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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315화 (315/805)

315화

“본래 이곳에 남기기로 했던 가케인 볼룬발트와 힌 엘더 외에, 핀 엘더와 칸나 완드도 함께 펠레타 기사단 쪽으로 이동하여 수색을 돕는다. 두 번째 파견대가 대삼림에 도착하면 신호를 주기로 했으니 그들을 만나면 상황을 설명하고 수색 작업에 동참시키도록. 지휘는 이전에 말했던 대로 가케인에게, 사전에 필요한 정보 공개는 칸나에게 맡기지.”

유더는 가케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본래 가케인은 두 번째 파견대가 올 때까지 서부 마법사들의 거점에 남아 있다가 그들과 합류한 뒤 남은 몬스터 토벌 임무를 지휘할 예정이라고 했었다. 갑작스레 나그란의 별까지 추적하게 되어 당혹스러웠을 텐데도, 가케인은 목울대만 한 번 위아래로 움직였을 뿐 크게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맡겨 주십시오.”

무언가 결심한 듯한 얼굴 위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진중함이 묻어났다. 키시아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유더를 비롯한 나머지 인원을 훑어보았다.

“다른 이들은 그사이 나와 함께 갈 곳이 있으니 준비 후 따라오도록.”

키시아르는 오늘 저녁 마법사들의 거점에서 모두 다시 만나자는 말과 함께 명을 끝냈다.

“그 마을 사람들이 전에 아페토 공작가에 갔을 때 유더랑 싸웠다던 이상한 조직이라고 했었지?”

“맞긴 한데 조금 달라. 자세한 건 가면서 말해 줄게.”

엘더 남매가 신이 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칸나의 뒤를 따랐다. 유더는 그들과 눈인사를 나눈 뒤 루산, 에문과 함께 키시아르에게로 다가갔다. 제가 자는 동안 정말 쉬기는 했을지 의심스러웠었는데, 그의 안색은 어제보다는 확실히 나아진 상태였다.

“단장님, 저희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

“타이누에서 온 기사들을 만나러.”

“타인 공작가에서 보낸 사람들입니까?”

“명을 내린 자는 타이누의 영주 빌름 남작이겠지만, 그자의 위에는 타인 공작이 있으니 그런 셈이지.”

“그, 그렇다면 왜 여기서 기다리시지 않고 직접 가시는 거죠?”

에문이 긴장한 기색으로 묻자 키시아르가 좋은 질문이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릴 만나기 위해 온 게 아니기 때문이라네.”

출발하기 전, 키시아르는 루산과 에문에게 만일의 경우 전투 상황이 일어난다면 망설이지 말고 유더를 먼저 보호하라고 지시했다. 유더는 지나친 일이라 생각했지만 에문과 루산은 그리 여기지 않은 듯 곧바로 수긍했다.

“타이누에서 온 기사들은 대삼림 바깥 국경 마을에서 꽤 오래 주변 정황을 탐색하고 있었지. 그러던 이들이 드디어 삼림으로 향한 게 오늘 아침이라니 아마 어제 시전한 마법의 여파를 바깥에서 느꼈기 때문일 가능성이 커.”

키시아르는 전투 능력이 거의 없는 세 사람을 이끌고 대삼림의 좁은 나무 사이를 향해 나아가면서도 한 치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산책이라도 나가는 듯 가벼운 발걸음 사이로 이어지는 설명을 들으며, 유더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오늘 아침에 삼림에 들어왔는데 서부 연합의 거점으로 바로 찾아오지 않았다면, 다른 목적으로 이곳에 들어왔다는 뜻이겠군요.”

“그렇지.”

“…혹시 타인 가의 무역 거점입니까.”

“정답이야.”

키시아르의 수긍에 다른 이들이 놀란 듯 유더를 보았다. 유더는 서부 마법사들에게 이미 들은 바가 있었기에 생각할 수 있었을 뿐이라 간략히 설명하면서, 얼마 전 키시아르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키시아르는 타인 가가 불법 무역을 저지르고 있다는 정황을 오래 전부터 파악하고 있었던 듯 말했었다. 나그란의 별 마을 내부에 불법 무역의 피해자들이 여럿 존재한다는 정보를 알아낸 뒤 그 부분에 대해 추적하려 했던 계획이 약간 어그러진 현재, 제 발로 대삼림 내부로 들어와 준 타이누의 기사들은 좋은 먹잇감이 되어줄 터였다.

‘대삼림으로 들어온 기사들이 정말로 타인 가의 무역 거점부터 찾으러 간 게 맞다면, 그건 타인 가가 그만큼 그곳을 중요한 치부로 여기고 있다는 뜻이겠지.’

이전 생에는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타인 가의 불법 무역 관련 정황의 답을 드디어 볼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심장이 조금 빨리 뛰었다.

“그러니까… 유더가 들은 대로라면 타인 공작가에서 대삼림 내에 무역 거점을 만들어 두고 이상한 걸 사고판단 소문이 있었단 거지? 근데 대체 뭘 사고파는데 기사들이 여기까지 들어와서 헐레벌떡 거기부터 가?”

“노예 무역. 그 외에도 위험한 약의 재료를 들여오려 한다는 말도 있었어.”

유더의 간략한 답에 에문이 미간을 찌푸렸다.

“노예……? 잠깐만. 설마 그, 전에 각성자들 마을에서 들었던 인신매매하고 관련된 건 아니지?”

“아마 맞을 거야.”

“…맙소사.”

에문이 입을 막았다. 루산 또한 역겹기 그지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진저리를 쳤다.

“노예 무역이라뇨. 어떻게 타인 공작가나 되는 곳에서 그런 짓을 시도한단 말입니까? 신께 결코 용서받지 못할 일이에요.”

유더는 앞서 나가는 키시아르의 표정 위로 순간 스쳐 지나가는 서늘한 웃음을 놓치지 않았다.

“글쎄. 공작가씩이나 되기에 오히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거라고 볼 수도 있지 않겠나.”

말투는 부드러웠으나 눈빛에 서린 차가움은 변하지 않았다. 유더는 키시아르가 공작가들에게 지닌 감정이 정말 좋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재확인한 기분이 들었다.

“저기 드디어 뭔가 보이는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드물게 나무가 없이 잘 정돈된 길옆에 짓다 만 듯한 작은 오두막집이 하나 있었다.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으나 문은 누군가 급히 열고 나간 것처럼 열린 상태였다.

“미칼린 펀트의 말로는 저곳이 타인 가에서 가장 먼저 만들기 시작한 거점이라 하더군.”

유더는 키시아르가 미칼린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그것까지 물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오두막집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구석진 곳의 바닥 한쪽이 부자연스럽게 들뜬 상태임을 발견했다.

들뜬 바닥을 어설프게 덮은 나무 조각을 들어 치운 에문이 아래에 뚫린 구멍을 발견하고는 망설임 없이 머리를 디밀어 내부를 확인했다. 그는 어둠에 몸을 숨길 수 있는 능력 때문에 어두운 곳에서도 남들보다 더 잘 볼 수 있었다.

“아래는 좁은 지하실입니다. 아무것도 없기는 한데… 잠시만요.”

아래를 향해 뛰어내린 에문은 잠시 후 무언가를 쥐고 다시 돌아왔다. 그것은 찢어져 엉망이 된 작은 옷 조각이었다. 모두는 그 넝마 조각을 보며 잠시 침묵을 지켰다.

“아이의 옷 같군요. 역시 여기에 사람들을 가두어 두었던 걸까요.”

“그걸 알기 위해서는 칸나가 필요하겠군.”

짤막하게 대답한 키시아르는 그 옷 조각을 보관하도록 명한 뒤 오두막집을 빠져나갔다. 그는 뒤이어 무역로를 따라 다른 거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짓다 만 듯한 집들을 3개 정도 더 발견했으나 처음 발견했던 것과 같은 옷 조각이나 다른 물건은 찾을 수 없었다. 계속해서 4번째 거점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그들은 몹시 갑작스럽게 찾던 이들을 발견했다.

“…아, 피가…….”

에문이 희게 질린 얼굴로 눈앞에 펼쳐진 참상을 향해 중얼거렸다. 타인 가가 만든 무역로 한복판에, 타이누의 문장이 찍힌 경갑옷을 걸친 기사 3명이 쓰러져 있었다. 낭자한 피와 살점 때문에 비린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한눈에 보아도 이미 손쓸 여지조차 없이 죽은 상태였다.

“몬스터의 짓일까요?”

마찬가지로 안색이 좋지 않아진 루산의 질문에 키시아르가 주변 나무까지 튄 핏방울의 궤적을 살피며 중얼거렸다.

“글쎄. 그럴 수도 있겠지만…….”

“사람의 짓입니다.”

유더의 단언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그는 앞으로 나아가 죽어 나자빠진 기사들을 가리켜 보였다. 그들은 사지와 배가 난도질되어 잘린 인형처럼 쓰러져 있었다.

“몬스터를 만나 도망치려다 죽었다면 등을 보이고 누워 있었을 텐데, 모두 앞을 본 채 죽었습니다. 표정을 보면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른 채 순식간에 사망한 게 확실합니다. 그리고…….”

유더는 무릎을 꿇고 한 기사가 몸에 걸친 무언가를 살짝 집어 올렸다. 본래는 가방이었을 그것은, 끈 일부만 남긴 채 아래는 사라진 상태였다.

“몬스터라면 가방을 잘라 가져갈 리 없습니다. 그러니 분명 사람의 소행입니다.”

“그렇군.”

키시아르 또한 유더의 의견에 동의하며 가까이 다가왔다. 에문은 차마 참혹하게 몸이 잘린 시체를 가까이서 볼 용기를 내지 못했는지 다가오지 못하고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피가 아직도 흐르는 중인 걸 보니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군. 검을 사용한 것 같지는 않아. 기사 3인을 순식간에 죽이고도 이토록 흔적 없이 사라질 수 있다는 건… 아무래도 각성자일 확률이 높겠군.”

각성자라면 짚이는 이들이 있었다. 이 대삼림에서 오랫동안 살아 온 나그란의 별 소속 각성자들이었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사라졌다던 그들이 사실 아직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일까?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 것을 느끼며 유더는 키시아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쩌면 아직 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유더의 말에 키시아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시체를 두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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