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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266화 (266/805)

266화

“이 기울어진 기둥은 어떻게 하면 됩니까?”

“아. 그건 다시 위치를 바로잡기 힘들 것 같아서 뽑아내려고 했는데…….”

“뽑는 것보다 다시 세우는 쪽을 원하신다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정말인가요?”

땅의 힘을 쓸 수 있는 이에게 그 정도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유더는 얼떨떨해하는 마법사의 앞에서 순식간에 기둥을 다시 땅 밑으로 깊이 박아 다시 똑바로 세웠다.

“더 할 일은 없습니까?”

눈을 크게 뜨고 똑바로 선 기둥을 보던 마법사가 방금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진 얼굴로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네. 여기는 이제 다 됐습니다. 힘이 아직 남아 있으시다면 저쪽으로 가 보시는 게…….”

“알겠습니다.”

감사의 인사가 없어도 개의치 않고 곧장 돌아서는 그의 뒷모습을 향해 마법사들이 다양한 감정이 담긴 시선을 보냈다. 수장인 미칼린이 마병단을 오해했다 밝히며 협력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통보하고, 마병단원들의 도움을 받아 거점까지 온 마법사들 또한 그들을 감쌌다지만 그렇다고 그간의 반감이 한순간에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유더는 그런 마음들을 억지로 누그러뜨리려 하지 않았다.

가케인이나 칸나처럼 성격이 좋은 이들이 여기 있었다면 벌써 그들과 친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더는 제가 그들처럼 할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러니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모습이 마법사들에게는 오히려 나쁘지 않은 반응을 일으켰다. 혼자서 수십 명 어치는 될 법한 기적 같은 일을 해내면서도 그리 큰일을 해냈다 여기지 않는 듯 평온한 모습이 몹시 특이하게 느껴진 탓이었다.

물 위에 떨어진 단 한 방울의 기름처럼 느껴지는 마병단원을 향해 호기심을 실은 은밀한 시선들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아일 님. 마법진 수복이 이제 거의 다 끝났다고 하네요. 저녁을 먹으러 가려는데 같이 가시겠어요?”

유더는 잔해를 땅 아래 파묻다 말고 저를 부르는 시선에 고개를 들었다. 서쪽 국경 지대 마을에서부터 함께 온 마법사 로나와 그녀의 동료들이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마법사들은 벌써 식사를 하러 갔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뇨. 저는 괜찮습니다.”

“일행 분들이 떠나셔서 식사하시기 어려우신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굶으면 몸에 안 좋아요. 하루 종일 고생하셨는데 같이 드시죠.”

로나의 곁에 서 있던 다른 마법사가 큰 결심을 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그래요. 오늘 제일 일을 많이 하신 분이 굶으신다니, 말도 안 되죠. 서부 마법사 연합의 이름이 부끄러울 겁니다.”

유더는 잠시 그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아무래도 저 마법사들은 혼자 남은 유더를 나름대로 걱정하여 이곳으로 몰려온 듯했다.

일행들이 떠난 탓에 식사하기 어려웠다기보다는 제가 끼어들면 다른 마법사들의 식사시간 분위기가 차가워질 것이 뻔해 피하려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함께 대삼림을 거쳐 온 짧은 인연만으로 그를 신경 쓰려 노력하는 마법사들의 어색하고도 호감 어린 모습이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그래요. 잘 생각하셨어요.”

유더가 허락하자 마법사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그들은 유더를 둘러싼 채 마법사들이 식사를 하는 장소로 향했다. 피로한 얼굴로 마른 빵과 수프를 먹고 있던 다른 마법사들이 그를 본 순간 입을 다물고 조용해졌다. 얼굴에 쏟아지는 시선들이 따갑기 그지없었다.

“그……. 여기 계시면 저희가 아일 님이 드실 분량까지 가져오겠습니다. 괜찮으시죠?”

“네.”

함께 온 로나와 마을에서 온 마법사들이 오히려 불편한 얼굴로 유더의 눈치를 살폈으나 그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식사를 하러 오기로 했을 때부터 예상했던 일이었다. 그는 자리에 앉아 마법사들이 가져다 준 빵을 스스럼없이 씹었다. 유더가 시선을 느끼지 못하는 양 태연하게 식사를 계속하자 그를 살피던 다른 마법사들의 태도도 서서히 본래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침묵이 사라지고 다시 두런두런 이야기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음을 확인한 뒤에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쉰 로나가 유더를 향해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오늘 일을 정말 많이 도와주셨는데,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그 정도는 괜찮습니다.”

홀로 반 이상의 일을 처리하고도 ‘그 정도’라고 언급하는 태도에 마법사들이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렇군요. 그 정도라…….”

마법사들의 말이 급속도로 사라졌다. 그러나 침묵은 오래 가지 않았다. 한동안 얌전히 식사를 하던 마법사들 중 한 사람이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유더에게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었다.

“저, 마을에서 당신들이 마병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정말 궁금했던 것이 있는데 혹시 지금 물어보아도 될까요?”

“제가 답해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답해드리겠습니다.”

유더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수많은 질문이 기다렸다는 듯 쏟아졌다.

“원래 각성자들은 다 아일 님이나 일행분들 정도의 힘을 쓸 수 있습니까?”

“힘을 쓸 때 정말 아무런 준비시간이 없는 것 같던데 어떤 느낌으로 사용하시는 거죠?”

“대체 정확히 어떤 능력으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는 건지…….”

지나치게 많은 질문이 쏟아져 전부 답하기는 힘들었으나, 유더는 할 수 있는 한은 간결하게 대답해 주었다.

“가진 능력이 각자 모두 달라 단순히 비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제가 한 일 정도는 다른 동료들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겁니다. 힘을 쓰면 전신의 기력이 빠져나가는 느낌입니다. 무리하면 코피를 흘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 능력에 대해 전부 설명할 수는 없으나 마병단 내의 분류체계로는…….”

답을 얻은 마법사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군요. 정말 신기하네요.”

“우리가 마법을 쓰는 구조와는 전혀 다른 것 같네.”

“이 말대로라면 고대 기록에 남겨진 초기 마법의 사용형태 쪽과 오히려 비슷하지 않나?”

유더의 답을 토대로 열띤 토론이 시작되자 근처에서 몰래 귀를 기울이며 듣고 있던 다른 마법사들도 참지 못하고 은근슬쩍 끼어들기 시작했다.

“저기, 저도 뭣 좀 물어봐도 됩니까?”

“…말씀하시죠.”

“그게, 아까 잔해를 치울 때 보니까…….”

그렇게 시작된 질문 공격은 수프가 모두 식고 빵에 이가 들어가지 않을 만큼 딱딱해지고 나서도 멈추지 않았다. 창밖에 해가 완전히 진 것을 발견한 로나가 동료들을 말리지 않았다면 유더는 영원히 그들의 질문에 답해야 했을 것이다.

“죄송합니다. 우리 마법사들은 궁금한 게 생기면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정도를 모르고 붙잡았네요.”

한참이 흘러 겨우 벗어난 유더에게 로나가 미안한 얼굴로 사과를 했다.

“괜찮습니다. 마법사 분들의 열정적인 모습에는 나름대로 익숙한 편입니다.”

젊은 마법사들의 열정이 대단하다 생각하기는 했으나 힘들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마병단에서 타이스 율만이 보여 준 모습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뜻을 담아 대답하자 로나 또한 미칼린의 옆에서 들었던 말을 떠올린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하긴. 마병단에는 지금 타이스 율만 님이 계시다고 했죠.”

“네.”

“제가 진행하는 개인 연구의 선행 연구기록을 인용할 때 그분의 연구논문을 정말 많이 찾아보았었어요. 하지만 직접 뵌 적은 한 번도 없네요. 아일 님은 그분을 자주 뵈셨어요?”

매일 보지는 않았지만 칸나와 함께 꾸준히 그를 찾아가 얼굴을 보기는 했으니 자주 만났다고 말해도 되리라. 유더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자 로나의 눈빛에 호기심과 다른 감정들이 감돌았다.

“혹시… 내일도 저희를 도와주시러 나오실 예정이신가요?”

“예.”

“알겠습니다. 오늘은 저희가 아일 님께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내일은 아일 님께서 필요로 하시는 부분을 저희가 도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그저 고마움의 의미로만 발언했다기에는 다소 의미심장한 발언이었다. 유더가 눈을 가늘게 뜨자 로나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오늘 일이 빨리 정리된 덕분에 저희가 연구를 위해 터 둔 장소들을 내일 다시 둘러보러 갈 수 있게 될 것 같거든요. 유적지를 포함해서 말이에요.”

유적지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로나의 표정이 조금 변하는 것을 유더는 놓치지 않았다.

“수장님께서도 뭐든 도와드리라고 말씀하셨으니 잘 생각해 보세요. 푹 쉬시고요.”

유더는 사라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다 숙소 안으로 들어섰다. 마법사들이 내준 숙소는 손님을 위한 예의를 의식한 듯 그나마 가장 깨끗하게 정돈된 곳이었다.

침상은 루산 사제의 몫까지 두 개 있었으나 그는 아직도 부상자들의 곁에 있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유더는 침상에 앉는 대신 어둠이 내린 창 쪽을 향하여 걸어갔다. 멀지 않은 곳에서 바람에 스친 나무들이 잎과 나뭇가지를 떨며 흐느껴 우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일이 생각보다 잘 되었다. 어쩌면 내일 바로 유적지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분명 흥분되어야 마땅할 텐데도 마음은 여전히 어둠이 내린 숲처럼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이 춥고 음산한 소리를 지금 그의 동료들도 듣고 있을까.

듣고 있다면 어디에서 듣고 있을까.

그리고 키시아르는.

유더는 마지막 생각의 끝에서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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