아르를 바라보았다. 유더는 그들 중 가운데에 서 있는 에문 필랑의 얼굴에 특히 주목했다. 지부에 소속될 이들은 모두 자원자였는데, 뜻밖에도 그는 제일 먼저 서부 지부원이 되고 싶다고 손을 든 사람이었다.
눈에 띄는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그가 그리 먼저 나선 이유는 간단했다. 제가 루산과 함께 돌보던 기억 잃은 이들과 인신매매 피해자 각성자들을 끝까지 돕고 싶다는 것이 이유였다. 붉어진 얼굴로 버벅거리면서도 제 뜻을 분명히 밝힌 그를 본 키시아르는 에문을 바로 임시 서부 지부장으로 임명했다.
“좋네. 그러면 에문. 당장 이번 일의 마무리부터 부단장들과 함께 참여하며 업무에 익숙해지는 쪽이 좋겠군.”
“예, 옛. 그러겠습니다.”
“서부 지부가 제일 처음에 해야 할 일은 이곳에 남겨질 나그란의 별과 서부에서 어려운 일을 겪는 각성자들을 돌보고 지켜보는 것이 될 거야. 많은 이들을 함께 통솔하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믿겠네.”
나그란의 별에 대한 부분은 아직 공식적으로 공표되지 않았다. 키시아르는 그들에 대한 조사를 모두 끝낸 뒤, 죄의 경중에 따라 분리하여 서부 지부에서 관리하도록 할 계획이었다.
키시아르의 말에 에문의 얼굴 위로 한결 더한 의지가 더해졌다.
“알고 있습니다.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좋군.”
그가 다음으로 만난 이들은 케일루사 황제의 명을 받아 타이누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비밀 경매 건을 좀 더 체계적으로 조사하기 위하여 파견된 그들은 마중을 나온 키시아르의 앞에 공손히 무릎을 꿇어 인사했고, 마병단과 펠레타 기사단이 해 온 일들을 공유하여 넘겨받았다. 마병단이 서부를 떠난 이후부터는 그들이 조사와 처벌을 대신하게 될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