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터닝-308화 (308/805)

308화

그가 묘사한 바다가 펠레타의 모습이었다니. 예상치 못했던 사실에 유더는 놀라움과 동시에 씁쓸함을 느꼈다. 그의 기억에 남은 펠레타는 그런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지독하게 황폐한 곳이라 생각했지. 원해서 가게 된 땅이 아니었기에 의욕이 없었거든. 하지만 마음을 고쳐먹고 나서 다시 보니 세상에 그토록 멋진 바다는 다시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더군. 사실…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는데 말이야.”

달라진 건 하나도 없었는데, 어느 때에는 황폐했고 어느 때에는 아름다웠다는 바다.

그때 보았던 풍경을 잊을 수 없다고, 그는 말했다. 유더는 키시아르가 나직이 묘사했던 검은 절벽 아래로 너울진 바다와 작은 고기잡이배, 그리고 배 위를 맴돌며 따라다니는 새 떼를 어둠 속에 그렸다. 막연히 머리에 떠올린 풍경만으로는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 수가 없었지만, 키시아르의 입을 통해 듣던 순간만큼은 그게 어떤 느낌을 띠고 비쳤는지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게 기이했다.

그 시절의 키시아르는 어떤 마음으로 그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었을까.

원해서 펠레타 공작이 된 게 아닌 이가 거기에서 어떤 기분을 느꼈을지, 유더는 조금도 짐작할 수 없었다.

“사실 지금도 그때와 비슷한 기분이 느껴져.”

성 위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는 키시아르를 막연히 상상해 보려 시도하던 유더를 향해 뺨을 스치는 바람처럼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 의미가 없던 대삼림이 지금처럼 아름답게 느껴질 줄은 몰랐거든. 내 보좌는 어떻지?”

“저는.”

유더는 잠시 머뭇거렸으나 이내 천천히 말을 이었다.

“보이지 않아 직접 느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단장님께서 말씀한 모습이 아름다울 거라는 건 알 것 같습니다.”

“그래? 설명이 도움이 되었다니 영광이군.”

웃음을 담아 대답한 키시아르가 유더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그러면 언젠가… 펠레타 성에 와 보겠나? 눈이 나아진다면 말이야.”

어떤 말은 때로 그 자체로 예상치 못한 강렬한 변화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그 말이 유더에게는 그러한 작용을 했다.

키시아르의 말이 가슴 안쪽을 두드리며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없이 구르고 부딪치며 추락한 그것은 이내 바닥의 가장 깊은 곳에 숨어 있던 빈 구멍 하나로 순식간에 빨려들어 가듯 사라졌다.

‘언젠가 펠레타에 가 보겠나? 바다라면 거기도 있으니까.’

메워진 구멍 사이로 불쑥 넘쳐흐른 희미한 목소리에, 유더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희미하게 입술을 벌렸다.

뭐지? 언제 키시아르에게 그런 말을 또 들었었던가?

의문에 반응하듯 조각 같은 옛 기억 하나가 스르륵 떠올랐다.

‘아……. 그래. 마병단에… 막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어.’

왜 떠올리지 않았었는지 이상할 만큼 손쉽게 기억이 났다. 그건 이전 생에서 유더가 입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의 일이었다.

유더는 밤늦게까지 훈련하기를 즐겼는데, 키시아르는 가끔 불쑥 거기에 나타나 늦도록 남아있는 이에게 영문 모를 조언을 던지고 돌아가거나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다 갈 때가 있었다. 그 말도 아마 그렇게 심심풀이로 찾아와 몇 마디 나누던 중 큰 의미 없이 흘러나온 말로 기억했다…….

‘아니. 정말로 의미 없는 말이었나?’

키시아르 쪽은 몰라도 그 말을 들은 유더 쪽은 제법 인상 깊게 기억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런 것 같았다.

왜 그것을 여태까지 잊고 있었을까. 그런 작은 기억까지도 키시아르와 연관되어 제 안에 뚫린 구멍 중 하나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고도 기가 막혔다. 없어졌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던 것들의 무게가 새삼 머리 위를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단장님.”

유더는 멍하니 그를 불렀다.

“음?”

“저는…….”

무어라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전에도 이 비슷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펠레타에 가본 적은 있지만 그건 키시아르 라 오르를 죽이던 날이었다고? 말이 되어 나와서는 안 될 수많은 이야기를 삼켰다. 대신 유더는 다른 대답을 하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가겠습니다.”

아마 잔뜩 일그러져 있을 제 얼굴이 붕대에 가려 있음을 처음으로 다행으로 여겼다.

“눈이 낫지 않는다고 해도, 바다를 보러 가겠습니다.”

“정말인가?”

키시아르가 기쁘게 반문했다. 유더는 고개를 끄덕이며 힘없이 몸을 기대었다. 기다렸다는 듯 더욱 단단하게 몸을 안아주는 팔 안이 몹시도 따뜻했다.

거절당할 사실을 전제로 이야기하면서도 키시아르는 한번도 그 사실에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가 부정적인 모습을 드러낸 건 오직 자기 자신을 향한 자책감을 드러냈을 때뿐이었다. 그 두려울 정도의 다정함이, 이해할 수 없는 곧음이, 이전 생에는 한 번도 겪지 못한 따뜻함이 지금의 유더 아일에게는 징벌과도 같았다.

“좋아. 후회하지 않도록 해 주지. 기대하게. 하지만 눈이 낫지 않더라도 가겠다는 가정은 마음에 들지 않으니 그것만은 빼고.”

“…단장님은 내일 시전할 마법이 제 상태를 완전히 낫게 하리라 생각하십니까?”

유더는 느리게 물었다. 돌아온 답은 간결했다.

“생각한다기보다는, 그렇게 만들어야지.”

그 말 속에 서린 감정은 자신감일까, 아니면 기원일까. 어느 쪽이든 키시아르가 저를 낫게 하기 위해 각오를 다졌다는 것만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유더는 문득 영웅이 되고 싶었다고 말하던 날의 키시아르를 떠올렸다. 비록 제국을 좀먹고 있는 이들을 처단하겠다는 꿈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진행 중이며, 세상이 알고 있는 펠레타 공작은 골칫덩어리 탕아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내일 유더를 구할 이는 바로 그였다.

그렇다면 그게 영웅과 무엇이 다를까.

이전 생에서는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한 채 거꾸러졌을지라도, 이번의 그는 꿈꾸었던 대로 영웅이 될 것이다. 제가 그렇게 되도록 도울 테니까.

유더는 키시아르의 얼굴이 있을 법한 곳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있을 이의 표정이 어떨지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작게 숨을 내쉬기가 무섭게 웃음 띤 목소리가 들려왔다.

“좀 멋지다고 생각했나? 어쩐지 그런 느낌인데.”

“…….”

“농담이네.”

유더는 한숨을 내쉬었다. 저 밝은 목소리 속에서 자신을 둘러싼 온갖 악의적인 소문을 태연하게 웃어넘기고 이용하며 인간 같지 않은 인내심을 발휘하던 냉철한 사내의 모습은 도무지 떠올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모두 키시아르 라 오르였다.

‘그것도 결국은… 키시아르 라 오르라.’

유더는 제가 했던 생각에서 문득 무언가를 느끼고 다시 한번 떠올려 보았다.

키시아르가 침실로 찾아오기 전, 그는 어째서 이전 생과 이번 생에 걸쳐 저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다른 이들과 키시아르가 뭔가 다른 듯 느껴지는지 생각하던 중이었다. 그때는 내지 못했던 답이 갑자기 제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

두 번의 생을 비교하여 다른 이들과의 관계가 하나부터 열까지 바뀌었다면, 키시아르와의 관계는 가장 많이 바뀐 듯 보여도 어떤 부분은 결국 변함없이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그거였어. 정확히 뭐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답을 알게 되면, 모든 구멍을 메우게 되면 무엇이 달라질까.

지금도 충분히 벌을 받는 기분인데 여기서 더한 고통을 느끼게 될까? 아니면.

“체온이 떨어지고 있는 것 같은데, 슬슬 들어갈까.”

“단장님. 아까 말씀해 주신다고 했던 능력…….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유더는 뺨을 어루만지며 어깨에 두른 담요를 단단하게 고쳐 주는 손을 붙잡고 중얼거렸다. 힘이라고는 전혀 들어가지 못한 손길이었으나 키시아르는 바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능력? 아. 그게 그리 궁금했나?”

“저는 단장님의 능력이 강화 계열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아니었습니까?”

“강화는 강화지만, 뭐라고 할까……. 신과의 신체 강화 계열 단원들이 지닌 그런 힘과는 계열이 조금 다른 느낌이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키시아르가 몸으로 보여주는 쪽이 빠르겠다고 생각했는지, 유더의 오른손을 잡아 가볍게 쥐었다.

“2년 전에 막 각성했을 때는 나도 내 힘이 단순한 근력 강화라고 생각했었다네. 조금 지났을 때는 강화 상태에서 힘의 방향까지 변화할 수 있는 능력이라 판단했지. 그런데 사실 얼마 전부터는, 거기서 조금 더 생각이 달라졌어.”

자, 보게. 중얼거린 키시아르가 붙잡고 있던 손에서 힘을 풀었다. 지지하던 힘이 사라졌으니 당연히 밑으로 힘없이 떨어져야 했을 유더의 손은, 놀랍게도 키시아르의 펼쳐진 손바닥 안에 딱 붙은 듯 떨어지지 않았다.

유더는 보이지 않는 힘이 아래쪽에서 키시아르의 손 위쪽으로 강렬하게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바람이 제 손을 밑에서 위로 올리고 있는 듯한 감각이었다. 잠시 후 키시아르가 기운을 끊자 유더의 손은 힘없이 낙하했다. 그 손을 재빠르게 받아낸 키시아르가 보았냐는 듯 짧게 웃었다.

“힘에 민감한 너라면 이게 어떻게 움직였는지 충분히 느꼈겠지?”

“……목표를 끌어당기고, 놓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만.”

“그래. 강화 상태에서 힘을 내 쪽으로 끌어당기거나 혹은 밀 수 있는 거지. 아직까지는 의식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워 이 정도가 한계지만, 그걸 빠르게 하면 다른 이들의 눈에는…….”

“아주 빠르게 움직이거나, 혹은 맞기도 전에 튕겨내는 것처럼 보이겠지요.”

“그래, 맞아.”

유더의 머릿속에서 이전 생의 페투아멧을 단신으로 상대하던 키시아르와 단원들과 함께 훈련하던 때의 모습이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마치 적이 스스로 키시아르에게 맞으러 오는 듯 보였던 움직임의 의문이 드디어 해소된 기분이었다.

‘이 말대로라면, 능력을 두 단계에 걸쳐 발전시킨 건가……? 고작 2년 사이에?’

키시아르는 단순히 생각이 바뀌었다고만 했으나 유더의 판단은 조금 달랐다. 수련과 주변 환경에 따라 각성자의 힘은 얼마든지 심화되거나 발전할 수 있는 법이었다. 남들만큼 제대로 된 수련도 하지 못했을 키시아르가 여기까지 능력을 발전시켰다는 건 10년 후의 각성자들이 들어도 어이없을 만큼 대단한 일이었다.

“……대단하시군요.”

“그냥 발상의 전환이지. 자리에 앉아서 남는 시간 동안 할 만한 게 생각밖에 없잖나.”

능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매일 구슬땀을 흘리며 이리저리 굴렀던 단원들이 들었다가는 분을 토할 소리를 아주 쉽게 한 키시아르가 장난스레 입을 열었다.

“사실 마지막으로 생각이 바뀐 건 정말 얼마 전이야. 너를 찾으러 갔던 그날 이후 뭔가를 깨달았거든.”

페투아멧을 죽이러 간 유더를 찾아 숲을 달렸던 그날, 키시아르는 제 안에서 그간 몰랐던 어떤 가느다란 끈을 느꼈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들어보니 새로이 깨달은 건 그것만이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었는데, 그날 내가 달리면서 사용한 힘이 이전과는 흐름이 좀 달랐다는 걸 곱씹어 보면서 깨달았지. 나는 아마도 그때 무언가를 간절히 끌어당기기를 원했던 것 같아.”

키시아르는 유더를 안고 일어서며 마지막 한 마디를 내뱉었다.

“사실 이것조차 내 힘의 완전한 형태가 아닐 수도 있겠지. 공식이 정해진 마법과 달리 이 힘에는 정답이 없으니 말이야.”

이전처럼 느리게 뛰어내린 키시아르는 순식간에 숲을 거쳐 유더의 침실 안까지 도달했다. 서부 마법사 거점 내부는 모두가 잠이 든 듯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자. 내가 장담했던 대로 되었군. 아무도 우리가 산책한 줄 모를 거야.”

침대 위에 유더를 눕힌 사내가 머리칼을 가볍게 쓸어 넘겨준 뒤 이불을 덮어주었다.

“열은 아직 없지만 잠들 때까지는 계속 여기 있을 테니 필요한 게 있다면 말하게.”

그가 침대 옆 의자에 앉는 소리를 들으며 유더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그냥 가셔서 주무십시오.”

“오늘 같은 날은 억지로 자 보았자 오히려 몸이 더욱 피곤해질 뿐이야.”

“하지만…….”

“여기 있는 쪽이 내게는 좀 더 안심하고 쉴 수 있으니 걱정 말게.”

그런 말을 들어도, 유더 또한 오늘은 좀처럼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몇 번 잠을 청해 보려다 가늘게 한숨을 내쉬자, 키시아르가 작은 속삭임을 흘렸다.

“왜?”

“…아뇨.”

“배가 고픈가?”

“아닙니다.”

단호하게 부정했음에도 잠시 움직이는 소리를 내던 키시아르가 유더의 손을 잡고 안에 무언가를 쥐여 주었다.

“시간이 늦어 지금 당장 줄 수 있는 건 없지만, 일단 이거라도 갖고 있게.”

유더는 손 안에 들어온 물건이 뜻밖에도 익숙한 감촉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둥글고 딱딱한 표면을 바스락거리는 종이 포장지로 감싼 그것을 그가 알아보지 못할 리 없었다.

“……이건.”

사탕이냐고 물으려던 순간, 포장지 표면의 닳아 해진 부드러운 부분이 손끝에 닿았다. 유더는 그 사탕의 정체를 곧바로 깨달았다.

“제가 가지고 있던 사탕, 아닙니까.”

“맞아.”

“이걸 어떻게…….”

“부상을 치료하던 도중 옷에서 굴러떨어진 걸 내가 갖고 있었네. 먹기 싫어서 남겨두었나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건 아니었나 보군.”

“이걸 그때부터 지금까지 가지고 계셨단 말입니까? 저는… 찾아도 없기에 누군가 버린 줄 알았습니다.”

“이건 쉽게 썩지 않는 물건이야.”

태연하게 대답한 뒤 키시아르는 잠시 침묵하다 한 마디를 덧붙였다.

“…하마터면 내 보좌가 남긴 마지막 물건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물건이라 생각하니 줍지 않을 수 없더군.”

그를 놀라게 만든 죄가 있는 유더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 키시아르가 부드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포장지가 꽤 닳아 있던데, 왜 3일이 지나도록 먹지 않고 남겨두었지? 하루에 하나씩 먹을 수 있도록 맞춰서 주었는데… 맛이 없던가?”

“아뇨. 그건…….”

유더는 망설이다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다시 되찾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사탕을 준 장본인이 이런 질문을 하니 갑자기 사탕 포장지가 닳을 때까지 그것을 매만지며 초조한 마음을 가라앉혔던 스스로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었다.

“……3일이 지나고도 돌아오시지 않으면, 그때 먹을 생각이었습니다.”

“먹고 나서는?”

“찾으러 떠났겠지요.”

망설임 없는 답에 키시아르가 ‘맙소사.’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혼자서 말인가?”

“그럴 거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렇기는 한데…….”

중얼거리던 사내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다음 순간, 웃음기와 열기로 떨리는 달콤한 한숨이 그에게서 흘러나왔다.

“……음. 어떻게 한다. 지금 정말… 뭔가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가온 입술이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이어서 코끝과 양 뺨, 그리고 입술로 미끄러졌다. 쪼듯이 가벼웠던 입맞춤이 반복되면서 조금씩 깊어지는 동안, 유더는 갑작스러운 접촉에 놀라기는 했을지언정 막지는 않았다.

마침내 입술을 가르고 들어온 혀가 한참을 얽혔다 떨어져 나가는 순간, 누구라 할 것 없이 허기진 듯한 숨결이 사이로 흘러나갔다.

“……잃어버리지 않아서 다행이야. 잘 자게.”

이마와 코끝을 맞댄 채로 듣는 인사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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