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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270화 (270/805)

270화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로나 한 명만 보낼 수는 없으니 저희에겐 고마운 일이지만…….”

“대신 조금이라도 위험하게 느껴진다면 곧장 돌아오셔야 합니다.”

마법사들이 안심되면서도 일말의 불안을 남긴 얼굴로 물러섰다.

로나 또한 비슷한 얼굴로 유더를 보다가는 이내 굳은 얼굴로 앞서 나갔다.

“알겠습니다. 가시죠.”

유적지는 몬스터들의 흔적이 남겨진 마법진 쪽에서 정말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로나는 근처를 빙글빙글 맴돌다 다른 방향으로 사라진 듯한 발톱 자국을 보며 조심스레 목소리를 낮추었다.

“유적지 주변에 침입을 막기 위한 장치를 많이 해 두었는데, 다행히 효과를 발휘한 모양이네요. 장치를 해제하고 들어가야 하니 잠깐 기다려 주세요.”

그녀가 손을 뻗어 허공 한 곳을 짚었다. 뒤이어 주변의 공기가 이전과 다르게 로나의 손끝을 따라 희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도 마력을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로나는 아주 오랫동안 고생하고 나서야 겨우 그 작업을 끝냈다. 헐떡이는 호흡 속에서 잠시 후 허공의 풍경이 아지랑이처럼 흐트러지며 이전과 다른 모습이 드러났다. 그곳은 여태 지겹도록 보아온 숲이 아니었다. 마정석과 온갖 도구를 이용하여 존재하는 모든 곳마다 거대한 진을 겹쳐 그려둔 공터, 그리고 그 옆에 마련된 작은 초소가 유더의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저것이 바로 저희 서부 마법사 연합이 내내 연구해 온 마력의 샘 추정 유적이에요. 여기에 마지막으로 외부인이 들어온 지 적어도 1년은 된 것 같네요.”

로나가 가쁜 숨을 내쉬며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을 법한 바위 몇 개가 겹쳐져 있었다.

‘……그저 평범한 바위들 같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그곳은 유더가 어렴풋이 상상했던 그 어느 모습과도 전혀 똑같은 구석이 없었다. 샘이라는 이름을 지녔으나 물이 보이지도 않았고, 울타리나 벽을 쌓아 올려 공간을 구분해 두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유더의 의문을 이해한 듯 로나가 손짓을 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세요. 일반인은 왜 그곳이 샘이라 불리는지 모를 테지만, 각성자인 아일 님이라면 설명 없이도 깨달으실지 모르죠.”

유더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바위 쪽으로 가까이 다가갈수록 침입자를 향한 경계용 마법의 기운들 때문에 피부가 저릿했다. 그것들을 자극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바위 앞에 섰으나, 여전히 특별해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거기 겹쳐진 바위 사이의 안쪽이 중요해요.”

대체 어디에나 흔히 있을 법한 바위들이 서로 겹친 틈에 무엇이 있기에 이토록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매달려왔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막 손을 조금 뻗은 순간이었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갑자기 검은 틈새 사이에서 훅하고 치솟아 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그는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치솟아 오르려던 느낌 또한 순식간에 흩어져 사라졌다.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방금 그건 뭐였지?

유더는 눈을 가늘게 뜬 채 바위를 노려보다 다시 한번 손을 조심스레 뻗었다. 이번에는 같은 느낌이 느껴져도 뒤로 피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 움직임에 반응하듯이 틈새 사이로 솟아 나온 무언가 또한 사라지지 않고 거침없이 밖을 향하여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저게 설마…… 마력…인가?’

바위 틈새로 솟아 나오던 무형의 기운은 유더가 손을 거두자 다시 사라졌다. 그는 몇 번 그 움직임을 반복하여 일정 거리 안쪽으로 바위에 가까이 다가가면 틈새 안쪽에서 마력이 샘솟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통 마법사들이 마법을 쓸 때 느껴지던 기운과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너무나 짙고 선명하여 별달리 집중하지 않아도 존재를 느낄 수 있는 그것은 마력이라기보다는 각성자들이 힘을 쓸 때 솟아나오는 기운 쪽에 더 가까워 보일 지경이었다.

“보이시나요?”

“이게… 마력입니까?”

“맞아요. 정확히는 고대의 마력과 거의 비슷할 만큼 농축된 마력이죠. 이제 왜 저희가 거기에 마력의 샘이라는 이름을 따다 붙였는지 아시겠지요?”

로나가 자랑스러워하는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전설 속 대마법사 루마와 초기 마법사들은 끝없이 흘러나오는 마력의 샘을 통해 힘을 얻었다고 하죠. 저는 그게 바로 저런 형태였을 것이라 생각해요. 이렇게 짙은 마력이 가득한 곳에서 그들은 진정한 마법의 힘을 깨쳤던 거겠죠.”

“…….”

“저 틈새는 마력이라는 크림이 잔뜩 든 주머니의 뚜껑과 같아요. 가까이 다가가면 그 주머니를 누른 것처럼 마력이 주변을 향해 흩뿌려지죠. 저희는 저것이 어쩌면 이 대삼림이 처음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장소일지도 모른다고 추측하고 있어요. 말 그대로 살아있는 유적이죠.”

뜨거운 열망이 어린 눈으로 바위 틈새를 바라보면서 로나가 말을 이어나갔다.

“안에 깃든 마력의 양보다는 바로 저 농도가 중요해요. 이토록 순수하고 농도 짙은 마력이 남아 있는 장소는 아마도 전 대륙을 통틀어 이제 이곳뿐이겠죠. 그것을 증폭하여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내기만 하면, 현재 겪는 고질적인 마력 부족 현상과 그로 인한 문제도 다 해결될 거라고 저는 믿어요.”

서부 연합의 마법사들은 그 안에 든 마력이 빨리 고갈되지 않도록 주변에 마력을 가두는 진을 뒤덮은 채로 몹시 조심하며 연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유더는 키시아르가 쉽게 풀어 주었음에도 완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었던 이야기들을 이제야 좀 제대로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오랫동안 연구에 변화가 없어 진주탑에서도 기대를 접었었는데, 최근에서야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고 했었지……. 그렇다면 그 변화의 계기는 뭐였을까.’

마력이 흘러나오던 바위 틈새는 그림자가 고인 듯 몹시 짙고 어두웠다. 유더는 그 주변을 빽빽하게 감싼 크고 작은 마법진들을 보며 미간을 슬며시 찌푸렸다.

“이전에 말씀을 들었을 때, 저 샘이 최근에서야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말씀하셨던 듯한데… 혹 어떤 변화가 시작된 것인지 물어보아도 되겠습니까?”

“음… 이곳 전체를 두르는 99중 증폭 마법진이 완성된 후 흘러나오는 마력 농도가 점점 더 짙어지기 시작한 게 변화의 시작이었다고 기억해요.”

로나가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사실 이 연구가 처음 시작될 때만 해도 여기엔 증폭진이 없었어요. 그냥 이곳의 농축된 마력과 현재 세상에 존재하는 보통 마력의 차이를 알아내면 답이 나올 거라 믿고 연구했죠.”

그러나 어느 마법사가 증폭진을 설치해 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한 뒤, 서부 연합의 마법사들은 오랫동안 토론을 벌였다. 증폭진 설치에는 단순한 방어진보다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을 설치하는 것보다 다른 방식에 더 힘을 쏟는 쪽이 옳다고 주장하는 자들과 증폭진 설치가 변화의 해답이 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주장하는 자들 사이의 오랜 토론은 결국 설치 쪽으로 끝을 맺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을 들여 설치한 증폭진이 완성된 순간, 놀랍게도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던 마력 또한 이전보다 훨씬 농도가 짙어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제어 중이던 증폭진이 반쯤 깨진 상황이지만, 이 정도면 그래도 훼손 상황이 크지 않은 것 같아요. 곧 다시 보수해서 재설치를 해야죠.”

유더는 밝아 보이는 로나의 얼굴과 마력의 샘, 그리고 주변을 두른 마법진을 번갈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만 보면 이상한 균열과 마력의 샘은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여. 하지만 여기서 계속 균열이 목격되었다는 건 분명 어떤 관련이 있기는 하다는 뜻일 텐데…….’

역시 마법에 대해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내기가 어려웠다. 키시아르의 부재가 이토록 크고 아쉽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유더는 균열이 금방 나타나기라도 할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다 작게 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로나 님도 혹 여기서 균열을 보신 적이 있었습니까?”

“음, 어제 봤던 그 이상한 균열 말씀이시죠? 저는 본 적이 없었어요. 여기 와서는 늘 저 샘 부분만 살피니까 다른 데 한눈판 적이 없거든요.”

“그렇군요.”

“그 연관성을 찾으시러 온 건데 오늘은 별 게 없어서 아쉬우시겠군요.”

“아닙니다. 여기 와 보게 해주신 것만 해도 감사하지요.”

유더의 깔끔한 인사에 로나가 문득 이전과 조금 다른 미소를 지었다.

“아일 님은 정말 대단한 능력을 지니신 분 같네요. 솔직히 마법사가 아닌 분이 이렇게 단숨에 마력을 볼 줄은 몰랐거든요. 모든 각성자가 그런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그건 저도 몰랐습니다.”

“마력에 굉장히 적응력이 좋으신 것 같은데 어릴 때 마력 감응력 탐지를 한 번쯤 받아보셨더라면 어땠을까 싶어요. 받아보신 적 없으시죠?”

“예.”

마력 감응력 탐지는 무슨. 하루하루 산을 뛰어다니며 나무를 자르고 먹을 만한 풀을 캐 오는 것만 해도 바쁜 삶이었다. 유더의 답을 들은 로나는 작게 웃으며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매년 수많은 아이들이 마법사가 되려고 그 탐지 검사를 받지만 대부분은 마력의 실마리조차도 보지 못해요. 어쩌면 우린 아일 님이라는 뛰어난 마법사의 싹을 하나 놓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건 너무 과분한 말씀 같습니다.”

유더는 그녀의 칭찬을 흘려들으며 역시 다음에 다시 다른 동료들과 함께 와 보는 쪽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몸을 돌리려던 순간, 문득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잠깐. 마력이 흘러나오는 저 바위 틈새의 새카만 그림자……. 조금 이상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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