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터닝-349화 (349/805)

349화

프루엘레는 니폴렌에게 묻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신을 사이에 두고 전달해 달라고 말했다.

“좋네. 먼저 묻고 싶은 건 하나야. 정원에서 다른 이가 아닌 내 보좌에게 유독 관심을 보이고 다가오던데, 무슨 이유가 있었는지 궁금했거든.”

“알겠습니다. 니폴렌. 아까 저 사람에게 다가간 이유를 답해 줄 수 있겠어? 왜 그랬던 거니?”

프루엘레가 다정하게 묻자, 주변에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고요한 눈빛으로 땅만 쳐다보고 있던 아이가 비로소 고개를 조금 들었다. 투명한 암적색 눈동자가 유더를 흘긋 보고는 제 형 쪽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같은, 느낌, 들어서.”

“같은 느낌?”

“형, 나.”

니폴렌의 목소리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고 느렸다. 그러나 속삭임에 가까운 몇 마디만으로도 프루엘레는 충분히 뜻을 파악했는지 눈을 조금 크게 떴다.

“무슨 뜻인지 알겠나?”

“음, 아무래도 아일 경에게 다가간 이유는… 그에게서 저나 니폴렌과 비슷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동생에게 각성자의 기운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도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까지는 니폴렌이 그저 제가 자신과 비슷한 능력을 지녔기에 제 곁에서만 안도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것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 말이 거짓은 아니었던 듯, 프루엘레는 당혹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면 나는 왜 피했는지도 물어봐 주지 않겠나?내가 손을 내밀었을 때는 정색을 하고 피하던데 말이야.”

프루엘레는 다시 한번 동생에게 질문을 전달했다.

“니폴렌. 저분께는 나나 너와 같은 느낌이 느껴지지 않았어?”

니폴렌의 답은 아까보다 더욱 늦게 나왔다. 작은 입술을 꾹 다물고 고개를 저은 아이가 잠시 후 망설이듯 멈추었다가는 다시 끄덕였다.

“무슨 뜻입니까.”

“느껴지는지 아닌지 완전히 확신할 수 없었던 것 같아.”

유더의 질문에 프루엘레가 난감한 얼굴로 대답했다.

“각성자의 기운을 파악할 수 있다 해도 완전히 구분하는 정도는 아닐지도 모르겠어.”

‘……아니. 어쩌면 구분하는 수준을 넘어선 능력일지도 모르지.’

유더는 프루엘레에게 답하지 못할 말을 삼키며 니폴렌을 바라보았다. 프루엘레와 니폴렌은 모르고 있겠지만, 키시아르는 각성자의 힘 외에도 상상도 못할 만큼 강력한 다른 능력들을 더 감추고 있는 사람이었다. 유더조차 키시아르 본인이 직접 고백하고 보여 주기 전까지는 파악하지 못했던 그 힘들을 니폴렌이 처음부터 파악했다면, 각성자의 힘만 가진 이들과는 비슷한 듯 다른 존재라 느껴 경계한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키시아르를 흘긋 돌아보자 그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을 하던 중이었는지 눈가에 서린 흥미로움이 더욱 날카롭게 짙어진 상태였다.

‘아무래도 니폴렌은 변신 능력뿐만 아니라 힘을 감지하는 계열에 가까운 다른 능력도 함께 각성한 것 같군.’

유더 또한 같은 각성자들이 능력을 발휘했을 때 감지하는 감각이 탁월한 편이었으나, 그것은 오랫동안 수많은 각성자들을 만나며 축적된 경험과 기억을 토대로 연마한 것이었다. 아예 처음부터 감지 능력을 타고난 이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극도로 희귀한 능력을 여기서 만날 줄이야. 프루엘레와 더불어 엄청난 인재가 또 숨어 있었군.’

지금은 자신이 무슨 능력을 지녔는지조차 잘 모를 테니 모든 게 혼란스럽고 두렵겠지만, 적어도 같은 능력을 지닌 각성자를 상대로는 경계가 어느 정도 풀리는 듯해 다행이었다.

‘마병단에서 맡아도 큰 문제는 없겠어. 내 생각대로라면 오히려 도움이 되겠지.’

“…좋아. 궁금증은 풀렸네. 답해 줘서 고맙다고 전해 주게.”

“감사합니다.”

“동생은 언제부터 마병단에서 보호하면 되겠나?”

“방문한 목적은 이미 이루었으니,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를 모두 파악하고 전달드리는 대로 수도로 돌아가 동생들과 이번 일에 대한 의논을 할 생각입니다. 그때 니폴렌을 두고 갈 테니 부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아.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자주 얼굴을 보며 함께 움직이도록 하지. 다시 연락하겠네.”

그들이 방을 나서기 전 니폴렌은 또다시 고양이로 변신해 버렸다. 방석에 얌전히 앉아 있는 고양이를 뒤로한 채 방을 나선 키시아르는 감시의 눈을 번뜩이는 하인들을 물리고 산책을 마저 하겠다는 말과 함께 본채를 벗어났다.

“니폴렌 반 타인, 예상보다 흥미롭더군.”

“예. 아무래도 변신 능력만 지닌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내 생각도 그러해.”

유더의 대답에 흔쾌히 대답한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떴다.

“예쁜 고양이를 돌보게 되었으니 담당을 하나 정해야겠지. 누가 적당할지 생각해 봐야겠어.”

산책을 빙자한 의논을 끝내고 별채로 돌아간 뒤 그들은 보고를 위하여 기다리고 있던 나단 주커만을 만났다. 줄곧 빌름 남작의 기사들을 뒤쫓느라 자리를 비웠던 그는 명목상으로는 키시아르의 특명을 받아 어떤 물건을 사러 다녀온 것으로 되어 있었다.

“명하셨던 타이누의 명물 빵집에서 사 온 특별 제작 과일 쿠키입니다.”

“좋아. 드디어 손에 넣어 기분이 좋군. 잘했다, 나단.”

모처럼 일을 열심히 했기 때문인지 전과 같은 울적한 기색이 사라진 사내가 키시아르에게 종이 가방 몇 개를 대충 건네고는 곧바로 보고를 시작했다.

“타이누 순찰을 강화한 기사들과 경비대들의 움직임을 쫓으며 파악한 결과, 유난히 인원이 많이 보강된 장소 몇 곳을 골라냈습니다.”

“그게 어디지?”

“성문이 있는 외곽 부근에 위치한 붉은사슴 상단의 창고들, 그리고 평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술집이 밀집한 거리입니다.”

“유흥가와 창고라. 듣기만 해도 뭔가 숨기기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드는 곳들인데. 그게 끝인가?”

“펠레타 기사단이 교대로 계속해서 그들을 뒤쫓고 있습니다만, 전체 움직임의 변화 외에는 아직까지 꼬리를 잡기가 쉽지 않습니다. 창고 쪽은 감시가 드세고, 유흥가 쪽은 반대로 지나치게 허수가 많습니다.”

“뭔가 더 알아낸다면 바로 보고하도록.”

나단 주커만이 물러난 뒤 키시아르는 여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을 에버를 불렀다.

“산책을 끝내고 돌아왔지만 아직도 오늘 하루가 다 가려면 멀었더군. 자네가 말했던 핀나드 광장이라는 곳이 어디인지 안내를 받아 볼까 하는데, 어떤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제대로 모시겠어요.”

에버가 눈을 빛내며 씩 웃었다.

이전에는 나단 주커만과 탔던 마차에 이번에는 에버와 핀, 에문이 함께 탔다. 에버는 어제도 그들과 함께 광장에 갔었다고 말하며 가볍게 투덜거렸다.

“치안 관리대는 핀나드 광장 옆에 있습니다. 저희 셋이 갔더니, 처음에는 마병단원이란 걸 절대 믿어 주려 하지 않더군요. 단장님께서 써 주신 쪽지가 없었다면 들여보내 주지 않았을 거예요.”

‘그야 그랬겠지.’

겉보기에는 여자, 아이, 그리고 깡마르고 평범한 청년일 뿐이니 대단히 우습게 보였겠지만 그들의 진면목은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에버와 핀 엘더는 혼자 있어도 다른 단원들의 몇 배는 되는 파괴적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였고 에문은 어둠 속에 몸을 감추고 남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은밀하고도 관찰력 좋은 능력자였다.

“그곳을 관리하는 타이누의 기사단장은 제이머 필이란 자인데, 의욕이라곤 하나도 없는 중년 사내입니다. 단장님의 명을 받아 이번 수사와 관련된 의견을 얻고 싶다고 말했는데 몹시 귀찮아하더군요. 그래도 감옥을 살펴볼 때 따라오지 않아 준 덕에 편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견을 말하기는 하던가?”

“빌름 남작의 명에 따라 타이누의 경비를 강화하기는 했지만 그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단장님께서 헛것을 본 게 확실하다 여기는 듯했습니다.”

에버가 찡그린 얼굴로 작게 중얼거렸다. 유더는 아직 만나지도 않은 제이머 필이란 기사의 이름을 잘 기억해 두기로 마음먹었다.

“자신들의 동료가 셋이나 죽었는데도 그 정도 태도라니, 동료애는 그다지 없었나 보군.”

“타이누 기사단은 처음부터 그곳에 입단하여 기사가 된 이들이 많지 않고, 다른 기사단에서 지내다 다른 이유로 옮겨 온 이들이 많다고 하더군요. 용병이나 다름없는 처지라 스스로 자학하는 대화를 나누는 걸 들었습니다.”

이번에 대답한 이는 에버가 아닌 에문이었다.

“그래? 과연 돈을 아껴야 할 타인 공작가의 기사들답군. 감옥에서는 어떻던가.”

“감옥의 규모는 생각보다 무척 컸습니다. 타이누 이외에도 주변 마을에서 보낸 범죄자들을 모두 가두고 처벌을 내리는 곳이다 보니 오가는 이들도 많더군요.”

에버는 감옥의 규모가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있을 만큼 거대하며, 면회를 위해 방문하는 이들도 아주 많았다고 말했다. 생각만큼 폐쇄된 분위기는 아닌 듯했다.

“그곳을 지나다가 지하 1층 구석 쪽에서 눈에 띄는 이들을 봤습니다. 경비병에게 물어 보니 그들이 바로 얼마 전 다른 마을에서 잡혀 온 기억 잃은 걸인들이라 하더군요. 그런데…….”

에버의 눈에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에문과 핀이 그들 중 몇 명의 얼굴을 알아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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