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터닝-344화 (344/805)

344화

“과연. 보좌에게 들은 대로 흥미로운 능력을 지녔군.”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와서 거래를 청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군.”

프루엘레는 본론을 길게 끌지 않았다. 본채에서 몰래 빠져나왔기에 되도록 빨리 돌아가야 하는 탓이었다.

“보좌께 이미 들으셨겠습니다만, 저는 가문을 빠져나가 보호를 약속받기를 원했습니다. 다만, 그것이 그저 저 혼자 살고자 함은 아닙니다. 저는…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를 밀어내고 제 동생들의 미래를 지키고 싶어 이곳에 온 것입니다.”

“동생?”

키시아르의 반문에 프루엘레의 입술 끝이 딱딱하게 굳었다.

“대외적으로 제 동생은 셋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만, 사실은 한 명이 더 있어 모두 다섯 남매입니다. 둘째 프리실라와 셋째 피리암, 넷째 필레반은 저보다 훨씬 명석하고 후계가 되기에 걸맞은 아이들이지만, 막내 니폴렌은… 가문 특유의 질병을 타고나 다른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조금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존재를 감추었군.”

평이하게 내뱉은 키시아르의 말에 프루엘레가 어두운 눈빛으로 수긍했다.

“네. 부모님은 니폴렌을 낳은 이후 여태까지 한 번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이제 와서는 그 아이를 기억하고 계시기는 할지 의문이지요. 사실 그분들께는 저나 다른 동생들 또한 거기서 특별히 다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여겼습니다.”

키시아르가 말했던 대로 타인 공작은 자식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못해 아이의 존재 자체를 귀찮아했다.

때문에 프루엘레와 동생들은 방치당하는 귀족 자제들이 으레 그렇듯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와 따로 떨어져 요양을 핑계로 별장이나 타 지방을 전전하며 자라났다. 그들을 돌보고 교육하는 이들은 쓸데없는 정을 붙이면 안 된다는 이유로 거의 1년이 멀다 하고 바뀌었다. 교류를 할 또래의 친척도, 친구도 적절한 시기에 사귀지 못했으니 사교계 데뷔 이후로도 이렇다 할 인맥이나 흥미를 만들지 못한 채 겉돌았다.

다만 특이사항이 있다면 내내 다섯 남매가 함께 지낸 탓에 남매끼리는 사이가 몹시 좋았다는 것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제가 이 가문을 건사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건 계속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때가 오면 둘째 프리실라를 후계로 추천하고 저는 나머지 동생들과 조용히 지낼 생각이었지요.”

그러나 그 작은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할 위기에 놓였다. 아버지 타인 공작이 도박적인 투자에 급격히 빠져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언젠가 가문을 물려받을 저희들과도 가문 내의 정보를 잘 공유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더니 어느 날 갑자기 저를 불러서는, 제가 다 컸으니 이제 나머지 여분의 자식들은 모두 타국으로 보내야 할 것 같다고 말하시더군요.”

그때쯤 타인 공작은 타국에 온갖 투자를 한 결과로 대부분의 자산이 묶인 상태였다. 거대한 돈이 오가는 시장에서 더한 이권을 얻기 위해, 그는 타국의 세력가들에게 기꺼이 자식들을 내놓기로 마음먹었다. 좋은 말로 하자면 혼인을 통한 결합이겠지만 제국의 공작이란 이가 택하기에는 너무나 천박하고도 멍청한 거래일 따름이었다.

“그때 알았습니다. 아버지에게 있어서는 가문을 물려주는 일조차도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타인 공작에게 자식이란 그저 제가 죽은 뒤 남은 것을 가져갈 쓰레기 청소부 같은 타인에 불과했다. 타인 가의 모든 것은 죽을 때까지 그의 손안에 있어야 했다. 가문을 이을 이가 타인 가의 혈통이기만 하다면 꼭 자신의 피를 이은 이가 아니라도 그는 상관없었다.

프루엘레 또한 그런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인지 부모의 무관심에 이렇다 할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다. 그때까지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동생들뿐이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맞대응하는 건 자신의 손해일 뿐이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뒤늦게 1공자라는 이름값을 사용하며 힘들게 알아본 결과 가문의 재정 상황은 그야말로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은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그저 선대로부터 쌓아온 권력과 명예, 역사가 가져다준 드넓은 인맥과 이름값이 위태위태한 둑을 겉에서 잘도 가리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프루엘레는 언제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가문이라는 짐을 감당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따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가문 내에서 딱히 세력을 구축하지도, 힘을 기르지도 못한 그가 선택 가능한 길은 한없이 좁을 따름이었다.

“제가 각성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힌다면, 아버지는 저만 남기고 나머지 동생들을 보내겠다는 뜻을 이룰 수 없게 될 겁니다. 어쨌든 공식적으로 후계를 정해 두기는 해야 주변에서 시끄럽지 않을 테니 잠시 유예하게 되겠지요. 저는 그 틈을 타 욕심에 눈이 멀어 모든 것을 파멸시키려 하는 아버지를 끌어내리고 싶습니다.”

“어떻게?”

키시아르가 물었다. 프루엘레의 암적색 눈동자가 어두워졌다.

“저는… 아페토 3공자의 일을 통해 황제 폐하와 펠레타 공작 전하께서 원하시는 바가 저와 같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타인 가는 아페토와 달리 치부를 감추는 데 능숙하고, 제국 외부의 인물들도 다수 엮여 있어 분명 내부의 조력자가 필요하실 겁니다. 그 역할을 제가 하겠습니다.”

“재미있군. 하지만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1공자가 내부의 조력자가 된다 한들, 무엇을 할 수 있지? 각성자가 되었다고 밝히면 그조차도 잃을지 모르는데 말이야.”

키시아르의 말은 냉혹하면서도 현실을 찔렀다. 그러나 프루엘레는 그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 입술만 한 번 지그시 깨물고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오히려 누구도 경계하지 않겠지요. 타인 가 내부는 현재 3개의 세력으로 나뉘어 있는데, 잘만 이용한다면 저희를 지지해 줄 세력을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동생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3개의 세력이라?”

“첫째는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지지하고 돕는 세력입니다. 빌름 남작을 비롯한 방계 가문 일부와 함께 아버지와 거래를 하며 가문의 이권과 중요한 일을 차지한 타국의 인물들이 포함되겠지요.”

프루엘레의 목소리가 냉정하게 계속해서 이어졌다.

“둘째는 가문 내 다수를 차지하는 세력으로, 어느 쪽에든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 이들입니다. 황궁기사단장으로 계시는 테오라도 당숙이 대표적으로, 상황에 따라서는 적도 아군도 될 수 있는 분입니다. 마지막 세력은 현 상황을 어느 정도 눈치채고 아버지가 하시는 일에 반대하는 이들입니다. 오랫동안 가문과 함께해 온 가신들과 방계 가문 상당수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동안 가문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치고 프루엘레의 상황 판단은 몹시 객관적이었다. 키시아르 또한 그렇게 생각한 듯 말없이 입술 끝을 부드럽게 올렸다.

“이리 말씀드린다 해도 공작 전하께서 보시기에는 저 또한 그런 아버지의 자식일 뿐이겠지요. 동기도, 바라는 뜻도 모두 수상하고 얄팍하기 짝이 없다 생각하실 겁니다. 하지만…… 타인 가의 사람은 인생에 단 하나 소중한 것을 찾아내면 결코 그것을 놓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말을 끝낸 프루엘레가 고개를 숙였다. 키시아르는 붉은 머리칼을 내려다보며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자네에게 중요한 것은 동생들이라고 말했지. 동생들이 그토록 소중한가?”

“제 목숨보다도 소중합니다.”

프루엘레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사실……. 저희 중에 각성한 이가 저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지?”

“아까 말씀드린 막내 니폴렌도 각성자입니다. 그 아이는 저보다 능력 숨기는 것을 더 힘들어해서, 솔직히 언제까지 감출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여…… 제가 입단을 원한 것은 그 아이를 위함이기도 합니다.”

키시아르가 테이블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유더는 그것이 그가 생각에 잠겼을 때 나오는 습관적인 행동임을 알았다.

“지금 준 정보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기는 하지만, 최악의 경우 자네는 그저 이용당하기만 하고 동생들을 지키지는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나?”

“어느 쪽이든 최악으로 다다른다면 결과는 똑같을 겁니다. 동생들을 잃고 저 혼자 어떻게든 살아남더라도 얻는 건 아버지가 망가뜨린 가문뿐일 것이고, 모두 함께 도망치는 길은 요원하지요. 하지만 아페토의 3공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음에도 아직 목숨을 잃지도, 불행해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쪽이 그나마 나은 기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비로소 키시아르가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추었다. 속내를 감추듯 웃음기를 띠고 있던 눈빛이 조금 더 진하게 변했다.

“아페토 3공자의 일이 자네에게 굉장히 깊은 인상을 준 모양이군.”

“저는 그 이후 일어난 모든 재판에 참석하여 결과를 지켜보았습니다.”

프루엘레가 담담히 고백을 했다.

“아페토 3공자가 재판정에 나서서 했던 말도 모두 들었습니다. 그것이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던 제게 어떤 희망으로 다가왔었는지, 전하께서는 모르실 것입니다.”

“희망이라.”

프루엘레의 말을 따라하듯 중얼거린 뒤 키시아르는 유더를 향하여 시선을 돌렸다.

“보좌는 어떻게 생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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