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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250화 (250/805)

250화

마법사들이 안내한 곳은 대삼림에서 이어진 숲 끄트머리가 바로 지척에 보이는 위치에 세워진 낡은 건물이었다.

“보급을 위해 임시로 빌린 공간이라 볼품없긴 하지요. 그래도 들어오세요.”

들것에 실린 부상자와 함께 마법사들이 안으로 들어가자, 안에 있던 몇 명의 다른 마법사들이 일제히 벌떡 일어나 달려왔다.

“어떻게 되었어? 사제님은 만난 거야?”

“성수는 남아 있었고?”

“그런데 저 사람들은 누구야?”

하나같이 싸우던 도중 달려오기라도 한 듯 차림새가 엉망이었지만 동료를 걱정하는 마음만은 진실되어 보였다. 들것에 실린 부상자와 함께 온 마법사들이 밝은 얼굴로 들것을 침대 쪽으로 옮기며 마병단원들을 돌아보았다.

“나이 든 사제님은 탈진해서 여력이 없고, 젊은 사제는 탈주해 버린 상황에 성수조차 남아 있지 않다고 해서 정말 큰일이 나는 줄 알았어. 그런데 저기 계신 분들이 마침 지나가다 사정을 보고 도와주셨지 뭐야.”

“뭐?”

“저기 저 분이 엄청난 실력을 지니신 사제님이셨거든.”

루산이 순식간에 부상당한 동료를 낫게 해 주었으며, 심지어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았다는 말에 안도한 마법사들이 일제히 경계심을 지우고 머리를 숙여 감사 인사를 표했다.

“맙소사. 정말 감사드립니다, 사제님!”

“다 죽어가던 녀석을 살릴 정도의 힘을 쓰셨는데 어떻게 아무것도 받지 않으실 수 있나요. 비용은 얼마든지 저희 마법사 연합 쪽에 청구해 주세요! 저희는 그런 부분에 인색하게 굴지 않습니다!”

“아, 아뇨… 제가 필요한 곳에 마침 당도하여 도움을 드릴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신성력은 다른 이를 돕기 위해 받은 힘인데 어떻게 비용을 받겠습니까.”

오랫동안 대신전에 처박혀 신성력을 발휘할 일도 없이 구박만 당하며 살아온 루산은 직접적이고도 열정적인 감사 인사에 몹시 감동을 받았다. 그가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말하자 마법사들 또한 감동하여 입을 벌렸다.

“아니… 세상에는 기껏해야 까진 상처 정도만 낫게 하면서도 온갖 생색을 내며 엄청난 비용을 청구하는 사제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런 분이…….”

“나 오늘부터 다시 신전에 나가서 예배할 거야. 다시 한번 신의 어린 새싹이 될 테니 말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뭐? 어떻게 마법사가 되어서 그런 짓을? 내가 먼저 가서 회개하고 있을 거니까 같은 신전에서 만나지 말자.”

“다들 조용히 좀 하자! 사제님이 여기 오신 건 대삼림에 가셔야 하는데 내부 상황이 어떻게 급변했는지 정보가 듣고 싶으셔서라고.”

마법사란 이들은 대체로 늘 말이 많은데, 지금은 죽을 뻔했던 동료가 살아난 상황이라 더욱 심각했다. 그들은 부상자를 침대에 눕히고 상태를 확인한 뒤 돌아온 마법사 한 명이 목소리를 크게 높이고 나서야 겨우 입을 다물어 주었다.

“죄송합니다, 오늘 아침부터 내내 몬스터와 싸우다 겨우 빠져나온 터라 다들 흥분이 가시지 않았거든요. 아무튼… 부상당한 사람도 조용히 쉬어야 할 테니 저흰 다른 쪽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좋겠네요. 따라오세요.”

그녀는 피로한 얼굴로 문을 열고 나가 더 넓은 다른 공간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몇 명의 마법사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와 주변을 지키듯 섰다.

“제 이름은 로나 베잇입니다. 서부 마법사 연합 소속 마법사로 수련의 길을 걷기 시작한 지는 올해로 15년째죠. 지금 여기서 가장 경력이 오래된 사람이 저니까, 제가 대표로 이야기를 드려도 괜찮을까요?”

“물론입니다.”

가케인이 대답하자 로나라 이름을 밝힌 마법사가 미소를 지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희 서부 마법사 연합은 몇 년 전부터 사라인 대삼림에서 줄곧 연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의 험난함에는 익숙해요. 방어진을 빼곡히 설치한 연구 거점의 경우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몬스터에게 피해를 입은 적이 없었죠. 올해를 제외하면 말이에요.”

“그 정도로 상황이 심각합니까?”

질문을 들은 로나의 눈빛이 심각하게 변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사라인 대삼림에 인접한 타국 쪽에서는 이미 한 달도 더 전부터 많은 피해가 보고되었죠. 그때만 해도 저희 쪽에선 안일하게 생각했었던 게 사실이에요. 그쪽들은 요즘 정세가 어지러우니 준비가 미흡했던 탓에 피해를 보았을 뿐이고, 저희는 아니니까 괜찮을 거라 여겼죠.”

몬스터가 제국 안쪽까지 침범할 만큼 대량 발생하는 시기는 예년의 기록대로라면 몇 달은 더 남아 있었다. 마법사들은 가장 위험한 시기가 닥치기 전에 미리 주변의 몬스터를 토벌해 정리하는 정도면 예년처럼 충분히 안전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갑자기 제국 쪽 대삼림 지역에서도 처음 보는 몬스터들이 목격되었다는 보고가 들어왔어요. 소문이 퍼지며 육로 무역이 불안정해질 위기에 놓이자 국경지대 영주들이 서부에서 가장 큰 도시인 타이누 영주에게 지원을 요청했는데, 그쪽도 그쪽 나름대로 문제가 좀 있어서 말이에요.”

타이누의 영주 빌름 남작은 인색하기로 유명했다. 그는 다른 지역보다 몬스터의 발생이 잦은 서부에서 토벌을 위한 전력을 매년 내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제가 지닌 병력을 지원하는 의무를 아까워했다. 때문에 서부 마법사 연합에 강제로 도움을 요구했으나, 그들과 사이가 좋지 않은 마법사들 또한 움직이기 싫은 마음은 마찬가지였다.

“타이누의 영주는 그간 대삼림에서 연구하게 해 주는 대가로 서부 마법사 연합의 힘을 마음대로 빌려 썼어요. 협력 관계일 뿐이지 상하관계가 아닌데도 몇 년 내내 그자들 대신 몬스터를 토벌하느라 저희 모두 화가 나 있었죠.”

마법사들은 올해야말로 타이누의 영주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갈등을 빚으며 제각기 본가인 타인 가와 진주탑 측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이, 국경지대에 나타나는 몬스터들의 숫자는 순식간에 더욱 불어났다.

“그쪽 일 처리가 늦어지는 사이 대삼림에서 사상자가 많아지니 일반 주민들은 도망을 가 버리고, 저희는 저희 나름대로 타이누의 영주를 상대하느라 머리가 아팠죠. 얼마나 화가 났으면 저희 수장님까지 타이누의 본거지를 떠나 여기에 오셨을 정도였거든요.”

“그랬군요.”

“그러다가 오늘 아침에 갑자기, 그 일이 터진 거예요.”

100개가 넘는 대형 방어진을 두른 서부 마법사 연합 거점지대에 갑자기 몬스터들이 나타났다. 수 시간의 사투 끝에 잡기는 했으나 수십 개의 방어진이 깨져나가며 건물 일부가 무너지는 피해를 입었고, 많은 마법사들이 부상을 당했다.

“사망자는 다행히 없었지만… 아까 사제님이 치료해 주신 동료의 상태가 너무 심각했어요. 그래서 그나마 사제분들이 두 분이나 머물고 있는 이 마을로 달려왔는데……. 네. 상황이 그렇게 된 거예요.”

로나의 이야기는 이전 생에서 이미 서부 몬스터 토벌전의 상황을 겪었기에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고 있는 유더에게도 몹시 흥미롭게 들렸다. 서부 마법사 연합과 타이누 영주 간의 오랜 대립이 초반 토벌 시기를 놓치게 만드는 데 영향을 미쳤다니. 여기에 오지 않았다면 절대로 알 수 없었을 정보였다.

‘그때는 그냥 모두가 마병단에게 비호의적인 줄 알았는데… 그들끼리도 이미 사이에 금이 갈 대로 가 있었군.’

“사실 처음에는 사제님이 타이누에서 오신 분인 줄 알았던 게 그 때문이었어요. 영주가 드디어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고 한 수 굽혀 지원을 보내주기 시작한 줄 알았죠.”

스스로 한 말이 우스웠는지 로나가 코를 울리며 웃었다.

“역시 그 인색한 자가 그럴 리가 없는데 말이에요!”

그녀는 다시 한번 루산에게 감사를 표했다.

“정말 사제님이 그때 와주셔서 다행이에요. 그자들은 저희의 소식을 듣는 대로 속 시원해하며 웃었겠죠.”

“그러면 서부 마법사 연합에서는 이대로 피해만 수복하신 뒤 떠나실 예정입니까?”

이번에 질문을 한 이는 가케인이 아니라 여태 뒤에서 조용히 말을 듣고만 있던 키시아르였다. 모자를 깊이 눌러써 얼굴을 가린 덕에 한층 거대해 보이는 사내의 목소리가 의외로 좋다는 사실에 놀랐는지 마법사 몇 명이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돌아보았다.

“음, 그건 아직 의논 중이에요. 하지만 아마 완전히 떠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연구 거점을 떠날 수 없다는 이들도 많고… 무엇보다도 수장님께서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계시거든요.”

“이대로라면 오늘보다 더 위험해질 수도 있을 텐데, 그래도 말입니까.”

“위험하다고 물러설 거라면 애초에 여기까지 오지 않았겠죠. 우리 마법사들은 그런 사람들이에요. 당장의 위험보다 미래의 답을 찾는 인종이죠.”

로나가 고개를 저으며 입술 끝을 올려 미소를 살짝 지었다.

“혹시 저흴 걱정해 주시는 건가요? 저흰 오히려 여러분 쪽이 더욱 걱정되는데요. 이 이야기를 듣고도 삼림에 가실 생각이세요?”

“네. 가야 합니다.”

“큰일이네요. 본래라면 이리 큰 도움을 받았으니 저희가 도와드려야 마땅한데……. 지금은 저희도 여력이 부족해서요.”

대삼림을 다니는 데 익숙한 상인들이나 용병들도 예측할 수 없이 나타나는 몬스터 때문에 며칠 사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 몇 년을 여기서 지낸 마법사들조차 피할 수 없던 위험을 무시하고 나아가려는 자들이 대체 어떤 목적을 지녔는지 궁금했으나, 로나는 은인에 대한 예의로 그 호기심을 애써 눌렀다.

“도움은 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뇨. 그래도 그럴 수는 없죠…….”

곰곰이 생각하던 로나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제안을 했다.

“음… 저와 몇몇 동료들은 곧 거점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인데, 혹 괜찮으시다면 거기까지라도 함께 가시겠어요? 저희 거점이 있는 곳은 그래도 아직까진 가장 안전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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