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화
‘또 열이 나나.’
욕실로 향하며 만져 본 목이 언뜻 뜨거운 듯도 했지만 스스로는 알 수 없었다.
이 열기는 이논이 준 약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까의 열기도 정말 그러했을까?
***
눈앞이 칠흑같이 어두웠다.
몽롱한 어둠 속에서 유더는 문득 제가 엎드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잘 때는 결코 엎드려 자는 법이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막 몸을 비틀어 일어나려 한 순간, 등 뒤에서 누군가 허리를 짓눌러 그 움직임을 막았다.
무거운 팔을 움직여 등 뒤를 향해 휘젓자, 이번에는 그 손목도 붙잡혀 도로 내리눌렸다. 동시에 누워 있던 침대가 출렁이며 어디선가 생경한 자극을 전달했다. 머리가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하기도 전에, 신경은 그 자극의 출처를 따라 정신없이 흘러 내려갔다.
허리보다 안쪽, 그보다 더 아래, 그리고 깊고 깊은 어딘가.
그곳에서부터 흘러들어오는 강렬한 충격 속에는 배 속을 메운 뜨거움이 한 몸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심장이 순식간에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쿵쿵 뛰며 혈액을 미친 듯 퍼올리기 시작했다. 몸 안이 믿을 수 없을 만큼 벌어져 메워진 감각에 놀라 벌린 입술 사이로 숨 가쁜 호흡이 흘러나갔다.
‘아…….’
그제야 그는 이 상황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손목을 잡아 내리누른 차가운 가죽 장갑이, 배 속을 한계까지 벌리며 들어와 있는 것이 제 존재를 모를 수 없을 만큼 확실하게 알리고 있는 중이었다.
키시아르.
그 이름을 떠올림과 동시에 전신에서 미끈미끈하게 솟아오른 땀이 느껴졌다. 뜨거운 열기가 머리를 가득 메워 눈앞을 도로 몽롱하게 만들었다. 지독하게 자극적인 향 때문에 온몸이 절로 곤두섰다.
배 안쪽에 힘이 들어가자 안을 메우고 있던 것이 반응하듯 크게 움직였다. 자연스럽고도 익숙하게 가장 깊은 곳만을 파고들었다 빠져나가는 움직임에 입 밖으로 또다시 소리가 새었다. 입술을 깨물어 막았으나 별 소용은 없었다.
그리고 그 움직임은 이내 계속해서 이어졌다.
느끼는 감각 이외에는 모든 것이 어둠에 먹혀 사라진 듯한 세상에서, 짐승처럼 헐떡이는 제 숨결과 등 뒤에 겹친 타인의 호흡만이 존재하는 유일한 생명처럼 여겨졌다. 쾌감은 날카로운 칼과 같다가도 때로는 진득한 늪처럼 깊었다. 뼈가 없는 바다의 짐승에게 온몸이 감겨 지옥으로 끌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가 간신히 발버둥 쳐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숨을 토해내기를 끝없이 반복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자극은 도무지 버틸 수 없다고 날카롭게 소리치며 끊임없이 도피하려는 머리와 달리, 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등 뒤에서 뒤흔드는 움직임에 감겨들었다. 살결이 자극을 환영하며 달콤한 비명을 질렀다.
도무지 무엇을 바라는지 알 수 없는 혼란 속에서, 누운 곳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머리가 멍해질수록 손에서 힘이 빠져나갔지만 유더의 손목을 붙잡은 팔에서는 조금도 힘이 빠지지 않았다.
숨이 빨라질수록 차가웠던 가죽에 체온이 묻어 점점 뜨거워지는 감각에 진저리를 쳤다. 부서지도록 이를 악물어도 흘러나가는 소리를 막을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는 낯설었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는 저와 구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모루 위에서 수없이 두들겨져 끝내 하나가 되고야 마는 쇳물처럼, 제 모든 것이 마구 두들겨지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날 수 없이 뒤섞이고 엮여버린 채 감추고 싶었던 모든 것들이 스스로 벌어져 자신이 있는 곳을 드러내려 했다.
두들겨진다.
드러난다.
거부. 혹은 환희. 혹은 무엇.
이성이 서서히 마비되며 웅크리던 몸에 힘이 풀렸다. 허리를 누르던 손이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샌가 가슴으로 파고든 상태였다. 시트에 반쯤 묻힌 뺨 위로 땀인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젖은 액체가 열기를 품고 두드려 흩어졌다. 도무지 버틸 수가 없어 유더는 제 몸을 끌어안은 손을 붙잡았다.
무언가를 애원하듯 떨며 할퀴자 버티지 못한 장갑이 반쯤 벗겨졌다. 드러난 손등은 유더의 것보다 훨씬 길고 컸지만 뼈가 심하게 불거져 살집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 손이 방향을 바꾸어 유더의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도록 단단히 겹쳐 붙잡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체온의 일부가 느껴진 순간, 전율이 뇌를 꿰뚫었다.
그와 동시에 마침내 뱃속을 찌르던 칼날도 한계를 넘었다.
뒤통수가 선득해지는 감각에 눈가가 저절로 젖어 들었다. 유더는 전신을 직격하는 그 엄청난 감각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젖혔다. 고통은 죽음과 같은 환희를 선사했다. 머릿속이 희어지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이곳은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긴 순간인 듯도 했다.
두 개의 심장이 조금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뛰었다. 셀 수 없이 많고 가느다란 무언가가 전신을 칭칭 얽매 감싸는 듯한 전율할 감각에 유더는 얼마간 정신을 잃었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에도 몸 안쪽은 여전히 벌어진 상태였다. 몸 안이 끔찍하게 저린 쾌감과 함께 눈앞이 가물거렸다.
배 안을 적시고 다리 사이까지 질척하게 물들인 액체의 감각이 멀게 느껴졌다. 숨을 몰아쉬며 멍하니 늘어져 있자 다가온 손가락이 벌어진 입술을 조심스레 더듬었다. 이런 상황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느리디느린 접촉이었다.
유더는 아무리 피하려 해도 끊임없이 달라붙는 그것이 기어이 제 입술 안쪽까지 다가왔을 때, 남은 힘을 그러모아 물어뜯었다. 손가락은 잠시 멈칫했지만 그 맥없는 공격을 피하지는 않았다. 결국 기력이 모두 빠져 턱에서 힘이 빠져나가고 나서야 손가락도 멀어졌다.
죽을 것처럼 힘이 들었다.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 뛰었고, 폐는 한계까지 부풀고 꺼지기를 반복하느라 쉴 새가 없었다. 그대로 눈을 감고 숨을 몰아쉬자 겹쳐 있던 몸이 그제야 조금씩 빠져나갔다.
‘…….’
아직 꺼지지 않은 것이 천천히 빠져나갈 때마다 속을 가득 메웠던 것들이 속절없이 함께 흘러나와 다리 사이를 적셨다. 몸을 떨며 이를 악물자 빠져나가던 움직임이 잠시 멈추었다.
그 순간을.
그 망설임의 순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유더는 이를 악물며 등 뒤로 손을 뻗었다. 손끝에 닿은 무언가를 붙잡아 거칠게 당기자 흔들리고 겹치는 움직임과 함께 반쯤 빠져나갔던 것이 다시 미끄러져 내부를 찔렀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두 육체가 시트 위로 다시 엉겨 흐드러졌다.
유더는 등 뒤로 겹쳐지는 무게를 느끼며 제 입술이 토해내는 소리를 들었다.
좋아. 더.
***
“…….”
아침부터 기분이 최악이었다.
유더는 눈을 뜬 채 멍하니 천장을 노려보았다. 이불을 들추지 않아도 지금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옷을 적시며 일어나던 아주 먼 옛날의 산골 꼬마도 아닌데, 이 나이에 앞을 세운 채 일어나다니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당혹스럽기 그지없어 도무지 일어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무슨 이런 꿈을.’
이전 생의 꿈은 여러 번 꾸었지만, 이렇게 적나라하게 관계하는 꿈을 꾼 건 처음이었다. 언제 적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그저 말 그대로 하고 또 하는 꿈이었다.
‘……이전 생의 기억이 아닐 거라 믿고 싶은 건 처음이다.’
지겨울 정도로 했다는 기억은 있지만, 그것을 별로 기꺼워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꿈은 전혀 달랐다. 마지막으로 머리에 남은 제 목소리가 뇌리에 끈적하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옆을 보니 키시아르는 이미 일어났는지 자리에 없었다. 그가 자는 모습도 보지 못했는데, 일어나는 모습도 못 보았다는 건 여러모로 자존심이 조금 상했지만 지금은 다행인 듯도 했다.
슬쩍 손을 들어 냄새를 맡아 보자 손목 안쪽에서 희미하게 평소보다 짙은 살 냄새가 났다. 발정기가 다가오는 낌새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뜨겁기는 했다.
‘이것도 이논이 준 약 때문이라면 대체 뭐라고 해야 하는 거지.’
유더는 한숨을 내쉬며 오랫동안 몸을 가라앉힌 뒤에야 자리에서 다시 일어났다. 그때쯤 새 옷을 입고 물기를 머금은 머리로 나타난 키시아르가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일어났나?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군.”
“……예.”
이런 상황에서 가장 마주치고 싶지 않은 얼굴을 제일 먼저 마주치는 것도 곤욕이었다.
“오늘은… 어제 말씀하신 대로 빌름 남작이 보낸 기사들의 흔적을 쫓으실 겁니까?”
“그건 나단이 할 일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