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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416화 (416/805)

416화

유더는 그들이 타고 내린 마차를 잘 기억해 두었다. 마부가 힘겨운 얼굴로 사라진 뒤, 그는 앞으로 나서서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프루엘레의 정보에 의하면 귀빈들이 타고 온 귀하신 마차가 있는 이곳은 침입자용 공격 마법진이 설치되지 않은 몇 안 되는 구역 중 하나였다. 인간보다 귀한 취급을 받는 마차들 덕분에 유더는 마음 놓고 남의 눈을 피하여 힘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오른손을 천천히 쳐들자 그에 따라 몸 안쪽에서 힘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주인의 감정에 따라 평소보다 훨씬 강렬하게 차오른 기운이 서서히 응축되며, 발아래서 가벼운 바람을 날렸다. 후드를 덮어 가린 왼쪽 눈동자가 스르르 밝은 황금빛으로 변화했다.

유더는 충분히 끌어올린 힘을 모아 자신이 이곳까지 온 가장 큰 목적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는 신호.’

쿠르릉.

발아래로 뿜어져 나간 힘이 지축을 가볍게 뒤흔들자 작은 지진처럼 본관 주변의 땅이 울렸다. 예민하지 않은 이는 특별히 이상하게 여기지 않겠지만, 주변에 흩어져 있는 마병단원들은 충분히 느낄 만한 신호였다.

유더는 아직까지는 조용하기 그지없는 본관 쪽을 싸늘하게 바라보며 미세한 진동이 완전히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는 높은 나무 위로 뛰어올라 이전보다 훨씬 강한 힘을 끌어내었다.

‘두 번째는 봉쇄.’

이미 주변 봉쇄를 위해 움직이고 있을 단원들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내보낸 땅의 힘이 이전보다 더욱 넓고 크게 퍼져나감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유더의 뜻에 따라 정원의 나무들이 소리 없이 무너지고 흙이 치솟았다.

담벼락이 허물어지며 안에 있는 이들이 도망칠 만한 통로를 일제히 틀어막는 동안에도 유더의 표정은 변함없이 차가웠다. 자연을 제 마음대로 주무르는 중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평소와 다름없는 얼굴이었다.

그러던 중 멀리서 꾸물대며 움직이던 마병단원 몇 명이 보였다. 유더의 손길에 따라 막 솟구쳐 오르던 땅이 방향을 바꾸고, 스칠 뻔했던 단원들을 피해 갔다. 갑자기 일어난 일에 놀란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단원들이 어디선가 보고 있을 유더를 위해 두 팔을 크게 흔들어 감사 표시를 했다.

사실 그들 대부분은 소문으로만 들었던 ‘대삼림의 기적’과 비슷한 일을 드디어 제 눈으로도 목격하게 되어 대단히 흥분한 상태였지만 멀리 있는 유더의 눈에 거기까지는 비치지 않았다.

창문을 모두 가리고 외부의 빛을 차단한 본관 내부에 있는 귀빈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한 사람이 빚어낸 경이롭고도 거대한 덫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완성되었다.

유더는 조용히 제가 일궈낸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간만에 큰 힘을 발휘해서인지 이마에 땀이 맺혔으나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시원한 기분이었다.

이렇게 나갈 구멍을 전부 막아 두어도 이동 능력을 지닌 호산라 같은 이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 외의 평범한 사람들은 날개가 솟지 않는 이상 탈출할 수 없을 터였다.

유더는 제가 만든 결과물을 그렇게 간단히 평한 뒤 바로 뒤를 이어서 세 번째 힘도 발하기 시작했다.

‘세 번째는, 파괴.’

사실상 그가 이곳까지 온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여태까지 중 가장 거대한 힘이 유더의 몸 안에서부터 손끝을 타고 뻗어 나가며 머리칼을 휘날리기 시작했다. 그의 소리 없는 부름에 자연이 응답하기 시작했다. 그 범위는 정확히 경매장 주변을 철통처럼 두른 담장의 크기와도 일치했다.

지금 이 순간, 눈에 보이는 범위 내에 존재하는 모든 자연이 유더 아일의 손안에 있었다. 그 모든 것을 하나하나 생생히 감지하면서 유더는 새삼스레 자신의 능력이 지닌 압도적인 위력을 실감했다.

힘을 쓰지 못했을 때는 그것이 없어도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다. 힘이 없다고 유더가 유더 아일이 아니게 되는 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지금.

키시아르 라 오르가 명한 대로 저 화려하고도 타락한 경매장을 뒤흔들어 버릴 수 있는 것은, 그리하여 경매장을 망치기 위해 잠입했을 나그란의 별의 허를 찌르고 진작 대가를 치러야 했을 이들에게 도망칠 곳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알려 줄 수 있는 이는 오직 자신뿐이었다.

그 사실에 유더는 어느 때보다도 사나운 만족감을 느꼈다.

힘을 되찾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유더는 경매장을 향하여 천천히 손을 내밀어 겨냥했다. 금빛으로 빛나는 왼쪽 눈동자가 곧 이전의 모습을 잃을 곳들을 시리게 내려다보다가는 곧 내리까는 눈꺼풀 뒤로 모습을 감추었다.

유더의 머릿속에서 프루엘레 반 타인이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혹 마지막 작전 도중, 타이누의 제국민들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건물이나 지형을 좀 부숴도 괜찮겠습니까?’

‘응? 그걸 왜 나에게 묻는 거야?’

‘일단은 프루엘레 님이 이 땅을 소유한 가문의 대표격으로 저희와 함께 계시니 여쭈어 보는 겁니다.’

‘……펠레타 공작께서는 무어라 하셨는데?’

‘마음대로 하라고 하시더군요.’

프루엘레는 당황한 듯 입을 다물었다가는, 이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그러면 내 답도 같아. 그 속 시원한 광경을 직접 볼 수 없다니 대단히 아까운데!’

키시아르와 프루엘레가 모두 승인하고, 오늘 임무에 참여할 단원들에게 사전에 어떤 일을 할지도 알려 두었으니 더 망설일 것은 없었다.

유더는 다시 눈을 떴다. 그의 안에서 빠져나온 힘들이 일시에 주인의 의지에 따라 거침없이 달려 나갔다. 갇혀 있던 모든 기력이 일시에 쭉 뽑혀 나가는 감각에 머리가 아찔해지며 몸이 떨렸으나 경매장을 겨냥한 손끝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무표정했던 얼굴 위로 포식을 위해 입을 벌린 맹수와 같은 미소가 떠올랐다.

그리고는, 이내 경매장 내의 모든 창문이 일시에 터져 나갔다.

“뭐, 뭐야?”

창고 내에서 바삐 흰 가루가 든 포대를 옮기던 이방인들도, 합법적으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의 이름을 즐겁게 속삭이며 기대감으로 입술을 핥던 귀빈들도,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며 몰래 안절부절못하던 상단 관계자들도, 그리고 그사이에 도사린 채 나한의 명에 따라 자신들이 나설 때를 기다리고 있던 불온한 자들도 그 순간만은 모두 한 몸처럼 멈추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이 상황의 원인을 파악할 만한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곧바로 경매장을 둘러싼 모든 땅이 사정없이 흔들리며 무언가가 무너지는 충격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경매장 내는 단숨에 혼란으로 뒤덮였다. 누구라 할 것 없이 본능적으로 지르는 비명 소리가 귀를 찢고 침착함을 무너뜨렸다.

“으아악!”

“꺄아아악!”

혼비백산한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출구를 향하여 몰렸다. 그 와중에 쓰러지고 밟히는 이들이 즐비했으나 누구도 그들을 돌보지 않았다. 비싼 와인을 담은 잔이 부서지고 최고급 카펫이 오물로 얼룩졌다. 천장에 매달려 있던 아름다운 조각들이 차례로 떨어져 산산조각났다.

그러나 타인을 짓밟으며 출입구를 빠져나간 귀빈들의 눈에 비친 건 그들이 바라던 바깥이 아니었다.

검은 단복 위에 얼굴을 볼 수 없는 모자를 음산하게 덮어쓴 이들이 일사불란하게 주변을 포위한 채 거대한 목소리로 외쳤다.

“우리는 마병단이다. 지금부터 이곳의 모든 이를 황제 폐하와 펠레타 공작 전하의 명으로 잡아들인다!”

내가 누구인 줄 아느냐 발악하는 자들, 상황을 파악하고 도망치는 자들, 무기를 휘두르는 자들이 뒤섞이며 추악한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그러나 그 어떤 변명과 공격도 검은 옷을 입은 자들 앞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그들은 보도 듣도 못한 힘을 발휘하여 순식간에 귀빈들을 잡아다 짐짝처럼 쌓기 시작했다.

귀족이거나 돈이 많다는 것 외에는 내세울 것 하나 없던 자들이 반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사로잡혔다. 지옥과도 같은 그 풍경 속에서, 오직 끝없이 계속되는 지진만이 신의 엄벌처럼 모든 것을 뒤흔들고 있었다.

***

“에르시는 괜찮을까요, 도련님.”

호산라는 무거운 얼굴로 중얼거리며 얼굴을 가렸다.

“아무리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웠어도… 그래도 데리고 왔어야 했던 게 아닐까요. 거기서 죽기라도 한다면…….”

“마병단의 손에 잡힐 수는 있겠지. 하지만 죽지는 않아. 너도 알잖아, 호산라? 그들이 가일과 두일을 어떻게 했는지.”

호산라는 잠시 침묵했다. 나한의 말이 맞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그래도 죄책감으로 물든 마음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모순임을 알면서도 그러했다.

“에르시는 그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게 된 것뿐이야. 남작의 목을 따는 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해진 거지. 그 마음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면 누가 이해하겠어?”

“…….”

“그런 것보다는 지금 할 일을 생각해. 에르시는 지금쯤 행복한 복수를 누리고 있을 테니,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해야지.”

“……예.”

호산라는 짤막하게 대답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은 빌름 남작의 본저와 별저 사이에 위치한 인적 없는 후원에서 천천히 이동하여 예전에 침입했을 때 보아둔 후문 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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