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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345화 (345/805)

345화

“보좌는 어떻게 생각하지?”

여태 묵묵히 듣고 있던 유더에게 갑자기 공이 넘어가자 프루엘레의 시선 또한 그에게 향했다. 간절함과 놀라움을 동시에 머금은 눈빛을 보며 유더는 약간의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어차피 키시아르의 뜻은 이미 거의 정해진 게 분명한데, 굳이 제 의견을 공개적으로 들어야 할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제가 의견을 낼 만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아무거나 좋으니 말해 보게. 이야기를 듣는 동안 궁금했던 부분이든, 뭐든 있을 것 아닌가.”

아무래도 키시아르는 어떤 말이라도 듣기 전에는 그냥 놓아줄 기세가 아니었다. 유더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을 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뭐든 내가 답할 수 있는 거라면.”

프루엘레가 재빨리 대답했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타인 공작께서는 본래부터 투자에 관심을 두셨던 분은 아닌 듯 들렸습니다만, 제가 이해한 바가 맞는지 궁금합니다.”

“아버지는……. 본래 도박을 좋아하시기는 했다고 알고 있어.”

프루엘레가 무언가를 떠올리듯 시선을 먼 곳에 둔 채 답했다.

“경마, 마상 시합, 귀족들의 모임에서 진행되는 각종 게임 내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취미에 푹 빠져 계셨지. 아직도 그런 곳에 자주 다니시기는 하지만, 지금과 같이 본격적으로 투자에 빠져든 건 몇 년 전 남부의 무역 관련 투자가 크게 성공하면서부터야.”

“남국과 제국을 잇는 해상 무역이 크게 성공했던 때군.”

키시아르가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 중얼거리자 프루엘레가 ‘맞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때부터 타인 가에 타국의 상인들이 자주 드나들기 시작했지요. 아버지는 그들이 주는 정보와 조언을 몹시 신뢰합니다.”

“가문의 이권까지 나누어 줄 정도라고 했던가.”

“예. 현재 진행 중인 투자들에도 그들의 입김이 다수 작용했다 알고 있습니다.”

유더는 이전 생의 기억을 돌이켜 보았다. 카치안 황제가 즉위한 이래 제국은 한동안 이전보다 훨씬 활발하게 타국과 교역을 이어나갔다. 카치안은 몬스터 이상발생 사건으로 괴멸한 서부를 회복시키고 제국의 변화를 꾀한다는 명목으로 상업과 관련한 정책에 힘을 쏟았는데, 이전 황실의 정책과 완전히 반대되는 새로운 방향이라는 평을 받았다. 유더는 카치안 황제가 그 평을 몹시 마음에 들어 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었다.

‘만약 그 조언을 준 게 타인 공작 측이었다면… 가문이 망하지 않은 이유는 대충 알겠군.’

그 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들어간 돈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그러나 야심차게 시작한 정책의 끝은 그리 좋지 못했다. 충분한 재해 복구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카치안의 정책이 별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탓이었다. 그 시기 돈을 번 건 오직 귀족을 비롯한 일부뿐이었고, 서부의 무너진 마을과 삼림은 오랫동안 제대로 회복되지 못했다. 카치안 황제를 찬양하는 이들과 아닌 이들의 명암이 극명하게 갈리자 유더는 ‘비밀 임무’을 받으러 황궁에 전보다 자주 가야 했다. 모든 게 어지러웠던 시기였다…….

유더는 불유쾌한 기억을 지우며 깊이 숨을 내쉬었다. 프루엘레가 때를 맞추어 더 궁금한 것은 없느냐고 물었기에 고개를 젓고 답해 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만 건넸다.

키시아르는 프루엘레의 말을 들은 이후부터 무언가 깊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금빛 그림자를 길게 드리운 속눈썹 아래로 어떤 기상천외한 생각들이 지나가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유더는 그가 상념에서 깨어나 입을 열 때까지 묵묵히 기다렸다.

“그래. 그러면… 이제 선택할 시간이 온 것 같군.”

키시아르의 말에 프루엘레가 급격히 긴장하기 시작했다.

“타인 공자.”

“네.”

“아페토 3공자 레블린과 마찬가지로 지금 당장 자네를 단원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어. 하지만… 정식으로 다음 모집이 있기 전까지 임시 단원의 자격을 부여하는 건 가능하지.”

첫 시작 부분에서 딱딱하게 굳어 있던 프루엘레의 눈동자가 마지막까지 들은 순간 파르르 떨렸다. 그는 제가 이해한 뜻이 맞는지 묻기 위해 느리게 입을 열었다.

“그 말씀은…….”

“거래가 성립되었다는 소리야.”

“아…….”

그제야 프루엘레의 얼굴이 그간 숨겨왔을 다양한 감정을 모조리 드러냈다. 키시아르는 계속해서 매끄럽게 말을 이어나갔다.

“황제 폐하와 신의 이름으로 자네와 동생들의 안전과 보호를 약속하겠다 맹세하지. 그러기 위해서 갈 길이 꽤 험난하기는 하겠지만, 능력을 숨기기 힘들어한다는 막내는 원한다면 마병단 내에서 미리 보호해줄 수 있네. 그렇게 하기를 원하나?”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그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앉아 키시아르의 옷자락 끝에 입을 맞추었다.

“예. 부디… 부디 부탁드립니다. 자비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유더는 몹시 묘한 기분을 느꼈다. 이전 생의 프루엘레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여동생 쪽이 후계자가 되었으니 그가 각성자라는 건 어떤 식으로든 탄로 났었을 터였다. 동생들을 지키기 위하여 스스로 그러했든, 타의로 탄로 났든 상관없이 끝이 좋지는 못했을 이가 이번 생에는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으리라는 사실이 새삼 크게 다가왔다.

이전 생에서 소리소문 없이 죽었던 레블린이 살아남아 당당히 재판장에 설 수 있었기 때문에 또 다른 이가 지금 이곳에 서 있다. 용기를 내어 나선 이들을 보호하며 더 큰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건 모두 키시아르 라 오르가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 있기 때문이었다.

유더는 프루엘레에게 손짓을 하여 일으켜 세우는 키시아르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깊이 숨을 내쉬는 동안 심장이 계속해서 크게 뛰었다.

“동생들은 지금 어디에 있지?”

“다른 아이들은 수도에 있습니다만, 니폴렌만은… 사실 저와 함께 왔습니다.”

프루엘레가 약간 민망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말에 놀란 건 유더뿐만이 아니었다.

“함께 왔다고? 그런 말은 못 들었는데?”

“니폴렌이 여기 있다는 사실은 빌름 남작도 모릅니다. 니폴렌은 현재 능력을 사용한 상태라서 다른 이들의 눈에는 잘 띄지 않습니다.”

“능력이 무엇이기에?”

키시아르가 흥미로운 기색을 감추지 않은 채 묻자 프루엘레가 순순히 대답했다.

“저와 비슷한 능력입니다만……. 차이가 좀 있습니다. 그 아이는 특정한 동물… 예전에 길렀던 고양이와 같은 모습으로만 변신이 가능합니다.”

비슷한 능력을 지닌 탓인지, 니폴렌은 프루엘레의 곁에 있을 때만 안정을 되찾았고 이외에는 능력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했다. 때문에 프루엘레는 고양이로 변한 동생을 데리고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그 아이는 능력을 각성한 뒤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는 쪽을 더 힘들어하더군요. 저와 있을 때는 비슷한 능력을 지닌 탓인지 안정을 되찾는 게 빠르지만 다른 이들과 있을 때는 조절을 제대로 못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병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변신 능력을 지닌 이들 중에서도 몹시 특이한 경우였다. 고양이로 있는 쪽을 더 편안해하는 사람이라면 수도에 있기보다는 이곳에 오는 쪽이 더 낫다 여겼을 터였다.

‘이렇다 할 공격능력을 지닌 것도 아니고, 오직 고양이로만 변할 수 있다면 형제의 입장에서 그리 걱정한 것도 이해가 되기는 하는군.’

키시아르 또한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렇다면 내일 바로 만나보았으면 좋겠군. 빠르면 빠를수록 자네의 마음도 편해질 것 같으니까.”

“그리해 주신다면 정말 감사하지요.”

“내일은 내가 찾아갈 테니 기다리고 있게. 그때까지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타인 공작가의 ‘비밀 무역’과 관련된 건을 자네도 알아보아 주었으면 좋겠군.”

그것은 한 배를 탄 사이가 된 이를 향한 키시아르의 첫 부탁이자 시험이었다. 의미를 알아차린 듯 프루엘레의 눈빛 사이로 날카로운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

“대삼림에서 전하가 마병단과 함께 저희 가문 소속 기사 3인이 살해당한 정황을 발견하셨다는 소식은 들었습니다. 그에 대한 부분을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빌름 남작은 그들이 대삼림에 들어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전혀 모르는 듯 말했지만, 나는 아닐 거라 생각하고 있거든.”

아닐 거라 생각하는 정도를 넘어 이미 확신을 가지고 증거를 수집하는 중이었지만, 그 부분을 언급하지 않은 건 프루엘레의 능력을 보기 위해서일 터였다. 프루엘레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한 눈빛으로 침묵하다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히 인사를 했다.

“알겠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겠군요. 기대해 주신 바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며 내일 찾아오시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유더는 들어올 때와 달리 한결 기쁜 얼굴을 한 프루엘레를 숙소 문 밖으로 배웅했다. 그는 상기된 얼굴로 유더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오늘은 정말 고마웠어. 당신이 아니었다면 공작 전하께서 이리 쉽게 이야기를 들어주지는 않으셨을 거야.”

“저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습니다.”

“그럴 리가. 당신을 먼저 보았기 때문에 펠레타 공작 전하께서 어떤 분이실지 짐작을 넘어선 확신을 가질 수 있었는걸.”

작게 웃은 뒤 그는 마지막으로 의미심장한 말 한 마디를 남겼다.

“역시 직접 보기를 잘 했어. 한 번도 내일이 기대된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처음으로 기대가 돼.”

그는 처음 들어왔을 때와 같은 하인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별채를 빠져나갔다. 유더는 그가 본채로 잘 돌아가는지 확인한 뒤 도로 숙소로 돌아왔다. 키시아르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불을 피우지 않은 벽난로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단장님? 피곤하십니까.”

“아니. 잠깐 생각을 하고 있었네.”

키시아르가 그제야 고개를 들며 미소를 흘렸다.

“서부에서는 마석 난로를 잘 쓰지 않는다더니 정말 그렇더군. 이 난로도 마석용이 아니라 옛 나무 벽난로를 그대로 남겨둔 거야.”

“……그랬군요.”

그동안 살면서 난로에 별다른 신경을 써 본 적이 없었기에 유더의 대답은 평소보다 조금 늦었다. 그러고 보니 보통은 한편에 따로 가져다 두는 마석 난로가 서부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았던 듯도 했다. 마석 난로를 방에서 가장 잘 보이는 중앙에 두어 언제나 마석을 태우고 있던 키시아르의 단장실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혹시 마석 난로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났었는지 알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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