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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41화 (41/805)

41화

“금방 처리하겠습니다. 그 벽 안은 안전하니 단장님께서는 지켜보고 있으시면 됩니다.”

“혼자서 가능하겠나? 보이는 녀석들만 해도 열은 족히 되어 보이는데.”

키시아르가 적들을 돌아보며 흥미로워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그 또한 유더와 마찬가지로 긴장하는 기색 따위는 전혀 없었다.

“문제없습니다.”

일 더하기 일은 이가 된다는 말을 할 때와도 같은 일상적인 어투에 적들의 살기가 순간 흐트러졌다.

“지금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거냐? 죽음을 택하겠다는 거라면……!”

‘이게 죽을 생각을 하는 놈의 말로 들리나.’

유더는 복면을 쓴 이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상대의 실력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이들을 상대로 힘을 써야 한다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상황 파악을 못 하는 건 너희들이다. 붉은 돌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알면서도 그 특성은 모르는 모양인데, 그것은 각성자의 몸이나 능력이 닿는 즉시 폭발한다. 수틀리면 그것을 건드리면 그만이란 뜻이지.”

“뭐라고?”

물론 유더는 붉은 돌이 품고 있는 한정된 기운을 그런 짓으로 쓸데없이 소모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적들은 그 사실을 모를 테니 헛소리라 생각하면서도 움츠러들 테다. 각성자 간의 싸움에서는 능력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쪽이 절대적으로 약세였다.

“우리가 그런 말 따위로 물러날 것이라 생각한다면……!”

“진짜인지 아닌지 보여줄까. 우리는 방어벽을 치면 그만이니까.”

유더는 보란 듯 불꽃을 두른 검을 움직였다. 춤추듯 일렁대는 불꽃을 보는 적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무슨 능력을 가졌는지는 몰라도 손쉽게 검을 빼앗은 데다 물로 된 방어벽을 만들고, 그 상태에서 또 불꽃까지 쓰는 자라니. 마법이라면 전설 속의 대마법사나 가능할 만한 엄청난 능력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그렇다 해도 물러설 수 없다. 헛수작이야.”

적들 중 그나마 머리를 굴리는 것 같은 이가 다른 이들이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외쳤다.

“우리가 여기에 들어온 것은 아무도 모른다. 시간을 끌 셈인가 본데, 누군가 도와주러 올 거란 생각은 집어치우는 것이 좋을 거다. 고통받는 순간을 줄이고 싶다면…….”

“거참. 친절히 알려줘도 말이 많군.”

유더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날을 아래에서 위로 살짝 쳐올렸다. 그러자 순식간에 검을 두르고 있던 불꽃이 기둥처럼 위를 향해 쏘아져 날아갔다.

콰콰쾅!

작은 불기둥이지만 위력만은 확실했다. 천장과 지붕을 뚫은 불은 순식간에 밤하늘을 환하게 밝혔다가 사라졌다. 멀리 있던 이들도 무언가 이상을 느끼고 달려오기에 충분할 만한 위력이었다.

“…….”

“이제 너희가 온 걸 다 알겠지.”

부서진 창밖을 통해 하늘거리며 떨어지는 불티의 잔해를 보며 유더는 피식 웃었다. 얼빠진 눈빛을 한 적들이 퍽 우스웠다.

“그리고 또 뭐라고 했더라. 고통받는 순간을 줄이고 싶다고?”

복면 사이로 적들의 눈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너희나 그 순간이 줄어들길 바라도록 해라.”

“젠장. 일단 다들 한꺼번에 쳐라!”

적들이 일제히 달려드는 것을 보며 유더는 뻗은 손을 휘둘렀다.

‘우릴 제압하고 싶었다면 쳐들어온 그 순간 바로 공격했어야지.’

유더의 말을 들은 이상 적들은 마음껏 능력을 쓸 수 없다. 그들은 붉은 돌이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까. 하지만 유더는 그 반대였다.

불꽃을 두른 검에 스치기만 해도 적들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일반적인 검이라면 살짝 베이는 정도로 타격을 입지 않겠지만, 상처 사이로 불이 파고드는 것은 이야기가 달랐다.

순식간에 상처 부위로 파고든 불꽃은 곧바로 몸에 옮겨붙으며 전신에 퍼졌다.

‘모두 신체 강화 쪽 능력자들이라 다행이군.’

현재 세상에서 유더보다 각성자들 간의 싸움에 익숙한 이는 없을 것이다. 신체를 강화하는 능력자들은 공격력이 강해 근접전투에 강한 듯 보여도 방어력은 약했다.

피부를 강화할 수 있다 해도 그것이 무적은 아니었다. 어지간히 단련한 자들도 처음부터 물렁물렁한 부위까지 강화하는 것은 잘하지 못했다. 이를테면 입 안쪽이나 눈알 같은 부분이 그렇다.

유더는 피부를 돌처럼 단단하게 만든 자가 내리치는 주먹을 피해 그자의 눈에 검을 살짝 쑤셨다 뺐다.

“악!”

뒤이어 손톱을 검처럼 길게 만든 이가 공격해 오자, 순간적으로 작은 얼음벽을 둘러막은 뒤 그가 멈칫한 틈을 타 옆구리를 검으로 그었다. 살 타는 냄새와 함께 몸에 불이 옮겨붙었다.

누군가 암기를 던졌지만 그것도 결국 철로 만들어진 것이니 땅으로 향하게 하면 그만이었고, 개중 몇 개는 주인에게 되돌아가도록 만들었다.

“크아악!”

유더가 열 명이 넘는 적들을 모두 정리하기까지는 몇 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저택 안은 새카맣게 탄 상태로 죽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이들로 가득했다.

“끝났으니 벽은 해제하겠습니다.”

“그러하게.”

유더는 그런 이들을 아무렇지 않게 지나 깨진 창밖을 내다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이곳으로 달려오는 이들이 들고 있을 횃불이 보였다.

“다행히 도망친 놈은 없군요.”

시간을 끌면 도망치려는 놈이 생길까 싶어 최대한 빠르게 해결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붉은 돌에 대한 정보가 외부로 새어나가게 할 수는 없었다.

바깥을 확인한 유더가 붉은 돌이 있는 기둥 쪽으로 다가가 붉은 돌이 든 상자를 들고 오자 키시아르가 그것을 받아들었다.

‘자 그럼 이제… 배후를 확인해 보실까.’

돌을 회수해 오자마자 키시아르가 혼자 묵는 곳을 노려 적들이 침입해 온 것은 완전히 예상 밖의 일이었다.

‘당연히 이곳을 떠난 뒤에 노려서 올 줄 알았는데 말이야.’

이리 많은 이들이 쳐들어왔다는 것은 적이 그만큼 이번 작전을 오래 준비해 왔으며, 키시아르를 우습게 봤다는 뜻이기도 하다.

즉, 적은 키시아르의 힘에 대해 잘 아는 이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예전에도 이런 순간을 노려 쳐들어왔었던 것일까? 그렇다면 키시아르가 성검을 들어 처리했다 해도 이해할 만했다.

유더는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놈들의 면면을 확인했다. 총 열셋 중 여덟이 죽었고, 다섯은 아직 살아 있었다.

“전하!”

“단장님!”

유더가 살아 있는 놈들의 몸에서 불을 거두고 한곳에 모아 두는 동안, 문이 부서지면서 지노 장군과 마병단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지노입니다. 괜찮으십니까?”

“침입자가 있었지만 금방 제압했다. 나는 괜찮으니 안심하게.”

키시아르의 여유 넘치는 대답에 안심한 듯 지노 장군이 조용해졌다.

“상자 때문에 계신 곳까지 접근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잠시 후 마병단원들이 복도를 지나 응접실로 들어왔다. 급하게 제복을 걸쳐 입고 나온 기색이 역력한 그들의 눈빛은 바닥을 구르는 시체 여러 구를 보고 경악으로 변했다.

“세상에. 이게 무슨…….”

“가까이 오지 마, 칸나.”

죽은 놈들이기는 해도 혹시 모른다. 유더는 전투능력이 없는 칸나를 물러서게 한 뒤 키시아르 쪽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키시아르가 입을 열었다.

“이쪽 다섯은 살아 있으니 곧바로 심문할 생각이다. 이곳은 어지러우니 옆방으로 옮기도록.”

“옆방…말입니까.”

가케인이 숨을 삼키며 물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대체 이 자들은 어디서 보낸 놈들입니까?”

“그건 이제부터 알아내야겠지.”

유더의 너무나 차분한 대답에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것을 깬 것은 키시아르의 낮은 웃음소리였다.

“그래. 이제부터 알아내야지.”

침입자들을 옆방으로 옮기는 일은 가케인의 그림자가 수행했다. 단숨에 인간 다섯을 짊어진 그림자가 성큼성큼 걸어가 방 안에 그들을 내동댕이쳤다.

“칸나, 가케인. 두 사람은 방 밖에서 누군가 들어오지 않는지 살피고 죽은 이들을 밖으로 옮겨라. 나머지는 안으로 들어오도록.”

“네.”

키시아르의 간단한 지시에 따라 모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유더는 엘더 남매와 키시아르가 모두 방에 들어온 것을 확인한 뒤 안에서 나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문을 닫았다.

“자, 그러면.”

쓰러져 신음하는 이들을 향해 다가간 키시아르가 느른했던 미소를 지웠다. 싸늘한 붉은 눈동자가 적들을 향해 내리꽂혔다.

“누가 너희들을 보냈지? 대답해라.”

“…….”

숨이 붙어 있는 것이 확실한데도 적들은 답을 하지 않았다. 키시아르가 조용히 고개를 돌려 엘더 남매를 바라보자 그들이 앞으로 나섰다.

“잘 다져서 입을 열게 만들면 되는 거죠?”

“맡겨 주세요.”

엘더 남매의 주특기는 이동 능력이 아니라 무지막지한 신체 강화 능력이었다. 신체를 강화하는 능력을 지닌 이들은 많았지만, 엘더 남매의 능력은 조금 남달랐다.

앞으로 나선 청초한 얼굴의 남매가 미소를 짓는 것과 동시에 요정처럼 가늘었던 팔다리가 크게 부풀기 시작했다.

투둑, 찌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옷자락이 사정없이 찢겨나갔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적들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엘더 남매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바위를 뭉쳐둔 듯 단단한 근육질 몸을 가진 두 남녀가 섰다. 힘을 사용하여 변화한 엘더 남매였다.

‘다시 봐도 굉장하군.’

유더는 기괴해 보일 만큼 거대하게 부푼 육체 위에 달린 귀여운 얼굴들을 보며 새삼 시각적 효과가 엄청난 능력이라 생각했다.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외모는 그대로인데 육체만 거인처럼 변한 저 모습을 보고 나면 대부분의 적들은 거대한 몬스터라도 마주한 듯 전의를 상실하고 도망치기에 바빴다. 눈앞의 적들도 그리 다르지는 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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