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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252화 (252/805)

252화

마력의 샘 유적. 유더는 낯선 이름을 잠시 곱씹어본 뒤 조용히 기억을 더듬었다.

‘뭘 연구하나 했더니, 대삼림에 그런 유적도 있었던가?’

사라인 대삼림은 불가사의한 생명력을 지닌 숲으로서, 이전부터 그 밑을 파내면 고대의 보물이 나올지 모른다고 믿는 자들이 많았다. 이름을 다 모를 만큼 많은 이들이 사라인 대삼림 근처에서 인생을 허비하며 발굴에 목숨을 바쳤고, 혹은 앞으로도 바칠 테지만 유더가 아는 한 이렇다 할 진짜 보물을 발견했다는 사람은 끝까지 없었다.

‘서부 대토벌 이후에도 거기서 연구를 하는 마법사들이 있다는 말은 들은 기억이 없어…… 진주탑이 무너지기도 했고. 음.’

역시 이들의 연구는 이전 생에서는 서부 몬스터 토벌을 계기로 끝난 것이었을까. 유더는 고민하다 슬쩍 키시아르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마치 그 순간을 기다렸던 것처럼 그가 입을 열어 로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처음 듣는 유적 같지만, 마력의 샘이라는 이름은 제법 익숙하군요. 혹 대마법사 루마와 관련된 마력의 샘 전설에서 따온 이름입니까?”

“따온 건 맞지만, 또 그것만이 다는 아니에요.”

연구와 관련된 화제이기 때문인지 로나의 눈빛에 갑자기 생기가 넘쳐흘렀다.

“우리 서부 마법사 연합에서는 그 유적이 정말로 마력의 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이게 얼마나 마법사들에게 대단한 일인지 여러분은 모르실 거예요.”

“…음. 그렇군요.”

유더의 반응이 몹시 떨떠름하고 덤덤하게 들렸는지, 다른 마법사 한 명이 주먹을 꽉 쥐고 목소리를 높였다.

“물론 허황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죠. 빌름 남작 그자도 그렇고, 본산인 진주탑에서도 소득 없는 연구를 몇 년이나 대규모로 진행하는 데 회의적인 의견이 있지만, 올해는 정말 뭔가 나올 겁니다! 아주 중요한 시기라고 할 수 있죠.”

그러자 순식간에 주변에 있던 마법사들도 다 함께 한마디씩 덧붙이기 시작했다.

“맞아. 올해는 정말로 뭔가 감이 온다고! 그 땅의 마력 수치 변화가 그렇게 크게 변했는데 아무것도 없을 리가 없잖아.”

“그러니까 이제 와서 관심을 보이는 놈들에게 빼앗길 순 없지!”

말을 들을수록 더더욱 마병단이 그들의 유적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대체 무슨 이유로 이리 적대감을 불태우는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리 각성자에 대해 알려진 게 없는 시기라지만, 그래도 각성자가 사용하는 힘과 마법사가 사용하는 마력이 전혀 다르다는 건 알 텐데.’

유더가 이쯤에서 그들이 마병단이라는 사실을 밝혀야 할지 고민하는 동안, 칸나가 목소리를 낮추어 키시아르에게 아주 작게 물었다.

“저, 마력의 샘 전설이 뭔가요?”

“대마법사 루마를 비롯한 천 년 전의 초기 마법사들이 마력의 샘이란 곳에서 물을 마시고 마법의 힘을 처음으로 깨달았다고 하는, 마력혁명 전설의 일부지.”

“잘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저분들은 지금 그게 대삼림 안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발굴하고 계시다는 거죠?”

“그런 듯하군.”

“대체……. 저희가 왜 그런 데 관심을 두겠어요? 말도 안 돼요.”

칸나의 표정이 더욱 묘하게 변했다. 다른 마병단원들 또한 이런 허황된 전설 따위와 얽혀 마법사들에게 원한을 샀다는 사실에 복잡한 기분을 느끼기는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리고 그러한 생각들을 부수듯 키시아르가 낮게 속삭였다.

“과연 그럴까?”

“예?”

“저들을 황당하다고만 생각하지는 말도록. 내가 말한 전설과 저들의 말을 함께 생각해 봐. 무언가 익숙한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나?”

‘익숙한……? 그게 무슨……. 아.’

설마?

등 뒤에서 들려온 희미한 목소리에 일순 목 뒤의 솜털이 바짝 일어서는 듯했다. 유더는 여전히 서로 흥분하여 무어라 열변을 토하고 있는 마법사들을 향하여 시선을 돌리고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초기 마법사들에게 마법의 힘을 주었다는 마력의 샘. 그리고 각성자들에게 힘을 준 붉은 돌. 저들이 각성자를 유달리 경계하고 자신들의 연구에 관심을 보이기만 해도 분노하는 건 그 둘을 연관지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가?’

“붉은 돌과 마력의 샘……. 그런 겁니까?”

유더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간 작은 속삭임을 들었는지 등 뒤에서 바람 소리 같은 웃음 소리가 짧게 들려왔다. 키시아르의 뜻을 유더가 매끄럽게 이해했을 때 종종 보이던 흡족한 웃음과 똑같은 그 작은 반응이야말로 그 어떤 대답보다도 확실한 의사표현이었다.

‘이전에 알릭은 루마의 마력혁명인지, 뭔지가 진짜 있었던 일인지 아닌지 모른다고 했었지.’

유더는 이전에 타이스 율만의 제자 알릭이 각성자로 막 각성했던 날 사제 루산과 나누었던 옛이야기의 일부를 떠올렸다. 그때 그는 루마의 마력혁명에 대해 이야기하며 타이스와 자신은 그것이 실재했다고 믿지는 않는다고 이야기했었다.

그 이야기에 따르자면 알릭과 서부 마법사 연합 마법사들은 마력혁명 건에 대해 서로 의견을 달리하는 입장인 것이리라.

‘마력의 샘이 진짜 있었고 저들이 발견해냈다면 이전 생의 내가 분명 알았을 텐데.’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니 결국 서부 마법사 연합의 연구는 실패했거나 혹은 사장되었다고 생각해야겠지만, 고대에 시작된 마법의 기원과 관련된 전설을 붉은 돌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도 있다는 부분만은 여태 생각지도 못했기에 솔직히 놀랍기 그지없었다.

‘마법의 시작과 각성자의 시작이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었다고 여기는 마법사들도 있었다니…….’

서부 연합의 마법사들은 몇 년간 연구결과를 내지 못한 탓에 진주탑조차 이제는 그들의 연구에 회의적인 의견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 보자면 처음에 그 연구가 시작되었던 시기에는 진주탑이 거기에서 무언가 가능성을 보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대체 그들은 그 유적에서 무슨 가능성을 보았던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마법사들을 지켜보는 사이, 로나가 다른 마법사들과 나누는 말이 유더의 귀에 유난히 크게 들려왔다.

“그러니까 거점에 도착하면 일단 방어진 수복부터 도와야 한다고. 수복하는 동안엔 어쩔 수 없이 교대로 경계를 서야겠지만 그 정도 위험은 당연히 감수해야 해…….”

당장 오늘 아침에 몬스터에게 습격을 받아 죽을 뻔한 이가 나왔음에도 마법사들의 눈빛엔 누구 하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들은 당장 돌아가 어서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꽉 찬 상태였다.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저들이 과연 연구가 실패했다고 그리 쉽게 믿고 철수했을까?’

서부 몬스터 토벌이 진행되던 도중에도, 이후 단장 자리에 오른 뒤에도 저들에 대해 조금도 알지 못했던 게 과연 단순히 연구가 실패했기 때문이었던 게 정답인 걸까?

진주탑이 무너지면서 그들의 산하에 존재하던 많은 마법사들이 실종되었고 연구자료 또한 대량 소실되었다지만 저들에 대한 건 어쩐지 그 때문이라고만 여기기에는 무언가가 마음에 걸렸다.

‘마법사… 이 시기에 서부에 있던 마법사들이라……. 직접 토벌에 나선 동안 저곳 소속의 마법사들과 부딪친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대체 이 껄쩍지근한 기분의 이유가 무엇인지 추측하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도중, 유더의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어떤 짤막한 기억과 생각이 동시에 불쑥 치밀어올랐다.

‘……혹시 이전 생에서 마병단이 파견되기 전 서부 국경지대에서 일어났던 사고들과 연관이 있었던 건 아닌가?’

이전 생에서 마병단이 서부에 파견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몇 달 뒤로, 대응이 늦을 대로 늦은 탓에 상황은 이미 심각하기 그지없었다. 그들이 파견되기 전까지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오던 사고 소식 중에서 키시아르가 직접 언급할 만큼 심각했던 몇 가지 일이 있었는데, 그의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분명 마법사들이 사망했던 사건도 하나 있었던 듯했다.

유더는 희미한 기억을 최대한 더듬어 보았다.

‘몬스터 대량 발생으로 추정되는 사고로 국경지대 마을 몇 곳이 전멸했던 사건이었던가?’

몬스터 때문에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본 마을이야 널리고 널렸었지만 그 사건의 특이점은 사망자 중 마법사로 보이는 이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책임을 두고 시끄러워진 탓에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운 서부 상황만 더욱 악화되고 있다며 키시아르가 차가운 평을 내렸던 기억이 났다.

‘그 이후 얼마 되지 않아 마병단이 파견되었으니…….’

유더를 포함한 마병단이 서부에 도착했을 때 그 사건은 이미 수습된 지 오래였다. 만약 그때 죽은 것이 서부 마법사 연합의 마법사들이었다면 유더가 그들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도, 연구가 잊혀져 사장된 것도 모두 이해할 수 있었다.

‘…….’

억측이라면 좋겠지만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했다. 갑자기 눈앞에서 떠들고 있는 마법사들의 얼굴이 죽은 자들의 얼굴처럼 창백하게 비치기 시작하는 듯한 기분에 유더는 차가워진 뱃속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저, 죄송합니다만… 이제 제가 다시 말씀을 드려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아 네. 이런……. 저희끼리 이야기를 하다 보니 또 정신을 놓고 말았네요. 죄송합니다. 말씀하세요.”

어쩔 수 없는 마법사인 로나가 그제야 눈앞에 멀거니 서 있던 손님들의 존재를 깨닫고 미안해하며 대답했다. 유더는 마법사들의 호의 어린 얼굴을 돌아보며 천천히 한 가지 질문을 했다.

“만약 아까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 앞에 마병단이 나타나 직접 오해를 풀려 한다면 어떻게 하실지 궁금합니다. 서부 마법사 연합의 연구에 관심을 둔 적도 없고, 빌름 남작이나 타인 가와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면 믿어주실 겁니까?”

“왜 그런 말씀을 하시죠?”

유더의 목소리에서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꼈는지 로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시선이 새삼스레 유더의 얼굴을 훑었다.

“…여러분은 기사단과 용병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임무를 위해 파견된 입장이라 곧바로 정체를 말씀드릴 수 없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여러분들과의 오해가 깊어지는 건 바라지 않아 여기서 사실을 밝히고자 합니다.”

유더는 잠시 깊이 숨을 내쉰 뒤 충격받은 얼굴로 그를 보고 있는 마법사들을 향하여 정체를 밝혔다.

“저희가 바로 그 마병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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