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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7화 (7/805)

7화

분위기가 어느 정도 유해지자 모두 알아서 열을 맞추어 줄을 섰다. 유더는 멀지 않은 곳에서 눈에 띄는 붉은 머리칼을 발견했다. 가케인이었다.

그쪽은 아직 유더를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찾고는 있는지 계속 두리번대는 것이 조금 우스웠다.

“단장님께서 들어오신다. 모두 똑바로 서도록.”

드디어 바깥쪽이 웅성거리며 누군가 훈련장 맨 앞에 마련된 단상 위에 섰다. 몇 명의 기사들이 그를 호위하듯 따라 들어왔지만 단상에 선 것은 한 명뿐이었다.

큰 키에 빛나는 금발 머리와 붉은 눈동자를 지닌 흰 제복의 사내는 등장하자마자 모두의 시선을 빼앗았다. 그가 그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순식간에 모든 것이 빛을 잃는 것처럼 느껴졌다.

“만나서 반갑다. 나는 펠레타 공작, 키시아르 라 오르다.”

존재 자체가 태양과 같은 사내. 그것이 바로 변용 마법을 쓰지 않은 키시아르 라 오르의 진짜 얼굴이었다.

마병단원 330명과 황궁기사단 모두가 키시아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는 모두가 그를 보고 있음을 확인하려는 것처럼 주변을 가볍게 한 번 돌아보았다.

유더는 붉은 눈동자가 저를 본 순간 착각이라고 느끼기 힘들 만큼 가늘게 휘는 것을 보았지만 아무 내색도 하지 않았다.

“보시다시피 나는 빛의 힘을 타고난 황실의 일원이며, 동시에 공작이기도 하지. 하지만 그런 것이 너희들에게 의미가 있는가? …아니. 이곳에서 그런 건 아무 의미도 없어.”

키시아르의 나직한 목소리가 공간을 울릴 때마다 마치 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황궁기사단 기사들만이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할 뿐이었다.

“이곳에서 나는 단지 너희들과 같은 붉은 돌의 힘을 각성한 자일 뿐이다. 그리고 너희보다 약간 더 폐하와 잘 아는 사이이기에 대표를 맡았을 뿐이지. 마병단의 기치는 오직 제국의 안위와 힘, 그리고 너희 자신의 자유. 그것이면 충분하다. 이 의미를 아직은 모를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깨닫게 되길 바란다.”

“…….”

파격적인 것을 넘어 거의 충격에 가까운 선언에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취임사는 여기까지 해 두겠다. 너희는 앞으로 제대로 된 마병단 전용관 공사가 끝날 때까지 잠시 황궁기사단 부지를 빌려 지내게 될 것이다.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마병단장실로 찾아오도록. 이상.”

“다, 단장님께 인사하도록.”

황궁기사단 기사가 당혹을 숨기지 못한 채 외쳤다. 아직까지 경례법조차 없는 병아리 같은 신입들이 제각각 인사를 했다. 기사들은 그 모습을 더없이 끔찍하다는 듯 지켜보며 기가 막힌 한숨을 내쉬었다.

그곳에서 웃고 있는 사람은 오로지 키시아르 라 오르뿐이었다.

* * *

“단장님 말이야. 정말 이상한 분 같아.”

충격적인 취임식이 끝난 뒤 마병단원들은 임시숙소 건물로 안내받았다. 그들은 1, 2차 성별을 토대로 4명씩 나누어 한 방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마병단 내 업무분류가 마무리될 때까지는 그렇게 지내야 한다는 상당히 두루뭉술한 설명을 들었지만 불만을 토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취임식에서 본 키시아르가 충격적이었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과 같은 능력자들을 보았다는 호기심이 컸기 때문이었다.

“유더! 역시 합격했구나!”

유더는 신입 단원들 사이에서 드디어 저를 발견한 가케인이 주인을 발견한 강아지처럼 뛰어오는 모습을 보았다.

“나도 합격했어. 그리고 칸나도 합격했더라고. 혹시 칸나를 봤어?”

분명 존댓말로 대화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칸나도 반말로 지칭하는 가케인의 친화력이 상당히 놀라웠다. 유더가 고개를 젓자 가케인은 그녀와 곧 인사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분 좋게 등을 두드렸다.

“정말로 우리 셋 다 합격하다니, 아무래도 네 축복 덕분인 것 같아. 네 방은 어디야?”

“음…….”

유더는 손에 쥔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숙소는 건물 3층의 36번째 방에 있다고 쓰여 있었다. 그것을 함께 본 가케인이 작게 환호를 질렀다.

“나와 같은 방이야. 다른 두 사람은 누구지?”

“글쎄. 가 보면 알게 되겠지.”

유더에게는 누가 같은 숙소를 쓰게 되든 아무런 상관도 없었지만 가케인은 그렇지 않은 듯 했다. 그는 한 번도 이런 식으로 누군가와 한 숙소를 쓴 적이 없다며 흥분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정말 기사가 된 것 같아. 함께 자고 함께 훈련받고.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

재미라…….

유더는 그의 기억 속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렸다. 처음 마병단에 들어온 뒤 한 달 정도는 그야말로 죽도록 굴렀다. 그때는 각 능력자에게 맞는 훈련법이 무엇인지조차 아직 정형화되지 않은 시기였다.

키시아르는 그 체계를 만들기 위해 초대 단원들을 그야말로 실험 대상처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렸다. 그 덕에 다음 모집 때는 그럭저럭 체계를 갖춘 마병단이 될 수 있었다.

아마 이번이라고 그리 다르지는 않으리라. 유더 본인이 지금 당장 키시아르의 입장이 된다 해도 이제 막 만들어진 마병단 체계를 그보다 잘 세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과연 일주일이 지나도 재미있겠다는 말을 할 수 있을지 보도록 할까.

과거로 다시 돌아온 건 나쁘지 않았지만, 지옥 같은 훈련을 다시 할 생각을 하니 그것은 반갑지 않았다. 어차피 제 능력을 어떻게 키우면 되는지는 유더 스스로가 제일 잘 알았다. 거기에 육체적으로 구르는 방법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키시아르에게 설명할 수 없으니 그저 견디는 수밖에.

한숨을 내쉬며 향한 숙소에는 이미 같은 방을 쓸 두 명의 남자가 도착한 상태였다.

“너희 둘 다 우리 방 멤버들이야?”

빼빼 마른 주근깨투성이 남자가 겁에 질린 얼굴로 물었다. 그의 이름은 후안이었고 능력은 순간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후안. 그리고 저 녀석은 쿠르가야.”

유더는 침대 한쪽을 차지한 채 뻔뻔하게 누워 있는 쿠르가를 보았다. 그는 인간이라기보다는 곰에 더 가까운 생김새를 갖고 있었다.

실제로 그의 능력도 몸을 거대하게 부풀려 전투능력을 극대화하는 것이었으니 어울리는 겉모습이라 할 수 있었다.

둘 다 이전에도 지나가며 보았던 기억은 나지만 그리 뛰어난 실력은 아니었던 탓에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제대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마병단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단숨에 단장 자리를 받은 유더와 평범한 다른 각성자들은 서는 자리부터가 달랐으니까.

예전에는 저보다 능력이 안 되는 다른 이들에게 신경을 쓸 만큼 여유가 없었다. 유더의 관심사는 늘 더 강해지는 것과 제 한 몸을 지키는 것이었고, 세계에 이상한 징조가 생긴 이후부터는 그 원인을 알아내 막는 것에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죽음으로 알게 되었으니 최대한 주변에 신경을 넓게 쓰고, 절대로 마병단장 따위는 되지 않을 생각이었다.

“난 가케인. 이쪽은 유더. 나는 원할 때 내 그림자를 불러낼 수 있는 능력이고, 이쪽은… 그러고 보니 유더. 네 능력이 뭐였는지 그동안 모르고 있었네.”

유더는 제가 이전부터 꽤 쓸모 있겠다고 생각했던 가케인 볼룬발트의 능력을 그제야 확실히 기억해냈다.

‘그래. 그림자를 통해 분신을 뽑아내어 연락책으로 쓰거나 전투를 수행해서 평가가 높았었지.’

“나는 불과 물을 검에 실을 수 있어.”

“불과 물? 두 개나?”

“대단한걸.”

유더의 말을 들은 이들이 일제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사실은 그보다 더한 것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마 더 놀라겠지만 지금은 그것을 밝힐 때가 아니었다.

“좋아. 앞으로 잘 부탁해.”

“으, 응. 나도.”

그들은 인사를 나눈 뒤 서로 사용할 침대와 구역을 나누었다. 마병단에 들어오기 전부터 이런 단체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 예상한 이들이 많아서인지 충돌은 없었다.

‘평민들에게는 꿈 같은 상황이기도 하고.’

이 방에서 묵게 될 4명 중 가케인을 제외하면 모두 성이 없는 평민이었다. 그들에게는 침대가 4개나 들어가는 넓은 방에서 깨끗한 침구와 식사를 제공받으며 지내는 것이 아주 낯선 경험일 터였다.

‘곧 익숙해지겠지만.’

두 번째로 겪는 마병단에서의 경험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 * *

330명의 마병단원들 중 성이 없는 이는 200명이 조금 넘었다.

그것은 즉 글조차 모르는 이가 과반수가 넘는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붉은 돌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성을 가진 이들과 시선 한 번 마주치지 못했을 이들이지만 그들의 운명은 이제 완전히 바뀌었다.

황궁기사단만이 이용할 수 있었던 훈련 시설이 모두 마병단의 차지가 되었다. 매일같이 훈련장에서 불꽃이 폭발하고 기구가 부서졌지만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능력을 지닌 이들끼리 있으면 그 정도는 당연했으니까.

단장 키시아르는 마병단원들에게 체력 훈련과 마력에 익숙해지는 훈련, 그리고 각자의 개인 능력을 키우는 훈련을 동시에 시키면서 글자 공부까지 하도록 명령했다.

원성이 터질 만큼 엄청난 짓이었지만, 이것이 얼마나 큰 특혜인지 알고 있었기에 모두 죽기 살기로 훈련 일정에 따라 움직였다.

덕분에 몇 주가 지났을 때 마병단원들은 빠른 속도로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다. 물론 그 모든 것을 두 번 하는 유더를 따라올 이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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