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터닝-30화 (30/805)
  • 30화

    ‘어차피 몇 년이 지나면 능력 발전과 관련한 정보들이 세상에 알려진다. 이들도 제가 지닌 능력의 가능성을 깨닫게 되겠지. 군대에 있으니 더더욱 발전시키기 좋았을 테고.’

    그렇다면 좀 더 미리 힌트를 주어서 호감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유더는 그렇지 않아도 능력 발전이 어렵다고 일컬어졌던 속성 관련 능력을 몇 단계나 발전시키며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었다.

    세상에 마병단 단장인 유더 아일만큼 각성자가 지닌 능력 매커니즘을 잘 파악하는 이는 없을 것이라는 말도 있었을 정도였다.

    능력을 지닌 본인들조차 아직 깨닫지 못한 미래의 발전 가능성이 유더의 눈에는 가지를 뻗친 손금을 보는 것만큼이나 쉽게 보였다.

    그는 빠르게 판단을 끝내고 입을 열었다.

    “제가 보기에는 매우 대단한 능력으로 보입니다만, 스스로의 능력을 너무 깎아내리는군요.”

    “폄하요? 당신도 방금 보지 않았습니까. 이건 몬스터 털 하나 그을리지 못하는 불꽃이라고요. 뭐가 그리 대단하겠어요?”

    에몬이 연기를 내뿜는 파이프를 손으로 흔들며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사람처럼 웃었다. 유더는 조금도 웃지 않고 입을 열었다.

    “몬스터 털을 그을리려 한다면 그렇게 느껴지겠지요. 하지만 몬스터와 싸우다 놈의 눈알이나 입 안에 불꽃을 터트렸다면 어땠을까요.”

    “…….”

    가볍게 흔들대던 에몬의 파이프가 멈추었다. 선즈의 가벼운 미소도 순간 사라졌다.

    “당신의 불꽃은 부싯돌로 일으킨 불꽃처럼 짧고 강하게 튀기는 형상입니다. 큰 불처럼 한 번 일으키고 뒷일을 걱정할 필요 없이 필요하다면 계속 시도할 수도 있단 겁니다.”

    유더는 그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만약 부싯돌을 여러 번 부딪치듯이 더 빠르게, 더 많이 불러내는 데 익숙해진다면 동시에 수십 수백 곳을 터트릴 수도 있겠죠. 그런데도 당신의 능력이 하찮게 느껴집니까?”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에몬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없다면 시도해 보십시오. 그 정도는 분명 금방 가능해질 겁니다. 그리고 선즈.”

    “아, 네!”

    유더가 에몬에게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던 선즈가 입을 딱 벌린 채 본능적으로 군기가 든 대답을 했다.

    마치 윗사람을 만났을 때 같은 태도였지만 세 사람 중 아무도 거기서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적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정찰능력입니다. 평소에 눈을 감고 그 너머를 느끼는 훈련을 하세요. 당신의 감각이 예민해질수록 능력도 점차 발전할 겁니다. 볼 수 있는 거리를 늘리거나, 혹은 당신이 원하는 것만 꿰뚫어볼 수도 있겠죠.”

    “눈을 감고… 훈련을 하라구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지금 눈을 한 번 감아보세요.”

    유더의 말에는 오랫동안 단장직을 수행하며 체득한 설득력이 녹아 있었다. 선즈는 왠지 모르게 명령을 듣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뭔가 보입니까?”

    “아, 아뇨. 지금은 아무 것도…….”

    “평소 능력을 쓸 때, 정신을 많이 집중해야 하는 편입니까?”

    “네. 그건 어떻게…….”

    뻔하다. 투시 능력이 없는 일반인도 뭔가를 잘 들여다보려 하기 위해서는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 하물며 그것 자체를 능력으로 지닌 자라면 더한 집중력이 필요하겠지. 유더는 그런 이들을 많이 보았었다.

    “필요할 때 곧바로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연습부터 시작하는 게 좋겠군요. 아무튼, 지금 제가 당신의 얼굴 앞에 손가락을 몇 개 펼 겁니다. 집중해서 그게 몇 개인지 맞춰 보세요.”

    “…예? 이렇게 갑자기요?”

    “지금 폈습니다. 몇 개로 느껴집니까?”

    “자, 잠시만요.”

    유더는 선즈에게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곧바로 그의 얼굴 앞에 손가락 3개를 폈다. 선즈가 허둥대며 입술을 꾹 다물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주변에서 기운이 아주 미약하게 일렁거렸다.

    “5를 다 셀 때까지 맞춰 보세요. 5, 4, 3…….”

    “잠깐만요. 저는 아직…….”

    “2, 1. 몇 개입니까?”

    “2……. 아니. 3개?”

    선즈가 자포자기한 기색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정답이었다. 유더는 에몬이 옆에서 눈을 크게 뜬 것을 보며 피식 웃었다.

    “눈 뜨십시오.”

    “……어?”

    눈을 뜬 선즈가 제 앞에 있는 손가락 3개를 보고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제대로 맞추셨습니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한 것이라… 그냥 우연이 아닐까요.”

    “아닙니다. 제대로 맞춘 겁니다.”

    유더는 힘을 담아 대꾸했다.

    “그런 능력은 스스로를 의심할수록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확신을 가지세요.”

    “그래도…….”

    “두 분 다, 지금 제가 한 말이 이상하게 들리시겠죠. 하지만 저는 이런 능력을 지닌 이들을 계속해서 보아왔고, 지금도 함께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제 말을 믿으십시오.”

    유더의 말에 두 남자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갑자기 일어난 이 이상한 대화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놀랍고 당황스럽겠지. 하지만 거기에 더해서 능력에 대한 인식까지 바꿔야 해.’

    유더는 두 사람의 얼굴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결코 쓸모없는 능력이 아닙니다. 저는 곧 높으신 분들이 여러분의 능력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데에 뭐든 걸 수 있습니다.”

    “높으신 분들이라니. 누가요? 여태 2년 동안에도 아무도 우릴 찾지 않았는데.”

    에몬이 파이프에 쌓인 향초 재를 털며 중얼거렸다.

    “우린 평범한 병사들이에요. 이 정도 능력을 지닌 사람들은 오르 제국 전체에 수도 없이 많을 것 아닙니까? 이번에 황제 폐하께서 모집한 그… 마병단인가, 하는 곳처럼 말입니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마병단을 왜 모집했다고 생각합니까. 필요했기 때문이겠죠.”

    2년간이나 아무도 찾지 않았다고 했지만, 달리 말하자면 고작 2년이다.

    마병단조차 없었던 지난 2년간은 세상 사람들이 새로운 능력을 지닌 자들의 등장에 경계하고 적응하기에도 벅찼던 시기였다.

    그리고 적응이 끝난 지금부터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지금은 유더만이 알고 있는 세상이었다.

    “아직 세상은 이 힘의 가치를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곧 달라지겠죠. 수많은 이들이 그 가치를 알게 되는 순간이 오면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선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직까지는 반신반의하는 기색이었다.

    ‘여기서 곧바로 그렇다고 대답하는 건 오히려 선동자처럼 느껴질 수 있다.’

    유더는 그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가진 힘을 자신이 모른다면 정작 그 힘이 필요할 때가 와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을 겁니다. 여러분의 힘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나타날 때까지 가진 힘이 어느 정도인지를 충분히 알아두시고, 그 가치를 우습게 여기지 마십시오. 본인이 제 힘을 우습게 여기면, 다른 이들은 그것을 더욱 하찮게 여기게 될 테니까요.”

    유더의 말에 선즈와 에몬은 동시에 각자 깊은 생각에 잠겼다. 군인은 그저 위에서 내려오는 명령을 충실히 받들어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미덕이며, 장군과 황제를 무조건 따르는 것이 옳다고 배웠을 그들에게는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해야 그 뿌리 깊은 군인 근성을 조금이라도 떨쳐내고 훗날 특수부가 만들어질 때 상황을 바꿀 수 있으리라.

    “…하긴.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군요. 내가 내 힘을 별 것 아니라고 하면 다른 녀석들에게 더 우습게 보이긴 하겠죠. 여기 있는 녀석들과는 처음부터 그런 식으로 대하는 분위기가 되어서 당신이 말하는 부분은 미처 생각지 못했네요.”

    에몬이 불 꺼진 파이프를 내려다보며 한쪽 입술 끝을 끌어올렸다.

    “당신이 말하는 대로 훈련을 통해 힘을 쓰는 방법이 좀 나아진다면 몇 년째 진급할 기미가 안 보이는 우리 상황도 좀 나아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오르 제국에서 군대란 강성한 힘을 가진 기사단 아래일 뿐이고 그저 머릿수를 채워줄 뿐인 집단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마나와 오러라는 것을 인간이 사용할 수 있게 된 뒤로 전쟁은 줄곧 그런 힘을 쓸 줄 아는 자들의 것이었다.

    고대에는 전술과 병사 개개인의 실력이 중요했던 때도 있었다지만 이제는 아무도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이기기 위해서는 그저 소드마스터와 대마법사가 우리 편에 있는지, 아닌지가 더 중요해진 지 오래였다.

    결국 오르 제국의 제국군이 하는 주요한 임무란 그저 국경을 지키고 치안을 유지하며 귀찮은 몬스터 처리나 도맡는 것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도 군을 통솔하는 장성급들은 귀족 출신이었으나 그런 그들도 그 자리를 진짜 무력을 가진 자리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저 남부군과 북부군 각각을 통솔하는 장군들만이 대대로 소드마스터로서 그 자리를 맡아 명예를 높이고 더 높은 권력을 잡기 위한 길목으로 삼았을 뿐이었다.

    지노 보델리 장군처럼 뛰어난 실력을 갖췄음에도 오래도록 장군 자리를 유지하는 경우는 승진욕 없이 청렴결백한 성정일 때에나 가능한 드문 사례였다.

    그럼에도 군대에 들어가는 평민들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영주의 수탈에 시달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돈을 받을 수 있으며, 평민 출신이 드물게 고향을 떠나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할 수 있는 일이라는 두 가지 장점 때문이었다.

    군대에 지원하는 이들은 주로 넉넉지 못한 평민 가정에서 태어나 하나라도 입을 줄이기 위해 떠밀려 온 자식들이었다.

    그래도 군대에라도 들어갈 수 있으면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었다. 그렇지 못한 경우는 용병단이나 상단 아래쪽에서 죽을 때까지 허드렛일만 하는 경우도 많았다.

    간혹 그렇게 들어온 평민임에도 훈련 도중 무술에 엄청난 재능이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드물게 꽤 높은 곳까지 진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제국이 생긴 뒤 천 년의 역사 동안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유더는 2년이나 산맥에서 어슬렁대기만 했을 병사들의 무기력한 태도와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태도의 원인도 아마 그런 것에 기인한 것이리라 짐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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