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터닝-69화 (69/805)

69화

“이놈들, 거기 멈춰라!”

바로 그 순간, 유더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몇 사람이 앞길을 막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머무는 이 길에 감히 들어서다니, 통행료를 낼 각오는 되었겠지.”

“아, 맞다. 저 사람들이에요. 제가 마병단 시험을 보러 올 때 마주친 사람들요.”

가케인과 떠들던 지미가 그들의 면면을 보고 아주 가볍게 속삭였다.

“오랜만에 봐도 변함들이 없으시네요.”

산적이 아니라 마치 오랜만에 만난 고향 사람을 대하는 듯한 말투였다. 말 위에 가만히 앉아 조금도 놀라지 않는 세 사람이 이상하다 생각했는지, 산적들이 횃불을 켜고 가까이 다가왔다.

“아니, 이 자식들이 우리가 너무 무서워서 얼어붙었나? 왜 아무 말도…….”

횃불 아래 험악하게 칼자국이 난 얼굴을 들이대며 걸어온 산적 하나가 말에 탄 지미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뭐야, 왜 말을 하다 말아? 그러니까 통행료가…….”

뒤이어 그를 따라온 다른 산적 한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왜 그래? 무슨 일……. 너, 너는!”

“안녕하세요. 아직도 여기 계셨네요.”

지미가 말 위에서 코끝을 문지르며 인사를 건넸다. 물론 인사를 받는 이들은 그 밝은 인사성을 전혀 기꺼워하지 않았지만.

“젠장. 이전에 시험인지, 지랄인지를 보러 간다던 그 꼬마잖아!”

“너, 너. 설마 불합격한 거냐? 그래서 또 온 거야? 제길!”

“아니요. 물론 합격했죠. 여기 저 말고 다른 두 분이 함께 계시잖아요.”

지미가 미소를 지으며 유더와 가케인을 가리켰다. 산적들은 그제야 다른 두 사람의 존재를 깨달은 듯 눈길을 휙휙 돌렸다. 충격과 공포가 그들의 눈 속에 가득했다.

“설마, 그러면, 저 두 사람도 꼬맹이 너처럼 그런…. 바위를 검으로 막 자르는 그런 놈들이야……?”

“에이. 저보다 훨씬 대단하시죠. 어떻게 12살밖에 안 된 저와 비교하려고 하세요.”

“이런 니미럴, 철수. 철수해! 튀어!”

지미의 말이 끝나자마자 제일 가까운 곳에 있던 산적 한 명이 손을 휘저으며 뒤돌아 뛰기 시작했다. 다른 산적들 또한 그런 명령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쳤다.

어둑한 산길에 때아닌 바람이 일고 산적 중 누군가 들고 있던 횃불도 황급히 툭 꺼졌다. 저 멀리 남아 있던 나머지 산적들도 낌새를 눈치챈 듯 곧장 도망쳐 모습을 감추었다.

“이번엔 아직 아무것도 안 했는데 벌써 도망가시네요? 어떡하죠?”

지미가 그들의 신속한 모습을 바라보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게. 음. 쫓아가야 하나?”

가케인도 떨떠름한 눈빛이 되어 유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평소라면 당연히 잡으러 갔겠지만, 지금은 데브란 하르투데를 찾으러 가야 하는 긴급한 임무 도중이다.

“어쩔까 유더?”

“그림자를 불러내서 쫓아가. 길을 막고 최대한 잡아들여.”

“알겠어.”

명이 떨어진 즉시 말 밑에서 가케인의 그림자 분신이 쑥 솟아오르더니 산적들이 도망친 방향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인간이 뛰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지미. 여기에 산적들이 출몰한 게 언제부터지?”

가케인의 그림자 분신이 임무를 완수하는 동안 유더는 무표정한 얼굴로 지미에게 질문을 했다. 지미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미간을 찌푸렸다.

“으음. 그건 잘 모르겠어요. 사실 작년까지는 이쪽 길을 통해서 왔다는 사람도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제가 혼자서 마병단 시험을 치러 갈 거라고 하니까 부모님이 여기로는 절대 가지 말라고 하시더라구요. 산적들이 차지하고 앉아 통행료를 요구하니까 위험하다고 그러셨어요. 하지만 다른 길보다 이쪽이 훨씬 빨라서 그냥……. 헤헤.”

“그렇다는 건 최대 1년 전쯤부터 여기에 있었단 거군.”

“그게 왜? 뭔가 중요한 점이라도 돼?”

가케인이 그림자를 조종하다 말고 고개를 기울이며 유더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간 피눈물 나는 수련을 한 덕에 그는 그림자를 움직이면서도 꽤 여유로운 모습을 보일 수 있게 되었다. 유더는 가케인과 지미를 향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둘 다 아직 눈치채지 못했어?”

“뭐가?”

“뭘 말씀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 산적들 중에 각성자가 있어.”

“……뭐? 아차차.”

가케인이 깜짝 놀라 입을 벌린 순간, 멀리서 쿵 하는 소리와 비명이 울렸다. 가케인이 그림자 조종을 실수로 너무 과격하게 한 모양이었다.

“각성자라고? 그럼 왜 우릴 보고 도망친 거야? 그럴 필요가 없잖아. 아니, 그보다 유더 넌 그걸 어떻게 알았어?”

“횃불. 바람. 어둠.”

“응?”

“아, 그렇구나. 이제 알겠어요!”

수수께끼 같은 유더의 말에 지미가 곧바로 얼굴을 펴고 소리를 쳤다.

“미리 불을 붙이고 다가온 것도 아닌데 갑자기 횃불을 들고 다가왔죠. 도망칠 땐 갑자기 바람이 불었구요! 그리고 하늘에 달도 별도 하나도 보이지 않아요!”

모두 정답이었다. 그제야 가케인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정말로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 검은 어둠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몰랐어. 어떻게 된 거지? 주변이 잘 보여서 그런가, 하늘이 저렇게 검기만 한데도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네.”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여기게 한 것조차 어쩌면 누군가의 능력 때문일 수도 있다. 유더는 마지막 답을 삼키며 가케인의 그림자 분신이 옆구리에 발버둥 치는 산적 세 명을 끼고 성큼성큼 걸어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거 놔! 놓으라고!”

“젠장. 그러니까 내가 며칠 전부터 감이 안 좋으니 대장이 올 때까지는 장사하지 말자고 했어, 안 했어?”

“좀 닥쳐 이 냄새 나는 놈아. 네놈 엉덩이가 내 얼굴을 찌르고 있다고!”

“그제 불이 났을 때부터 감이 안 좋다고 계속, 계속 말했었잖아!”

“그러니까 그게 우리와 대체 무슨 상관이냐고!”

유더는 악을 써 대는 산적들을 내려다보다 말에서 내렸다. 가케인과 지미도 그의 뒤를 따랐다.

“가케인.”

“응.”

이름을 불렀을 뿐, 구체적인 말은 하지 않았으나 가케인은 곧바로 유더의 뜻을 알아차렸다. 그림자 분신이 산적들을 내려놓자 세 명의 남자가 일제히 바닥에 나동그라져 비명을 질렀다.

“악! 아이고 내 허리!”

“쓰벌, 죽일 테면 빨리 죽여! 하지만 절대 우리에게서 뭔가를 알아내진 못할 거다! 대장이 복수해 줄 거야!”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는 산적들의 얼굴을 유더는 자세히 뜯어보았다. 어둠 속에서 어른대는 횃불에 의지해 대충 보았을 때는 몰랐는데, 모두 생각보다 젊은 이들이었다. 칼을 차고 있는 이도 1명밖에 없었다.

본래부터 이런 짓을 하여 먹고 살았던 이들이라면 이렇게 허술한 무장 상태로 나타났을 리 없다. 유더는 점점 더 이들의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왜 각성자들이 여기서 통행료나 뜯으며 산적 노릇을 하고 있는 거지?”

“그게 뭐? 네가 무슨 상관이야? 뭘 안다고 지껄여.”

유더는 대답 대신 손바닥 위에 불꽃을 올렸다. 작지만 위협적인 불꽃이 훅 하는 소리를 내며 주변을 환히 밝히자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에 쏠렸다. 산적 세 사람의 얼굴 위로 낭패와 공포의 기색이 서렸다.

“유더. 이젠 검을 쓰지 않아도 그냥 불꽃을 불러낼 수도 있어?”

가케인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바람에, 불에……. 대체 네 능력은 어떻게 그렇게 발전하는 거야?”

사실은 본래부터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숨겼던 것뿐이라 말하면 분명 가케인이 왜냐고 물을 테니 유더가 할 수 있는 답은 이전처럼 하나뿐이었다.

“…너희들과 수련하다 보니 조금 늘었을 뿐이야.”

“조금? 그게 조금이라고?”

“이봐요. 우리 제발 말로 합시다. 우리가 상대를 못 알아보고 통행료를 받으려 한 건 잘못했지만, 진짜로 그런 건 아니잖아요. 우린 착한 놈들입니다. 사람도 죽인 적 없고, 그냥 지나갈 때 통행료만 살짝! 아주 살짝 받았을 뿐이라고요!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우릴 데려온 건 당신이라는 걸 잊지 말아요!”

다행히 산적 중 한 명이 목소리를 높였기에 가케인은 그 이상 묻지 못했다. 유더는 산적들에게 약간의 고마움을 느끼며 가까이 다가갔다. 그가 다가갈수록 산적들의 얼굴에 공포심이 더욱 강해져 갔다.

“나는 그저 질문에 대한 답이 듣고 싶을 뿐이야.”

“다, 답해 주면 우릴 안 죽일 겁니까?”

“이 자식이. 적에게 입을 열려 ㅎ…억!”

유더는 다른 쪽 손을 뻗어 바람 한 줄기를 불러냈다. 입을 열려 하는 이를 막으려 했던 산적의 턱이 밑에서부터 부는 강렬한 바람에 얻어맞아 순식간에 다물렸다.

불꽃을 불러낸 상태에서 동시에 바람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유더의 모습에 산적들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다시 한번 묻지. 본래 이런 일을 하지 않았던 이들이 왜 여기서 산적질이나 하고 있는 거지? 각성자까지 포함해서.”

“…….”

“대답해.”

“그 답은 내가 알려줄 테니 형제들은 놓아주지 그래.”

대장! 산적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유더는 기척도 없이 앞에 나타난 한 남자를 보았다.

그는 산적 대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젊고 잘생긴 사내였다. 다만 얼굴의 왼쪽 반이 끔찍한 흉터로 뒤덮여 있었고, 왼쪽 눈도 색을 잃은 채 동공이 풀려 있어 본래의 잘생김보다는 처절한 끔찍함만을 느끼게 했다.

유더가 본 사람 중 가장 아름다운 사내인 키시아르와는 또 다른 의미로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한 인상이었다.

“당신이 이들을 이끌고 이런 짓을 시작했나?”

“아니. 선후 관계는 그 반대야.”

남자는 놀랍게도 부드럽게 대답했다.

“이들이 귀족들의 횡포를 피해 도망친 것이 먼저고, 나를 만난 것이 이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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