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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232화 (232/805)

232화

유더는 제게 달려든 이들이 지척에 다가올 때까지 여유롭게 지켜보았다. 수 개의 검이 일시에 자비 없이 그의 전신을 향해 쇄도했다.

“유더!”

그의 강함을 알면서도 깜짝 놀란 동료들이 뒤에서 비명을 질렀으나 그들이 상상했던 끔찍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철로 만들어진 검들은 유더의 몸을 침범하지 못한 채 허공에 박힌 듯 잠시 멈추었다가는, 그가 가볍게 내뻗은 손을 한 번 움직이자마자 폭발하듯 바깥쪽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으윽, 악!”

“크악!”

쇠와 쇠가 제멋대로 퉁겨 나가며 부딪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검을 놓친 이들이 속출했다. 비명을 지르며 무기력하게 쓰러진 이들 뒤로 튕겨 나간 검들 또한 사방으로 흩어져 바닥을 굴렀다.

“아, 아파. 내 손목…. 내 손목이……!”

“아니야… 이건 꿈이야……. 아니라고…!”

손목이 꺾인 고통에 신음하며 팔을 쥐고 구르는 자와 공포에 질려 엉덩이를 끌며 뒤로 물러나는 자, 무어라 중얼거리며 고개를 젓는 자. 누구 하나 검을 주울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들이 허둥지둥 물러나자 또 다른 기사들이 달려들었으나 그 움직임에는 이미 살기가 없었다.

“제, 젠자앙! 미천한 놈 주제에!”

그 미천한 놈보다 못한 건 누구냐. 유더는 대답 대신 날아드는 검을 고개 한 번 슬쩍 숙여 피한 다음 빈틈이 드러난 기사의 손목을 쳐내 그대로 날려 보냈다.

“으아아아! 이 괴물!”

“네가 기본도 안 된 걸 남의 탓을 하면 안 되지.”

지금까지 달려든 기사들은 모두 하나같이 빈틈투성이에 몸도 제대로 단련하지 않아 뻣뻣했다. 하다못해 마지막까지 싸우겠다는 근성조차 없었다. 적어도 저를 죽이려는 이들 앞에서도 마지막까지 발악 정도는 하던 키올레보다도 못하니 황궁기사단의 이름이 우스울 지경이었다. 훈련이랍시고 나와서 쓸데없는 짓만 저지를 때부터 짐작은 했으나, 대부분 그저 혈통만 가지고 기사단에 들어온 할 일 없는 망나니 귀족 자식들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유더는 쓰러진 기사들 주변에서 쭈뼛거리며 달려들지 못하는 나머지 기사들을 향해 차갑게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아예 달려들 용기조차 없나?”

“…….”

“오지 않으면 내 쪽에서 갈 건데, 그래도 괜찮나 보지?”

마치 아랫사람을 훈련시키는 듯한 차갑고 가차 없는 목소리에 기사들이 또다시 분노한 얼굴로 달려들었다.

“이, 이이 빌어먹을 놈, 내가 무서워서 가만히 있는 줄 아느냐?! 으, 으아아악!”

그러나 결국 누구의 검도 유더를 제대로 공격하지 못했다. 가차 없고 모욕적이면서도 전례 없는 방식의 우스운 대결이 계속되었다. 기사들은 제 손에 제대로 잡히지 않는 검과 말을 듣지 않는 땅 사이에서 허우적대다 쓰러지고 발목이 붙잡혀 구르기를 반복하며 비명을 지르기 바빴다.

그렇게 23명 모두가 공평하게 나가떨어지는 와중, 유더는 제가 특별히 얼굴을 기억해 두었던 이들에게는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진심을 담은 손길을 베풀어주기도 했다.

키시아르를 모욕했던 자, 무시했던 자, 유더를 무릎 꿇려 땅을 핥게 만들겠다고 으름장을 놓던 자들이 혼비백산하여 땅을 기다가 엉덩이 뒤에서 치받는 물줄기에 놀라 얼굴을 처박고 비명을 질렀다. 도망치려 하면 땅이 흔들리고, 바람이 눈을 뜨지 못하게 하다 물과 불이 달려들며 무기가 제 말을 듣지 않으니 도무지 제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아악! 살려 줘!”

그 모습을 보며 마병단원들은 새삼스러운 감정에 젖어 들었다. 그들이 내내 짜증과 분노를 삼키며 상상만 했던 모든 것들이 눈앞에서 현실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그들 중 누가 나섰어도 기사들을 상대로 지지는 않았겠지만, 유더만큼 상대를 잘 농락하며 우스꽝스럽게 만들지는 못했으리라. 허우적대며 고함을 치는 기사들은 정말이지 하나도 고귀해 보이지 않았다. 이토록 웃긴 광경을 살아서 또 볼 수 있을지 의심될 지경이었다.

“하… 하하. 하하핫.”

처음에는 여차하면 유더를 돕기 위해 긴장을 풀지 않고 준비하던 이들이 점차 하나둘 웃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웃음은 점차 커져 갔고,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한 무리의 응원단처럼 변했다.

“어어, 유더! 뒤에서 한 놈 간다! 그렇지! 바로 그거야!”

“저 녀석들, 아까 우릴 비웃던 그 패기는 어디로 갔어?”

“좀 더 근성 있게 물고 늘어지라고! 매일 훈련한답시고 보란 듯 검을 휘둘러 대더니 고작 그거야? 마병단에서 제일 어린 지미도 너희들 열 명보다 낫겠다!”

“…….”

그러나 기사들은 이미 그 목소리를 듣고 화를 낼 정신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저 괴물 같은 놈……!’

키올레는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등골을 타고 흐르는 오싹함에 남몰래 몸서리쳤다. 허세를 부려 뒤로 물러나기를 천만다행이었다. 혹시라도 앞에 나섰다면 저들과 다름없는 꼴로 땅을 기고 있었으리라. 예전에 제가 유더에게 당했을 때는 바로 기절해 버려 어떤 꼴인지 몰랐었는데, 이렇게 객관적으로 멀리서 남들이 당하는 모습을 보니 그에게 덤비는 이들이 마치 커다란 자연재해에 달려들다 그대로 으스러지는 조그만 벌레들처럼 보였다.

‘아무리 봐도 저건 최선을 다한 게 아니야. 당하는 놈들이 스스로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손속에 차이를 두고 있어.’

당하는 이들은 모르겠지만 밖에서 보면 유더가 그들이 완전히 희망을 꺾지 않도록 일부러 빈틈을 내주는 모습이 보였다. 거기에 홀린 자가 약이 바짝 올라 달려들면 그 빈틈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돌아오는 것은 기다렸다는 듯한 응징뿐이었다.

“우린 네놈에겐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내, 내가 뭘 잘못했다고!”

기어이 절망에 빠질 대로 빠진 기사 하나가 공포에 질려 외치자 유더가 잠시 힘을 부리던 것을 멈추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움직임을 멈춘 게 제 말을 듣고 찔렸기 때문이라 짐작한 기사가 더욱 힘을 주어 강하게 소리쳤다.

“힘이면 다라고 생각하나?! 아니면 네 뒤에 있는 펠레타 공작을 믿고 방자하게 날뛰는 것인가! 어느 쪽이든 명확한 이유 없이 이런 짓을 하는 건 비겁한 일이다!”

“잘 알면서 왜 그랬을까.”

“뭐?”

“그거야말로 내 동료들이 너희들에게 해야 할 말이 아니었을까 싶어서 말이야. 몇 번을 참고 좋게 넘어가려 해도 너희가 황궁기사단 소속이란 이유만으로 계속 모욕을 주었으면서, 이제 와서 마병단 소속인 나는 너희에겐 그러면 안 된다고? 왜?”

순간 기사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얼굴로 입을 벌렸다. 무어라 대답하고 싶으나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듯했다. 유더의 얼굴 위로 냉기가 서렸다.

“내가 너희보다 강하지 않았다면 지금 그런 말은 떠올리지도 못했겠지. 내 말이 틀린가?”

“아, 아니…….”

“가진 거라곤 황궁기사단 기사라는 명함 하나밖에 없는 주제에 과거의 선배들이 쌓아 온 위명을 자기 것이라 착각하는 약해빠진 놈들의 말은 들어줄 생각 없어.”

“고, 고작 마병단 따위가 감히 황궁기사단과 나란히 할 수 있는 이름이라 생각하는 거냐? 모욕하지 마!”

“모욕?”

유더가 손가락을 까딱 튕기며 중얼거리자 허공에서 생성되어 날아간 물이 기사의 얼굴을 거세게 때렸다.

“푸웁, 악!”

“누가 누굴 모욕한다는 건지 모르겠군. 정말로 황궁기사단을 모욕하고 있는 건 기사도도, 명예로움도 모두 잊어버린 너희들이 아닌가.”

“…….”

“그리고 마병단은 다른 어딘가와 굳이 어깨를 나란히 할 필요가 없어. 우리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키올레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무슨 소리를 듣든 몇 배는 더하게 돌려주는 모습이 실로 악마처럼 두려웠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악마 같은 사내의 말에서 신경을 끌 수가 없었다.

그는 제 손에 아직도 점처럼 작게 찍혀 있는 서약의 증거를 무심코 내려다보았다. 눈앞의 사내가 제게 남긴 구속 같은 그 표식은 사는 데 큰 지장은 없으면서도 아주 효과적인 방식으로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어 왔다. 처음에는 누군가에게 수치스러운 증거를 내보일 수 없어서, 그다음에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서약을 강제로 풀어줄 만한 사람을 찾기가 마땅치 않아서, 저런 괴물을 상대로 서약을 풀었다가는 어떤 후환이 닥칠지 모른다는 이유 등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참았던 표식이었는데, 지금 그것을 다시 보자 어쩐지 유더가 제게 해 댔던 폭언들이 다시 떠올랐다.

‘꼭 무언가를 주지 않고는 남을 설득할 수 없는 거냐, 넌?…….’

‘내가 요구한 건 네가 여기서 살아나가야 할 이유를 말하라는 것이었어. 필요도 없는 돈이나 지위 따위가 아니라. 그 간단한 것조차 제시하지 못하는 네가 죽은 이보다 정말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나?…….’

‘기사도도, 명예로움도 모르는 자들.’

눈앞에서 구르며 발악하는 기사들을 보다 보니 어쩐지 기분이 너무나 이상해졌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혼란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대신 치미는 것은 유더를 향한 깊은 의문뿐이었다.

저자는 대체 어떻게 저렇게까지 마병단을 위해 행동할 수 있는 걸까.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펠레타 공작의 아래에서 일하는 게 무엇이 그리 자랑스러워서 제가 건넸던 디아카 가로의 영입 제안마저 단숨에 거절하고 내일도 없는 듯이 귀족 기사들을 두들겨 팰 수 있는 걸까?

지금까지는 그냥 미친놈이기 때문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런 것치고는 어쩐지 그가 말하는 방향은 무언가 일관적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사내는 디아카 가에서 자라온 키올레로서는 아직 알 수 없는 어떤 가치를 말하고 있었다.

키올레가 처음 느낀 의문에 혼란스러워하는 동안 유더는 드디어 손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야가 닿는 곳에 제 발로 선 기사는 아무도 없었다. 땅에 쓰러져 공포에 질려 떨고 있는 23명의 패배자들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되도록 오래 굴욕을 맛보여 줄 셈이었는데, 황궁기사단 기사들의 근성이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다니.’

“일어나.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나?”

혀를 차며 근처에 엎드린 기사의 옆구리를 발끝으로 건드리며 묻자 그가 힉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마구 저었다.

“모, 모태. 모탄다고! 흑, 흑. 이제 제발 그만해!”

넘어지면서 이가 부러진 탓에 그의 발음은 혀 짧은 아이처럼 엉망이었다. 너무나 큰 굴욕과 충격으로 울먹이는 모습이 사뭇 안타까울 지경이었지만 그를 동정하는 이는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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