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대체 무슨 짓을 해버린 것인가. 손끝을 빨리고 살짝 깨물렸을 뿐인데 머리가 한 번 사납게 점멸하더니 이 꼴이었다. 키시아르와 있을 때 충동에 이끌려 갑작스럽게 행동한 적은 이전에도 제법 있었으나 그때는 그래도 최소한의 망설임이란 게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번은 그런 전조조차 없었다. 그야말로 마른 장작에 붙은 불씨가 눈 깜짝할 순간 거대한 불로 번져버리는 것처럼 속수무책이었다. 아직 발정기도 아닌데 이런 일을 저지르다니. 그가 기억하는 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유더가 당혹하여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고 몸을 일으키려 하자, 키시아르가 허리를 감싼 손에 힘을 주어 막았다.
“유혹은 내가 했고, 거기에 반응했을 뿐이니 그리 당황할 필요 없네.”
떨어지기는 했으나 아직도 너무나 가까운 곳에 있는 입술에는 아직 다 사라지지 않은 흰 가루의 잔재가 은은한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중이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반응해 줄 줄은 몰랐지만… 오히려 제대로 된 상을 받은 기분이라 좋은걸.”
“좋으, 시다고요.”
“이토록 솔직하게 욕망을 드러내 주었다는 건 나를 받아들여 줄 가능성도 높아진다는 뜻이니, 당연히 좋지.”
느릿한 반문에 기분 좋게 답한 키시아르가 야릇한 미소와 함께 다리 하나를 보란 듯 살짝 움직였다. 유더는 그때서야 키시아르와 닿아 있는 제 아래쪽이 어떻게 변했는지 깨닫고 방금보다 더욱 당혹하고 말았다.
‘……맙소사.’
유더는 제가 성욕에 몹시 무딘 자라고 생각했다. 이전 생에서 키시아르가 죽은 뒤 한 번도 누군가와 잔 적이 없었음에도 딱히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고, 애초에 키시아르와의 관계 또한 대부분 그쪽에서 먼저 주도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건 누군가의 말마따나 향이 없는 오메가였던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그걸 안 한다 해서 문제될 것도 없으니 상관없었다. 이번 생에서 겪었던 첫 발정기 또한 2성 발현과 동시에 겹치면서 내내 기절한 채 보냈기에 더욱 그 부분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기도 했다.
그러나 이건 아니었다. 키시아르는 그와 관계를 가질 목적으로 건드린 게 아니라 그저 가벼운 장난을 쳤을 뿐이었는데, 유더의 앞섶은 존재감을 확연히 드러낸 채 부푼 상태였다.
아까 배 안쪽이 뜨거워진다고 느꼈던 찰나의 감각이 이것이었나 생각하자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이전에 입맞춤을 할 때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그간 키시아르에게 느껴온 열망과 이끌림은 육신을 넘어 그 안에 있는 무언가를 건드리고 갈구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전신이 뜨거워지며 시간을 잊고 빨려들게 되어버리는, 거부할 수 없이 황홀한 충족감이 그곳에 있었다.
그것은 전신이 따갑고 하반신의 열기가 머리를 무겁게 만드는 듯한 이 감각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제가… 부상을 입은 여파로 뭔가 이상해진 걸까요.”
“뭐?”
키시아르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눈을 조금 크게 뜨더니,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리가 없잖아. 입맞춤은 자연스럽고, 이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건가?”
“고작 손가락을 살짝 물렸다고 이러는 건 정상이 아닙니다.”
“정상이야. 그냥, 몸이 조금 민감하게 반응했을 뿐이지.”
“하지만 단장님은 멀쩡하시지 않습니까.”
키시아르는 이 상황이 너무나 즐거워 참을 수 없는 듯했다. 그러나 유더는 오히려 방금보다 더욱 기분이 저조해졌다. 아직도 부풀어 있는 그의 것과 달리 상대방은 잠잠하기 그지없다는 사실이 이전 생과 비교하여 더욱 수치스럽게 만들었다.
분명 이전 생에는 이렇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갑자기 사람을 넘어뜨리고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달려드는 건 언제나 키시아르 쪽이었다. 멀쩡히 대화하다가도 갑자기 이상한 접촉을 하는 통에 어이가 없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 있는데, 지금은 상황이 반대였다.
“이런, 그게 문제라면 사실 여태까지 고백하지 못한 게 하나 있는데, 아무래도 지금 말해줘야 할 것 같군.”
“뭡니까?”
“알게 된 뒤 나를 너무 짐승처럼 보지 않겠다고 약속해 줘.”
“듣고 나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러자 키시아르가 눈을 찌푸릴 듯 휘었다가는, 웃음을 거두었다.
“나는 평소 그릇을 안정시키기 위해 힘을 억누르는 데 제법 많은 힘을 쓰고 있는데, 그걸 응용하면 꽤 쓸모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네. 뭔지 알겠나?”
“…….”
“아래쪽 사정도 어느 정도는 억누를 수 있다는 뜻이야.”
이건 정말… 생각지 못한 말이었다. 유더의 미묘하게 변한 표정을 본 키시아르가 정말이라고 속삭였다.
“요즘은 특히 그 일에 많은 힘을 들이고 있었지.”
“그러니까, 지금도 그러고 계시다는 뜻입니까?”
“물론.”
대답한 키시아르가 고개를 살짝 들어 유더의 눈가에 입을 살짝 맞추었다. 등과 허리를 감싸고 있던 큰 손에 힘이 약간 더 들어간다고 느낌과 동시에, 유더는 겹쳐진 몸 아래쪽에서 엄청난 속도로 부피가 늘어나는 무언가를 느꼈다.
“이제 믿겠나?”
믿고 싶지 않아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유더의 약간 부풀어 오른 앞섶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딱딱한 것이 다리 사이를 찌르고 있었다. 이전 생에 몇 번이나 느꼈던 부피감일 텐데도 그 시절의 기억이 희미한 탓인지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크기로 느껴졌다. 유더는 맞붙은 부분에서 올라오는 열기에 당황하여 몸을 일으켰다.
‘이건, 무슨…….’
놀란 탓에 복잡한 생각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반쯤 부풀었을 뿐인 유더의 것과 달리, 키시아르의 것은 언제 그렇게 잠들어 있었냐는 듯 의도를 명백히 주장하는 중이었다. 저를 향해 선명하게 드러난 육체의 욕망에 유더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키시아르가 희미하게 입술 끝을 올렸다. 억누르고 있던 걸 풀었다는 게 정말인지, 어느새 이마 사이로 희미하게 땀이 어린 상태였다.
“역시 짐승 같다고 생각했지?”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도대체 제가 느끼는 것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었기에 유더는 말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너무 놀란 탓에 약간 부풀었던 것이 그대로 다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이걸 대체 왜… 누르고 계셨습니까?”
“네가 원하지 않을 것 같아서.”
“제가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는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아도 눈과 몸으로 생각보다 많은 뜻을 전하지. 복잡해 보여도 의외로 단순해. 열망이 욕망과 꼭 겹치지는 않아도, 네가 여태껏 뒷부분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으려 스스로를 억눌렀던 것처럼…….”
아래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푼 상태에서도 키시아르는 제법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러나 상기되어가는 뺨은 숨길 수 없었다.
“그러니까, 나도 같은 속도로 걷고 싶었다고 해 두지.”
“그러면 필요하다면 평생이라도 이걸 누르셨을 거란 말씀이십니까?”
“육체의 욕망은 시련에 불과하며, 버려야 할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사제들만큼은 아니지만 그것에 그리 큰 의미를 두지는 않네. 이런 것보다 너와 한 마디라도 대화를 나누는 쪽이 당연히… 더 즐거워.”
말이 끝남과 동시에 뜨거운 숨결이 귀를 훅 간지럽혔다. 그가 지금껏 이와 비슷한 말을 몇 번 했던 것도 같지만, 이토록 가슴을 두드린 적은 처음이었다. 기가 막히다가도 허탈해졌고, 그러다가는 또다시 이전 생의 기억이 아스라이 떠오르며 목 안쪽이 타는 듯 말랐다.
‘……역시 나는.’
눈앞의 사내를 붙잡은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사형당한 죄수에게 그럴 자격 따윈 없다 하더라도 그러했다. 키시아르의 곁에서 그를 열망하는 대신 영원히 심장을 찌르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면 그래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 본 너무나 강렬한 열망 속에 욕망이 뒤섞여 피어올랐다. 머리 아래까지 출렁이며 차오른 간절함에 익사할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유더는 잠시 눈을 감아버렸다.
“단장님은… 정말 너무한 분입니다.”
여러 감정을 담아 입술 바깥으로 힘겹게 흘러나간 한 마디에 키시아르가 낮게 웃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가 웃을 때마다 겹쳐진 몸도 동시에 자극을 받았다.
“이토록 매력적인 상대를 혼자 독점하고 싶어서 매일매일 머리가 다 타도록 수작을 부리고 있으니 정말 너무한 작자지.”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알아.”
그러니까, 이런 말을 하는 면 자체가 너무하다는 뜻이었다.
검게 가라앉은 눈 안쪽이 뜨거웠다. 지그시 깨문 입술이 뜨거웠다. 배 안쪽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불꽃이 뜨거웠다.
그리고 모든 것을 완전히 드러낸 채 유더를 끌어안은 팔이 너무 뜨거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다시 눈을 뜬 유더는 붉은 눈 속에 비친 제 얼굴을 보았다.
키시아르만큼이나 상기된 눈가를 고스란히 드러낸 남자가 상대를 향한 강렬한 욕망에 이를 악물고 허덕이는 중이었다. 열망과 욕망을 구분했던 키시아르의 말이 그때서야 분명하게 이해되었다.
유더는 입을 맞추고 싶다는 욕망을 간신히 누르며 몸을 조금 들었다. 허리를 끌어안은 팔이 걸리적거렸다.
“일단… 좀 놓아 주십시오.”
“왜?”
“가라앉혀야 할 것 아닙니까.”
“가라앉히는 건 지금 바로 할 수 있으니까 조금만 있다가 일어나 주면 안 되나? 흔치 않은 기회라 좀 더 누리고 싶었는데.”
“…몸에 안 좋을 것 같은 일은 이제 그만해 주시죠.”
아무리 생각해도 그걸 참는 게 건강에 좋을 것 같지가 않았다. 유더는 조심스럽게 몸을 조금 비틀어 드러난 공간 사이로 제 다리 사이를 자꾸 찌르는 것에 손을 얹었다.
순간 유더의 귀 뒤쪽을 아쉽게 지분거리던 손길이 움찔 멈추었다. 유더는 서서히 여유가 사라지기 시작하는 붉은 눈을 보며 아주 은밀한 만족감을 느꼈다. 이제야 혼자만 앞섶이 부풀어 오른 줄 알았을 때 느꼈던 수치심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당신은 나를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을 안다.
저 아름답고 여유를 잃지 않는 사내가 욕망에 타오를 때 어떤 눈빛이 되는지 유더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가라앉히는 방법은 그것 말고도, 있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