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터닝-319화 (319/805)

319화

“잘라 낸 사체를 보관 중인 곳은 여기야. 마도구 재료 창고.”

칸나는 그들을 빈 건물 지하로 안내했다. 유더는 그곳이 이전에 에제인을 노리고 침입한 간 큰 암살자들을 집어넣어 두었던 장소임을 깨달았다. 비록 놈들은 잡혀간 지 오래지만 이후에도 계속 뭔가를 보관할 때 사용하기는 한 모양이었다.

“아쉬워요. 그걸 꼭 잘라야만 했던 거예요? 온전한 상태일 때 얼마나 큰지가 보고 싶었는데.”

“커도 너무 커서 어쩔 수 없었대. 연구는 해야 하는데 마법사들이 숲으로 갈 수는 없잖아. 난 단장님이 잘라 오신 일부분만 봤는데도 입이 딱 벌어지던걸.”

“정말요?”

아쉬워하던 지미와 다른 단원들은 칸나의 말에 금세 호기심 어린 눈빛을 되찾았다.

“그래. 들어가서 놀라지나 마.”

창고는 무척 어두웠다. 앞이 보이지 않자 두 번째 파견대에 포함되어 온 어느 단원이 작은 불꽃을 불러내어 주변을 밝혔다. 그러나 눈을 부릅뜨고 있는 거대한 페투아멧의 머리가 코앞에 나타나자 단원들은 일제히 귀신이라도 본 듯 비명을 질렀다.

“나도 처음엔 저랬었지…….”

가케인이 칸나와 함께 실없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페투아멧의 잘린 머리는 창고 중앙에 놓여 있었다. 그 뒤에 쌓인 상자 속에 잘라 낸 다리나 꼬리 등이 들어 있었으나 몬스터의 몸은 죽어도 잘 썩지 않기에 고약한 냄새가 나지는 않았다.

단원들은 페투아멧의 사체를 보며 비로소 유더가 죽인 그 소문의 몬스터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놈이었는지를 새삼 제대로 느낀 듯했다. 지미는 페투아멧의 꼬리에 박힌 긴 뿔 같은 가시 하나가 제 검보다 크다며 전율했고, 에버는 거대한 머리 앞에 서서 키를 가늠해 보았다.

“이렇게 큰 몬스터는 정말 처음 봐. 죽이는 건 고사하고 가죽에 검도 안 박히겠어.”

“그러니까 단장님이 직접 해체하신 거야.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깔끔하게 자르는 게 불가능했거든. 저 머리 부분은 수도로 보내서 황제 폐하께 바칠 거래.”

“정말요? 저도 한 번 가죽을 베어보면 안 돼요? 조금만 해볼게요! 진짜 조금만요!”

유더는 구석에 서서 열심히 떠드는 단원들을 지켜보았다. 페투아멧을 죽였을 때 그는 이런 소소한 미래를 상상한 적이 없었다. 이전 생에는 수도 없이 몰려드는 몬스터에 고통받으며 날로 표정이 사라져 가던 이들이 눈앞의 이들과 동일인이라는 게 마치 거짓말 같았다.

“누가 왔는데 이렇게 시끄럽게……. 어?”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린 유더는 벽 안쪽에 붙어 있던 작은 문에서 막 고개를 내민 마법사 로나를 마주하고 눈을 깜박였다. 놀란 표정을 지은 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당신들이었군요. 몬스터 사체를 보러 오셨나요?”

“네. 여기 계신 줄 몰랐는데, 방해했다면 죄송합니다.”

“아, 아니에요.”

로나는 아직도 저를 발견하지 못하고 떠드는 단원들을 살피다 시선을 슬쩍 돌렸다. 유더는 순간적으로 어떤 감이 치솟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기울였다.

“그런데… 안에서 뭘 하고 계셨습니까?”

창고에 올 일은 뭔가를 찾으러 올 때밖에 없을 텐데, 로나의 손은 비어 있었다. 안에 뭔가 있는지 눈을 슬쩍 돌려도 짙은 어둠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음, 그게… 저는…….”

“어. 누가 먼저 안에 계셨네?”

때마침 어느 단원이 그들을 발견하며 로나는 더 이상 몸을 숨길 수 없게 되었다. 그녀를 본 칸나가 무언가 짚이는 부분이 있었는지 가케인과 얼굴을 마주 보았다가는 가까이 다가왔다.

“마법사님.”

“죄송합니다. 내일 폐기한다고 하니 아쉬워져서 조금만 살피고 곧 나가려고 했어요. 다른 뜻이 있었던 게 아니에요.”

로나는 칸나를 보자마자 곧장 솔직하게 두 손을 들고 변명을 했다.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내용은 여전히 바로 이해되지 않았다.

‘…폐기? 뭘 폐기한다는 거지.’

다른 단원들도 마찬가지인 듯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칸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단원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다들 잠깐 여기 있어 줘. 나는 마법사님하고 안에서 이야기 좀 하고 올게.”

“나도 들으면 안 될까.”

유더가 끼어들자, 칸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콧잔등에 주름을 잡다가는 알겠다고 말했다. 가케인은 칸나가 안에서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알고 있는 듯 침착한 얼굴로 문 앞을 지키고 있겠다고 속삭인 뒤 친절히 문까지 닫아 주었다.

외부의 소리가 차단되자 침묵 가득한 어둠이 그들을 감쌌다. 로나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말로 살피기만 했을 뿐, 아무 일도 안 했는데…….”

“그건 읽어봐야 알 일이에요.”

“능력을 쓰실 건가요?”

아무래도 로나는 그 사이 칸나의 능력이 어떤 위력을 지니고 있는지 깨닫게 된 눈치였다. 유더는 칸나가 그토록 딱딱하고 단호한 눈빛을 지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필요하다면 해야죠. ‘그건’ 어디 있죠?”

한숨을 내쉰 로나가 방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어딘가에 멈춰 서서 작은 마도구를 작동시키자 곧 빛이 새어 나와 주변을 밝혔다. 유더는 그제야 그들의 앞에 있는 작은 우리를 보았다.

단단한 철창으로 만든 우리 안에는 손바닥만 한 작은 몬스터가 웅크려 뭔가를 갉작대며 먹고 있었다. 작지만 긴 꼬리에 달린 밤송이 같은 가시를 본 유더는 비로소 칸나가 보인 태도의 원인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다시 볼 일이 없을 줄로만 알았던 페투아멧이었다. 순간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분에 유더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칸나. 이 몬스터가… 왜 여기에 남아있는 거지?”

“이전에 네게 다 말하지 않았던 게 있었어.”

칸나가 딱딱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녀의 설명은 간결했다. 유더의 몸에서 증폭진의 흔적을 제거하는 마법을 연구하려면 재료가 여럿 필요했다. 처음에는 유더가 직접 잘라다 준 혀만으로 연구를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러자 키시아르는 몸소 거대한 페투아멧의 사체를 자르고 혀를 회수하여 연구에 쓰기로 했는데, 바로 그때 그를 따라간 마법사 로나가 발견한 것이 눈앞의 작은 페투아멧이었다.

“운 좋게 살아남은 개체였겠지. 다행히 아직 마력이나 다른 힘을 흡수하지도 않은 상태였대.”

로나는 순수한 상태를 지키고 있는 작은 페투아멧이 그들이 얻어내고자 하는 답의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곧바로 몬스터를 죽이려 한 이들을 목숨을 걸고 설득했고, 결국 키시아르와 마병단의 감시 하에 제 생각이 맞다는 것을 증명해 냈다.

그렇게 효용 가치를 다한 몬스터는 내일 폐기될 예정이었다.

“저도 물론 폐기가 옳다는 데 동의해요. 다만 이번 일을 생각하다 보니 마지막으로 한번 더 살펴보고 싶어져서 왔던 것뿐이에요. 힘을 흡수하고 배출하는 게 가능한 몬스터를 볼 기회는 이제 두 번 다시 없을 테니까요…….”

로나가 재빨리 말을 얹었다.

“그래서, 살피려던 건 다 살피셨어요?”

“…전 이번 연구에 답을 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요. 더 욕심을 낼 생각은 정말로 없어요.”

칸나는 로나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딱딱한 표정은 풀리지 않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 보면 로나의 말이 사실이기는 했던 듯했다.

‘힘을 흡수하고 배출하는 몬스터라……. 하긴, 이전에는 서부 연합에서 만든 증폭진 때문에 내부에서 힘이 계속 증폭만 된 셈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던 듯하니 보통 상태에서는 배출도 가능하겠지.’

어쩌면 로나가 찾아낸 답은 바로 그 배출 부분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더는 인간들이 무슨 짓을 하든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커다란 나뭇잎을 씹고 있는 페투아멧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느낀 듯 페투아멧이 턱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런데 흡수는 먹어서 한다 치고, 배출은… 배설로 하나?’

여태 궁금해한 적이 없던 사항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작은 페투아멧이 갑자기 품에 안고 있던 나뭇잎을 놓았다. 그것은 갑자기 네발 달린 짐승처럼 철창을 긁으며 유더가 있는 방향을 향해 날카롭게 울기 시작했다. 유더가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아도 꼬리를 흔들며 철창을 긁어대는 움직임은 멈출 줄 몰랐다. 그 바람에 칸나와 로나의 대화도 소강되고 말았다.

“……왜 저러는 겁니까.”

“글쎄요. 그건 저도 잘……. 저런 반응은 처음이에요.”

“혹시 몬스터에게 무슨 짓을 하신 건 아니겠죠?”

유더의 질문에 당혹스레 중얼거리던 로나의 옆에서 칸나가 철창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능력을 사용해 보려는 모양이었다. 위험하니 그러지 말라고 말하기도 전에, 칸나의 얼굴 위로 갑자기 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응?”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저를 보는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린 칸나가 확신 없는 눈빛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제대로 읽은 게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저 몬스터가 유더 널… 뭐랄까. 같은 존재라고 느끼는 것 같아.”

“……나를, 같은 존재라고 느낀다고? 내가 몬스터라는 거야?”

“물론 유더는 사람이지. 사람인데……. 다시 한 번 능력을 써 볼게. 뭔가 내가 잘못 읽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지 마.”

하지만 결과는 같았다. 유더와 칸나의 황당한 반응 속에서도 작은 페투아멧은 여전히 철창을 긁으며 기이한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로나가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 고개를 들었다.

“혹 당신이 흡수했던 독성 때문이 아닐까요?”

그 말에 시선을 돌려 마주하자 로나가 흥분한 어투로 빠르게 말을 이어나갔다.

“독성이 있는 체액을 흡수했다 살아나셨으니 아마 앞으로 같은 몬스터의 독에는 당하지 않으실 거라 추측한 적이 있었어요. 몬스터들이 같은 종류의 개체를 어떻게 인식하는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적지만, 아일 님의 몸에 남은 얼룩은 아직 다 낫지 않으셨잖아요. 그래서 그런 거라면…….”

기가 막힌 추측이지만 현 상황에서는 그나마 가장 말이 되는 듯도 했다. 유더는 저를 향해 꼬리를 움직이는 몬스터를 내려다보다 고개를 저었다.

“……같은 몬스터의 독에 앞으로 당할 일이 없다면 그건 다행이겠군요.”

몬스터가 최대의 약점인 유더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희소식이었다.

‘물론 페투아멧을 언제 또 보게 될지 알 수 없으니 있으나 마나 한 내성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가시기 전에 저 몬스터의 독을 상대로 한 번쯤 확인해 보시고 가시는 건 어떤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말을 잇던 로나가 칸나의 시선에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여태까지 겪은 바로는 힘의 회복이 느린 것만 제외하면 큰 변화를 느끼지 못했지만, 그녀의 말마따나 알지 못하는 사이 뭔가 변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했다.

‘황당한 일이 다 있군…….’

“여기들 있었군.”

생각에 잠긴 사이, 어느샌가 다가온 누군가가 뒤에서 목소리를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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