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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5화 (5/805)

앞으로도 칸나와 연락할 더 좋은 방법을 알아낸 뒤 보낼 것을 그랬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유더를 향해 가케인이 묘한 표정으로 물었다.5화

“나는 사실 상당히 긴장되었었는데.”

“……나는 별로. 괜찮아.”

이미 한 번 겪어본 것이고 결과가 뻔한 일에 무엇 하러 긴장하겠는가. 하지만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으므로 말을 아꼈다.

“넌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아. 내가 본 누구보다도……. 너라면 정말 마병단 시험에 바로 합격할 것 같다.”

“응. 맞아. 합격할 거야.”

유더의 답에 가케인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이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푸핫. 뭐야 그게. 혹시 능력이 미래라도 보는 거야? 그러면 나는? 난 어떨 것 같아?”

“미래를 보는 능력은 없지만 너도 합격할 것 같다.”

가케인이 더욱 크게 웃었다.

“거 참, 그런 표정으로 기분 좋은 말도 다 해 주고. 고마워.”

그는 빈말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유더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었다. 가케인은 정말로 마병단에 합격할 테니까.

그는 유더에게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 했지만 안에서 유더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므로 그럴 수 없었다.

“좋아. 접수하고 와. 난 출구 쪽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기다리지 않고 가도 된다고 말하려 했지만 가케인이 몸을 돌리는 것이 더 빨랐다. 유더는 푸른얼룩 관 안으로 들어섰다. 접수는 어차피 금방 끝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접수 이후에 있을 시험이었다.

* * *

마병단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수많은 이들 때문에 시험은 한날한시에 이뤄지지 않았다. 일단 신청을 끝낸 이들을 대상으로 3일에 걸쳐 황궁기사단 부지 안에서 이루어졌고, 합격 여부는 시험이 끝나는 즉시 가려졌다.

유더는 마지막인 셋째 날 시험을 보도록 안내받았고, 가케인은 그보다 하루 전인 둘째 날 시험을 보았다.

여관에 도로 돌아오지 않은 것을 보면 이전과 마찬가지로 잘 합격한 모양이었다. 유더는 간소한 짐가방을 챙겨 어깨에 메고 여관을 나섰다.

시험을 볼 황궁기사단은 여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여러 개의 높은 건물로 이루어진 황궁기사단 부지 내의 한 훈련소가 바로 마병단 입단 시험이 이루어질 장소였다.

유더는 건물 주변을 맴도는 이들의 긴장감 어린 표정을 보며 몇몇 눈에 익은 얼굴을 확인했다. 이 시험에서 합격할 이들의 얼굴이었다.

“423번, 네 차례다!”

수많은 이들이 건물 안으로 불려 들어갔다. 이제 유더의 차례였다. 유더는 기억 속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건물 안으로 느긋하게 걸어 들어갔다.

지금은 황궁기사단의 훈련소 하나를 빌려 겨우 이루어지는 시험이지만, 몇 년 뒤 황궁기사단과 마병단의 입지는 완전히 뒤바뀐다.

평범한 사람이 대부분인 기사들은 타고난 각성자들을 이길 수 없었다. 마병단은 황제의 신임을 받으며 승승장구해 한때 황궁기사단의 소유였던 건물의 반을, 그리고 새로 지어진 건물 반을 하사받아 위용을 뽐내게 되었다.

“423번입니다.”

안내자의 뒤를 따라 시험장에 들어선 유더는 다섯 명의 시험관과 마주했다. 옛날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그들의 면면을 대부분 알 수 있었다. 왼쪽에서부터 황궁기사단의 부단장, 재상 무커의 보좌, 진주탑에서 보낸 마법사 대표, 궁정 마법사, 그리고…….

가장 오른쪽에 앉아 있는 남자를 본 순간 유더의 눈빛이 달라졌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직책을 눈치챌 만한 아무런 특징도 보이지 않는 옷을 입은, 얼핏 평범한 인상의 남자였다.

다른 참가자들은 그 남자에게서 어떤 특이함도 느끼지 못했겠지만 유더는 달랐다.

그 남자의 얼굴은 마법으로 정교하게 만들어 덧씌운 가짜였다. 타인의 기억에 남지 않도록 일부러 평범하게 만든 그 얼굴을 유더는 아주 오래전에 본 적이 있었다.

‘저 얼굴은 설마.’

“423번. 능력 설명란에 아주 거창한 설명을 적었는데, 이게 모두 사실인가?”

유더가 오른쪽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는 사이 날카로운 질문이 그의 정신을 일깨웠다. 진주탑의 마법사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유더의 신청서를 흔들고 있었다.

“불과 물을 검에 실을 수 있다? 내 살다 살다 이리 허황된 말은 처음 들어보는군.”

예전에도 그들은 유더의 신청서에 대고 그런 말을 했다. 그때는 저도 어렸기에 발끈했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그들이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충분히 이해했다.

각성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마법이란 것은 아주 힘들게 수련해서 겨우 마나를 몸에 쌓고, 그것을 토대로 복잡한 과정을 거쳐 사용하는 것이었기에 한 번 쓰기가 몹시 조심스럽고 힘들었다.

때문에 마법사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성취를 이루기 위해 대부분 가장 사용하기 쉬운 한 가지 유형의 마법에만 주로 파고들었다.

불 마법이라면 불 마법만을, 물 마법이라면 물 마법만을 사용하는 것이 정석처럼 굳어져 내려온 지가 벌써 천 년이 넘은 상태였다.

서로 다른 속성의 마법을 함께 배우면 마나를 움직이는 방법에 익숙해지는 시간이 너무 길게 걸렸고, 무엇보다도 몸속에 쌓은 마나끼리 충돌을 일으켜 몹시 위험했다.

그래서 한 가지 속성 이상의 마법을 쓰는 마법사란 거의 소설에나 나올 법한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취급받고는 했다.

물론 그것은 각성자가 나타나기 전까지의 이야기였다.

붉은 돌의 힘으로 각성한 이들 중에는 여러 개의 속성을 다양하게 다루는 이들이 많았다. 물론 숙련도와 낼 수 있는 위력은 천차만별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기존의 상식을 부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 중에서도 유더는 가히 최고의 존재였다. 그는 모든 속성을 자유자재로 다루었고, 손에 닿는 모든 무기에 그 힘을 실어 더 강력한 것으로 바꿀 줄 알았다. 검에 속성을 싣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사실은 불과 물만 다룬다고 써 둔 것조차 능력을 축소해서 보고한 셈이지.’

사실 예전에는 그저 속성을 다룰 수 있다고만 했을 뿐, 그것을 검에 실을 수 있다는 말은 쓰지 않았다. 그가 무기에 속성을 실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몇 단계의 발전을 거친 이후였기 때문이었다.

진짜 제대로 된 힘을 전부 다 이야기했다면 아무도 믿지 않아 신청서 단계에서 탈락했을 테니 어느 정도 축소는 필요했지만, 그렇다고 이전과 완전히 똑같은 길을 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한 고민의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유더는 이 정도의 실력을 보여주어야 마병단에 합격한 이후 곧바로 두각을 드러내며 제 목적을 달성하기 편할 것이라 생각했다.

유더가 마법사들의 분노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왼쪽에 앉아 있던 황궁기사단의 부단장이 수염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직접 보기 전까지는 우리끼리 왈가왈부해보았자 알 수 없는 노릇 아니오? 그래, 자네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에게 보여주게. 믿을 수 있도록, 확실하게 말이야.”

“알겠습니다.”

유더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험을 치를 이는 개인 무기를 들고 올 수 없도록 되어 있었기에 지금 그는 맨손이었다. 하지만 멀지 않은 곳에 시험자를 위해 마련된 뭉툭한 연습용 철검과 몇 가지 도구가 보였다. 망설임 없이 그곳을 향해 걸어가 철검 하나를 집었다.

“흐음.”

아무리 연습용이라고는 해도 일반인은 절대로 쥘 수 없을 만큼 무거운 검이다. 그것을 그다지 근육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팔로 마치 나뭇가지 잡듯 들어 올리는 모습에 시험관들의 분위기가 변했다.

바라던 반응이었기에 유더는 흡족하게 검을 들고 시험관들에게 잘 보이는 곳에 섰다. 그가 검을 가볍게 들 수 있는 이유는 자연 속성을 마음대로 다루는 능력자이기 때문이었다.

단순히 5대 속성을 벗어나 무엇이든 자연에서 난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유더의 손안에서 손발처럼 움직였다. 무기의 대부분은 철로 이루어져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 때문에 붙잡혀 고문당했을 때는 일단 각성자가 힘을 내기 위해 필요한 가장 큰 급소이자 약점인 배꼽 아래의 마나 홀부터 꿰뚫려 해체당했다.

죽을 때도 혹시 몰라 팔다리를 전부 으스러뜨린 뒤 자연에서 난 존재가 아닌 몬스터 힘줄로 만든 밧줄을 써서 묶였다.

그러고도 사형당하는 날까지 어떻게든 살아 있었던 것은 유더가 각성자이기 때문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유더의 마나 홀은 더없이 멀쩡했고, 몸 상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눈앞에 있는 이들은 아직 각성자가 어디까지 가능한 존재인지 몰랐다.

그들은 유더가 쥔 뭉툭한 연습용 검 한 자루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모른 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따름이었다.

‘물론 지금은 적당한 수준만 보여줄 생각이지만…….’

기껏 다시 돌아온 세상에서 시간을 낭비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유더는 시험관들을 압도하면서도 전력을 다하지 않은 수준의 힘을 보여 괜찮은 인상을 남기고 합격하기를 원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유더의 시선이 맨 오른쪽에 앉아 평범한 가짜 얼굴을 뒤집어쓴 남자 쪽으로 또다시 흘긋 향했다.

“……시작하겠습니다.”

유더는 검을 들어 올렸다. 시험관들의 시선이 모두 그 검 끝으로 쏠린 것을 보며 천천히 기운을 끌어올렸다. 체감상으로는 아주 오랜만에 하는 것이었지만 방법은 숨을 쉬는 것처럼 머리에 잘 각인되어 있었기에 조금도 헷갈리지 않았다.

주변에 흐르는 기운을 붙잡는다. 그리고 그것을 불로 바꾸기를 원하며 들고 있는 검 끝에 덧씌운다. 유더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능한 일이라 설명하기 어렵지만 과정은 대충 그 정도였다.

화르륵 소리를 내며 순식간에 검날이 불꽃으로 뒤덮였다. 제대로 된 불꽃이 맞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평소보다 훨씬 더 뜨겁고 새빨갛게 만들었기에 열기가 시험관들이 있는 곳까지 그대로 전달되었다.

유더는 그대로 검을 들고 천천히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리그었다. 간단해 보이지만 거기에 실린 힘은 결코 작지 않았다.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불똥이 뚝뚝 떨어지자 시험관 중 몇 명이 화들짝 놀라 의자째로 뒤로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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