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화
그 독은 피부를 통해 흡수시켜야 했기에 가루나 액체 형태로 발라 두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실온이나 저온에서는 몸에 묻은 독이 보이지 않지만 뜨거운 불 아래에서는 독이 녹으며 순간적으로 특수한 반짝임을 뿜어냈다.
유더는 손 안에 작은 불꽃을 불러냈다. 훅 하는 소리와 함께 생성된 붉은 불꽃과 동시에 오른손이 또다시 욱신 쑤셨다.
‘…최대한 작게 불러냈는데.’
혹시 오늘 몸 상태가 안 좋은가? 유더는 미간을 찌푸린 채 제 몸을 점검해 보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큰 이상은 느끼지 못했고, 지금도 능력을 쓸 때 그리 힘들지 않았지만 묘하게 몸이 조금 무거운 듯도 했다.
‘일단 확인부터 하자.’
작게 욱신대는 오른손을 무시하고 막 불꽃을 시신 앞으로 내리려던 순간, 조금 늦게 뒤따라 온 키올레가 그 광경을 보고는 목 졸리는 소리를 내며 입을 틀어막았다.
“뭐 하려는 거냐 지금. 설마 시체를 태우려고…….”
“독이 묻어있나 확인하려는 것뿐이야.”
쓸데없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설명해 주자 키올레가 겨우 쭈뼛대며 조금 가까이 다가왔다.
“독이라니. 독은 그놈이 이미 마시고 피와 함께 토해낸 다음 죽었잖아. 그런데 뭘 더 확인한단…… 으윽.”
용감한 접근 시도는 이내 불 아래 비쳐 더욱 끔찍하게 보이는 시신의 부릅뜬 눈동자 앞에서 끝나고 말았다. 구역질이 난다는 듯 입을 막은 키올레가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섰다.
“너, 설마 내게 그것까지 도우라고 하진 않겠지.”
“그럴 생각도 없지만, 네가 어떻게 상급기사가 되었는지 의심스러워지는 참이야.”
레노어의 뺨과 몸을 불로 비추며 유더가 중얼거리자 키올레가 이를 갈며 반박했다.
“황궁기사단은 수도와 황궁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지, 죽은 시체나 뒤적이라고 배우는 곳이 아니야!”
말은 그럴싸했다. 하지만 뒤로 물러서서 깨끗한 것만 보려 하면서 대체 무엇을 지킬 수 있단 말인가?
유더는 대답 대신 하던 일에나 집중하기로 마음먹고 불꽃을 본격적으로 시신 주변에 가져다 대 살피기 시작했다. 무시당했다 여겼는지 키올레가 무어라 입 안으로 웅얼대며 불만을 토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정말 건방지고 이상한 놈이야.”
“…….”
“디아카 가의 제안보다 펠레타 공작 쪽이 더 좋다고? 하.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다. 서약만 아니었다면 지금 당장 뛰어올라가서 신고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야.”
“…….”
“내가 그 서약 때문에 요즘 당한 수모만 생각하면 밤에도 잠이 오질 않아. 대체 여기서 뭘 할 셈인지는 모르겠지만……!”
“찾았다.”
“뭐?”
키올레가 무어라 말하거나 말거나 유더는 곧 원하던 증거를 찾아냈다. 불꽃 아래 비친 시체의 뺨과 가슴 부근에서 흰 가루처럼 보이는 흔적이 반짝이고 있었다.
‘갈증을 일으키는 독이 내는 빛이다. 확실하군.’
역시 제 생각이 맞았다는 사실에 가볍게 전율이 일었다. 불꽃을 옮겨 시신의 손바닥 쪽을 비추자 잠시 후 그쪽에서도 미약하게 빛이 났다.
“이상한 빛이 나는데…. 뭐야, 그건.”
“독을 확인한다고 말했잖아.”
“독이라고? 하지만 불에 비추면 빛이 나는 독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는데.”
미심쩍어 보이는 키올레의 눈빛을 보며 유더는 내심 그가 아주 멍청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라 생각했다.
“그래. 잘 알려지지는 않은 독이지.”
‘아직은’ 말이다.
이전 생에서는 카치안이 즉위한 뒤 그와 몇몇 귀족들이 이 독을 자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상대적으로 효과가 약한 독과 강한 독을 섞어 쓰는 방법이 암살용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암살 방법에도 유행이 있다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지만 아무튼 그랬었다.
‘그러고 보면 그때도 카치안 황제가 거의 처음으로 이 독을 이용했던 사람 중 하나였던가?’
언제나 황궁 안에만 있는 이가 그 독의 존재는 어떻게 알게 되었을까. 갑자기 예전에는 생각지 않았던 의문이 올라왔다.
‘이 독의 원료는 버섯이라 들었는데…. 한번 추적해 볼 필요가 있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시신의 전신을 모두 확인한 뒤 유더는 가장 많이 빛이 나는 가슴 부분에 손을 가져다댔다. 피로 젖은 시신의 예복 자락을 들추고 속주머니를 뒤지자 두 개의 물건이 손에 잡혔다.
하나는 보석과 금속을 깎아 만든 신분패, 그리고 다른 하나는 피에 젖은 편지였다.
‘편지?’
유더는 속주머니를 불에 더욱 가까이 비추어 보는 척하며 편지를 제 옷 안쪽으로 자연스럽게 가져와 숨겼다. 그 뒤 제대로 살핀 신분패에서는 옷이나 얼굴에 묻은 양보다 훨씬 많은 독이 반짝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신분패를 확인할 때 독을 묻혀 돌려주었을 확률이 높겠어. 여기까지는 예상대로인데……. 편지는 뭘까.’
예상외의 수확에 심장이 뛰었다.
확인을 끝낸 신분패를 도로 시신의 예복 주머니에 넣고 허리를 폈다. 유더가 하는 양을 살피고 있던 키올레가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장갑을 꼈다지만 독이 묻은 부분을 그렇게 스스럼없이 만지다니……. 내 쪽으로 절대 다가오지 마.”
“그리 강한 독은 아니야. 중독되어도 어차피 목이 심하게 마를 뿐이니까.”
“증상이 그것뿐이라고? 그러면 저 녀석은 왜……. 아.”
키올레가 눈을 깜박이며 레노어의 시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유더는 그가 무어라 더 말하기 전 빠르게 창고 밖으로 향했다. 앞으로도 갈 곳이 하나 더 남아 있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다 끝난 거냐?”
“아니. 아직.”
“뭐? 또 어딜 가려고?”
그건 네가 알 필요 없다고 말하려 했으나, 순간 근처에서 느껴진 기척 때문에 유더는 재빨리 입을 다물고 키올레를 복도 안쪽으로 밀쳤다.
뒤이어 그 또한 같은 곳에 몸을 숨기자마자 곧 심상치 않은 표정을 지은 사내들이 지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타고 빠른 속도로 내려왔다.
“아무도 없나?”
“저 안에 몸을 숨겼을지도 모르지. 어서 가서 찾아보자고.”
아슬아슬하게 지척에 도달한 사내들은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내 결론을 내리고 레노어의 시신이 놓여 있는 창고의 문을 열었다.
유더는 그들이 모두 안으로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가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 계단 쪽으로 향했다. 잠시 시간을 벌었으니 그 사이에 최대한 멀리 떨어질 셈이었다.
‘같이 가!’
유더와 함께 숨어 있던 키올레가 혼자 남지 않겠다는 의지 가득한 눈빛으로 목소리를 낮추어 등 뒤에 바짝 따라붙었다.
‘설마 이렇게 빨리 따라올 줄이야. 어떻게 할 셈이야?’
‘어떻게 하기는.’
내려왔던 사내들 중 아까 기절시켰던 카치안 황제의 시종은 없었다. 위에 올라갔을 때 그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면 다시 한 번 금단추를 날려 쓴맛을 보여주면 그만이었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잠시 잦아들었던 손의 통증이 다시금 신경 쓰일 만큼 강해지기 시작했다. 유더는 주먹을 말아 쥐고 통증을 무시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평소라면 어렵지 않게 무시할 수 있었을 그 통증은 기이하게도 잦아들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커져나가기만 했다. 메마른 장작에 붙은 불처럼 한 발짝 한 발짝 뗄 때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전신을 향해 번져가는 감각을 느끼며, 유더는 급히 숨을 몰아쉬었다.
‘뭐지?’
반점에서 올라오는 고통이라 생각했는데 아닌 듯도 했다. 비슷하면서도 전혀 낯선 그 감각은 평소에 느꼈던 익숙한 통증과 궤가 달랐다. 그러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 그 감각은 이미 순식간에 온몸을 잡아먹는 불이 되어 유더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휩쓸고 있었다.
거대한 파도가 눈 깜짝할 사이에 지척에 도달한 모습을 본 인간처럼 몸이 떨렸다. 자각은 벼락처럼 찾아들었다.
―쿵.
숨을 삼켰다. 심장을 때리는 충격이 귀를, 가슴을, 그리고 뇌 속을 뒤흔들었다.
이어서 다시 한번 쿵. 또다시 쿵.
유더는 그 순간에야 겨우 제가 느끼는 이 거대하고 두려운 감각의 정체를 본능으로 이해했다.
그것은 바로 발현의 징조였다.
폭풍처럼 빠르고 거대한 소용돌이가 몸속에서 발작적으로 빠르게 영토를 넓혀가고 있었다. 마치 예전처럼. 이전 생에서처럼!
‘어째서, 하필 지금.’
그러나 이미 시작된 폭풍은 유더가 잠시라도 제대로 된 생각을 하게끔 놓아두지 않았다.
충격이 또다시 머리를 때리며 눈앞이 일순 검게 변했다. 시야가 겨우 다시 회복되었을 때는 계단을 오르다 말고 갑작스레 무릎을 꿇고 엎어진 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유더는 물에 빠졌다 겨우 고개를 내민 인간처럼 숨을 몰아쉬며 간신히 벽을 짚었다.
“뭐, 뭐야. 왜 이래? 독인가? 독에 당했어? 그러게 장갑을 꼈다 해서 막 만지는 건 멍청한 짓이라고……!”
“돌, 아가라. 키올레.”
겨우 회복된 청력으로 주변을 맴돌며 불안에 젖어 호들갑을 떠는 키올레의 목소리부터 듣게 된 건 정말 대단한 불행이었다. 유더는 골이 울리는 감각을 억누르며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곧장 위로 올라가서, 길을 잃은 척 하고 돌아가.”
“뭐? 너는.”
“알아서, 돌아갈 테니 신경 꺼. 가.”
“그러면 독에 당한 게 아니야?”
저 녀석은 가라면 곧바로 갈 것이지, 뭘 자꾸 말을 시키는가. 유더는 몸속 깊은 곳에서 고개를 쳐든 감각을 간신히 억누르려 노력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니까, 빨리 돌아가!… 흣.”
목소리를 조금 높이자마자 또다시 뱃속에서부터 쿵 하는 충격이 전신을 때렸다.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숙인 유더가 벽을 긁어내리며 어깨를 떨자 키올레가 뒤로 몇 발짝 물러났다. 미지를 향한 공포와 의문이 그의 눈 속에 선명히 묻어났다.
“가, 갑자기 무슨…….”
유더는 다리에 힘을 주어 벌떡 일어났다. 이 열이 정말 발현의 시작이라면, 이전 생의 기억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아마 곧 이성이 사라지고 전신을 으스러뜨려 다시 재조립하는 듯한 강렬한 감각들이 곧 찾아들 터다. 그 단계까지 가기 전에 반드시 이곳을 벗어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