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터닝-351화 (351/805)

351화

“알겠습니다. 그러시다면 저는 뒤를 따를 테니 뜻하신 대로 하십시오.”

의욕을 잃은 기사단장이 반쯤 이죽대든 말든, 키시아르는 곧바로 에버와 에문, 핀에게 눈짓을 했다. 그들은 간수와 함께 어제 걸인 죄수들을 발견했던 곳으로 급히 걸음을 옮겼다.

“저곳입니다!”

유더는 에문이 소리치며 가리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지하 감옥 1층에서 2층으로 내려가는 문 옆에 붙어 있는 큰 규모의 감옥이었다. 지나쳐 온 다른 옥들은 조용한 편이었으나 그곳에서는 연신 이상한 소리가 들려와 시선을 끌었다.

벽을 긁는 소리, 사람의 말 같지 않은 고함, 흐느끼는 듯한 웃음소리가 뒤섞인 소리를 들은 제이머 필이 찡그린 얼굴로 간수에게 물었다.

“소름 끼치는군. 대체 어떤 놈들이 갇혀 있기에 저 모양이냐.”

그는 자신이 관리하는 감옥에 저런 이들이 갇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듯했다.

“그것이…….”

간수가 조심스럽게 그 안에 갇힌 이들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마병단원들은 망설임 없이 그곳을 향하여 다가갔다. 문 앞을 지키고 있던 간수가 긴장한 얼굴로 침을 삼켰다.

유더는 키시아르의 곁에 선 채 창살 안에 있는 자들을 살폈다. 에버에게 들은 대로 그들은 나이도, 성별도 다양한 집단이었다. 몸은 어찌나 더러운지 본래 입고 있던 옷의 형태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였고, 꽤 떨어진 바깥까지 역한 냄새가 풍겼다.

대부분은 차가운 돌바닥 위에 널브러진 채 허공을 바라보며 몸을 흔들댔지만 어떤 이들은 짐승처럼 시끄러운 울부짖음을 흘렸고, 또 어떤 이는 신경질적으로 반복해서 벽을 긁었다. 같은 인간들이 갇혀 있는 광경이라 생각하기 어려운 풍경에 키시아르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저들은 처음 이곳에 올 때부터 상태가 저랬나?”

“그렇습니다. 대화가 거의 통하지 않고, 서로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간수가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걸인들은 서로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얌전히 있다가도 갑자기 발작과 비슷한 행태를 벌여 관리가 까다롭다고 했다.

“본래는 20여 명이 잡혀 왔었습니다만, 워낙 발작과 자해가 빈번해 현재는 16명 정도 남았습니다.”

“가족이나 친지가 찾아온 경우도 없고?”

“예. 옷이 워낙 더러워 확인하기 어렵지만, 저들이 입은 옷 중에는 제국식이 아닌 옷이 많습니다. 타국인이 끼어 있는 게 아닌가 싶지만 어디서 왔는지 알 수가 없어서…….”

유더는 오가는 대화를 들으며 갇혀 있는 이들의 면면을 다시 한 번 자세히 훑었다.

‘확실히 각성자가 끼어 있지는 않은 것 같군. 단순히 기억이 지워진 게 아니라 정신이 망가진 듯한 모습을 보면… 나한 쪽의 소행인가?’

그들이 정말로 나그란의 별 마을에 있던 일반인들이라면 각성자만을 우대하는 나한의 손에 쫓겨났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었다.

‘마을을 이사할 당시에 버리고 간 게 아니라 이동하고 나서 저렇게 처리해 버린 걸 보면 이후에 뭔가 내분이 새로 크게 발생했었을지도 모르지.’

“에문. 너와 핀이 알아본 이들은 저 중 누구지?”

“어. 그러니까…….”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감옥 안을 바라보던 에문이 몇몇 사람을 지목했다. 몸에 큰 흉터가 가득한 사내와 눈에 띄는 잿빛 긴 머리를 지닌 여자처럼 제법 인상적인 외형을 지닌 이들이었다.

“저 사람들이야. 사실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봐도 맞는 것 같아.”

지목을 끝낸 에문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기분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죽이지 않았다 해도 자신들의 정보를 발설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 사람을 저렇게 만들었다면, 그게 죽이는 것과 뭐가 달라?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이해가 안 돼…….”

유더는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료들의 얼굴을 보며 침묵을 지켰다.

“문을 열어라. 저들은 내가 데려가지.”

“예?”

그때, 간수와의 대화를 끝낸 키시아르가 명을 내렸다. 주변의 병사들이 일제히 귀를 의심하는 얼굴로 입을 벌렸다가는 유더의 얼굴을 보고 도로 입을 꾹 다물었다.

“저들은 범죄를 저질러 이곳에 갇혀 있던 게 아니지 않나? 이제부터 저들에 대한 조사는 우리 쪽에서 맡겠네.”

“그래. 그냥 말씀대로 해 드려라. 저 정신이상자들을 우리가 맡아 보아야 뭘 더 알 수 있겠느냐.”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손을 내저은 기사단장에 의해 결국 감옥의 문이 두말없이 열렸다.

“저들을 빌름 남작의 별저로 데려다주게.”

코를 찌르는 냄새에 잔뜩 찡그린 간수들이 걸인들을 묶어 줄줄이 끌고 나갔다.

“갑작스러운 요청에 당혹했을 텐데도 협력해 주어 고맙네, 필 경. 자네의 협조는 잊지 않도록 하지.”

“사소한 일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입니다.”

고작 이따위 일로 여기까지 온 것이냐는 말을 에둘러 답한 제이머 필을 향해 키시아르는 부드럽게 웃었다. 감옥 내부가 밝아지는 듯한 웃음에 건방진 소리를 지껄이던 제이머 필조차 잠시 넋을 잃었다.

“사소한 일이라니. 이번 일로 마병단이 한 건을 올리면 그건 자네의 공도 될 텐데?”

“…….”

“뭐, 사실 자네 말대로 조사해 보았자 별일 아닐 가능성이 높기는 하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다면 타이누에 도움을 줄 수 있지 않겠나. 마병단은 경험을 쌓아 좋고, 빌름 남작과 자네는 노고를 덜어 좋으니 모두가 좋은 길이지.”

“그…….”

무어라 중얼거리려던 제이머 필이 결국 할 말이 없었는지 자신이 실언을 했다 대답했다.

“이번 일은 대외적으로는 입단속을 시키고, 혹 저런 이들이 또 발견되거나 관련하여 찾아오는 사람이 있거든 연락을 보내 주게.”

키시아르는 제이머 필을 뒤로하고 깔끔하게 몸을 돌렸다. 유더는 그의 뒤를 따르며 흘긋 뒤를 돌아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제이머 필과 병사들의 벌레 씹은 표정들이 제법 볼만했다.

별저로 돌아온 키시아르는 걸인들을 씻기고 빈방을 내어 주도록 명했다. 빌름 남작의 하인들이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그 명을 따르는 동안, 유더는 에버와 함께 키시아르의 숙소에 앉아 그가 나단을 시켜 사 오도록 한 쿠키와 차를 마셨다. 물론 그것은 명목일 뿐이고 실제 나눈 대화는 오늘 일어난 일들과 관련된 회의였다.

“자네들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칸나 완드의 보고로는 대삼림에 있던 마을에 머물던 자들이 이동한 장소는 타이누 근처에 있을 확률이 높다고 하더군. 하지만 이 근처에는 산이나 숲처럼 대인원이 몸을 숨길 만한 곳이 없지.”

“역시 마을 하나를 아예 탈취한 걸까요?”

에버의 물음에 키시아르가 찻잔을 들며 부드럽게 답했다.

“대삼림에 마을을 세우고 숨길 정도의 능력을 지녔으니 그것도 가능은 하겠지만, 숲과 달리 이곳은 주변 마을이나 도시와도 긴밀히 연계되어 있어. 그쪽은 너무 위험하지.”

“그러면…….”

“칸나가 읽은 정보에 의하면 그들은 대삼림을 거쳐 오가는 타인 가의 무역 상황에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였다더군. 얼마 전 만난 그들의 일원이 내보인 타인 가에 대한 복수심을 생각해 보면, 이번 이동을 준비할 때도 그 목표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려 했을 가능성이 있네.”

“그렇다면 용병단이나 상단으로 위장하여 숨어 있을 확률도 있겠군요.”

묵묵히 듣고 있던 유더의 말에 키시아르가 고개를 기울였다.

“아마 그럴 가능성이 더 높겠지. 타이누와 그 주변에는 대삼림과 제국을 오가는 무역 사업에 종사하는 상단과 용병단이 제법 많다네. 급하게 이동해야 했다면 그런 곳을 세우거나 탈취하는 쪽이 더 쉬웠을 거야.”

상단과 용병단은 거쳐 가는 이들이 많고, 구성원의 연령대나 성별이 다양한 집단이었다. 갑작스럽게 많은 인원이 이동해 머물거나 사라져도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으리라.

“때문에 그에 대한 조사를 마병단 중 관련된 직종에 종사했던 이들에게 맡기고 싶네. 누가 적절할지는 에버, 자네가 맡아 뽑고 나서 보고하도록.”

“알겠습니다. 추천할 만한 이들이 몇 생각나네요.”

에버가 단원들의 면면을 떠올리는 듯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오늘 데려온 이들은 한동안 교대로 상태를 살피며 대화가 가능한 상태가 될 수 있도록 방법을 갈구해 보지. 칸나 완드가 돌아오면 일이 편해지겠지만, 그전에도 할 수 있는 일은 해 봐야 할 테니까.”

정신계 능력에 당한 이들을 외부에서 치료하는 건 극도로 어려웠다. 스스로 나아질 의지가 있다면 쉬워지겠지만, 그게 그리 쉬웠다면 감옥에서 벌써 몇 명이나 죽어 나가지는 않았으리라.

하지만 키시아르의 말대로 해 보지 않고 넘길 수는 없는 문제였기에 유더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아,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또 하나 알아 두어야 할 만한 사항이 있네.”

세 사람이 마신 차가 거의 바닥을 드러낼 즈음, 키시아르가 입을 열었다.

“서부 귀족들의 살롱에 갔다가 말을 듣자 하니 타이누에서는 정기적으로 경매가 열린다고 하더군. 공식적으로는 타인 가와 상관없는 경매지만, 타인 가의 투자를 받는 상단들이 대거 참여한다니 아주 연관이 없을 수는 없겠지.”

유더는 그것이 키시아르가 살롱에 다녀온 뒤 하려다 만 말이었음을 눈치챘다.

“작년에는 거기에 제법 놀라운 물품이 많이 나타나 화제가 되었던 모양인데, 이번에도 열릴 예정이라면 우리가 꼭 참여해야 할 것 같지 않나?”

“물건이 대량으로 움직일 테니 꼬리와 증거를 잡기 쉬워지겠군요.”

“그렇겠지.”

“하지만… 열려 할까요?”

타인 가에서 비밀 무역을 보호하고자 몸을 사리고 나그란의 별을 잡으려 하고 있는 이때, 과연 그런 행사가 다시 열릴 수 있을까? 유더의 생각을 읽은 듯 키시아르가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열도록 만들어야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