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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62화 (62/805)

62화

“원인을 확실히 알았으니 완전한 치료 방법만 찾아내면 되지 않겠나. 붉은 돌이 지닌 힘의 정보를 알아내면 아마 답을 알 수 있겠지. 정 부담스럽다면, 그래. 이걸 가지고 있게.”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키시아르가 난로 쪽으로 다가갔다. 무얼 하나 했더니 놀랍게도 신검의 칼집에 주렁주렁 박힌 장식용 보석 중 하나를 떼어내 돌아왔다. 가느다란 마름모꼴 모양으로 깎아낸 붉은색 보석이었다.

“신력이 가득 담겨 있으니 지니고 다니면 진행 속도가 꽤 늦춰질 거야.”

“귀한 것을 이렇게 받아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안 받으면 매일 나와 손을 잡으러 올라와야겠지? 아. 혹시 그걸 바랐던 건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유더는 두 번 거절하지 않고 재빨리 그것을 받아들며 인사했다. 키시아르가 웃었다.

“그 반점의 범위가 팔꿈치를 넘어가기 전까지는 봐주도록 하겠네. 그 정도까지는 괜찮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그 이상은 안 돼.”

그 말은 몹시 다정하고도 단호했다. 어차피 붉은 돌에 대해 알아내기 위해 단원들을 훈련 시키려던 것이 아니었던가.

한낱 평민 출신 부하에게 이리도 정성을 다해 대해 준 황족은 제국 역사를 다 통틀어도 키시아르가 유일할 것이었다. 하지만 유더는 그것이 달갑지 않았다.

유더가 다시 되돌아오며 키시아르 라 오르 또한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그러나 어떤 면은 변함없이 똑같았다.

그는 이전 생에서 유더와 불미스런 사건으로 엮인 이후에도 언제나 그에게 친절했고, 벽을 치기는 했어도 과분할 만큼 잘 대해주었다. 매우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점만은 부정할 수 없으나 나쁜 사람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그 끝은 결국 어떠했던가?

‘…휴가 기간이 끝나기 전에 알아볼 것들은 다 알아보고 가야겠지.’

키시아르에게 휘말리지 않고 그의 목숨을 잘 지켜내려면 그에 대해 이전 생보다 더 잘 알아야 한다. 아직은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 * *

그로부터 5일간, 유더는 매일 밥 먹는 시간과 자는 시간을 빼고는 한시도 쉬지 않고 칸나와 가케인을 훈련 시켰다.

지켜보는 사람조차 지칠 지경이었으나 유더는 단 한 번도 힘든 기색을 겉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훈련을 받는 칸나와 가케인도 힘든 내색을 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그동안 마병단에서 했던 모든 훈련이 유더의 훈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조금 살만해지면 더욱 난이도를 높이고, 거기 익숙해질 만하면 곧바로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바로 더 어려운 훈련을 시도했다.

도대체 그토록 지독한 훈련법을 어찌 그리 잘도 생각해 내는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야. 내일 하루는 쉬자.”

그리고 드디어 6일째 되는 날, 유더가 훈련 시작 때와 다를 바 없는 얼굴로 조용히 끝을 선언했다. 칸나와 가케인은 동시에 훈련장 바닥에 쓰러져 누웠다.

“아… 죽을 것 같다는 게 이런 거겠지…….”

“가케인. 난 같은 게 아니라 이미 죽었어.”

그런 말을 하면서도 누워 있는 두 사람의 표정은 한결 밝았다. 지옥 같았던 6일 동안 분명한 성과를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가케인은 그림자 분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확실히 알게 되었고, 분신의 움직임과 공격력 및 방어력을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성장시켰다. 유더의 검 아래 수천 번을 찢기고 구르며 이룬 덕이었다.

칸나 또한 천을 반 두른 책에서 천이 아니라 책의 정보만을 선택하여 읽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유더는 비슷한 방식으로 두 개의 물건에 동시에 양손을 대어 한쪽의 정보만 읽는 훈련을 시켰고, 그것도 성공하자 물건을 아주 조금씩 손끝에서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원거리에서 물건을 읽는 것이 불가능하다 여겼었지만 아니었다. 칸나는 제 손에서 흘러나오는 아지랑이 같은 기운에 물건이 닿기만 한다면 손대지 않아도 정보를 읽을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그 거리가 고작 손톱 정도에 불과했고 성공 확률도 아주 낮았지만 앞으로 차차 늘려가면 될 터였다.

“유더, 모레부터는 다른 동기들과도 이런 훈련을 하는 거지?”

“응.”

“하하. 기대된다. 정말로.”

가케인이 흙먼지 범벅이 된 얼굴로 해맑게 웃었다. 유더는 6일간 가케인을 너무 굴린 나머지 그가 약간 이상해진 것은 아닌가 고민했다.

‘그래도 이대로만 계속한다면 어디 가서든 갑자기 죽을 일은 없겠지.’

아직 가케인이 죽었던 시기가 오지는 않았지만, 상황이 계속 바뀌고 있으니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러나 그가 지금처럼 강해지고 싶다는 일념을 잃지 않고 계속 수련한다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성장을 얻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유더. 내일 하루는 쉬는 거지? 뭔가 할 일 있어? 없으면 나랑…….”

“응? 훈련장에서 무슨 소리가 난다 싶어 왔더니 사람이 다 있었네?”

생각에 잠긴 유더에게 가케인이 무어라 말을 걸려 했을 때, 숙소 쪽에서 누군가 얼굴을 내밀었다. 휴가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갔던 에버였다.

“에버 언니! 지금 돌아왔어요?”

“칸나구나. 나는 가족들 얼굴만 보고 일찍 돌아왔어. 그런데…….”

칸나가 반색하며 일어나자 에버가 미소를 지으며 가까이 다가오려다 멈칫했다.

“꼴이 왜들 그래? 흙먼지투성이잖아.”

“아, 네. 아하하. 저흰 셋 다 휴가를 가지 않았잖아요. 할 게 없어서 같이 자율 훈련이나 했더니 이렇게 됐어요.”

“그래도 그렇지 대체 무슨 훈련을 했길래…….”

칸나가 유더의 표정을 살짝 살피며 말을 얼버무렸다. 무엇 때문에 그 고된 훈련을 한 것인지 아직 다른 단원들에게 알릴 때가 아니었다. 다행히 에버는 그 말을 크게 의심하지 않았다.

“훈련도 좋지만 적당히 해. 그런데 내내 여기 있었던 거라면… 혹시 밖에 있는 이상한 사람들이 언제 온 건지 알아요?”

에버의 마지막 질문은 유더를 향한 것이었다. 유더는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이상한 사람들이라니, 무슨 소리입니까?”

“아. 못 봤어요? 숙소로 돌아오는데 수상한 2인조를 봤거든요. 황궁기사단 부지를 돌아다니면서 계속 아무나 붙잡고 마병단에 대해 묻길래, 멀찍이 피해서 왔죠.”

“2인조요?”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여기까지 들어올 수 있습니까?”

칸나와 가케인이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 되어 물었다. 유더는 2인조라는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다 에버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인상착의는 어땠는지 보셨습니까?”

“한 사람은 노인이었어요. 수염이 아주 길었죠.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젊었는데, 할아버지와 손자 같지는 않더라구요.”

유더의 눈빛이 순간 달라졌다. 그들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황궁에서 마주쳤던 진주탑 원로 마법사 타이스 율만과 그 제자였다. 마침 같은 기억을 떠올렸는지 칸나가 놀란 얼굴로 유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유더. 설마 황궁에서 본 그분들일까…? 백작님이 또 사람을 보낸 건 아니겠지?”

“백작과는 관계없어.”

유더는 깔끔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우리가 본 사람들은 맞을 거야. 마병단을 찾고 있다니 맞으러 가 봐야겠군.”

“그 모습으로요?”

에버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유더는 본래의 검은색보다 흙이 더 많이 보이는 제복 자락을 내려다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네.”

“유더. 나도 따라갈래.”

“나도.”

그러자 칸나와 가케인도 곧바로 벌떡 일어나 따라가겠다고 나섰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것을 보며 에버가 콧등을 찡그렸다.

“그 모습으로 접근하면 세 사람이 마병단이라는 걸 아무도 안 믿어줄걸요. 저도 같이 가죠.”

* * *

마병단 숙소는 황궁기사단 부지 내의 가장 구석진 곳에 세워져 있었다. 기사들은 자랑스러운 황궁기사단의 땅을 점거하고 기어들어 온 마병단을 눈엣가시처럼 싫어해 아예 없는 것처럼 취급했다.

황궁기사단 부지 자체는 쉽게 들어올 수 있었지만 돌아다니는 기사 중 아무도 마병단의 이름에 반응하지 않으니 처음 마병단을 방문한 사람은 절대로 목적지를 찾지 못했다.

진주탑의 존경받는 원로 타이스 율만과 그의 제자 알릭 펠긴 또한 그러한 이유로 아침부터 넓은 부지 안을 빙글빙글 돌며 고생하는 중이었다.

“스승님. 그냥 정식으로 펠레타 공작께 방문하고 싶다는 편지를 먼저 보내시고 오는 쪽이 낫지 않았을까요?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돌아다니기만 하다 하루가 끝나겠습니다.”

“이 녀석이. 말이 되는 소릴 해라. 내가 거기 가겠다고 하면 펠레타 공작 쪽에서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하고 받아 주겠느냐? 붉은 돌이 그쪽 손에 있다면 절대로 외부 방문을 받아 줄 리 없지. 특히나 진주탑 출신인 우린 더! 그러니 일단 찾아가서 뻗대보는 쪽이 최선이야!”

“일단 찾기나 해야 뻗대보든, 말든 하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정말 그 돌이 거기 있는지조차 확실한 정보가 아닌걸요.”

“그것이 황궁에 없다는 건 이미 확인하지 않았느냐. 디아카 공작 쪽에서 흘린 정보보다 확실한 건 없어. 그것도 일부러 나더러 가보라고 대놓고 흘린 정보니 밑져야 본전이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서 앞장이나 서거라.”

알릭은 몹시 억울했다. 그들의 목적이 그리 수상한 것도 아닐진대, 한 번 정도 먼저 연락을 해 보고 가자는 말이 무엇이 나쁜가?

스승의 괴팍함에는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상태였지만 이렇듯 몸이 고생하고 있자니 서럽기 그지없었다.

“저기 또 기사 몇이 보이는구나. 가서 말 좀 물어보거라.”

그때 마침 눈앞에 화려한 검을 차고 걸어오는 기사 몇 명이 나타났다. 종자 둘을 이끌고 걸어오는 선두의 기사는 특히나 거만하고 날카롭게 잘생긴 것이, 귀한 집안 출신임에 틀림없었다.

알릭은 스승에게 떠밀려 그들에게 쭈뼛쭈뼛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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