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터닝-336화 (336/805)
  • 336화

    “그래도 크게 위험한 건 아니야.”

    “…….”

    유더는 잠시 그것을 내려다보다 곧바로 뚜껑을 열어 마셨다. 한 모금 정도밖에 안 되는 약이라 곧바로 큰 변화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리고 효과가 없거나 적을 수도 있으니까, 그… 단장이 여기까지 데려온 그거. 나도 좀 더 살펴보게 해 주었으면 좋겠어.”

    “몬스터?”

    “그래. 그거.”

    유더는 이곳에 들어오면서 키시아르가 나단 주커만에게 맡겼던 페투아멧의 우리를 생각했다. 페투아멧이 살아서 여기까지 왔다는 걸 알고 있는 이는 극소수였는데, 이논과 루산은 의료를 맡았기에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루산은 작은 몬스터가 유더에게 반응을 보였다는 말에 질겁했지만 이논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거기서 무언가 힌트를 얻은 모양이었다.

    “위험할 수도 있는데.”

    “그 작은 놈 따위에 내가 위험할 걸 걱정하느니, 네놈 몸이 점점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걱정하는 쪽이 낫지 않겠어? 대체 왜 이 걱정은 네가 아니라 매번 내가 하고 있는 건데? 네 눈이라도 빨리 나아야 나도 수도에 돌아갈 것 아니야.”

    걱정을 했더니 갑작스레 역정을 내기 시작한 이논 때문에 유더는 어쩔 수 없이 일단 알겠다고 답해 두었다.

    “알겠어. 단장님께 말해 둘게.”

    “너, 대충 나았다고 멀쩡하다 생각하지 마. 네 안엔 지금 지나치게 다양한 기운이 뒤섞여 있어. 반점을 만들어 냈던 순수한 독성이 어느 쪽으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힘도 함부로 쓰지 마.”

    “……전부터 궁금했었는데, 그런 건 어떻게 알 수 있어? 눈에 보여?”

    “보인다고 해야 하나…. 잠깐만. 화제 돌리지 마.”

    대답해 주려는 듯하다 갑자기 눈에 힘을 준 이논이 이를 드러냈다. 유더는 조용히 뒤로 물러나 문을 열었다. 이만 가 보아야겠다고 말하자 무어라 욕설 섞인 중얼거림이 들려왔으나, 그는 유더를 막지 않았다.

    “야.”

    유더는 마지막으로 문을 닫기 전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못마땅한 듯 고개를 기울인 이논이 희미하게 속삭였다.

    “너, 전에 이곳으로 돌아오기 전과 같은 일이 다시 생기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었지.”

    “…….”

    “거기 혹시 내 일도 포함되어 있었어?”

    유더는 침묵했다. 그것으로 답은 충분히 되었을 터였다. 잿빛 머리칼의 남자는 찌푸린 눈썹을 잘게 떨며 한숨을 내쉬고는, 이내 눈을 한 번 감았다 떴다.

    “그랬군. 그래서 날 찾아온 거였어.”

    ***

    키시아르가 바깥에 외출을 나갔다가, 대삼림에서 만났던 기사 살해범의 흔적을 마주쳤다는 소식을 들은 빌름 남작의 반응은 격렬했다.

    그는 당장 타이누를 순찰하는 경비대의 숫자를 두 배로 늘렸고, 평소에는 거리를 돌아다니지 않던 기사들까지 내보내 검문을 수행하도록 명했다. 영문을 모르는 타이누 사람들은 무슨 일이 생긴 것인지 이해하지 못해 떨었지만, 빌름 남작은 위험한 범죄자를 잡기 위해서라는 말만으로 모든 설명을 대신했다.

    “그 성급함이 우리에게는 도움이 되겠지. 그가 유난히 기사들을 집중적으로 보낸 구역들을 따라다니며 살필 생각이야.”

    말 한 마디로 상대를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성과를 얻고 돌아온 키시아르가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겉옷을 벗었다. 뒤이어 거침없이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유더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아침에도 본 광경인데, 어쩐지 밤에 보는 탈의 모습은 자극이 조금 더 심한 듯도 했다.

    그러나 고개를 돌린 곳에서 마주친 건 그 사이 하인들이 바꾸어 놓은 새로운 소파였다. 키시아르보다 먼저 돌아와 산더미처럼 쌓인 선물 상자와 함께 새로 바뀐 소파를 보았을 때, 유더는 그들이 엉망이 된 소파에서 했던 일을 다시 떠올리며 새삼스레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혀야 했다. 정작 일을 저질렀을 때보다도 새로 바뀐 소파를 보았을 때가 더 신경이 쓰였다고 말하면 키시아르는 분명 웃을 터였다.

    “단원들 쪽은 어떤가. 모두 설명했나?”

    “네.”

    유더는 반사적으로 대답하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가, 키시아르의 드러난 상체가 고스란히 눈에 들어와 순간적으로 멈칫하고 말았다.

    “…에버가, 오늘 나갔다가 이상한 소문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만 혹시 먼저 보고를 받으셨습니까?”

    “아니. 무슨 일이지?”

    샹들리에 불빛 아래 비친 목과 어깨가 빛을 머금은 듯 일렁였다. 어깨 안쪽으로 이어지는 곧은 뼈와 그 안을 우물처럼 메운 그림자, 아래로 물 흐르듯 이어지며 완벽한 선을 그리는 흉곽이 아름다움을 뽐내며 시선을 빨아들였다.

    “유더?”

    “네.”

    유더는 키시아르의 부름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죄송합니다. 에버의 말로는…….”

    에버가 무어라 말했었는지 갑자기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허리가 절로 단단해지는 긴장감과, 근질거리는 감각이 동시에 찾아드는 것을 참으며 침착하게 입을 여는 건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그는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랬군. 그 부분도 같이 알아보기는 해야겠어. 그런데…….”

    유더의 말을 전부 들은 키시아르가 문득 눈을 가늘게 뜨고는 가까이 다가왔다.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

    걱정스러운 목소리와 함께 손끝이 눈가를 훑었다. 그 서늘함을 통해 유더는 제 피부가 상당히 뜨거운 상태였음을 그제야 알아차렸다. 멍한 머릿속에서 갑자기 문득 이논이 주어 마셨던 약이 떠올랐다.

    약이 잘 받으면 열이 날 수 있다더니, 눈치채지 못한 사이 체온이 올랐던 모양이었다. 갑작스레 긴장이 되었던 이유가 그 때문이라 생각하자 조금 마음이 나아졌다.

    “이논이… 도움이 될 거라고 약을 주어서 먹었는데, 그것 때문에 열이 생긴 모양입니다.”

    “약?”

    “제 눈이 낫지 않는 이유가 마법 시전 이전에 이미 몬스터의 피에 어느 정도 적응한 탓일 수도 있다더군요.”

    눈가를 훑던 손이 잠시 멈추었다. 생각에 잠긴 채 침묵하던 키시아르가 ‘그럴 수도 있겠군.’ 하고 짤막하게 중얼거렸다.

    “기력을 움직이는 약이라 열이 좀 오를 수도 있다고 했지만 건강에는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보다…….”

    유더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틀었다.

    “이제 놓아주십시오.”

    손이 떨어져 나갔지만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벗은 상체가 너무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프지는 않고?”

    “네. 멀쩡합니다.”

    “정말로?”

    “저는 정말로 멀쩡하니, 일단… 단장님의 옷부터 갈아입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괜찮나 보군.”

    키시아르가 그제야 유더의 아프지 않다는 말을 믿은 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런데 세탁한 옷을 어디다 가져다 두었는지 아나? 여기 둔 줄 알았는데 안 보여서 말이야.”

    “그건 저쪽에 있습니다. 기다려 주십시오.”

    유더는 제 얼굴에 큰 변화가 드러나지 않았기를 바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펠레타 공작이 입어야 할 실내 셔츠는 깨끗하게 세탁하여 개어 둔 상태로 침대 위에 놓여있었다. 그것을 가지고 다시 돌아가는 동안 어쩐지 키시아르의 몸상태가 좋지 않아 단장 침실에 누워 있던 날, 이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때도 그의 몸을 차마 볼 수 없어 억지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때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했다. 적어도 그때는 키시아르의 몸을 본다고 갑자기 열기가 치솟아 목이 마르지는 않았었다…….

    셔츠를 가지고 돌아온 유더가 팔을 꿰기 편하도록 펼치자 키시아르가 눈을 휘어 웃었다.

    “이전에도 이런 날이 있었는데… 혹시 기억나나?”

    그렇지 않아도 방금 그 생각을 했던 참이었는데, 키시아르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었다.

    “예.”

    “비슷하면서도 다르다는 건 이런 느낌이겠지.”

    유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제 생각을 들킨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셔츠에 팔을 모두 꿴 키시아르가 스스로 단추를 잠그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능숙하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식사는 이미 먹었나?”

    “아뇨.”

    유더는 이논과의 대화가 생각보다 길어지는 바람에 저녁을 먹지 못했다. 하지만 배가 그리 고프지 않았기에 상관없었다.

    “나도 빌름 남작과 먹을 생각은 들지 않아 대충 차만 마셨으니, 그러면 여기로 가져오도록 해야겠군.”

    “저는 괜찮습니다.”

    “혼자 먹는 것만큼 쓸쓸한 일은 없으니 같이 먹지.”

    그가 마병단에서는 대부분의 식사를 홀로 한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유더는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유더가 이논과 대화를 나누느라 식사를 걸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키시아르는 드물게 그에 대해 질문을 했다.

    “네가 대화를 하느라 시간을 잊을 정도였다고 말한 건 처음이군. 그리 재미있는 이야기였나?”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하지만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그에게 말할 수는 없었기에 유더는 화제를 돌렸다.

    “그냥, 몸 상태와 관련된 이야기였습니다. 이논이 몬스터를 개인적으로 살펴보고 싶다는 부탁을 하더군요.”

    “몬스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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